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비겁자의 자식, 억울한가? 그럼 분노하라!"
'난쏘공' 조세희 작가, 3년 만에 공식 석상 나서 강연

3년 만에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공식 석상에 섰다. 1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12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약 40여 분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난쏘공' 출판 30주년 행사 이후 첫 공식 자리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수찬 <한겨레> 기자는 조세희 작가를 두고 "3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 글을 쓰는 것에 귀감이 되고 시대의 귀감을 보여주는 작가"라며 "우리 시대의 정직한 교과서를 썼고 힘 있는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소개했다.

폐기종 등 여러 병을 앓고 있는 조세희 작가는 이날 연단에 서는 것조차 힘에 겨워보였다. 미리 준비한 종이를 든 손은 시종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35년 전 '난쏘공'을 쓸 때와 똑같았다. 시대가 바뀌지 않는 것에 좌절해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것.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엉망진창"이라며 "현재의 문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 작가는 "악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며 "현실을 비관하거나 냉소하지 말고 분노하라"고 당부했다.

아래 그가 연단에서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싣는다.

박정희, 아주 묘한 사람이다

내가 아프다. 요즘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2005년 11월 15일부터다. 왜 그런가 하면 현재 200여 개의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나 여러 가지 제한조건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몇 마디를 국가에 전하기 위해 여의도로 올라왔다.

그러다 이 국가를 지탱하게 하는 큰 힘 중에 하나인 경찰의 진압 작전에 휘말려 두 분이 돌아가신 날, 나 역시 다쳤다. 그 때부터 아프다.(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한 농민 두 명이 경찰진압과정에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몇 군데를 크게 다쳤다. 5.18 때 이 땅에 태어났기에 겪은 가슴 아픈 일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때부터 밖을 나가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병원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다니고 있다.

여기에 젊은 분들이 와 있다. 여러분과 달리 난 한국의 농경사회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태어나 박정희라는 아주 묘한 인간을 만났다. 여러분이 어떻게 배웠는지 몰라도 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배웠다. 그 치하에서 자랐기에 잘 안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서도 잘 안다. 동족을 학살하고 피 흘리게 한, 가장 나쁜 일을 한 사람이다. 그 사람과 악수를 해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시대도 살아서 김영삼을 잘 안다.

한국의 미래는 엉망진창, 왜?

말이 샜는데, 어쨌든 박정희 시대에 우리는 몇 백 년 동안의 일을 단숨에 이뤘다. 박정희가 했다고 한다. 도로도, 전기도 다 박정희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렇게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한 나라를 다 먹여 살렸는지 몰랐다.(웃음) 박정희는 가난한 농민의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

난쏘공을 한 권 써놓고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 (박정희가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그런 생각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는데 자꾸 엉뚱한 상황으로 나가더라. 박정희는 늘 우리가 선진국으로 될 거라 했다. 늘 발전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선진국인가.

노태우 때, 전두환 때도 마찬가지다. 몇 년 뒤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선 뛰어난 국가가 되겠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우겠다. 그런 허깨비 같은 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후한 점수를 줘서 2.5세계에 도달해 살고 있다. 국민총생산은 여전히 2만 달러를 넘어가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으쌰으쌰' 하더니 어떻게 됐나. 후하게 쳐줘서 2.5세대에 와 있다.

근데 지금 우리의 대통령도 똑같이 늘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명박은 박정희처럼 우리에게 잘 살게 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의 미래는 내가 볼 때는 답답하다. 엉망진창이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서양인들이 500~600년에 걸린 것들을 단숨에 해치워버리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땅 파는 게 뭐라고 왜 토건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500~600년에 걸쳐 해온 것을 이 뛰어난 인간들은 단숨에 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런 사회를 보면서 비관주의자가 되어선 안 된다. 나로 충분하다. 냉소주의자가 되어도 안 된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제일 좋아한다. 나쁜 정치인들, 무식한 정치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스무살 청년들이 엉망진창이 되어선 안 된다.

학자들도 엉터리다. 4대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린 이명박 대통령이 뭘 생각하는지 다 안다. 하지만 우리는 무식에게 끌려 다니고 한 가지 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 이명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외국에도 안 나가봤는지 궁금하다. 건물 하나가 몇 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고 다리 하나가 몇 백 년 동안 그대로 있는 걸 못 봤나.

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요즘 유행이 '분노하라'다. 하지만 난 힘이 없어 분노하지 못한다. 어제 밤에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이 병은 완쾌되지 못하는 병이다. 언제 나를 쓰러뜨릴지 모른다. 힘이 하나도 없어 분노할 수가 없다. 분노에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몰라서 그런지 힘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는 엉망진창인 인간을 그대로 놔둔다. 전두환, 노태우. 이 둘은 지금도 편하게 살고 있다. 200여 개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또 있겠는가. 야스퍼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것은 공동의 책임이라고 했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미래의 주인이고 희망이고 세계다. 역사에 우리가 참여해 같이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혁명도 이루지 못했고 범죄자가 감옥으로 가지도 않았다. 되레 범죄자들은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일을 제대로 못했다. 독재에 굴복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여러분은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아버지 세대가 뭘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떳떳하다고 큰 소리 치면 안 된다.

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제3세계 아버지의 자식이다. 그게 억울한가. 그럼 달라지자. 청와대가 달라지지 않으면 청와대로 갑시다. 이런 말을 하겠다. 나 자신에게도 욕을 하고. 냉소주의자가 되지 마라. 나도 언제 죽을지 몰라도 냉소주의자가 되진 않겠다.


/허환주 기자

‘난쏘공’ 작가 3년만의 외출 “비관주의자가 돼선 안된다”

그는 말을 하는 내내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떨리는 손은 짧은 강연이 끝날 때까지 이마를 떠나지 못했다. 소설가 조세희(69)씨. 심장과 폐에 병을 안고 있는 그가 3년 만에 어려운 외출을 했다. 2008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 출간 30돌 행사 이후 처음이다.
그가 힘겹게 찾은 곳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1일 열린 인권연대 창립 12돌 기념식이다. 그는 현시대 한국 사회를 “엉망진창”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눈물겨운 현장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꽉꽉 눌러오고 있다”고도 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을 마음에 새긴 말이기도 하다. 그에게 ‘난쟁이의 삶’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힘겹고 눈물겹다.

작가 조세희에게 현재는 ‘반동의 시대’다. “20세기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우리 공동체 안의 다수는 행복과 먼 거리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져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폭력만큼이나 이명박 정부의 조급증은 무섭다”고 했고, “몇십년 걸려서 해도 안 될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우리 세대는 독재자들에게 잘 저항하지도 못했고, 항복도 받아내지 못했고,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이들에게 힘줘 당부했다.

“비관주의자도 냉소주의자도 돼선 안 된다. 비관주의는 나쁜 정치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분노해야 할 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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