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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보호, 기회 균등, 인권 존중 [2010.08.19. 제824호]
조혜정 최성진 김보협
각계 오피니언 리더 37명에게 물어본 ‘대한민국의 정의’…
양극화·약자 피해·비정규직 등 부정의로 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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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시민사회·학계 등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손꼽히는 인사 37명에게 물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의는 무엇입니까?”

답변은 다양했다. 하지만 이들의 답변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존재했다. ‘공정함’이었다. 기회든, 분배든, 자유와 권리든 못 가진 사람이 좀더 배려받는 게 공정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보수 인사 가운데서도 시장 자유주의적 가치인 ‘경쟁’을 정의로 꼽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뒤집어 말하면 무상교육에 찬성하는 사람도, 부자 감세에 찬성하는 사람도 하나같이 현재 상황을 ‘사회적 약자에게 불공정한 상태’로 여긴다는 뜻이다.

못 가진 사람이 배려받는 ‘공정함’

가장 많은 사람이 실현돼야 할 정의로 꼽은 것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 이를 이루기 위한 ‘기회균등·공정분배’였다. 각기 표현은 달랐지만 절반 가까운 16명이 이를 꼽았다.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가 강해져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이를 지나치게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출발선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경쟁할 수는 없다”며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영화배우 박중훈씨는 “약자를 배려하고, 강자가 불리함을 다소 감수하는 게 정의이자 상식”이라며 “그게 바로 인지상정, 측은지심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윤여준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도 “가난한 자에게 더 분배하는 것이 정의다. 특히 이 시점엔 불평등의 구조화를 막을 공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 박주선 민주당 의원,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은 공통적으로 ‘기회 균등’을 정의라고 답했다. 하승수 변호사도 같은 뜻으로 ‘기회의 평등, 출발의 평등’을 꼽았다. 특히 인명진 목사와 하승수 변호사는 사회의 출발점에 선 청소년이 교육받을 기회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극화 해소’가 정의라고 답한 사람은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와 경제평론가 정태인씨였다. 특히 정태인씨는 “양극화를 교정하기 위한 복지 정책은 보조적으로 시행되고 있을 뿐이며, 공공 영역인 교육과 의료 역시 자산 분배에 의해 승패가 결정됨으로써 기회 평등 자체가 무력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체’ 혹은 ‘공존’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이는 5명이었다. 최재천 변호사는 “정의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가치 체계이자 공공의 의사결정”이라며 “소유권이 모든 가치의 중심인 것처럼 되면서 ‘1 대 9의 사회’로 가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의 90%가 ‘잉여인간’처럼 간주된다. 사회·경제적 분야에서 공공선이 무엇인지 찾고, 소유권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이를 ‘존중’이라고 표현하면서 “서로 같이 잘 살고, 같이 하자는 생각이 사회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힘의 불균형, 소통 부재, 밀어붙이기는 국민·조직·가정·개인 모두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미국학)는 “모두를 위해 동등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것”이 정의라고 했다. “연대가 무너진 곳에 비극이 온다”는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 누구를 위한 공동체여야 하는지,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주장이다. 김윤철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도 “사회구성원들간의 배려와 협력이 정의”라고 말했다.

»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총 37명)

현역 정치인 4명 ‘사람답게 사는 것’

정의는 사람 그 자체, 혹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꼽은 이도 5명이었다. 흥미롭게도 각 정당에 속한 현역 정치인 4명의 생각이 여기서 만났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인권’이 정의라고 했다. “제도적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민주화는 아직 안 됐다. 그래서 아직 인권의 사각지대가 많다. 인권을 보호하려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숨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정의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쟁의) 결과까지 일정하게 보완할 수 있도록 법률가와 정치인이 인권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독일 철학자 칸트의 말을 인용해 “인간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것”을 정의라고 표현했다. 최 의원은 “정치 분야의 기득권자는 인간을 ‘표’로 보고, 경제 분야 기득권자는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데,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상황을 바로잡아 인간을 존엄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정의는 ‘휴머니즘’인데, 현재 한국 사회에선 “정의가 무성해야 할 곳이 황폐화돼, (힘들게 찾아내야 할 만큼) 귀한 사막의 오아시스”가 돼버렸다. 그는 “누구든 인격체로서 기본권과 행복추구권을 제대로 보장받아야 한다. 그게 헌법의 기본 정신”이라고 지적했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므로 모두가 자유로운 의견을 가질 권리 등 기본권을 갖고 있다는 건 침해할 수 없는 정의”라고 말했다.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은 정의를 ‘자유’로 정의했다. 김 의원은 “집단으로부터 개인의 자유”, 은 연구위원과 박 원장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로 내용은 조금 달랐다.

정치적 성향으로 볼 때 ‘극과 극’인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과 변철환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상임이사는 각각 ‘상식’을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상식’은 매우 달랐다. 오 사무국장은 “권력을 통제하는 법질서”라고 본 반면, 변 상임이사는 “성장 정책과 복지 정책을 함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와 보수 양쪽이 함께 꼽은 단어로는 ‘민주주의’가 있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국민 중심, 자유와 평등, 자율과 책임의 원칙이 지켜지는 민주주의”가 정의라고 말했다. 반면 김창남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좋은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 즉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의라고 답했다.

»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 발생한 가장 큰 문제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꼽은 답변자가 가장 많았다. 쪽방촌 주민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진보·보수 모두 ‘민주주의’ 강조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 발생한 가장 큰 문제와 관련해선 대부분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꼽았다. △양극화(강원택 교수, 남경필 의원,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약자의 피해(최문순 의원, 이정희 대표, 박원순 변호사) △비정규직 문제(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은수미 연구위원) △불평등(인명진 목사, 하승수 변호사, 박상훈 대표, 윤여준 이사장, 최재천 변호사) △사회 안전망 부족(이민열 변호사, 남경필 의원)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윤여준 이사장은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안 되면 정치·제도적 민주화도 흔들린다. 국정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룰)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투철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승수 변호사도 “불평등이 심해지면 자유도 흔들린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자기 몸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는 자유나 평등이 실현될 수 없는 사회”라고 우려했다. 박상훈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경제적 자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할 권리, 노조를 만들고 활동할 권리 등이 제대로 보장돼야 하고 노동자의 이익이 정치·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세균 전 대표와 노회찬 대표는 정치인답게 부자 감세, ‘비즈니스 프렌들리’ 등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정의를 가로막는다고 지적했다. 김호기 교수도 “시장은 자율성도 보장해야 하지만, 그만큼 공공성을 결합시켜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친기업 정책을 노골적으로 펴는 이명박 정부는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낮다. 이 때문에 시장은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정부는 이에 대응하지도 못한다”고 비판했다. 김창남 대변인은 “국민의 뜻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강행을 ‘부정의’로 꼽았다.

