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못 차린 경찰, 인권교육으로는 어림없다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최근에 알려진 ‘양천경찰서 고문사건’은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충격이라는 것은 아직도 고문이라는 전근대적 수법이 잔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충격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 고문이 완전히 근절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에서는 고문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이라고 ‘추억’할지 모르겠지만, 가깝게는 2002년에도 검찰에서의 고문치사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고문에 대한 증언은 이어져왔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사건들만 살펴보더라도 우리사회에서 고문은 여전히 ‘현실의 문제’라는 개연성이 충분하다.

 여하튼 이번 일로 그동안 잊혀지려던 ‘고문경찰’이라는 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인권경찰’임을 표방하고, ‘새롭게 바뀌겠다’고 약속했지만 내부 깊숙한 곳에서는 구태의 악습을 벗지 못했음이 자명해졌다. 양천서 사건 이후 경찰이 보여준 태도 또한 이러한 심증을 굳게 한다. ‘자정결의대회’를 열고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경찰 스스로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임이 금방 드러났다. 인권교육을 하러 간 강사에게 “고문을 봤냐”라고 항의하고, 동료직원들은 여기에 호응하는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백번을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봤냐”라는 식의 항의는 희대의 살인마가 “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봤소”라고 묻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또 한 직원이 “고문이 아니라 가혹행위”라고 하거나, 서장이 “자연스러운 의견 개진”이라고 한 것에서는 천박함도 엿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가 사실이라면 양천서에서의 일은 국제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고문임이 명백하다. 물론 우리 형법에는 고문에 대한 정의규정이 없어서 고문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있었던 고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이례적으로 고문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쓴 것으로 생각된다. 서장의 변명도 궁색하다. 외부의 문제제기로 독이 오른 몇 백 명과 마주서있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불만을 자연스러운 의견개진이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없다.

 
지난 7월 7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열린 '양천경찰 신뢰회복을 위한
자정결의대회 및 인권보호교육' 참석자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일련의 모습들은 인권교육만으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경찰에게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물론 인권교육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강요된 반성이거나 무마를 위한 일회성 인권교육은 답이 될 수 없다. 경찰로 입직하는 과정에서부터 입직 이후 보수교육에 지속적으로 인권감수성을 향상할 수 있는 교육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경찰관 직무규칙에 ‘경찰관서의 장’으로 명시되어 있는 인권교육의 의무를 경찰법에 ‘경찰청장’으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양천서 사건 이후 각 서별로 이루어지는 일회성 인권교육은 절대 해답이 아니다. 

 또 내부의 자정 노력, 내부의 징계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경찰청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경찰의 특성상 내부에서의 무마도 얼마든지 가능한 조직이다. 외부에서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구조화해야 한다. 경찰위원회를 활성화해 견제의 기능을 강화하고, 경찰옴부즈만, 경찰비리민원조사기구 등 감시와 통제기구를 둘 필요도 있다. 자치경찰제의 전면도입으로 힘을 분산시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또한 ‘고문방지국가예방기구’의 도입도 검토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1995년에 가입한 ‘고문방지협약’에는 어떠한 유보조항도 달지 않았지만, 국가예방기구의 설립과 고문방지소위원회의 현장방문권을 명시하고 있는 ‘고문방지협약 선택의정서’는 아직까지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고문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글로벌스탠다드’를 주장하는 현 정부의 지향을 고려한다면 선택의정서의 비준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경찰이건 검찰이건 교정시설이건 우리사회에서 고문을 완전히 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문경찰’의 악몽을 재현한 경찰을 두고 경찰 스스로의 반성과 성찰만 요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서서 경찰의 문제를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정신 못차린 양천경찰서
인권교육 강사가 ‘고문’ 언급하자 야유
한겨레 홍석재 기자
고문 수사로 물의를 빚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인권교육에 나선 강사가 교육중 야유를 받은 사실이 14일 드러났다.

인권단체와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7~8일 이틀 동안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특강을 했다. 첫날 강연은 경찰 간부들과 취재진이 참석한 탓인지 별 탈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양천서 직원 절반이 참석한 둘쨋날 강연에서 일부 경찰관들이 오 국장을 향해 ‘고문하는 것 봤냐’며 빈정댔다. 다른 직원들이 호응하며 손뼉을 쳤고, 오 국장이 ‘이런 식이면 강의를 계속하기 어렵다’고 하자 일부 직원은 ‘어려우면 나가라’고 말했다. 오 국장은 강당 출입문까지 나갔다가 다른 직원들이 말려 다시 강의를 진행했다.

