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여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를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군 위안부 문제, 스와핑,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 위안부 누드 사건에서 박근혜 패러디까지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여러 이슈와 사건들을 재해석하며, 페미니즘에 대해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을 상쇄시킨다.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들 없이 수용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존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정희진 - 1967년 서울 출생. 서강대 종교학과와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했다. 현재 국가 안보와 젠더를 주제로 여성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대학을 6년 만에 겨우 졸업한 후 여성운동단체인 ‘여성의전화’에서 5년간 상근자로 일했다. 대학과 시민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며, 다양한 여성조직에서 자문위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쓴 책에《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폭력과 여성인권》, 편저자로 일한《한국여성인권운동사》와《성폭력을 다시 쓴다 ― 객관성, 여성운동, 인권》이 있다. 이외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사회운동, 평화, 인권, 탈식민주의, ‘아시아’, 인간 관계의 심리학과 정치학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권력, 언어, 외로움, 열정이 선사하는 고통을 상대화하는 길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머리말 | 소통, 경합, 횡단의 정치, 페미니즘
1부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
위험한 여성들 / ‘대중적인’ 여성운동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 협상과 공존의 사유, 페미니즘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켜라
어머니는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가 없는 사람들 / 움직일 수 없는, 변할 수 없는 여성
“성(姓)을 갈다”, 어머니의 섹슈얼리티 / ‘더러운’ 노동, 불가능한 임무
혐오스런 아줌마, 신성한 어머니
여성주의, ‘가장 현실적인’ 세계관
1. 여성주의가 필요한 이유 / 2. 말과 성차별
3. 여성주의 언어란 무엇인가 / 4. ‘위안부 누드’의 지배 에로티시즘 정치학
사랑과 섹스
1. 남자는 외롭다? 여자는 더 외롭다! / 2. 여성의 섹스, 남성의 섹스
3. 다이어트와 섹스 / 4. 스와핑에 대하여
5. 여관의 정치경제학 / 6. 늑대와 여우의 사랑?
2부
가정폭력의 정치학
진보와 보수는 누구의 전선인가 / 진보의 개념을 넓히다?
인류 공통의 역사, 가정폭력 / 가정은 사회가 아닌가
무엇이 정치적인 문제이고,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진보 없는 한국의 ‘진보’
아버지를 닮은 아들들의 폭력 / 과거사 청산 담론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순결한’ 피해 여성과 ‘타락한’ 매춘 여성?
‘피해자다움’이라는 성역할
피해의식은 남성의 전유물 / 남성 언어로 말하기의 고통
피해자 중심주의와 여성 범주의 딜레마
여성의 눈으로 다시 보는 인권
누가 인간인가?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 성폭력 가해자의 인권?
개인적인 것은 왜 정치적인 것인가? / 여성 인권 문제와 탈식민주의
인권의 시각에서 다시 묻는 여성 차별과 폭력 / 무엇이 인간의 권리인가?
3부
나이 듦, 늙음 그리고 성별 183
‘육체 분석학’으로 세상을 볼 때 / 한국 사회의 연령주의 정치학
여성의 늙음과 남성의 나이 듦 / 여성의 순환에 의존하는 남성 질서
영화 <집으로>와 <죽어도 좋아>의 여성 노인 / 몸에 새겨진 계엄령
‘성판매 여성’의 인권 201
성매매, 근절과 허용의 크레바스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문제라고 보는가’
‘성판매 여성’이라는 범주 / ‘강제’와 ‘동의’의 구분은 ‘중요하다’
권력은 듣는 자에게 있다 / 성과 사랑은 노동이어야 한다
성매매를 둘러싼 ‘차이’의 정치학 221
국가, ‘포주’에서 ‘보호자’로 / ‘성판매 여성’과‘페미니스트’
왜 구매자인 남성의 이름은 없는가 / 성폭력, 인신매매로서 성매매
성 노동자로서 성판매 여성 / ‘제국’적 상황, 성폭력과 ‘성 노동’을 넘어서
여성 억압을 누가 말할 것인가?