선대인 부소장은 토건 세력과 정치 세력의 정경유착이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부정의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토건업체를 낀 재벌이 담합을 통해 엄청나게 큰 토건공공사업을 가져가고, 거기서 나오는 돈이 정치권에 비자금으로 들어간다. 정치권은 부동산 가격 거품을 떠받치려고 수백조원을 쏟아붓는데, 그 돈은 모두 서민이 낸 세금이다. 서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소수의 배를 불려온 게 ‘삽질 경제’ 패러다임인 것이다.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려면 하루빨리 부동산 거품을 빼야 한다.”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은 아예 “토지공개념”을 정의라고 규정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과거사 청산”을,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질서”를 정의라고 생각했다. 보수 진영의 선진화 담론을 이끄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효율과 공평, 성과에 따른 배분” 등을 정의라고 말했다.

정의 그 자체보다 정의에 도달하는 길, 즉 정의를 사회적으로 합의하고 실현하려 노력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정의는 시대·사회·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경철 원장은 “나는 내 경우에 (비춰) 합당한 것을 정의라고 하지만, 이는 공적 정의와 충돌할 수도 있다. 정의가 무엇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정의가 아닌 것 같다. 시장은 정의로운가, 공공의 이익은 정의로운가, 무엇이 정의인가 등을 놓고 타인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 내가 완전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겸손이 정의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토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의견도 유사하다. “정의의 실질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시대와 사회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처지와 상황이 공론화되고, 문제를 공유하고, 해법을 찾는 공정한 의사소통의 장이 마련되는 것이 정의의 내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정의인가를 물어야 한다”

박원순 변호사 역시 “완벽하고 이상적인 정의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찾기 어렵다. 다만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도 “최근 상황을 예전 박정희 정권 시기와 비교하면 조금 나아진 것으로 볼 수 있듯 정의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라며 “현재 인식에 비춰 더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씨는 독특한 의견을 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정의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대신 삶의 구체적인 현장 속에서 이것이 정의인가, 불의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 세상엔 전면적 정의도, 전면적 불의도 없다. 젊은이들이 구체적·개별적 문제를 과학적으로 들여다볼 줄 아는 식견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최성진 기자 csj@hani.co.kr·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조국 교수와 신진욱 교수, 두 개의 정의

공정한 분배냐, 도덕적 가치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두 사람은 모두 진보·개혁 진영에서 주목받는 소장학자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기반으로 사회참여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정의론’엔 꽤 큰 차이가 있다.

조 교수가 생각하는 정의는 ‘공정한 분배’다. “각자의 노력과 노동을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에 걸맞게 공정하게 몫을 받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반토막이고 사회적 처지도 나쁘다. 이건 ‘부정의’다. 정의의 반대말이 ‘효율’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최고의 효율은 최고의 정의다. 비용을 적게 들이려고 비정규직을 고용하지만,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한) 비정규직은 사회체제를 부정하고 저항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거다. 그건 ‘정의의 원칙’에 반해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조 교수가 언급한 정의의 원칙은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제시한 정의의 두 가지 원칙이다. 롤스의 제1원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기본권과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평등의 원칙’이다. 제2원칙은 사회의 가장 약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경우에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다는 ‘차등의 원칙’과 사회·경제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는 균등하게 분배돼야 한다는 ‘기회 균등의 원칙’이다. 조 교수는 “한국은 아직 롤스가 말한 정의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시장자유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에서 필요한 건 마이클 샌델이 아니라 롤스”라고 주장했다. 샌델은 롤스의 정의론에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가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 ‘공동체주의자’다. 그런데 약자가 배려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공동체를 강조할 경우 “약자를 위해주면 공동체에 손해가 된다는 보수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게 조 교수의 우려다.

반면 신진욱 교수는 샌델의 정의론에서 ‘도덕적 가치’에 주목한다. 신 교수가 생각하는 정의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인간으로서 기본적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구성 원리”다. 이는 “개인들이 함께 자유롭고 행복하려면 어떤 사회적·도덕적 가치가 필요한지를 고민해야 풀리는 문제”다. 정의란 각 개인이 아니라 이들의 사회적 관계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가치는 개인적 가치보다 중요하다. 샌델은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공공선, 도덕성, 시민의 연대 등을 강조한다.

신 교수는 “롤스를 건너뛰어 샌델로 넘어가면 위험하다”는 조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 발전이 단계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인 자유가 만개한 다음에 공동체를 논의하자는 건 사회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등장한 구호엔 ‘함께 살자 대한민국’처럼 개인의 삶을 사회적 관계에 뿌리내리려는 열망과 공존의 열망이 가득했다. 이제는 개인의 자유를 공공적·사회적 문제와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회] 전신검색기 전면도입 앞두고 인권침해 논란 여전

실효성없고 영상 유출 우려 여전 VS 보완 장치 마련해 문제없어

인천공항에 오는 9월1일부터 본격 도입될 전신검색기에 나타난 검색대상자의 영상.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전국 국제공항에 오는 9월 1일부터 전신검색기(알몸투시기)가 본격 도입된다. 정부는 G20 정상회의 등에 대비해 항공보안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설치한다는 입장이지만 인권 침해 논란은 여전하다.

국토해양부,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는 신종 항공테러 위협과 '서울 G20 정상회의'에 대비해 4개 공항에 전신검색기를 설치해 시범 운행 중으로 오는 9월 1일부터는 전면 도입해 사용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인천공항 동ㆍ서 출국장 및 환승장에 총 3대(X-ray 방식)를 설치하며 김포ㆍ김해ㆍ제주공항 출국장에 각 1대(밀리미터파 방식)씩 전신검색기를 배치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신검색기의 전면 도입을 놓고 인권 침해 및 실효성 여부 등 논란이 거세다.