오 국장은 “일부 직원이 ‘왜 남의 기관에 와서 고문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나’, ‘고문이 아니라 그냥 가혹행위다’라고 주장했고, 다른 직원들이 박수로 호응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검찰과 국가인권위, 언론이 모두 ‘고문’이라고 하는데, 경찰만 고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인식”이라며 “경찰이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회성 교육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재열 양천서장은 “의견은 다를 수 있고 누구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연합뉴스 forchis@hani.co.kr



고문재발방지 자정 노력 일환  
“간부도 교육받아야” 내부지적도



피의자 고문수사로 물의를 빚은 양천경찰서가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천서는 지난 7일과 8일 양일에 걸쳐 총 700여 명의 소속 경찰관을 대상으로 인권보호 교육 및 인권침해 재발방지를 결의하는 자정대회를 실시했다.  

인권교육이 처음으로 이뤄지던 지난 7일, 양천경찰서 5층 대강당은 양천서 소속 300여 명의 경찰관들로 가득 찼다. 강의는 ‘인권과 경찰활동’이라는 주제로 인권실천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 맡았다.

본격적인 교육에 앞서 직원 대표들은 “선량한 시민의 인권보호는 물론, 피의자 가혹행위 등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이제열 양천경찰서장에게 전달했다.

이어 진행된 강의에서 오 국장은 채수창 전 강북청장을 언급하면서 “조직 내 실적경쟁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현 정부의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상급기관에서 실적을 강조한다하더라도 그것이 고문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 국장은 “양천서의 고문행위는 조직적, 지속적, 전문적으로 이뤄져왔다”며 “지난 2002년 발생한 서울지검 강력부의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과 비교했을 때 행위의 결과는 서울지검이 더 잔혹할지 몰라도 과정에 있어서는 양천서 사건도 못지않게 충격적”이라는 말로 경찰들의 자정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오 국장은 강의장을 나서면서 “양천서 사건은 중요한 조직이 사명감을 갖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그 참담한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였다”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경찰이 돼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하지만 강의를 들은 일부 경찰관들은 이러한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도움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하급자들만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김 모 순경은 “(경찰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위부만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조직을 이끄는 간부들도 우리가 들었던 좋은 교육을 들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김하영 기자

 한낮의 햇볕이 아스팔트를 빨갛게 달구는 더운 여름 날, 학생들의 장래와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는 교사들이 한데 모였다.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진행된 11기 교사인권연수는 ‘학교 교육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교육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강사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첫 강의에서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인권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어가며 기본적인 인권의 개념을 설명했다. 오창익 국장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이 의무적으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한 측면에서는 여성 인권의 탄압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미국에서 이슬람 여성에게 히잡의 착용을 금지하는 것은 반대로 문화 다양성의 탄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하며, “인권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딜레마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오창익 국장은 요즘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의장직 포기와 관련하여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특성과 존재 의의에 대해 설명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전 대한민국 인권대사이자 현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박경서 교수의 강의가 이어졌다. 박경서 교수는 전 인권대사로서의 생생한 경험을 곁들여 2시간 50분의 긴 강의 동안 시종일관 교사들의 감탄과 웃음을 자아냈다. 박경서 교수는 1215년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에서부터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으로 이어지는 인권의 역사를 주요 인물들과 함께 설명했다. 또한 독일과 대한민국을 비교하면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상향식’,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유엔 인권이사회의 구조와 기능을 본인의 경험과 함께 전달함으로써 교사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연수 두 번째 날의 첫 강의를 진행한 종교문화연구원장인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는 교육과 종교가 역사적으로도 의미론적으로도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하면서 “삶의 깊이를 발견한 사람이 학생들로 하여금 삶의 깊이를 알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육은 종교적이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라”라는 보조국사 지눌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의 교육문제는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서 해결돼야 한다면서 한나 아렌트가 그녀의 저서에서 언급한 ‘악의 평범성’은 무지하거나 혹은 개인의 욕망으로 인해 침묵하는 다수에 의해 구체화된다고 말하며 교사들의 실천을 독려했다.

