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9월에 검찰이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이유로 박아무개를 기소하였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띤다. 우선 이런 종류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다인종‧다문화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생각할 바가 많다. 발언자가 특별히 폭력행위를 준비했던지 그렇지 않던 간에 발언 자체가 갖는 부정적인 상승 작용 때문에 인종차별적 발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매우 높다.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도 인종차별적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정도이다. 인종차별적 발언에 담긴 세상은 이질적인 집단들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다원적 질서가 아니라 피비린내 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단순히 개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인종 범죄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통상 사회적 약자 집단을 향한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을 증오적 발언(hate speech)이라고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증오적 발언은 인종, 성, 연령, 민족, 국적, 종교, 성적 지향, 성정체성, 장애, 언어능력, 사회경제적 계급, 장애, 도덕적 또는 정치적 견해, 직업, 외모(신장, 체중, 머리색), 정신적 능력, 여타 구별요소에 기초하여 사람이나 사람들의 집단을 비하하거나 위협하거나 폭력과 편견에 찬 행동을 선동할 의도에서 이루어진 발언을 의미한다. 어쩌면 인간을 구별하는 특정징표에 의존하여 이루어진 비신사적인 발언이 모두 증오적 발언에 해당할 수도 있다. 국제사회는 그 중에서 특히 인종에 입각한 차별적 발언을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규제옹호론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증오적 발언이 저질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적 행동이라고 한다. 이들은 알포트(G. Allport)의 편견의 단계이론을 좋은 근거로 원용한다. 알포트는 유대인 집단살해 과정을 심리적으로 다섯 단계로 설명하였다(The Nature of Prejudice, 1954). 처음에는 특정집단(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단순히 표출하는 부정적 발언(antilocution)의 단계에서, 이러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기피(avoidance)하는 단계,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discrimination)하는 단계로 발전하고, 다음에는 그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physical attack)을 가하는 단계로 상승하고, 마지막에는 집단 전체에 대한 절멸(extermination)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증오적 표현은 제1단계인 부정적 발언에 해당하고, 첫 단계에서 방치하면 증오의 감정이 팽배하게 되어 위기의 상황에서 타인종, 소수민족, 외국인에 대한 폭력 범죄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역 대로에 홀로 서 있는 후세인. 한국인의 차별 속에 외롭게 서 있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물론 일상에서는 인종차별적 의도 하에서 공격적 발언을 일삼는 혈통파나 네오나치와 같은 부류들도 있지만, 특별한 공격의도 없이 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발언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언의 상대방은 사회적 인종적 약자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을 느끼게 된다는 점만큼은 보편적 진실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역사가 앞서 말한 유대인 학살, 아파르트헤이트, 흑인노예제 등을 수반했던 나라들의 역사와 다르다거나 우리 민족은 외국인에 대해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전반적으로 동의하기도 어렵거니와, 있다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근대자본주의와 인종주의는 깊은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근대자본주의는 인종을 착취 활용하였으며, 인종적 우열의 논리를 통해서 자본주의는 심화되어 왔다. '순혈' 한국인들과 유럽인종이나 일본인들, '순혈' 한국인들과 주변부의 어두운 피부의 사람들의 관계를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생각해 보면 친절과 적의가 본질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지배질서에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인종주의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의 내면이고, 경제적 억압과 착취의 심리적 표현에 가깝다. 전후 세계질서는 이와 같은 가학적 세계관과 이를 조장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였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로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제20조 제2항). 인종차별철폐협약은 직접적인 폭력행동뿐만 아니라 인종주의를 전파하거나, 인종적 증오를 고취하거나, 특정인종에 대한 폭력행동을 선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제4조). 르완다 국제법정은 증오적 표현을 국제관습법에 위반된다고 선언하면서 전쟁범죄의 일종으로 다루었다. 증오적 발언이 단순한 언어적 표출이 아니라 공격, 지배, 살륙의 과정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는 증오적 발언, 즉 인종차별적 발언, 장애차별적 발언, 성차별적 발언, 반인도범죄의 희생자에 대한 모욕적 발언 등이 가지는 가학적 성격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는 바로 세계관에 대한 세계관의 힘겨운 싸움이다. 그러나 이를 형벌로 간단하게 해결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형벌이 세계관을 바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 30대男 기소… 관련법 없어 모욕혐의 적용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증가 등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명을 넘어서면서 외국인혐오증(제노포비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에서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30대 남성이 이례적으로 기소됐다.