우선 몸 겉에 숨긴 위험 물질 외에 몸 속 물체는 여전히 찾을 수가 없어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또 전신검색기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이 커 자칫 인천공항의 서비스 평가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다. 검색 요원이 카메라나 휴대폰 등을 들고 들어가 검색 대상자의 영상을 촬영할 수도 있는 만큼 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과 사생활 침해 소지가 많다며 국토부에 전신검색기를 설치하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전신검색기는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반면 국민의 알몸을 들여다는 등 피해는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라며 "정부가 밀어부치기식으로 강행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 한 관계자도 " "전신검색기(알몸투시기) 도입으로 5년째 전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항공사가 1위 자리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토부는 여러가지 보완 장치를 마련한 만큼 운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특정 승객만 실시하고, 원하지 않으면 기존 보안 검색 장비로 손 수색을 할 계획이다. 특히 검색 이미지의 외부 유출 방지 장치 마련, 검색대상자와 동성의 검색 요원 배치, 이미지 분석실에 촬영가능 장비 휴대 금지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 금속탐지 장비에 의해 탐지가 불가능하거나 신체에 은닉한 위해물품을 탐지할 수 있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우리나라의 항공보안 수준을 한층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

누명 쓴 시민이 늘고 있다 [2010.08.12. 제823호]
임인택
형사사건 무죄율 해마다 급증…
경찰은 마구잡이 검거, 검찰은 기소 남발,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는 복구 불능
» 이명박 정부 들어 기소됐다가 2010년 7월 현재 무죄를 받은 이들이다. 왼쪽부터 한명숙 전 국무총리,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조능희 문화방송 〈PD수첩〉 PD, 김보슬 PD, ‘미네르바’ 박대승씨, 한가운데는 ‘여러분’. 사진 한겨레 박종식·김진수·김명진·김경호·이정아 기자

검찰은 2만원 때문에 사람을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2008년 1월 조아무개(당시 16살)양 등 4명을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하면서다. 자백이 토대였다. 돈을 훔쳐갔는지 추궁하기 위해 조양 등이 노숙 청소년 김아무개(당시 15살·사망)양을 경기 수원시 한 고등학교로 데리고 가 집단폭행했고 결국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징역 2~4년형을 선고했다.

검찰 수사 영상 녹화물이 무죄 입증

지난 7월22일, 대법원은 다른 판결을 내렸다. ‘무죄’다. 항소심 무죄판결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복음’을 전해받기까지 2년6개월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다들 울었다. 1심부터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도 울었다.

검찰의 수사 영상 녹화물이 되레 무죄를 입증했다. 자백을 회유하거나 진술을 유도해 짜깁기한 사실 등의 근거가 됐다. 박 변호사는 “조양 등이 가보지도 않은 범행 현장을 수사진이 상세히 설명한 뒤 동의하는 식의 진술을 유도하고, 조서엔 적극적으로 답변한 것처럼 기록했다”며 “물증이 없는 사건에서 조서라는 하나의 에세이가 혐의를 인정하는 핵심 도구였던 셈”이라고 말한다.

대법원의 상고 기각 이유는 구체적이다. 이는 동시에 검찰권 남용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피고인들이 당초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자백하기는 했으나 1심 공판 이후 일관되게 부인하는 점 △피고인들이 나이가 어리고 가족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점 △검사가 피고인들에게 범행을 자백하면 선처받을 수도 있다고 말해 자백한 것으로 보이는 점 △○○고등학교에 정문과 후문 중 어느 쪽으로 어떻게 들어갔는지와 문이 열려 있었는지 여부, 도착 이후의 상황에 관한 피고인들의 자백이 서로 모순·불일치되는 점 △당시 학교 정문에 설치돼 있던 무인카메라에 피고인들의 모습이 전혀 찍혀 있지 않은 점 △범행 현장에서 피고인들의 지문이나 유류물, 기타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꼬집었다.


가히 ‘마법의 기소’다. 박 변호사는 “(검찰이) 약자를 깔아뭉갠 사건”이라고 정리한다. 특히 “피고인들이 범행 사실을 부인하는 과정은 녹화되지도 않았다”며 “자기 변호가 어려운 이들에 대한 수사부터라도 전체 조사 과정을 영상 녹화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죄’는 결코 달지 않다. 항소심 무죄판결까지 이미 1년여 옥살이를 했다. 14~17살의 나이로 성인들이 복역하는 구치소·교도소에 갇혔다. 조양은 말했다. “수감자끼리 돈을 걷어 뭘 사먹기도 하는데, 전 돈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독방에 가고 싶었어요.” 잔인한 형벌이다. 20살이 된 강아무개(당시 18살)양은 대법원 판결 뒤 “면회 온 아버지가 그래도 저를 믿어주셨는데, 대법원 판결을 못 보고 지난해 12월 돌아가셨다”고 했다. 더 잔인한 형벌이다.

검찰의 공소 사실을 보강해줄 자료가 제 발목을 잡았다는 건 상징적이다. 인권이 경시되고, 공권력의 ‘의도’와 ‘선입견’이 입건·수사 과정에서 개입될 때, 진실이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표1. 1심 형사재판 무죄 선고 추이

무죄 비율 전 정권의 두 배 수준

<한겨레21>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면, 현 정권 들어 형사사건 무죄율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1심 재판 무죄 건수를 보면, 2006년 2336건에서 2007년 3160건, 2008년 4003건, 2009년 4587건으로 상승폭이 가파르다. 올 5월치까지만 1895건으로, 추세대로라면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소가 꾸준히 늘었던 건 아니다. 2006년 109만4113건, 2007년 121만7284건, 2008년 131만6987건, 2009년 119만6776건, 올해 6월까지 49만2030건을 기록했다. 단순하게 보면, 2009년 기소 건수는 2008년보다 적은데 무죄는 더 많은 셈이다.

무죄판결 추이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대법원 사법 통계를 보면, 2005년 1심 형사재판 판결 22만6518건 가운데 무죄 비율은 1%(2190건)에 불과하다. 이듬해는 1.1%(21만2791건 중 2314건)다. 무죄 비율은 2008년 1.5%(26만8572건 중 4024건)가 되고 지난해는 2.2%(28만1495건 중 6240건)를 기록한다. 전 정권의 두 배 수준으로, 판결 50건 중 1건 이상은 무죄라는 얘기다. 자유형(징역·집행유예 등), 선고유예, 재산형(벌금) 등 유죄판결 유형은 줄거나 증감을 거듭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표1 참조).

검찰 쪽은 일단 “(무죄 증가는)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강화된 공판중심주의 탓이 크다”고 말한다. 공판중심주의는 기존 조서중심주의와 대비된다. 수사 기록물 대신 법정에서 논박되는 증거와 진술로 유무죄를 가린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250명이 안 되는 공판검사가 연간 1300여 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사정도 언급된다.

검찰의 해석은 타당하지만 부당하다. 검사 출신 금태섭 변호사는 “과거에 비해 법원의 심리가 엄격해진 건 분명한 경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공판중심주의가 결국 인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지지받기 어렵다. 재판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무죄’가 은폐되고 ‘유죄’가 조작되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검찰이 스스로 이런 원칙을 부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에 견줘 무죄율 자체가 낮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문제는 최근의 상승폭이고, 무죄가 노정되는 과정이다.

