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필자는 현재 '연구년'(창조를 위한 재충전이 아니라 집중연구와 생산력을 강조하는 요즘 한국의 대학가에서는 '안식년'이라는 낭만적인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을 맞아 네덜란드에 머물고 있다. 교내외 기관의 지원을 받는 연구과제 2개를 수행하며 국가기관이 후원하는 해외한국학 파견교수 자격으로 이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때로는 다소 쓸쓸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시절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해외체류근무(?)를 고맙고 소중하게 체험하고 있다.

 조그만 대학촌에 정착한지 한 달 보름 정도가 지났는데, 오늘은 그동안 내가 단편적으로나마 관찰했던 우리 업계(대학/인문학) 이야기를 몇 가지 해 보려고 한다. 첫째, 소위 '인문학의 위기'는 한국적 상황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혹은 최소한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닌) 현상인 것 같다. 내가 방문한 대학에서도 수강생이 적거나 인기 없는 인문학 분야가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작년에 40여 명의 교수들이 직장을 잃었고 수업과목도 많이 축소되었다. 관련 연구소들도 시장경제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이슬람국제연구원은 폐쇄되었고 나의 공식초청기관인〈동양학국제연구원(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Asian Studies)〉도 얼마 전 좀 더 협소한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옛 빌딩에서 혼자 연구실을 사용하던 호사를 누렸던 나는 다른 방문교수와 함께 연구실을 공유하게 되었으니 그 불똥이 나에게도 튀긴 것일까.

 둘째, 네덜란드 동업자 교수들은 좀 더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연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교육조교의 도움에 많이 의존하는 한국의 대부분 대학교수들과 달리 이곳 교수들은 온갖 잡무와 행정업무를 스스로 감당해야만 했다. 개강 전에 학과사무실에 들러 출석부를 얻고, 필요한 참고서적을 도서관에 예약하고, 수업자료를 복사하여, 행정실에서 해당 강의실 열쇠를 수령하고서야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해진 연봉 외에는 부수입원이 원천적으로 거의 없다. 다른 대학에서의 특강은 품앗이 형태로 진행되었고 일반인 대상 교외 강연은 지식인 사회봉사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한국의 '이름 날리는' 일부 교수들이 대기업 '자문/고문역'과 '사외이사' 등과 같은 빛나는 명함을 새겨 정규수입보다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는 횡재는 이곳에서 불가능하다. 같은 역사업계에 종사하는 네덜란드 동료학자는 "우리는 한국처럼 (영어)논문 아무리 많이 발표해도 보너스 한 푼 없다"고 푸념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교수들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막스 웨버가 말한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조건 없는 헌신이야말로 그들이 일용하는 양식인가.


네덜란드 라이덴 시의 모습
사진 출처 - Discover Leiden

 셋째, 한국과 비교하면 네덜란드에 전반적인 교육시스템은 좀 더 보편적인 평등권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에 따른 금전적, 신분적 불평등을 방지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의대입학생들을 일정한 시험을 통과한 후보자들 중에서 추첨으로(!)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깜짝 놀랐다. 전문교육이 개인적인 부와 특권의 밑천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묘책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입학도 어렵지 않고 대학별로 전체 순위가 있다기보다는 각 단과대학별로 다른 전통과 특징을 가질 뿐이다. 예를 들면, 한국(어)학과 일본(어)학 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네덜란드에서 라이덴 대학이 유일하다. 예술체육대 등 모든 학과를 총망라해서 특정대학만이 최우수대학으로 선망되는 한국 실정과는 아주 다르다.

 내 수업에 등록한 수강생들도 상호 경쟁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과목을 느긋하게 배우겠다는 것이 기본태도이다. 학생참여와 토론을 장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발표하면 보너스 점수를 부여 하겠다"고 공지했는데 신청자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한국에서의 경우에는 거의 80% 이상의 학생들이 다투어 발표신청을 한다. 상대평가에 따른 성적시스템 때문에 다른 학생이 받는 보너스 점수는 내 점수를 빼앗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상 유래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한국의 대부분 대학생들이 이런 '제로섬 게임'의 악몽에 시달리는 반면, (대학원 진학 계획이 없는) 많은 네덜란드 대학생들은 낙제를 면하는 65점 이상 성적에 만족한다고 한다. 나쁜 학점이 좋은 직장을 구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느냐고 되짚어 물어보니까, 너무 높은 학점 소유자는 학창시절에 사교활동이 부족했던 부적합한 직장후보생으로 찍힐 우려가 있다고 한다. ㅎㅎㅎ