 
 이 날 두 번째 강의는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진행했다. 김상봉 교수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교육’의 본질을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 만남의 ‘비대칭성’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성질이 교육을 ‘대칭적인’ 시장과 구분하며 따라서 학교를 시장화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교육의 파탄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의 비대칭성 때문에 피교육자는 교육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교육을 받게 되어 교육이 ‘도구화’될 위험도 동시에 지니고 있으므로 “교육의 비대칭성은 학생의 주체성과 자유의 신장을 위해 사용할 경우에만 정당화 될 수 있다”라고 피력했다.



 
 세 번째 강의는 내서여고 이필우 교사가 함께했다. 이필우 교사는 ‘인권교육의 실천사례’를 주제로 강의를 준비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에 목마른 현직 교사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았다. 이필우 교사는 학생과 교사 간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수단으로서 학생자치활동의 활성화 사례를 언급했다. 형식적인 교육으로 끝내지 않고 학생들에게 간부수련회와 학생회에 급식문제, 교복 디자인 변경 등 실질적인 권력을 이양함을 통해서 학생들의 주체성과 주인의식을 신장하는 등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셋째 날 첫 번째 강의는 서강대 교육대학원 김녕 교수가 맡았다. 김녕 교수는 ‘학생인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인권 중에서도 학교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 구체적,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청소년 자살과 관련하여 학생의 생명권을, 몸에 맞지 않는 책걸상으로 인해 척추측만증에 걸린 학생들의 건강권을, 과도한 사교육비와 관련하여 학습권을,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는 학생들의 문화권을 언급하며 학생들의 인권에 대해 교사들로 하여금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교실에서 흔히 발생하는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 사이의 충돌과 관련하여 징계권과 체벌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주었다. 


 두 번째 강의를 진행한 김희수 변호사는 학생 인권에 대한 법적 관점에 대해 설명했다. 학생 기본권 제한의 법리로써 ‘특별권력관계론’과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른 제한’을 언급하면서 법적인 관점에서 학생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법론을 소개했다. 또한 체벌, 학생 자치권, 두발 자유, 소지품 검사, 사립학교의 종교수업 강제 등 논란이 계속되는 현안들에 대한 실정법과 판례들을 소개하면서 현재 법이 학생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3일간의 짧은 기간 동안에도 깊은 인연을 만든 교사들은 연수가 끝난 후에도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래느라 한동안 교육장을 뜨지 않았다. 언론에서는 사교육으로 인한 공교육 붕괴 등 한국의 교육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로 연일 시끄럽지만, 2009년 여름 교사인권연수를 통해 교사들의 진지하고 무게 있는 질문과 토론을 들으면서 교육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직 생활 20년이 넘으면서 매 해 경험하는 일이지만 해마다 담임을 맡게 되는 아이들이 모두 참 다르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같은 학년을 연이어서 담임을 하여도 아이들이 참 다른 것을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 속에 미세한 차이가 생활의 또 다른 재미(?)를 주는 것 같다. 올해는 내 교직생활에서 6번째로 2학년을 담임하게 되었다. 28명이라는 다소 경감된 학급 아동수를 내심 반갑게 생각하면서 '올해는 어떤 녀석들일까?' 하는 설렘과 두려움을 가지고 아이들과의 대면을 시작하였다.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간의 눈빛에서 오고가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아이들의 눈빛을 살피던 중 유난히 작은 체구에 교사의 눈빛을 갈구하는 아이가 있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질문도 많았으며 교사가 지시한 것에 대하여 항상 귀 기울이는 아이로 여느 아이들처럼 교사의 특별한 관심을 좋아했다.  


  그 아이에 대하여 처음 놀란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교사의 과제에 대하여 그 아이가 보인 반응이 나타났을 때였다. 평소 교사가 하는 말에는 집중력 있게 듣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내용에 대한 이해도는 집중도에 비례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설명을 한 후 그 내용을 이행해보라고 한 것에 대하여 본인이 원한 만큼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자 얼굴이 빨갛게 되도록 울고 감정 조절이 안 되어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아이들 책상 주변을 빙빙 돌면서 소리를 지르더니 급기야 손톱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할퀴며 자해를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아이를 붙잡고 일단 이상행동을 저지시켰다. 그리고 왜 그러는 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른 과제 해결에 대하여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타난 행동에 비해서 그 이유가 너무 단순해서 속으로 놀랐다. 일단 그럴 경우에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당부하고 달래주었다. 그리고 학부모총회날 그 아이의 학부모로부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는 맞벌이고 취학 전에는 할머니가 키워주셨으며 그때까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고 학교 들어오고 나서 이상행동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학년 담임선생님이 이런 이유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했다는 것과 그 이후로 놀이치료를 받아 현재에 이르는 중이라고 했다.  