실제 압수수색영장·구속영장·체포영장의 기각률이 현 정권 들어 크게 뛰고 있다(표2 참조). 검찰의 무분별하거나 편의주의적인 수사가 많다는 얘기다. 특히 공권력 남용의 지표로 간주되는 압수수색영장의 경우, 2007년 7만4667건을 청구한 검찰이 이듬해엔 10만479건을 청구했다. 가히 폭발적인 증가다. 2009년은 10만5720건이다. 기각률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2005년 0.56%에 불과하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은 올 상반기 2%로 껑충 뛴다. 일부기각된 사건까지 합할 경우 증가폭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08년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전체 기각률(일부기각 포함)은 15.6%로, 2005~2007년 전체 기각률(5.6%)의 세 배 수준이다. 결국 올 상반기 검찰이 압수수색하려던 100명 가운데 2명이 기각됐다. 일부기각까지 합치면 13명꼴이다.

전자우편 등을 조회하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건과 기각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투망식 수사, 일단 뒤져보자는 수사 방식이 크게 늘면서 국민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에 대한 간섭과 침해가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 표2. 각종 영장 기각률 추이

압수수색·구속·체포영장 기각률도 뛰어

2008년 이후의 구속영장 기각률은 2005년치의 갑절이다. 2005년 검찰이 7만461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9592명을 기각했다. 12.8%의 기각률이 2008년 24.4%(5만6845명 중 1만3852명), 2009년 25.1%(5만7019명 중 1만4295명)로 이어진다. 2010년 상반기는 23.5%다.

이런 요인을 포함해, 검찰의 구속 기소율(전체 형사재판 인원 가운데 구속 상태로 재판받는 비율)은 2000년 46%, 2003년 37.7%, 2007년 16.9%, 2008년 14.4%, 2009년 14%로 크게 떨어진다. 불구속 기소는 인권 보장을 위한 핵심적 원칙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시대가 민주화됐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조차 검찰의 의지로 이뤄진 건 아닌 셈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은 “법원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불구속 재판을 강조해왔으며, 그 결과 구속영장 발부를 엄격히 따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검찰이 먼저 구속을 자제했다고 볼 만한 근거나 사례는 별로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검찰은 영장 기각률이 높아지는 것도 공판중심주의 탓이라고 할지 모른다. 공판중심주의는 정작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본격화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공판중심주의와 무죄 증가는 연관이 있지만 검찰이 할 얘긴 아니다”라면서 “수사권을 경찰과 나누고, 공소 제기·유지에 역량을 투입하고, 공판검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등 조직을 개편해 엄격한 수사와 기소를 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검찰 권력의 비대화’가 ‘무죄 시민 양산’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처럼 검찰의 기소편의주의·독점주의가 철저하고, 경찰의 수사 독립성을 부인하며 검찰권이 비대한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검찰 상층부가 지나치게 정치화돼 있고, (정치 말고는) 검찰권을 통제할 장치가 드문 실정”이란 설명이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헌법이 보장한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피의자를 검찰이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은 온당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는 금태섭 변호사의 지적과도 동닿는다. 검찰 수사를 겪은 문화방송 〈PD수첩〉 조능희 PD는 “체포 당시 조사를 받는데 사적인 얘기까지 죽 읽더라. 알고 보니 한 언론사 기자와 통화한 내용이 그대로 검찰로 넘어간 거였다”며 황당해했다. 영장도 필요 없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통치조직이 된 검찰”과 그에 복무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 이른바 ‘노숙 청소년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기소됐던 이들에게 대법원이 지난 7월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박준영 변호사가 지난 8월5일 이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만났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무죄 예상돼도 과감히 기소하는 경향”

실제 노무현 정권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시도했으나, 되레 권력만 키워준 결과를 낳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독립보다 검찰 조직의 개혁이 전제돼야 했다고 후회한 이유다.

공권력의 이런 태도는 결국 ‘기소 남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사회적 의도’를 개입시킬수록 폐해는 크다. 금태섭 변호사의 설명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 검찰은 ‘유죄가 확실하지 않으면 기소조차 하지 않는다’는 태도(정밀사법)를 가져왔다. 무죄가 선고된 경우 검사에게 벌점을 주는 데도 이런 논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소할 때부터 무죄라는 예상이 많은 사건들을 과감히 기소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검찰의 중요 수사부서가 (정치·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건에서) 취한 이런 태도는 일반 사건을 처리하는 검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김종철 교수는 검찰의 과감성을 ‘현 정권의 법질서 강화 정책’과 ‘전방위적 사회통제 작업’에서 찾는다. “지난 10년의 성과를 지우기 위해 법과 원칙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국민에게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분위기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검찰의 전체 기소는 증감을 거듭하는 반면, 구공판(구속+불구속 기소)은 증대하고 있다. 피의자가 유죄 여부를 별로 다투지 않을 때 이뤄지는 약식기소 비율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2006년 전체 기소 109만4113건 가운데 13만7780건이 구공판이다. 2007년엔 121만7284건 가운데 15만5704건, 2008년 131만6987건 가운데 16만6641건, 2009년 119만6776건 가운데 17만2353건으로 변화를 보인다. 전체 기소 중 구공판 비율을 따지자면 2006년 2.59%, 2007년 12.79%, 2008년 12.65%, 2009년 14.4%, 올 상반기는 15.77%를 기록한다.

특히 촛불 국면 이후 증가폭이 커진다. 이유나 의미가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단서가 있다. 2008년 촛불집회 국면에서 입건된 1400여 명 가운데 1천 명 이상이 약식기소됐는데, 이 가운데 600여 명이 정식 재판을 청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의 유죄 판단이 부당하다고 보고 무죄를 입증받으려 한 경우다(<촛불 법정의 기나긴 2년> 기사 참조).

경찰의 속살은 어떤가? 경찰의 검거 인원과 기소의견 송치 건수를 살펴봤다. 혐의는 살인, 강도, 성폭행, 절도, 집시법 위반으로 구분했다.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분석한 경찰청 자료(2006년~2010년 상반기)는, 집시법을 제외한 모든 혐의별 검거가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에서 확인되듯, 범죄 발생 건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검거한 인원 가운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비율은 5%포인트 안팎의 진폭으로 증감을 거듭한다. 상대적으로 균질하다.