 오호라, 교수들은 '생기는 것 없이' 온갖 잡무와 업무에 시달리고 대학생들은 우등생 되기에 목숨 걸지 않고 평균적으로 빈둥거린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누가 이끌고 책임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처지 네 대학 네 나라 걱정이나 제대로 해라'이다. 다소 속물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네덜란드는 노벨상 수상자를 15명이나 배출한 세계 TOP 10 안에 손꼽히는 인재국가이다. 도대체 무슨 특별한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의 비밀이 있단 말인가. 혹시 이곳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교실에서 은밀히 주고받는 것은 '지식(knowledge)'이 아니라 '질문(question)'이 아닐까. 결국 이상적인 선진대학은 네가 떨어져야 내가 붙는 겁나는 취업사관학교가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현실과 세상만사에 대한 '의심(doubt)의 숙성공장'이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당신 정말 유럽역사 전공자 맞아? 네덜란드에 대해서 쥐뿔도 확실하게 아는 게 없잖아! 그렇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모든 잘못과 어려움의 근원은 분수도 모르고 불평 많고 비판만 일삼는 나 같은 삼류 사이비 역사가(인문학 교수)들이다. 그러므로 되풀이 경고하건대, 허튼 생각 말고 "철자법 맞는 논문이나 열심히 써라 이 철밥통들아."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꿈을 가진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춤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그 아이는 춤으로 세상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언론의 관심도 유별났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소위 말하는 ‘특수목적고’에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최고의 무용수가 되겠다는 꿈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삐거덕거리게 되었습니다.

 그 삐거덕거림은 ‘선생’을 잘못 만난 것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담임교사는 첫 면담부터 노골적인 ‘촌지’를 요구했고 그렇게 가져다 바친 돈만 2년간 28회에 걸쳐 모두 480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교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특정 학원에 다닐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교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브로커였던 셈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이 아이가 교사에게 불만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가졌다 하더라도 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아이의 집안 사정이 갑자기 나빠져 학부모가 교사를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때부터 불거졌습니다. 아이가 마침 어떤 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했고 학교에 한 번 오라는 교사의 호출을 받았지만 학부모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정상 ‘봉투’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부터 교사는 브로커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학부모에 대한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상습적인 폭행과 잦은 반성문 강요가 반복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 또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급기야 2009년 3월에는 반성문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목 부분을 맞아 3개월째 병원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장기간 입원으로 학교에서는 유급처리가 되었고, 아이는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꿈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광주드림


 이런 일이 있고 나서야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교육학부모회 등 광주지역에 있는 인권단체들이 사건의 부당함과 해당 교사의 처벌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에 접수한 민원이 광주시교육청에 이관되어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청의 태도는 상식 밖이었습니다.(어쩌면 상식일지도 모릅니다.) 1차 조사에서는 피해학생과 학부모는 만나지도 않은 채 해당 교사의 진술만을 토대로 ‘증거자료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차 조사에서는 담당 장학사가 피해학생의 심리상태가 심각함을 인정해놓고도 심리상담 프로그램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3차 조사에는 3자 대면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청이 내린 결론은 광주시 교육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이유를 들어 ‘엄중경고’에 그쳤습니다. 한 아이의 꿈을 무너Em린 반교육적인 교사에게 교육청은 ‘너 정말 조심해’라고 얘기한 것이지요.

 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교사의 태도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3자 대면을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요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오라 가라 하면 당신들 앞에서 확 죽어버리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억울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믿는 무엇인가가 있어서였을까요? 한 아이의 꿈을 ‘자살’이라는 협박으로 무마하려는 그 사람을 어찌 ‘교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미 교육자의 자격을 잃은 사람에게 기껏 ‘경고’밖에 할 수 없는 교육청의 안이함은 딱 ‘그 나물에 그 밥’이 제격입니다.

