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우롱하는 교권조례 유감 -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초안을 공개하면서 다시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악의적인 공격이 노골화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반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세력들은 ‘교권침해’를 조장해 학교교육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일부 보수단체들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성인식을 왜곡’시키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러한 억지가 부담스러웠는지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정책자문위원회는 조례 초안에서 ‘성소수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관한 권리조항을 삭제하는 ‘굴복’을 결단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담고 있는 내용은 학생 또한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미 헌법에서 확인하고 있고 법률에 의해 보장되고 있는 권리들을 조례를 통해 재확인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반대하는 세력들은 마치 없는 내용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처럼 호들갑이다. 체벌금지에 대해서도 조례가 초중등교육법에 위배된다는 섣부른 주장을 하면서, 나아가 체벌이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비방과 비난만 퍼부을 뿐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지도 정책자문위원회 한상희 위원장과 박영미 부위원장이
지난 9월 7일 시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 초안과 학생생활교육혁신 시안' 등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렇지만 이런 비방과 비난은 그나마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교권조례’에 대한 논의이다. 전라북도교육청은 얼마 전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교권조례를 입법예고했고, 전라남도교육청은 아예 학생, 교사, 학부모의 권리를 모두 담은 ‘교육공동체 인권조례’라는 정체불명의 조례를 추진 중이다. 광주에서도 모 교육의원이 교권조례를 추진하고 있다. 학생인권 보장과 함께 교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위험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교권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교사의 교육권’으로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의미한다. 여기서의 외부는 학교 이외의 세력, 학부모집단, 나아가 교육행정당국도 포함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교사의 권력 또는 권위’로 교사라는 전문성과 역량에 기반해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는 엄밀히 다른 의미임에도 교권이라는 애매한 말로 한꺼번에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교권조례를 통해 보장하려는 것이 ‘교육권’인지 ‘권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 논의 속에서 나온 것을 고려하면 정황상 ‘권위’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교사의 권위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형성되거나 인정되는 것인가. 권위주의를 내세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형성되고 인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폭력과 억압을 앞세워 복종을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구조 속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형성되기 어렵다. 경쟁과 일등주의의 강요에 침묵하고, 학생들을 억압하는 교육행정에 동조하며, 교육자로서 자주적인 교육을 포기하도록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의 권위는 강요가 아닌 이상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교권조례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외면한 채 교사들을 ‘순응하는 객체’로 두려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가 인정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는 학교 구조 속에서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인권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학생인권 존중을 통해 일방적 주입식 교육에서 소통하는 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 간 대립 구조가 해소되고, 상호 존중하는 학교문화가 조성될 수 있다. 다음으로 ‘교육권’이 학생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교육행정당국과 부당한 교육제도를 향해 행사되어야 한다. 자주적 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교육활동의 기능인으로 전락한 교사에게 권위는 있을 수 없다. 왜곡된 교육구조를 해소하지 않고 모순의 현실에 안존하는 한 교사의 권위는 포장될 수는 있어도 형성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을 기반으로 인권 친화적 학교문화가 만들어지고, 부당한 교육에 대한 저항이 본격화될 때 교사의 권위는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교권조례로 권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또 다시 교육행정당국이 제시하는 ‘당근’을 덥석 무는 꼴이다. 학생인권을 교권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는 순간 교권을 보장하겠다는 본말은 전도되고, 단지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결과만 남게 될 것이다. 결국 교권조례는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학생들 공대를 떠나 약대로 가다 (김인아)

김인아/ 객원 칼럼니스트

 개강이다. 전공과목인 생물분자공학의 수강 인원은 여덟 명. 50명이 들어가는 공간의 앞  줄만 간신히 채웠다. 식품저장학, 식품분석실험 등 다른 전공과목도 수강생이 열 명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강의실과 실험실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들이 사라져 간다. 늦은 밤 함께 실험실을 지키던 그 많은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 주변을 보면 약대 진학 열풍으로 짐작된다. 식품공학 전공 강의를 듣는 대신 약대 준비를 위한 입시과목으로 몰려간 듯하다. 3년 전 230명 정원의 일반화학 강의는 약대 준비생들로 인해 수강생이 400명을 넘겼다. 콩나물시루 속에서 강의를 듣다보니 강의의 질도 떨어져 간다.  