독특한 건 집시법이다. 검거 인원 대비 기소의견 송치 비율이 전 정권에선 89%대를 유지하다 촛불집회가 있던 2008년 92%로 꼭짓점을 찍고 2009·2010년 상반기엔 77~80%로 뚝 떨어진다(표3 참조). 진폭이 크다. 2008년은 촛불집회로 인해 검거와 기소의견 송치가 함께 늘었을 거라는 데 전문가들도 이견이 없다. 문제는 2009년 이후다. 검거 건수가 대폭 감소하고, 기소의견 송치율도 크게 떨어진 것이다. 적게 붙잡았지만 그조차도 조사해보니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 표3. 경찰 검거 대비 기소의견 송치율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

배경이 뭘까? 일단 촛불 국면 이후 집회 자체가 크게 제약됐다. 검거 대상 자체가 줄었다는 얘기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기소의견 송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건, 예년보다 불필요한 검거가 많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국사건 변론을 많이 맡은 박주민 변호사는 “현 정부의 집회 관리 방식이 체포 위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2009년 경찰청의 집회·시위 관리 지침은 △현장 검거 위주로 대응 △경미한 사안도 입건 등 강경한 방침을 담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침해는 검거 단계부터 발생하기 마련이다. 촛불 국면 땐 변호사도 초등생도 이른바 ‘닭장차’에 갇혔다. 권영국 변호사는 “수사가 선진화된다면, 증거 위주의 수사가 진행되므로 검거와 기소의견 송치율의 간격은 좁혀질 수밖에 없다”며 “그 간격이 크다는 건 일단 검거한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처리하는 편리한 수사 방식이 일반화됐다는 뜻”이라고 본다.

김종철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법질서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김경환 법무장관 시절 검찰권이 의도적으로 남용된 측면이 있다. 집회·시위에 집시법이 아닌 형법상 교통방해죄를 적용하는 등의 경향이 강화된 것이 이런 측면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2008년 이후 기자회견 등 과거엔 허용되던 형태의 의사표현 행위도 단속되는 형국이다.

결과는 ‘위축’이다. ‘저강도 공포’의 확산이다. 최아무개(41)씨는 지난 5월 경기경찰청에 불려갔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한 글을 언론사 홈페이지 뉴스 게시판에 쓴 게 화근이었다. 경찰 3명이 집까지 찾아와 출석요구서를 주고 갔다. 참고인 자격이었으나 사실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추궁당했다. “글을 쓴 의도가 뭐냐” “내용이 사실이냐” “글 내용이 사회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해봤느냐” 등이 그가 답했어야 할 질문들이다. 서울 숭인동 집에서 왕복 4시간을 들여,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수사 당국으로부터 받은 연락은 없다. 글쓰기에 대한 ‘경고장’만 낙인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송치도 되지 않을 사안으로 검거하면 사람들은 이후 합법적 행위도 자제하게 된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는 위헌”이라고 말한다. 경찰의 ‘정치적 의도’가 오롯이 읽히는 대목이다.

‘무죄 시민’의 피해는 복구 불능에 가깝다. 금태섭 변호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립된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수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큰 불이익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입건되고 수사받는 자체가 형벌이자 단죄다.

경찰 관련 인권위 상담도 급증

안소영(28·가명)씨는 그곳을 지날 때마다 소스라친다. 지난 4월 말 남편(31)과 술을 마시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인적 드문 토요일 새벽 3시께였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 자전거보관소에 널브러져 있던 자전거를 타고 30~40m 가다 버렸다. 당초 잠금 장치도 없이 버려진 자전거였다. 안장도 없었다. 바퀴는 녹슬었다.

뒤따라오던 사복 경찰에게 붙들렸다. 부부는 5분도 안 돼 경찰차에 실렸다. 난생처음 파출소를 가게 된 배경이다. “죄도 없는데 왜 데려왔느냐, 보내달라, 따졌죠.” 그러곤 말문을 잃었다. “한 경찰관이 부부절도단이라고, 볼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파출소에선 한마디 질문도 없었다. 경찰차에서 주고받은 몇 마디가 전부였다. 구로경찰서로 이송됐다. 경악했다. 담당 경찰관 손에 건네진 진술조서엔 ‘흑심을 품고…’라는 표현이 있었다. 혐의는 특수절도. 결국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난 7월 초다. 혐의는 ‘점유이탈물 횡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주인 없는 물건을 훔쳤다는 얘기다. 검찰은 8월 초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프랑스 교포로 2008년 말 결혼해 한국에 온 남편은 말했다. “토요일 그 시각에 우리 같은 사람을 체포하려고 경찰관 5명에 경찰차가 투입된 건데, 참 좋은 나라다. 하지만 그 시간에 더 나쁜 일이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면 한국은 나쁜 나라다.” 부부는 뒤에 자전거 폐기값으로 2천원을 치렀다는 얘기를 들었다.

안씨는 계속 씩씩댔지만 기자는 웃었다. 그날 아침 7시가 넘어서 경찰서를 나온 부부는 친척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다. 지쳐 잤다.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다.

» 표4. 경찰 관련 인권위 진정 상담 현황

경미한 피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치안 우수 국가가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일까. 안씨는 이후 뉴스를 보고, 자신이 경찰 성과주의의 희생양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제도가 있는 한 또 다른 피해를 예고한다. 안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조사가 진행 중이다. 사연을 미처 알지 못할 억울함이 도처에서 성토되고 있다. 경찰 관련 인권위 진정·상담 접수가 크게 늘고 있다(표4 참조). 2003년 1482건, 2006년 2051건, 2007년 2481건, 2008년 2548건, 2009년 3110건으로 가파르게 오른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이미 1959건이 접수됐다. 현 정부 들어 한 해 평균 3046.8건을 기록한다. 전 정권 평균치(1906.6건)와 견주면 1.6배가 증가했다.

가혹행위와 과도한 총기·장구 사용, 인격권 침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과도한 불심검문도 30건이 채 안 되다 2007년 45건, 2008년 63건, 2009년 88건으로 늘고 있다. 올 상반기에 이미 68건이 접수된 상태다. 물론 경찰의 잘못이 최종 인정되는 건수와 비교해야겠지만, 일상에서의 공포와 피해의식이 크게 확산되는 형국이란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법의 얼굴로 ‘위압적 정치’

수치가 드러내는 한국 공권력의 실상이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수사의 목적은 범인 검거 등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인권 보장을 위한 적법 절차 원리로 돼 있다. 하지만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에서 봤듯이, 수사기관은 관성상 전자만 좇으려 한다. 결국 범인·증거 조작 등을 일삼게 되고, 이는 곧 시민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다.” 최근 출간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서 대한민국 검찰이 호명되는 방식이다. “너무도 보복적이며 정치적이며,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는다.” 자서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검찰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그들이 복무하는 ‘정치’는 이렇게 호명된다. “국민을 적으로 아는 정권, 권세만 있고 부자만 위하는 정권.” 과거엔 법 위에 군림하며 ‘파쇼적 질서’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법의 얼굴로 ‘위압적 정치’를 꾀한다. 한마디로 추리자니 이른바 “끔찍한 형사 과잉의 시대”(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노무현, 한명숙, 정연주, 미네르바, 〈PD수첩〉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해 대상은 결국 ‘우리’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정상이 아닌 G20 정상회의 경호 [2010.08.12. 제823호]
이정훈
[초점]
군대도 동원 가능한 ‘G20 특별법’, 국민의 표현·이동·거주 자유 침해…
테러 방지 명목으로 이주노동자 단속, 인터넷 검열 중
»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주노동자를 비롯해 노점상, 노숙인 등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기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권리지킴이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20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본권 침해를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겨레 이종찬 선임기자

“실례합니다. 지금 어디 가는 길입니까? 정확한 목적지를 알 수 있습니까? 거기 왜 가는 거죠? 잠시 가방 좀 살펴보겠습니다.”