 광주는 교육열이 꽤 높은 곳입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3년간 수능시험 전국 1위라는 결과는 어느 정도 짐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1위가 아닙니다. 2009년 현재까지 광주전남에서 자살한 아이들이 모두 13명에 이릅니다. 대부분 광주지역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성적도 1위지만 아이들의 자살도 부끄러운 1위인 셈이지요.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청은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비위 사실이 명백한 교사는 감싸고, 정작 보살펴야할 아이는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이 죽음으로 말하고 있는데도 교육청은 뻔뻔하기만 합니다. 결국 또 성적으로 덮을 속셈인 게지요.

 무용수의 꿈을 키우던 아이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오늘은 발로 찼다.…진짜 죽고 싶다. 정말 살기가 싫다. 엄마가 아픈데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이 책이 내 유언장이 될 수도….” 춤으로 승승장구하던 아이가 이제는 죽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5층 난간에 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13명의 죽음도 모자란 걸까요? 또 한 번의 죽음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또 어떤 변명을 해야 하는 걸까요? 교육청이, 아니 교육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며칠 전 선거법 관련 전교조 교사들의 공판소식을 전해 들었다. 20명 전원에게 징역 6월에서 2년 2월의 실형이 구형되었단다. 피의자들의 절절한 최후진술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특히 소환당시 암선고를 받고 힘겹게 투병했던 우리 지회장 선생님의 최후진술을 대하면서, 치료하느라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선생님의 야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법정에 다녀 온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뭐, 이런 놈의 세상이 다 있냐!’ 는 울분을 서로 토해내며……. 

 업무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급식업체와 학원장들에게 수십억 원을 지원받고, 교육청 실, 국장과 교장, 교감들을 동원해 선거를 치른’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6월을 구형한 검찰이 개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다만 교육적 충정의 발로로 주후보를 지원했던 이 힘없는 교사들에게는 교육감보다 훨씬 무거운 형을 내린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이유로. 이 정권과 검찰의 후안무치에 또 다시 기가 막혀 온다. 이중 잣대라고 지적하기에도 이제 신물이 난다. 차라리 그냥 딱 까놓고 말해라.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전교조 때려잡으라고 난리였는데, 기회가 좋아서 낚아챈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긴 촛불집회 때 안전한 먹거리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온 유모차부대의 엄마들에게 ‘아동학대’죄를 들이댄 이 정부의 검찰인데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교육의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기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이를 조직적으로 위반함으로써 교육 공공성을 해친 것이 인정되어…’ 라며 검사는 중형 구형의 변을 늘어놓았다. 교육의 공공성이라고 했는가? 검사는 그 뜻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있기에 그 말을 갖다 붙인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최소한 ‘교육의 公共性’이라 함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도 침해받지 않을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보장해야 하며, 나아가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건강하게 발전시켜가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교육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과 매일 호흡하며 생활하는 우리 교사들이 보기에 작금의 교육현실이 그런 대원칙에서 심각할 정도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되기에 그 위기의식에서 우리 교사들이 나선 것 아닌가.

 교육의 균등성 면에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목고, 국제중, 자립형 사립고의 난립, 고교등급제 등 일련의 교육정책들이 결국은 소수의 엘리트학생들에게는 유리한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엄존하는 학력위주의 사회현실 속에서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나라 모든 학부모에게 자녀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누가 더 많은 양질의 사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종착지는 결국 달라지게 돼 있다.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균등하지 못한 릴레이를 펼친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성에 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성적이 곧 실력은 아니다. 또 성적향상이 교육의 다가 아니다. 또한 모든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도 없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알며, 각기 다른 다양한 실력과 소질을 키워 나름의 꿈을 키우고, 또 펼치면서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진짜 중요한 건 다 생략하고 모든 아이들이 성적향상만을 향해 질주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 향상과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되는 분위기다. 언젠가 모 학원에서 어느 특목고의 입시문제를 아이들에게 학원차 안에서 나눠주는 사건이 있었다. 뒤늦게 합격이 취소되고 학원도 문을 닫는 듯 했으나, 결국 학부모들의 소송으로 학생들은 다시 합격 조치되고 학원도 슬그머니 다시 문을 열었으며, 지금 성업 중이다. 학교는 또 어떤가. 특목고준비를 하는 중3학생들의 경우, 학년말엔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요구에 많은 학교들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교실 밖 어딘가에서 입시준비를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적이 모든 가치보다 위에 자리하면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묵살되는 현실, 각종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면서 교육이 교육을 배반하게 하는 이 현실이 또한 교육공공성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교사는 검사의 말처럼 ‘국민전체의 봉사자’이지,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특정 계층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전체, 더욱이 약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3월 10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교육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10년 전 복직에 즈음해 김귀식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난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가슴 속에 새겨두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진실을 가르치려면 우리 교사들은 어떤 권력기관이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양식과 교육관을 지니고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한다.  

