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현진/ 에세이스트


 항상 전라도 남자가 좋았다. 물론 여자도 좋다. 아마도 대구에서 태어나서 평생 경상도 사투리로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잘살게 된 거 아이가, 전두환이 그래도 참 화끈했다 아이가, 현철이 그거 뭐 김영삼이 그래도 참 깨끗하다 저거 아들한테만 몰아 줬다 아이가, 뭐 이런 소리만 듣고 커서 그런 것 같다. 훌륭하고 공정한 경상도 남자 분들께 죄송하지만 혈족 여부를 막론하고 내 주위의 아저씨들은 죄다 저런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박근혜를 매우 사랑하는데 그들은 다행히 혈족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의 칭찬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이 빨갱이라는 것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것처럼 당연했고, 그를 따르는 전라도 ‘놈’들도 빨갱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금마들은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안 하면 잡아물라칸다 안카나, 하며 혀를 차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는 셀 필요도 없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도 저거 완전 빨갱이 신문 아이가, 하며 혀를 차는 소리는 열렬히 계속되었다. 빨갱이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쁜 거라는 건 알았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미움 받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간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그들에게 들어 온 80년의 광주 시민들은 당연히 ‘폭도’였고 그게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하고 턱 하고 알아챈 것은 머리보다 혓바닥이었다. 요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머리보다 짤막한 세 치 혀가 훨씬 더 정직했다.

 오랫동안 가마솥 안에서 끓인 순대국과 젓갈을 가득 넣은 전라도 김치를 처음으로 맛보았을 때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혀가 먼저 탄식했다. 얘, 네가 태어나서 스무 해 동안 먹어 온 김치는 김치가 아니라 잔디 뜯어다 대강 양념한 거였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지의 지역적 특성상 일단 신선하고 다양한 식재료 조달이 어렵고, 늘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맛이 얼른 가 버리거나 혹은 맛이 제대로 들지 않는 음식을 먹는 우리에게 끼니란, 음식이란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아무거나 먹고 치우자, 우리는 종종 그렇게 말했고 빠른 시간 안에 후딱 먹어 치워버렸다. 하지만 절대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먹어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 이후 <광주집>이나 <나주순대국>같은 곳에서 막걸리와 각종 안주를 탐하면서 간혹 80년의 광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살아 온 사람들은, 세상에 맛있는 게 있다는 걸 알면서 살아 온 사람들은 보다 용감하고 너그러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년 전 광주 출장을 갔을 때 들른 식당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두 아이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그 부모는 먹어 ‘치울’ 생각을 않고 끝없이 먹는 얘기를 했다. 내가 처음 순대국을 먹어 봤을 때 이렇더라, 내가 처음 부대찌개를 먹어 봤을 때 그 맛이 저렇더라, 우리 집에서 만들었던 최고의 송편이 언제 적 그 때 그 송편이었는데 비결은 거기에 넣은 이것이 이러저러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주에 비가 오면 만두 빚어 먹고 싶다 저번에 비올 때 해 먹은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어린 아이들도 풋고추에 된장을 잘도 찍어 먹으며 쉬지도 않고 조근조근 먹는 이야기를 하던 그 가족은 고기를 다 구워 먹고 나자 살뜰하고도 노련하게 누른밥 한 공기와 냉면, 동치미국물에 만 국수를 청해서 바지런히 마지막 젓가락까지 꼴깍 넘기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와 대치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전두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5·18기념재단

 산해진미의 문제가 아니다. 김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양념 사이에 좀 눕혀 뒀던 배추조각이 아니라 온갖 오묘한 맛을 내는, 말 그대로 ‘김치’를 먹으며 살아 온 사람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할까. 먹고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아직 먹어보지 못한 ‘맛’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기대하는 사람들은 인생에도 보다 많은 맛을 기대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란, 어차피 더 많은 ‘맛’의 문제가 아닐까. 니 맛도 있고 내 맛도 있어야 하고 이 맛도 있고 저 맛도 있어야 하고 그게 이상할 것 없이 저마다 제 맛이 있고 제 입맛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란 것이 아닐까. 그래서 80년 광주의 도청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꼭 먹는 생각이다.  

 아무도 장사를 치러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삼십 년 전 오늘 새벽 깨끗이 씻고 속옷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은 채 꾸벅꾸벅 졸며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던 그 사람들이 투사로서 생각했던 것은 물론 역사의 장엄한 부름과 민주주의의 승리였겠지만 ‘사람’으로서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밥 한 공기 아니었을까. 살아서 내일도 맛있는 밥을 먹어야지, 열심히 싸워서 후세에게는 뜨거운 자유를 먹여야지, 민주주의의 참된 ‘맛’을 보아야지, 그것이야말로 영웅들의 ‘밥심’이 아니었나 생각하면 번번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삼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끼니를 그들에게 빚졌는가. 그 빚진 끼니, 앞으로도 빚지고 살아갈 끼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서 해마다 5월이면 고인들의 영전에 뜨끈한 순대국과 막걸리 한 사발 올리고 싶다. 앞으로도 주신 끼니 소중히 하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면서.


2010년 여름 인권연대 인턴 모집

 인권연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제기되는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인권현실을 체험하기 원하는 인턴을 모집합니다. 상근자와 함께 인권연대에서 활동하며 각종 캠페인 등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이번 인턴 모집에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다    음 -

1. 선발내용

- 선발 인원 : 약간 명
- 자격 요건 : 국내외 대학(원)생(휴학생도 가능하며 학생이 아닌 분도 지원 가능합니다)
- 채용 과정 : 서류전형→면접(서류전형 합격자에게 면접가능 개별 통보) 

2. 업무내용

- 활동기간 : 10.6.28(월) ~ 10.8.13(금), 총 7주
- 근무시간 : 월~금 9:30 ~ 18:00
- 업무내용 : 실무소개 및 간단한 교육을 거쳐 인권연대가 실시하는 각종 프로젝트의 입안·집행·평가의 전 과정에 참여합니다.  

3. 지원내용

- 활동지원 : 중식 및 교통비를 지원하며, 별도의 보수는 지급하지 않습니다.
- 근무혜택 : 향후 인권연대 상근자 채용시 가산점 부여, 인턴활동에 대한 증명서 발급 등


4. 신청방법

- 신청기간 : 6.22(화)까지
- 면      접 : 6.24(목)  ※ 최종 선발자는 개별 통보
- 제출서류 : 인턴 신청서와 자기소개서
                  (
양식 다운받기 ☜클릭) 또는 http://www.hrights.or.kr/hwp/인권연대인턴지원서.hwp
                  
(자기소개서는 A4 1매 이상의 자유양식이며, 접수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 접수방법 : 이메일로만 가능(hrights@chol.com)
                   메일 제목을 ‘인턴신청-신청자 이름’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5.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www.hrights.or.kr, 02-749-90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