 이공계 출신 여학생들이 약대 입시 열풍을 이끌고 있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 통계를 보니 2012학년도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 응시자는 1만3077명인데, 이중 여성이 8638명이다. 66.1%다. 전체 약대 합격률을 보면 남녀 비율이 3:7이다. 대부분 이공계 출신자들이 이 시험을 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대에서 약대 열풍이 더 두드러진다. 의치약학 입시전문 교육기관의 신입생 분석 자료를 보면 으뜸이 이화여대 출신이란다. 실제 지난해 12월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 3학년 학생의 29.3%인 88명이 자퇴했다. 경제적 사정 같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약대 진학을 목표로 했을 의도적 자퇴란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떠돈다. 

 이화여대 공대에 다니는 김모(23)씨도 지난해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약대 진학을 결심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과도한 취업 경쟁 속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요즘에 대학만 졸업해서는 전공 살려서 취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공대니까 취업이 쉽겠다고 하지만 취업도 취업 나름이죠.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평생직장은 꿈도 못 꿔요. 대학원가서 석․박사를 하면 괜찮을까 생각했는데 선배들 말을 들어보니까 오히려 취업문이 더 좁아진대요. 거기다 들어가는 돈하고 시간은 오죽한가요? 따지고 보면 약대를 가는 게 훨씬 낫죠.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울 때도 안정적인 직업이 있으니 안심이잖아요.”  

 김씨는 자신의 여동생 역시 함께 약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김씨의 동생은 모 사립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 후 바로 약대 준비를 시작했다. 자연대에 진학한 이유 역시 약대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주변 친구들 중에 생물학, 화학 같은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들 보면 경영이나 경제학 복수 전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예요. 대학원 진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구요. 아마도 동생이 약대 준비를 할 계획이 없었더라면 아마 다른 전공을 선택 하라고 했을 거예요. 돈 잘 벌고 취업 잘되는 쪽으로요.”  

 김씨의 고민은 이공계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2010년 여성과학기술인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규직 여성 비율은 10.6%였다.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31.1%로 약 3배정도 더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정규직 여성 신규채용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1.7% 감소한 15.3%로 나타났다. 취업도 힘들다. 그러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는 더 힘들다.


약대 입시 설명회 모습
사진 출처 - 한겨레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면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가장 활발히 연구를 해야 하는 시기에 출산과 육아로 공백 기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연구 중단으로 기술 개발이나 논문과 같은 연구 실적을 내기도 힘들다. 성과가 부족하면 연구책임자로의 승진도 연구비 지원도 어려워진다. 엄마 과학자로 살아가기는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다.  

 이제 곧 졸업이다. 내년 2월이면 4년간의 대학생활도 끝난다. 함께 졸업을 앞 둔 08학번 동기는 단 한 명. 나머지 26명의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졸업을 연기했다. 그리고 일부는 약대로 떠났다.  

 4년간 등록금으로 4000만원이 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탓에 매 달 집세와 생활비로 100만 원 정도를 꼬박꼬박 쓰고 있다. 명절이나 주말에 고향집에 내려가 부모님을 뵐 때면 반가움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앞선 지 오래다.   

 실험실에서 늦은 밤까지 청춘을 바쳤다. 그러나 남는 것은 졸업장 하나다. 취업 준비는 별개다. 하고 싶은 일만을 꿈꾸며 살기에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전문직만이 대우받는 현실. 전공과 취업이 따로 노는 현실. 여자 공대생에게 약대 진학만이 유일한 해법처럼 보이는 이 현실을 바꾸어 볼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오늘도 답답함만 커져간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