 교사는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소매상이 아니다. 그런 건 다른 곳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교사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의 메시지를 찾아 내가며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지나간 역사의 편린들을 단순히 암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지난 역사의 공과 과를 꼼꼼히 분석하고 앞으로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반성하고 토론하는 사람인 것이다. 교사들의 이런 교육활동이 가능할 때에 진정 우리의 교육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정권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 고소, 고발로 난도질당한 교단엔 어느새 울분과 투쟁의 기류 대신 무기력과 자조 섞인 침묵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내쳐진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그래도 교단에 남아 버텨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자위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표정을 잃어가는 교사들. 보았으되 보지 않은 듯, 들었으되 듣지 않은 듯, 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도 꾹 참으면서 쏟아지는 업무에 함몰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너무 우울하다. 학원에서 새벽까지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아이들,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을 보아도 교육자로서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펼 수 없는 우리들이 진정 교육의 주체라 할 수 있는가. 

 힘들었던 해직기간을 마치고 복직하게 되었을 때의 그 벅찬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이제 더 이상 교단이 행복하지 않다. 지난해 동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며 사직서를 던지고 표표히 교단을 떠난 후배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지금에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이 질식할 듯 한 분위기를 그는 조금 일찍 감지하고 떠났지 싶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데 건강한 교육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까. 

 교육당국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가경쟁력’ 진정한 실력과 경쟁력은 이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폭압과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열려있는 사고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개성과 소질을 지닌 아이들을 조화시켜 내는 교육적 시스템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미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교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생각에 반하는 다른 어떤 주장이나 견해도 용납하지 않고 마치 점령군인양 국민들을 폭력으로 통치하려는 정부, ‘잃어버린 10년’을 부르짖으며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는 패륜적인 정부, 그나마 살아 있던 원칙과 상식마저 일시에 엎어버린 정부당국에 마지막으로 바란다. 

 당신들의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눈곱만큼도 양보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아가 백성들이야 어찌됐든 이를 더욱 부풀려 자손만대 누리려는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무식과 어리석음의 소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나라의 앞날이 조금이라도 걱정된다면, 그리고 ‘국가경쟁력’이 제고되길 바라는 게 진정이라면 ‘전교조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그야말로 선정적이고 원한에 사무친 듯 한 구호들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제발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인권연대 주최 이번 교사인권강좌에서 강의를 마친 후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요? 인권교육이라는 것이 말은 그렇지만 과연 실제로 얼마나 실행되고 확산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라도 좀 강하게 맞서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었다. 그 때 필자는 선뜻, “이대로 가다가 교육은 결국 바닥을 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경찰이 쏘아 대는 물대포와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온몸을 젖게 만드는 이슬비, 그런 이슬비가 결국 물대포보다 강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었다. 이어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처럼 담쟁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결국은 그 담을 넘지 않겠어요?”라고도 했다. 그 후 필자는 “그 답이 과연 충분한 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바닥을 치는 것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와 “이슬비가 물대포보다 강한 이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악화일로의 경제상황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가끔씩 “바닥을 쳤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우리는 그 말을 “이젠 더 나빠질 리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좋아질 것”이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 또한 살아오면서 가끔씩 끝 모를 절망이나 실패 혹은 슬럼프에 빠져들게 되면 우리는 “차라리 바닥을 빨리 쳤으면 좋겠다. 바닥을 치면 그땐 올라가는 일만 남지 않겠냐?”라고 생각한다. 정호승 시인은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하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하며,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하며 그 시를 끝맺는다.  