6일 법무법인 ‘공감’(공익변호사 모임)과 성공회대에 따르면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2부는 지난달 31일 형법상 모욕 혐의로 A(31)씨를 약식기소했다. 박씨는 7월10일 오후 버스를 타고 가다 다른 승객인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28) 성공회대 연구교수에게 “더럽다”, “냄새 난다”는 등 차별적인 발언으로 모욕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술에 취했던 A씨는 “자신도 후세인씨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면서 맞고소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이를 취하했다. 우리나라 법에는 일부 선진국처럼 인종차별 발언이나 행위를 규제하는 법규를 두고 있지 않아 A씨에게는 형법상 모욕 혐의가 적용됐다.

김주선 부천지청 차장은 “국내 법은 이런 상황에 대해 내국인과 외국인 간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법 앞의 평등’ 정신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했으며, 법 적용은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후세인 교수를 지원한 ‘공감’ 관계자는 “법원 판단이 남았지만 검찰이 인종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차별적 발언을 처벌 대상으로 간주한 사례는 이번이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세인 교수는 지난달 19일 이번 사건을 조사한 부천 중부경찰서와 산하 계남지구대 소속 경찰관과 박씨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바로 잡아 달라면서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종차별은 고약한 반인도적 범죄로, 이번 약식기소는 인종차별과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인종차별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부터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기사입력 2009.09.06 (일) 18:28, 최종수정 2009.09.07 (월)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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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단체 "인종차별과 인권 이해 높이는 계기"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국내에서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남성이 기소되는 첫 사례가 나왔다.

체류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기소는 순혈주의에 기반을 둔 뿌리깊은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적 문화를 반성하고 외국인에게 관대한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6일 법무법인 공감과 성공회대에 따르면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형사2부는 지난달 31일 형법상 모욕 혐의로 박모(31)씨를 약식기소했다.

박씨는 7월 10일 오후 9시께 버스에 함께 타고 있던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28) 성공회대 연구교수에게 "더럽다", "냄새난다"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욕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박씨도 후세인씨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맞고소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이를 취하했다.

일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규제하는 법규가 없어 박씨는 일반 형법으로 처벌됐다.

김주선 부천지청 차장검사는 "국내 법은 이런 상황에 대해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며 "`법 앞의 평등' 정신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했으며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마찬가지로 다룬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측 법률 지원을 담당한 공익변호사 모임 `공감'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검찰이 인종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차별적 발언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간주한 사례는 한국 사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인종주의를 묵인해온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후세인씨는 지난달 19일에는 이번 사건을 조사한 부천 중부경찰서와 산하 계남지구대 소속 경찰관들과 박씨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바로잡아달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인권운동계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체류 외국인이 110만명을 넘고 2050년에는 국내 거주자 10명 가운데 1명이 귀화자나 외국인일 것으로 예상돼 인종차별 문제를 내버려두면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불안요소가 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은 고약한 반인도적 범죄다. 비록 약식기소이지만 인종차별과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계 백인과 유색인종 외국인을 차별하는 부끄러운 관행과 문화를 돌아봐야 한다며 "인종 문제는 차후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금부터라도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공감의 한 변호사는 "외국인의 임의적인 구금을 허락하는 인신보호법처럼 우리 법제도 곳곳에 숨어 있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찾아 없애는 노력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cielo78@yna.co.kr
아시아투데이  
[2009-09-06 10:27]  

검찰 "인종차별적 발언"…첫 기소
인권단체 "인종차별과 인권 이해 높이는 계기"
국내에서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이 모욕으로 받아들여져 기소되는 첫 사례가 나왔다.

6일 법무법인 공감과 성공회대에 따르면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형사2부는 지난달 31일 형법상 모욕 혐의로 박모(31)씨를 약식기소했다.

박씨는 7월 10일 오후 9시께 버스에 함께 타고 있던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28) 성공회대 연구교수에게 "더럽다", "냄새난다"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모욕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박씨도 후세인씨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맞고소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이를 취하했다.

일부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규제하는 법규가 없어 박씨는 일반 형법으로 처벌됐다.

피해자측 법률 지원을 담당한 공익변호사 모임 '공감'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검찰이 인종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차별적 발언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간주한 사례는 한국 사법 사상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인종주의를 묵인해온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후세인씨는 지난달 19일에는 이번 사건을 조사한 부천 중부경찰서와 산하 계남지구대 소속 경찰관들과 박씨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바로잡아달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고 자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인권운동계와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체류 외국인이 110만명을 넘고 2050년에는 국내 거주자 10명 가운데 1명이 귀화자나 외국인일 것으로 예상돼 인종차별 문제를 내버려두면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불안요소가 되리라는 우려도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은 고약한 반인도적 범죄다. 비록 약식기소이지만 인종차별과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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