 면담 후 그 아이에 대하여 좀 더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교사가 필요할 때에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앞자리에 앉도록 하여 세심하게 관찰을 하였으며 개인행동을 일지형태로 기록하였다. 보통의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결과물을 통해 성취욕을 가지도록 지도하지만 이 아이는 반대였다. 성취욕이 너무 강하여 결과물에 대한 좌절감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큰 것이 문제였다. 과정에 대하여는 집중하지 못하고 결과에 대하여만 집착하여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 시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다만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고 조절해나가느냐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이제 겨우 9살인 그 아이가 겪을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내용적으로 어렵지 않은 2학년 과정에 대하여 나타난 좌절감의 표현은 이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해갈 학습량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리고 경쟁만이 학력을 높일 것이라는 믿음아래 펼쳐지는 정책들은 그 아이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올 것인가? 우리는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알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과 그 과정은 달라도 누구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교육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교육을 받고 하나씩 깨우쳐가면서 누리는 기쁨은 이미 옛날이야기에 불과한 것일까? 다수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좀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지난 3월 31일에 치러진 '교과학습 진단평가시험' 풍경, 초등학교 학생들이 칸막이를 세운 채 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벌써 한학기가 지나 여름방학이다. 다음 학기가 지나면 그 아이는 한 학년 더 올라 갈 것이다. 더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학습내용을 감당해야하며 또 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모두 알고 있다. 해마다 특별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반이랄 것도 없이 모든 반에 그런 아이들이 있다. 다만 몇 명이 있느냐가 관심사이다. 경쟁을 통해서 1등만이 인정을 받고, 친구들을 이겨야만 내가 살며, 최고의 결과를 도출해야만 세상이 알아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막상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는 과감하지 못하다. 우리 교육이 경쟁과 효율성만을 강조할 때 우리 아이들은 상처받고 좌절하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잃어간다. 이는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 비단 그 아이 한사람에 대한 것이라 치부하지말기를 바라며 교육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다시 생각해보고 그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하는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인권연대 주최 이번 교사인권강좌에서 강의를 마친 후 필자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맞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요? 인권교육이라는 것이 말은 그렇지만 과연 실제로 얼마나 실행되고 확산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라도 좀 강하게 맞서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취지의 질문을 받았었다. 그 때 필자는 선뜻, “이대로 가다가 교육은 결국 바닥을 칠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더 나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경찰이 쏘아 대는 물대포와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제 젖는지도 모르게 온몸을 젖게 만드는 이슬비, 그런 이슬비가 결국 물대포보다 강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었다. 이어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처럼 담쟁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결국은 그 담을 넘지 않겠어요?”라고도 했다. 그 후 필자는 “그 답이 과연 충분한 답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바닥을 치는 것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와 “이슬비가 물대포보다 강한 이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악화일로의 경제상황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는 가끔씩 “바닥을 쳤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우리는 그 말을 “이젠 더 나빠질 리는 없으니 조금이라도 좋아질 것”이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 또한 살아오면서 가끔씩 끝 모를 절망이나 실패 혹은 슬럼프에 빠져들게 되면 우리는 “차라리 바닥을 빨리 쳤으면 좋겠다. 바닥을 치면 그땐 올라가는 일만 남지 않겠냐?”라고 생각한다. 정호승 시인은 <바닥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하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하며,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하며 그 시를 끝맺는다.  


