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배우자

그리고 행복해지자 - 1st day

2009/07/15~07/17
2009 인권연대 인턴 윤광훈
출발
출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아침부터 부산하다.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자료집이며, 수첩, 수료증에 더하여 회원들에게 매월 보내드리는 소식지가 책상위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공교롭게도 소식지 작업과 대학생 인권학교 행사가 겹쳐서 광화문으로 떠나는 11시 반까지 소식지를 접어야했다.
 
약속 시간인 1시가 되기 2분 전인데 도착한 학생은 열 명 남짓.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곧 출발인데 왜 안 오지? 그래도 다행히 1시 반에는 출발할 수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숙소인 오마이스쿨에 도착했을 때, 학생들이 눈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폐교를 리모델링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운동장에 우거진 잡풀과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 외관은 담력시험 장소로는 적합했지만, 강의를 듣고 2박3일은 보내기에는 부족해보였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수많은 걱정들은 눈녹듯이 사라졌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깔끔한 벽지와 마루바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강의실도 강의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구비되어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강의 전의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은 35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이공계 학과로만 이루어진 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이토록 다양한 전공과 다양한 배경을 갖춘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단어 하나를 위해 모였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제작한 기념 머그컵, 자료집, 국장님 책 등을 나누어 주고, 벽에 붙일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달라고 당부한 후,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나? - 홍세화
홍세화 선생님은 역시 강의를 많이 다니시는 분답게 강의가 깔끔했다. '나는 내 의식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신 선생님은 현대인들이 가지는 '의식의 비주체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내 삶의 나침반'인 의식이 타자에 의해 지배되지 않도록 1. 책 2. 강연 3. 체험 등을 통해 지식을 얻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미디어 매체와 제도 교육 외에 내가 얻은 지식의 출처를 생각해보니 전체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어서 20이 80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10이 90을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세태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했고, 현재 제도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짧은 문답이 오갔다.
우리는 사람이 사는 마을로 간다 - 이지상
저녁을 먹고 다시 강의실로 모였다. 기타와 하모니카 등이 준비되는 것을 보며, 모두들 이색적인 강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표정이었다. 기대에 보답하듯 이지상 교수님은 '무지개'라는 노래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중저음의 걸걸한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우러졌다.

강의 전반은 소위 '인권 감수성'을 고무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교수님은 '희망/집착', '과정/결과', '나눔/독점', '공동체적/개인적'을 대비시키면서 결과 중심의 현대 사회를 비판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능성'이 부곽되지 못하고 인간은 결과를 기준으로 서열화된다. 따라서 경쟁이 심화되고 공동체적 가치가 퇴색된다고 말씀하셨다.

인상깊었던 대목은 시인 안도현이 쓴 '가을엽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었다. '사랑은 낮은 곳에 있다.' '낙엽이 지는 이유, 낙엽의 자기 희생, 힘없는 사람은 우리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머무는 동안 교수님은 직접 작사, 작곡한 '폐지 줍는 노인'을 불러주셨다.

강의의 후반부는 '국가가 민중을 길들이는 방법'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사회를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폭력을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으로 나누고, 특히 문화적 폭력에 대해 일제 시대에 실재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생동감있게 전달해 주셨다. VOS의 '혈서지원'은 충격적이었다.
첫째날을 마치며
취침 전, 조별로 수박을 먹으며 둘째날에 계획된 역할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모두 마찬가지였나보다. 조별 모임 후, 10시부터 간단한 뒤풀이를 계획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짐짓 놀랐다. 맥주와 과자 몇 봉지가 전부인 조촐한 술자리였지만, 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다. '인권'이라는 공통된 관심으로 모인 사람들.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2nd Day가 이어집니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부가 ‘대한늬우스’를 새로 제작해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해 화제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면 꼭 거쳐야 하는 몇 가지 절차가 있었다. 우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해야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이어서 바로 그 ‘대한늬우스’가 상영되었다. 월남 파병 군인들을 환송하는 환송식, 반공 궐기대회 장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표창을 주는 대통령의 모습, 전국적인 쥐잡기 행사 같은 것들이 극장을 찾는 국민이 다 함께 보아야 하는 ‘늬우스’들이었다. 그 시절 곧 시작될 영화 속 환상의 세계를 가슴 터질 듯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대한늬우스’는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영화보기를 좋아해 어지간히 자주 극장을 찾았던 나이지만 그 숱한 ‘대한늬우스’를 관심 있게 보았던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새로 기획한 '대한늬우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내가 ‘대한늬우스’를 재미있게 보게 된 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최근의 일이다. 요즘도 KTV같은 채널에서 과거의 ‘대한늬우스’ 필름을 더러 볼 수 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찮게 과거에 제작된 ‘대한늬우스’ 필름을 보게 되면서 나는 이 낡은 흑백 필름이 뜻밖에도 꽤 재미있는 볼거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재미란 물론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나 향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 그 시절엔 저렇게들 살았었지, 뭐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련한 향수보다 더 큰 것은 그 시절의 ‘늬우스’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였는지를 새삼 반추하는데서 오는 재미다. 생각해 보라. 쥐 잡는 날을 정해 전국적으로 쥐약을 배포하고 집집이 쥐덫을 놓아 쥐를 잡는 광경이나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따위 표어와 함께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이는 장면, 반공 궐기 대회에 모인 군중 앞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혈서를 쓰는 아저씨들, 그리고 그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어깨띠를 두른 채 무표정하게 서 있는 명 연예인들의 모습이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인가. 그건 마치 요즘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60, 70년대의 한국 영화를 볼 때, 기둥을 붙잡고 우는 배우의 신파 연기를 보면서 낄낄 웃음이 터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시대의 맥락이 바뀌면서 심각하고 진지한 비극이 배꼽 잡는 희극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웃을 일 별로 없는 요즘 웃음이 필요한 분이라면 왕년의 ‘대한늬우스’를 한번 찾아보시라. 강추다.

 정부가 새로 기획한 ‘대한늬우스’는 개그콘서트를 패러디한 코미디 형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과거와 같은 ‘진지한’ 뉴스 형식으론 안 먹히리라는 생각은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대명한 21세기에 극장에서 정부 정책 홍보 영상을 틀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막힌 코미디라는 건 왜 생각을 못했을까. 코미디는 의외의 반전에서 최고의 웃음이 터지는 법이다. 대 놓고 코미디하겠다는 걸 보고 웃어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수십 년 전의 진짜 ‘대한늬우스’처럼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쥐잡기 캠페인 같은 거 한번 다시 해 보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이 엄청 재미있어 할 게다.

 

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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