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여순감옥에서 이회영 선생을 만나고 왔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위장전입으로 시끄러웠던 민일영 대법관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장전입 5회 경력, 김준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후보자 등 요즘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 정부 초기 때는 사퇴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퇴도 임명철회도 없다. 사과 한마디가 전부다. 거기에 정부여당 사무총장이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려면 이제는 국민들이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접어줘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는 판국이다.

 그러면 말이다. 위장전입으로 기소돼 전과자가 된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모두 사면해줘도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은 눈 감고 넘어가도 된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위장전입 5회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는 몇 번의 위장전입은 공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현 정부를 부르는 말들이 참 많다. 친서민 중도실용정부, 강부자․고소영정부, 기업프렌들리정부, 반서민정부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위장전입 정부’도 추가되었다. 정부 고위공직자 중 5명 가운데 1명꼴로 위장전입을 했으니 말이다. 정책과 사법처리를 집행할 집단 지도자가 위장전입 범법자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사회 도덕성과 양심, 정의는 사라졌다. 존경해야 할 지도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에서 민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 암울한 현실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이 떠오른다. 이번 여름에 중국 대련에 있는 여순감옥을 갔다 왔다.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이 서거한 곳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회영 선생도 이곳에서 서거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살다가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을 보여주신 분이다.  

 조선과 대한제국 말기 많은 지배계층이 친일로 변절했을 때, 조선조 10명의 재상을 배출한 선생의 가문은 항일운동의 길을 걸었다. 선생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을사늑약 오적 암살 시도,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운동, 최초의 독립운동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한일병합 후에는 6형제 중의 넷째였던 선생의 제안으로 6형제와 그 가족 등 60여명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고, 만주에서는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 등의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20년 봉오동, 청산리 대첩 또한 약 3,500여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상해 임시정부 초기에 참여했으나, 권력집중에 반대하여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무정부투쟁에 나섰고, 분권화된 지방정부를 강조하며 마을공동체 설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재중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절대 자유평등의 이상적 신사회를 건설코자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일본 고위관료와 친일파를 암살할 목적으로 비밀행동단인 흑색공포단을 결성하였다.

 결국 이회영 선생은 1932년, 만주일본군사령관을 암살코자 대련으로 이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서거하였다. 이 때 선생의 나이는 65세였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동안, 거대 명문집안이었던 선생 일가는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빈민으로 살아갔다. 교육도 못 받고, 옷을 팔아 연명하며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굶어 죽기까지 하였다. 5남이었던 이시영 선생을 제외하고는 남은 5형제와 그 가족 대부분이 먼 이국땅에서 굶주림과 병, 고문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또한 선생의 장남이었던 이규창 열사는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단체였던 흑색공포단을 조직한 후, 친일파 이용로를 암살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1년을 복역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많은 자녀들이 여러 특혜를 받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생은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재혼금지를 반대하고, 신분 평등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회영 선생은 암울한 대일항쟁 시기에 평생 동안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를 끌어안고 행동으로 실천하신 참 지도자였다.

 현 정부와 여당은 연일 불법집회, 노조 이기주의를 언급하면서 ‘법치’를 외쳐댄다. 또 지난 4월, 법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성숙한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전에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국회의원, 공무원, 법조인들이 먼저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도 있다. 이렇게 법치를 중요시하는 정부와 여당이 범법자들을 임명, 동의하고, 임명받은 자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는 이 현실이 그들이 말하는 ‘성숙한 법치주의’인지 묻고 싶다.

 그 뿐인가. 용산에서 일반 서민을 폭력 철거민으로 둔갑시켜 불태워 죽이고도 수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반면, 한 방송국 작가의 이메일을 세상에 낱낱이 공개하였다. 재판에 개입한 대법관도 문제되지 않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등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과 단체가 표적감사와 수사 등으로 잡혀가고, 물러나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도 탄압받고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성숙한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에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숭고한 정신, 자유와 평등의 인간의 기본권을 존엄하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자들이 많을 때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지도자 층의 위장전입 등을 접어주고 가는 것이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를...