 필자가 여기서 이해하는 ‘바닥까지 내려감’은 곧 ‘희망’이다. 새벽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면, 가장 어두운 순간 바로 다음엔 곧 빛이 터져 나오는 거 아닌가? 역대 정권들이 하나같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수많은 조치들을 발표하고 시행해오고 있지만 교육을 물속에 점점 깊이 빠뜨려 왔다면, 곧 ‘바닥’을 칠 것이고, 그리고는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갈 차례가 아닐까? 인권을 무시하여 교육을 물속에 빠뜨렸다면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 인권이 교문을 넘어 학교 안에 확산되게 하는 방향이 곧 수면 위로의 방향일 것이다. 걸상과 허리가 맞지 않아 걸상에 허리를 맞추다가 수많은 학생들이 걸리게 되는 척추측만증, 학생이 안경 쓰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안타까운 시력 희생, 초등학생에게까지도 성적이 떨어진 것을 유서 쓰고 투신할 만큼의 불효로 여기게 만드는 교육풍토와 가정교육, 명문대 합격을 위해 인권을 유보함은 당연하다는 식의 ‘입시독재’ 논리……. 더 이상은 내려갈 곳이 없음이 모두에게 자명해지고 있지 않은가? 하여, 교육은 이제 곧, 드디어, 바닥을 치고 오른다! 이것을 “바닥을 치는 것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라고 보는 것은 좀 궁색한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도 우리는 가끔씩 듣는다. 필자는 문득, “무엇이 약한 것인가? 왜 약하다고 하는가? 약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하기에 강한 것을 이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그 글을 풀어쓰자면, “사람의 숨은 약하기 짝이 없으나 갈비뼈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것은 바로 그 약하기 짝이 없는 숨 아닌가?” 예전에 읽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글도 풀어쓰자면, “눈 오는 겨울 산에서 살면 흔히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약하고 약한 눈송이들이 큰 가지들 위에 점점 쌓이면 그 무게를 못 이겨 키 큰 나무들이 통째로 부러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물대포’와 ‘이슬비’는 어떤가?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인근에서 점거 파업 중인 쌍용차 노조원에게
물을 전달하려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해산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물대포’로 비유되기엔 약할 만큼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남용 및 과잉진압은 많은 경우에 인명 피해로 이어지곤 한다. 작년의 촛불집회, 올해 초의 용산 참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쌍용 자동차 사태에 이르도록, 최루액과 경찰특공대 등을 갖춘 공권력은 이미 허용 정도를 넘어 정당성을 상실한 폭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6일 천주교 마산교구 상남동 성당에서 제3차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열렸다. 미사에 앞서 행한 연설에서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은 “박정희 대통령은 부마사태와 YH사건, 전두환은 박종철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무너졌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이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을 폭로하면서 6월 항쟁이 시작되었듯이, 이명박 정권은 새벽에 6명을 불태워죽이고서 3,000쪽의 조사기록을 밝히지 않으니 말로가 뻔하다.”고 말하면서 용산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와 3,000쪽의 검찰조사기록 은폐가 묘하게 대응된다 싶다.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생명수호를 위해’ 봉헌되는 미사,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의 동참,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갖게 되는 정의와 희망의 연대감, 참사 후 반년이 지나도록 장례마저 못 치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신자, 비신자를 떠나 사람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되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양심의 가책, 그러면서 서서히 배우지만 절실히 깨닫게 되는 ‘인권’의 소중함과 불가양도성, 민주주의에 대한 상실감과 목마름……. 이런 모든 것들은, 당장의 위력으로는 ‘물대포’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결국은 모두를 똑같이 적시는, 흔히 우산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홀딱 젖게 하는, ‘이슬비’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은 결국은 ‘희망’이다. ‘바닥’은 끝 모를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강하게 차고 오를수록 상승의 탄력이 붙을 것이다. 그리고 ‘이슬비’는 ‘물대포’를 이기리라. 결국에는 ‘물대포’를 쏘는 발사체인 대포도 녹슬게 만들리라. 약한 것은 약하지 않다. 약하게 보일 뿐이다. 지브란의 말처럼 “갈비뼈를 움직이는 것이 숨”이라면, 국가의 갈비뼈를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으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국가가 강하게 훈련시킨 근육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올곧은 ‘숨’, 곧, 혼과 의지와 꿈, 시민의식, 특히 인권의식 아닐까? 이것이 약할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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