오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 주변을 걷는 시민들은 이런 검문·검색을 받을 것 같다. 정부가 1박2일간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강한 경호 대책을 예고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지나친 인권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상들의 이동은 비밀, 코엑스 주변은 성지

11월11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는 20개국 정상은 물론 국제기구 수장을 포함해 1만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국격 상승’의 기회로 보고 철저한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가운데는 회의장 주변에서 시민을 검문·검색하고 출입을 제한하는 조처는 물론,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시행됐던 ‘거리청소’식 노점상·노숙자 단속 등도 포함된다.

정부는 이미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월 ‘G20 정상회의 경호안전을 위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특별법은 질서유지를 위해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게 했다. 또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장소와 각국 정상 및 국제기구 대표의 숙소, 이동로 등 정상회의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장소와 그 주변을 경호안전구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는 검문·검색, 출입 통제, 위험물 탐지 및 안전 조처 등 위해 방지에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경호안전구역을 지정할 때 보안 유지가 필요한 경우 대상 구역과 기간 등을 공고하지 않을 수 있는 규정까지 두고 있다. 법률 제정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쪽에서는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도 기존 집시법으로 큰 무리 없이 치렀는데, 특별법을 만들어 지나치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부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코엑스에는 주변 600m 안쪽에 38개 검문소를 설치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청을 통해 신분이 인증된 거주자들은 검문소에서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만, 거주자가 아닌 경우 신분증 및 소지품 검사를 받고 방문지와 방문 목적 등을 설명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인 경호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도 “평상시와는 달리 수상한 물품을 소지했는지 확인하고, 코엑스 안에 진입할 경우 목적지를 확인하는 등 검문·검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경호안전구역은 오는 8월 말 또는 9월 초에 공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각국 정상이 머물 예정인 특급호텔과 그들이 이동하는 경로도 특별법상 경호안전구역 지정 대상에 포함돼 시민의 불편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 대표단은 서울 한남동의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머물 예정이고, 중국은 장충동 신라호텔, 오스트레일리아는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을 숙소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는 광장동 쉐라톤워커힐,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는 삼성동 파크하얏트호텔, 프랑스와 영국은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등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서울 곳곳의 대표단 숙소 주변까지 통제하나

정상들의 숙소와 이동로는 서울 시내 전역에 걸쳐 있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들은 시민의 통행이 많은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이 모두 경호안전구역으로 지정되면 시민이나 차량의 통행에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특별법에 따라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검문·검색을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집회·시위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침해하는 조처”라며 “특히 회의 장소 이외에 정상들의 숙소와 이동로까지 경호제한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어 시민의 기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경찰은 G20 정상회의를 이유로 인터넷 카페나 동영상 폐쇄·삭제를 해당 사이트 쪽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 포털 사이트에 보낸 경찰청의 협조 공문을 보면, 경찰은 최근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해 모니터링 강화와 불법 콘텐츠 삭제는 물론, 위험하다고 판단한 카페의 폐쇄를 인터넷 사업체에 요구했다.

경찰청이 보낸 공문에는 항상 ‘G20’을 이유로 콘텐츠를 삭제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폭발물 제조와 관련된 협조 공문은 “다가오는 국가 행사인 G20을 앞두고 인터넷상 폭발물 제조법 및 관련 재료를 구매하는 글과 동영상 등이 게시·유포됨에 따라 학습·모방범죄 발생이 심히 우려된다”며 해당 카페 폐쇄 등의 조처를 요청했다. 경찰이 문제 삼은 것은 NHN의 ‘폭탄연구소 카페’ ‘무기의 모든 것 카페’ 등과 엠군의 ‘스프레이폭탄’ ‘미니 폭탄 만들기’ 동영상 등이었다. 8월6일 현재 해당 카페와 동영상은 삭제된 상태다. 이에 대해 NHN 관계자는 “경찰 등 사법기관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시민단체는 경찰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인터넷에 떠도는 폭탄 관련 정보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해외 사이트에서도 구할 수 있는 내용”이라며 “실질적인 차단 효과가 없는데도 국내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만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 맞는다고 약자 괴롭히는 호들갑”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는 이미 올 초부터 진행됐다. 법무부는 지난 6월부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있고, 경찰청은 지난 5월부터 50일간 외국인 범죄에 대해 집중단속을 벌였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에 도로특별정비반 88개를 구성해 노점상에 대한 순찰과 정비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권리지킴이·노점노동연대·빈곤사회연대·인권운동사랑방 등으로 구성된 ‘인권탄압 공동대책회의’는 지난 7월20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G20 정상회의를 빌미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님맞이를 위해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처는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는 지적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외국 정상들이 오는 행사를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 정상회의를 치렀는데 유독 G20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사회·경제적 약자를 모질게 대하면서 손님을 접대하겠다는 것은 국가 지도자의 본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여전한 핵심 의혹들… 상부지시 없이 의원 부인까지 조사?

ㆍ치밀한 증거인멸범 아직 오리무중?