 인권연대가 매월 회원님들을 위한 회원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영화모임>이 열 번째로 만날 작품은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입니다. 이주 노동자와 여고생의 만남을 담백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그린 <반두비>는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머의 소재로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정치의 유머화 혹은 유머의 정치화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인종차별적 안티세력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논란을 촉발 시킨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모임>에는 <반두비>를 연출한 신동일 감독이 특별히 참석합니다. 신동일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에 얽힌 이야기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성가족>,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등의 화제작을 연출하고, 시애틀 국제영화제 뉴디렉터스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한 신동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반두비>, 감독과 함께 관람하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10월 5일(월) 저녁 7시
  • 장소 : 인권연대 교육장(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2분거리)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3672-9443)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Bandhobi 

감독 : 신동일

주연 : 백진희, 마붑 알엄

배급사 :  (주)인디스토리
제작국가 : 한국
등급 : 18
상영시간 : 107분

장르 :  드라마

SYNOPSYS

세상이 껌인 소녀, 세상이 벽인 청년과 친구가 되다!

엄마는 애인 챙기느라, 친구들은 학원 다니느라 외톨이인 민서는 누구보다 자립심이 강한 당돌한 여고생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원어민 영어학원 등록을 위해 갖가지 알바를 해보지만 수입은 신통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카림의 지갑을 수중에 넣고, 발뺌하다가 엉뚱하게 그와 엮인다. 민서는 다짜고짜 경찰서에 가자는 카림에게 소원 하나 들어줄 테니 퉁 치자는 당돌한 제안을 하고, 카림은 1년치 임금을 떼먹은 전 직장 사장 집을 함께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민서는 얼떨결에 시한부 ‘임금추심원’이 되긴 했지만, 낯선 카림이 옆에서 걷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는데…

신동일 감독의 ‘관계 3부작’ 마지막 작품 <반두비 >

 <반두비>는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두편의 장편영화로 ‘신동일파(?)’라 부를 만한 강력한 강성 지지자들을 형성해낸 신동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관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방문자>는 여호와의 증인 청년과 결함이 많은 386 지식인의 우정을 그린 관계에 관한 우화였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성공한 386세대와 그의 하층민 친구의 사연으로 그려진 관계에 관한 죄의식과 불안증이었다. <반두비>는 지금 이 안에 살고 있는 두 이방인의 관계에 관한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고찰이다. 전작에 비한다면 좀더 미래의 상을 걸고 뻗어나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민서와 카림이 관계를 쌓아나가는 장면 또는 마음의 친구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장면에 관한 묘사는 전작들보다 훨씬 유하고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게 하는 이 영화 속 세계의 구조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민서는 맛난 것을 사먹기 위해 돈에 욕심을 낸 것이 아니라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 돈 욕심을 낸다.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 돈을 훔치고 싶은 여학생, 이라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상을 자극하는 현실이 지금 극장 문을 열고 나가면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동일은 정말 간절하게 말하고 싶어 한다.
 

 감독의 전언은 확고한데 직설적 화법이라는 면모도 확고하다. 그건 신동일 영화의 뚝심이자 동시에 여전히 어떤 문젯거리로 남아 있다. 전작에 비해 유연해졌어도 이런저런 독한 농담들을 나열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의 맥을 방해하는 것 같다. 그 농담을 듣게 될 당사자들이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정치적 영화에서 분노와 야유가 정서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의 모순을 끌어안으려는 영화는 늘 그 자신의 형식적 구조의 문제도 함께 끌어안아야 하는 고됨이 있다. 마음은 여전히 맑되 형식은 더 간교해지는 신동일 영화의 길은 어떨까, 궁금하다. 어쨌든, 그래도 <반두비>를 보고 나면 마음의 온기가 돌아 좋다.

 

글 : 정한석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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