 필자가 여기서 이해하는 ‘바닥까지 내려감’은 곧 ‘희망’이다. 새벽동이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면, 가장 어두운 순간 바로 다음엔 곧 빛이 터져 나오는 거 아닌가? 역대 정권들이 하나같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수많은 조치들을 발표하고 시행해오고 있지만 교육을 물속에 점점 깊이 빠뜨려 왔다면, 곧 ‘바닥’을 칠 것이고, 그리고는 수면 위를 향해 올라갈 차례가 아닐까? 인권을 무시하여 교육을 물속에 빠뜨렸다면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 인권이 교문을 넘어 학교 안에 확산되게 하는 방향이 곧 수면 위로의 방향일 것이다. 걸상과 허리가 맞지 않아 걸상에 허리를 맞추다가 수많은 학생들이 걸리게 되는 척추측만증, 학생이 안경 쓰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안타까운 시력 희생, 초등학생에게까지도 성적이 떨어진 것을 유서 쓰고 투신할 만큼의 불효로 여기게 만드는 교육풍토와 가정교육, 명문대 합격을 위해 인권을 유보함은 당연하다는 식의 ‘입시독재’ 논리……. 더 이상은 내려갈 곳이 없음이 모두에게 자명해지고 있지 않은가? 하여, 교육은 이제 곧, 드디어, 바닥을 치고 오른다! 이것을 “바닥을 치는 것이 희망이기도 한 이유”라고 보는 것은 좀 궁색한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도 우리는 가끔씩 듣는다. 필자는 문득, “무엇이 약한 것인가? 왜 약하다고 하는가? 약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하기에 강한 것을 이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그 글을 풀어쓰자면, “사람의 숨은 약하기 짝이 없으나 갈비뼈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것은 바로 그 약하기 짝이 없는 숨 아닌가?” 예전에 읽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글도 풀어쓰자면, “눈 오는 겨울 산에서 살면 흔히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약하고 약한 눈송이들이 큰 가지들 위에 점점 쌓이면 그 무게를 못 이겨 키 큰 나무들이 통째로 부러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물대포’와 ‘이슬비’는 어떤가?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인근에서 점거 파업 중인 쌍용차 노조원에게
물을 전달하려는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을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해산시키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물대포’로 비유되기엔 약할 만큼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 남용 및 과잉진압은 많은 경우에 인명 피해로 이어지곤 한다. 작년의 촛불집회, 올해 초의 용산 참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쌍용 자동차 사태에 이르도록, 최루액과 경찰특공대 등을 갖춘 공권력은 이미 허용 정도를 넘어 정당성을 상실한 폭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6일 천주교 마산교구 상남동 성당에서 제3차 전국사제시국기도회가 열렸다. 미사에 앞서 행한 연설에서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은 “박정희 대통령은 부마사태와 YH사건, 전두환은 박종철의 죽음 등을 겪으면서 무너졌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이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을 폭로하면서 6월 항쟁이 시작되었듯이, 이명박 정권은 새벽에 6명을 불태워죽이고서 3,000쪽의 조사기록을 밝히지 않으니 말로가 뻔하다.”고 말하면서 용산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은폐와 3,000쪽의 검찰조사기록 은폐가 묘하게 대응된다 싶다.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생명수호를 위해’ 봉헌되는 미사,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의 동참,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갖게 되는 정의와 희망의 연대감, 참사 후 반년이 지나도록 장례마저 못 치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신자, 비신자를 떠나 사람 마음 안에 자리 잡게 되는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양심의 가책, 그러면서 서서히 배우지만 절실히 깨닫게 되는 ‘인권’의 소중함과 불가양도성, 민주주의에 대한 상실감과 목마름……. 이런 모든 것들은, 당장의 위력으로는 ‘물대포’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서서히, 결국은 모두를 똑같이 적시는, 흔히 우산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홀딱 젖게 하는, ‘이슬비’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은 결국은 ‘희망’이다. ‘바닥’은 끝 모를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강하게 차고 오를수록 상승의 탄력이 붙을 것이다. 그리고 ‘이슬비’는 ‘물대포’를 이기리라. 결국에는 ‘물대포’를 쏘는 발사체인 대포도 녹슬게 만들리라. 약한 것은 약하지 않다. 약하게 보일 뿐이다. 지브란의 말처럼 “갈비뼈를 움직이는 것이 숨”이라면, 국가의 갈비뼈를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으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국가가 강하게 훈련시킨 근육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올곧은 ‘숨’, 곧, 혼과 의지와 꿈, 시민의식, 특히 인권의식 아닐까? 이것이 약할까?


김 녕 위원은 현재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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