11일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앞으로 ‘남경필 의원 부인 탐문’ 의혹과 ‘조홍희 서울지방국세청장 봐주기 사찰’ 의혹 등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수사팀은 해체하지 않지만 사건의 핵심인 ‘윗선’ 지시·개입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 등으로 수사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검찰 방침대로라면 사실상 사건의 실체는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사건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 훼손은 총리실 내부자의 소행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검찰이 증거인멸범을 찾게 되면 총리실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를 지시한 인물도 함께 드러날 가능성이 커 ‘윗선’ 실체를 파악하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관련자들이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 사찰 수사 때처럼 “윗선 지시는 없었다”는 식의 전면 부인 취지의 진술을 할 경우 난관에 봉착할 수 있지만 이는 검찰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남 의원 부인 탐문 의혹이나 조 청장 봐주기 사찰 의혹도 누가 지시했는지 밝혀진다면 수사가 활기를 찾을 수 있다. 여당 중진인 남 의원의 부인까지도 탐문한 점을 감안하면, 지원관실이 이러한 사찰을 상부 지시 없이 스스로 알아서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만 한다면 이를 통해 의혹의 실타래가 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중간 수사결과까지 발표한 검찰이 후속 수사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외적으로는 특별수사팀을 유지시키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결론을 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건의 핵심 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서 국정조사를 하거나 특검을 도입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전 대표와 시민단체들도 검찰 수사가 의혹을 명쾌히 해소하지 못한 데 대해 실망감을 나타냈다. 김 전 대표의 변호인인 최강욱 변호사는 “불법사찰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다행이지만, 검찰이 지난해 김 전 대표를 기소유예할 당시 불법사찰을 인지하고서도 수사에 나서지 않아 결과적으로 증거인멸을 방치한 셈이 됐다”며 “김씨가 입은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를 준비 중이며 혐의가 입증된 개인들에 대한 손배소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성명을 내고 “사건의 핵심은 상부가 관여한 전모를 밝히는 것이었으나 검찰 수사는 한 발도 앞서 나아가지 못했다”며 “국민을 위해 권력을 향해 칼날을 겨눌 수사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성역 없는 수사에 나서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도 “검찰이 사건 등에서는 수사 대상자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강도 높은 수사의지를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피의자들의 진술에 의존한 수사에 그쳤다”고 말했다.

<박홍두·정환보 기자>



'양천서 고문사건' 원인 제공자 경찰총수 내정, 왜?
조현오, 쌍용차노조 과잉진압·실적주의 등 무리수...'영포라인' 배치 위한 사전 작업 해석도
이주연 (ld84) 기자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초등학교 여학생 성폭력 사건 현장을 방문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최지용

차기 경찰총수로 내정된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 그는 지난 6월 서울 양천경찰서 고문사건의 원인 제공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경찰 현직 간부가 조 청장의 무리한 실적주의 강요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조 청장의 경찰청장 내정을 두고, 일부에서는 "국민에 대한 정부의 무시가 그대로 드러난 인사"라는 지적이 여전하다. 물론 이같은 지적을 정부 역시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경찰내부에서 조차 논란이 되는 조 청장을 정부는 왜 굳이 경찰총수로 내정했을까. 

 

우선, 부산 태생으로 고려대를 졸업한 조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이같은 배경과 함께 효율성을 강조하는 조 내정자의 업무 방식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 맞아 떨어졌다는 평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08년 3월 부산경찰청장이 된 조 내정자는 범죄 해결 성과를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를 강조했다. 이러한 실적주의는 경기경찰청장으로 임명된 후에도 계속된다. 조 내정자는 경기경찰청장 재직 시 쌍용자동차 노조의 장기파업을 강경 진압했다. 당시 경찰은 헬기를 동원해 최루액을 분사했고, 테이저건을 농성자 얼굴을 향해 쐈다. 물과 의약품, 전기 공급도 끊었다. 이에 조 내정자는 시민사회로부터는 '반인권적'이라는 평가를, 정부로부터는 '유능하다'는 평을 받았다.

 

조현오 경찰총수 내정자의 실책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앞서 5.11. 기초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양천서 상황실에 위치한 강력 5팀 내부가 촬영되는 CCTV화면. 화면의 절반이 천장과 벽을 비추고 있다.
ⓒ 국가인권위

정부의 높은 평가는 조 내정자를 서울경찰청장에 오르게 했다. 그는 지난 1월 서울경찰청장에 취임하면서 "조직 전반에 성과주의를 도입하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와 같은 성과주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경찰이 피의자에게 고문을 행사해 자백을 강요한 '양천서 고문사건'이 터진 것이다.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지난 6월 "실적을 강요해온 지휘부가 계속 그 자리에 있는 한 양천서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조 내정자에게 동반사퇴를 촉구했다. 성과를 내야만 하는 일선 경찰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를 정도로 실적주의의 폐해가 막심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채 전 서장은 불명예스러운 직위 해제 처분을 받았고, 조 내정자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조 내정자는 "성과주의는 순기능이 상당하다"며 앞으로도 실적 평가 시스템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이 28일 오후 서울 번동 강북경찰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천경찰서 고문수사'와 관련 경찰 지휘부의 실적주의를 비판하며 조현오 경찰청장과 동반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이주연

실책은 또 있었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어린이 아동 성폭행 사건이 잇따랐지만 "서울 경찰이 치안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며 조 내정자는 책임을 회피했다. 대신 양천서 사건, 아동 성폭행 사건 등의 모든 책임은 임기를 7개월 남겨둔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지고 사퇴했다.

 

강 전 경찰청장이 떠난 자리에 이젠 조 내정자가 앉을 예정이다. '경비통'인 조 내정자가 지난 과오에도 불구하고 오는 11월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내 치안 문제를 담당할 적임자로 지목 받아 온 것이 유효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1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양천서 고문사건 등에 대해 조현오씨가 책임도 지지 않고 발빼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등 책임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고문방지 대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조현오씨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국민에 대한 무시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오 사무국장은 "자신들의 시나리오에 따라 정권의 이익을 가장 극대화해 줄 적임자로 조 내정자를 꼽은 것 같다"며 "국민에게 심각한 우려를 줬던 고문 사건이 있은 후 진행된 인사로 믿기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영포라인' 이강덕 부산경찰청장은 차차기 경찰청장?

 

이번 인사의 배경으로 제기되는 분석은 또 있다. 조 내정자의 발탁이 다음 경찰 총수를 염두에 둔 인사라는 것이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CBS 라디오 '이종훈의 뉴스쇼'에 출연해 "강희락 청장의 임기를 단축하면서까지 사퇴 시킨 배경에는 집권 후반기에 영포라인의 측근 공직자(이강덕 부산청장)를 전진 배치하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백 의원은 "서울청장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이강덕) 부산청장은 영포라인의 핵심으로 알려졌다"며 "이러한 인사가 벌어진다면 경찰 인사 중에서 초초고속 승진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져 경찰의 인사질서를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조 내정자의 다음 경찰 총수로 이강덕 부산경찰청장을 낙점한 뒤 이번 인사에서는 이 청장을 서울경찰청장에 앉히는 계산이 내각개편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만일 강희락 전 청장이 7개월의 임기를 채웠다면 다음 경찰청장은 이 대통령과 같이 임기가 끝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강 청장을 사퇴시키고 다음 내정자를 임명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조 내정자가 임기를 마치는 2012년 8월에 한 번 더 경찰청장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 임기 마지막(2013년 2월)까지 경찰 조직을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성심이 있을 만한 사람 임명"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을 비판하며 누리꾼이 만든 패러디물
ⓒ kk179mc

벌써부터 차차기 경찰총장직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 부산청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포항 출신이다. 이 청장은 정부 내 파워그룹 '영포회(경북 영일·포항 출신 5급 이상의 중앙부처 공무원 모임)'의 핵심 구성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연을 가진 이 청장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 행정관과 비서관을 지내며 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부산청장 역시 조 내정자와 마찬가지로 경찰 업무에 있어서 과오를 남긴 전력이 있다. 이 청장은 지난 3월 경찰청으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다.