군사주의와 남성성 241
<알 포인트>의 근대성과 남성성 비판 / 군사주의와 성별화된 시민권
한국 ‘평화운동’의 군사주의와 남성성 / 남성 섹슈얼리티와 군사주의
남성 연대 대신 타자와의 연대를
|후기 | 변태하기 위하여
서평
페미니즘으로 본 소수자 인권
<페미니즘의 도전>은 제목 그대로 페미니즘에 관한 책이다. 특히 이 책은 페미니즘을 성찰적이고, 유연하고, 대화적인 공존의 정치학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기존의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킨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페미니즘 하면 대립, 반목, 독선, 편협, 투쟁 등의 키워드를 떠올리던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또한 소위 ‘진보운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에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내심 뜨끔해 할 대목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서 드러난 저자의 시각을 굳이 분류하자면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포스트모더니즘 저작들이 흔히 보이는 현학성이나 비실천성과는 거리가 멀다. 쉽지 않은 이론들을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도, 사랑,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군사주의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알기 쉽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읽는데 부담이 없다.
그런데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이 책이 소수자 인권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은 곧 소수자의 인권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이는 다수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옹호해야 할 인권은 다수자의 인권이 아니라, 침해받기 쉬운 소수자의 인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특정 소수자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한 주장이나 운동은 자칫 편협하거나 일면적일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소수자의 가치와 입장이 배타적으로 관철된다면, 그것은 다른 가치와 충돌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보편적 가치’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예컨대,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시설과 무주택자를 위한 신규주택 건설의 이해관계는 서로 충돌할 수 있으며, 소수인종을 배려하기 위한 조치가 다수인종의 빈민층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문제에서 더욱 빈번하게 드러난다. 이성애 여성을 기반으로 한 여러 정책들은 이주 남성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고, 성폭력을 문제제기 하기 위해 남-녀간의 대립과 여성범주의 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남성에 대한 성폭력이나 같은 성 간의 성폭력 문제를 주변화시킬 수 있으며, 가정폭력 피해자의 입장을 법정에서 관철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차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여러 조치들은 다른 차별의 기제, 즉 빈곤, 장애, 인종, 출신지역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을 간과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여성주의에 반감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확대·재생산되면서 여성주의의 주장을 반박하는 주된 논거로 작동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운동이나 소수자 인권운동은 결코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것인가?
저자가 이러한 문제를 ‘횡단의 정치’를 통해 다뤄나간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여러 의미체계 중 ‘하나’임을 전제하면서, 페미니즘 진영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여성 범주의 단일성을 부정한다. 횡단의 정치는 자신이 기반을 둔 정체성과 멤버십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으며, 타자를 자신에게 편입시켜서 동질화시키는 대신, 상대방의 상황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렇게 페미니즘과 여성의 범주를 상대화시킴으로써, 페미니즘은 비로소 보편적인 가치로 승화될 가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분명, 여성주의는 사회의 어느 한 단면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보편성을 지향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주의는 기존의 남성의 객관성이 전적으로 틀렸고, 여성의 객관성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주의는 정치적 올바름, 통일성이나 단일성의 가치보다는 대화의 가치를 강조한다. 여성주의는 남성적 객관성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을 부분화시키고 맥락화시키며,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기 보다는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주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성주의는 ‘서로 다른 각자의 처지(차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연대’이자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으로 재구성된다. 또한 이렇게 될 때 여성주의는 다른 사회적 차별이나 다양한 다른 억압적 기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보편주의 정치학으로 거듭날 수 있다.
다른 소수자 인권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자 인권운동 역시 (저자가 여성주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의 보편을 해체하면서, 다른 소수자의 처지와 차이를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연대해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은 어느 한 ‘부분’의 가치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개별적 처지와 이해관계에서 출발한 주장이나 운동이 다른 개별적 처지와 이해관계와 제한없이 연대하고 소통할 때, 그것은 비로소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되며,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적 차별은 언제나 여러 다른 억압적 기제와 얽혀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소수자 인권운동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으며, 상호침투하고 서로 횡단하면서 연대해야 한다. 결국 ‘특정 소수자’의 인권이 ‘보편적’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연대와 횡단이 중단없이 계속될 때인 것이다. 이렇게, 인권의 불가분성은 자유권과 사회권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각 소수자의 개별인권 사이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서평은 홍성수 교수가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 기고한 것으로, 홍성수 교수는 런던정경대학(LSE) 박사과정에서 인권법과 법사회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숙명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