 

올 초 발생한 부산 여중생 살인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씨에 대한 부실수사로 지휘책임자인 이 부산청장에게 경고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다른 사건으로 수사 중이던 김씨를 눈앞에서 놓치고 즉각적인 보고가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추가 피해자를 양산한 큰 실수였다. 그럼에도 이 부산청장은 차기 서울경찰청장은 물론 차차기 경찰청장 물망에도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예측이 사실로 이어진다면 이명박 대통령과의 '연'을 갖고 있고, 경찰청장으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지닌 조 내정자와 이 부산청장이 차기와 차차기 경찰 총수를 맡게 되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 경찰 수뇌부에 입성하는 것에 대해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경찰청장직에 영남 출신이거나 학교 후배인 사람 즉, 대통령에게 충성심이 있을만한 사람들이 임명되고 있다"며 "경찰이 정권 보위 기구가 아닌 치안기구임에도 정권에 충성심이 강한 사람만 골라서 뽑는 것은 경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방치 ‘실적주의’ 비판에도 경찰청장 ‘날개’
한겨레 홍석재 기자
» 강희락 경찰청장의 후임 경찰청장에 내정된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가운데)이 9일 오전 차기 경찰청장 임명제청 동의를 위한 경찰위원회에 참석하려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 들어서면서 관계자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현오 내정자 적격성 논란

경찰청장에 내정된 조현오(55) 서울지방경찰청장이 9일 경찰위원회의 임명 제청 동의를 받아, 사실상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만 남겨두게 됐다. 경찰청은 이날 “경찰위원회가 임시회의를 열어 조현오 내정자를 새 경찰청장으로 임명 제청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경찰위원회에는 김일수 위원장 등 위원 6명(전체 7명)이 참석해 만장일치로 이렇게 결정했다. 조 내정자도 이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에 힘쓰고, 국민이 바라는 경찰 개혁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내정자의 경찰 총수 자격을 놓고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조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치열한 공방과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시민단체들은 “조 내정자의 최근 업무추진 방식을 보면, 그를 치안 총수로 지명한 것은 청와대 ‘일방주의 인사’의 정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 내정자가 지난해 경기지방경찰청장을 지낼 때 쌍용자동차 파업을 강제 진압했고, 올해 들어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서 ‘양천경찰서 피의자 고문 의혹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조 내정자는 지난해 쌍용차 파업 때 식수·의약품 반입을 차단하고 테이저건(전기침 발사기)·최루액 2200ℓ 등으로 노조원들을 진압해 ‘과잉 진압’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또 양천서 고문 의혹 사건처럼 조 내정자가 지휘한 지역들에서 ‘실적·원칙 주의’의 부작용이 많고 인권 경시 수사가 이어졌다는 비판이 경찰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조 내정자의 성과주의에 뒤쳐지지 않으려다보니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조 내정자의 성과주의에 반발해 “조 청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기자회견을 한 뒤 파면되는 초유의 항명 사태가 일어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조 내정자의 치안 총수 임명은 결국 정부의 친정 체제 강화용일 뿐이며, 조현오식 성과주의 탓에 발생한 인권 침해 논란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마구잡이 구강상피세포 채취 수사…“범인 검거 도움” vs “범죄자 취급 불쾌”

“나흘 전 경찰관에게 구강상피세포를 채취당한 뒤로 당장이라도 잡힐 것 같아 불안했습니다.”

서울 면목동 일대에서 여성들을 상습 성폭행한 ‘면목동 발바리’ 조모(27)씨가 지난 4일 경찰에 자수하며 털어놓은 속내다. 경찰은 조씨가 마지막으로 범행한 지난달 2일부터 한 달간 면목동 6546가구를 뒤져 범인으로 의심되는 남성 315명의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했다. 조씨는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구강상피세포는 입 안을 얇고 매끄럽게 덮은 껍질이다. 경찰은 용의자에게서 채취한 구강상피세포의 DNA가 범행 현장에서 나온 체모, 정액 등의 DNA와 일치하는지 확인해 피의자를 특정한다. 틀릴 확률은 1%에 불과하다.

◇자수·자백 효과에 미제 사건까지 해결=구강상피세포를 활용한 수사는 범인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해 자수를 유도할 뿐 아니라 피의자에게서 자백을 받아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검거 직후 범행 사실을 모두 부인하던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 피의자 김길태도 구강상피세포를 이용한 DNA 검사 결과 앞에서 더 이상 발뺌하지 못했다.

지난 1월에도 충북 충주에서 농산물을 훔친 혐의로 붙잡힌 신모(49)씨가 5년 전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마약을 투여한 혐의가 구강상피세포 조사를 통해 밝혀지는 등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이 잇달아 해결됐다.

◇불쾌하지만 범인 잡을 수 있다면 OK=“면목동 발바리가 잡혔어요?” 지난 5일 면목동에서 만난 고등학생 조모(16)군이 놀라며 물었다. 조군은 앞서 범행 현장 인근 지하철역에 서 있다가 형사 2명에게 구강상피세포를 채취 당했다. 조군은 “채취 당시 주변에 사람이 많은 데다 범죄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켕길 게 없어 당당했다”며 “범인만 잡힌다면 열 번이라도 (구강상피세포 채취에) 응하겠다”고 했다.

면목동 발바리 사건으로 경찰관에게 구강상피세포를 채취 당했다는 또 다른 남성은 지난 1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다분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도 “(경찰이) 몇 명의 DNA를 채취했는지 몰라도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단서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시민 반감 줄이는 채취 방식 필요=지난해 국무회의를 통과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에 따르면 경찰은 채취 대상자가 동의하는 경우 영장 없이 구강상피세포를 비롯한 DNA 감식 시료를 채취할 수 있다. 20여년 경력의 한 강력반 형사는 “구강상피세포를 자유롭게 얻을 수 없던 과거에는 범죄 현장에서 범인 것으로 의심되는 DNA를 수집해도 수사에 활용하기 어려웠다”며 “DNA 관련 법 시행으로 과학수사 수준이 한 단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문제는 반감을 어떻게 줄이느냐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8일 “채취 방식에 명확한 기준 없이 아직 임의적인 측면이 많다”며 “좀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채집 대상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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