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에 소지품까지…경찰 ‘불심검문권’ 대폭 강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 지난달 행안위 통과
한겨레 길윤형 기자기자블로그
»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 새로 바뀐 내용들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이 길을 가는 시민의 신분증과 소지품을 확인하고, 지나는 차량을 세워 트렁크까지 뒤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경찰관직무집행법(이하 경직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것으로 26일 뒤늦게 확인됐다. 인권·시민 단체들은 “경찰의 행정 편의를 위해 국민 인권을 희생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국회의 향후 처리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필요땐 지문채취 권한도
“경찰 편의위해 인권 희생”
시민사회단체 강력 반발

■ 신분증 확인…‘답변 강요받지 않는다’는 조항 삭제 이번 개정안은 의원입법(제안자 조진형 행안위원장·한나라당 의원) 형태로 국회에 제출됐지만, 경찰의 숙원을 대거 담고 있다. 개정안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이던 ‘불심검문’이란 용어를 ‘직무질문’으로 바꿨다.

핵심은 ‘신원확인’ 조항이다. 현행 경직법은 “경찰은 범죄 의심이 있는 사람을 정지시켜 질문할 수 있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의사에 반해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순 있지만, 시민이 반드시 응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빠졌다.

시민들이 신분증 제시를 거부할 경우 경찰이 ‘연고자에게 연락’ 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만들어졌다.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등의 경험을 보면, ‘연고자에게 연락’이란 시민들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아 가족의 번호를 확인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서도 신분 확인이 안 되면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 지문을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강인철 경찰청 규제개혁법무과장은 “답변 강요 관련 조항이 빠지긴 했지만 신원확인은 여전히 강제가 아닌 임의조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정복을 입은 경찰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 지금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이가 거의 없다”며 “경찰 설명대로 정말 임의조항이라면 법에 그 점을 좀더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분 확인에 필요하다며 휴대전화를 빼앗는 것은 ‘강제처분’에 해당해 영장의 제시가 없으면 불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개정안은 또 경찰이 시민들의 소지품과 차량을 조사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와 ‘범인의 검거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등의 단서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단서의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경찰에 부여된 재량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비판이 나온다.

■ “대답하지 않을 권리는 민주화의 산물” 개정안에 대해 박진 다산인권연대 상임활동가는 “우리나라 경직법이 처음부터 시민들의 ‘대답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행 경직법은 1987년 6월 항쟁을 거친 뒤 88년 12월 경찰의 권한을 축소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쪽으로 대폭 손질됐다. 이때 경찰의 임의동행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불심검문에 시민이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에게 소속과 이름을 물을 수 있는 권리 등이 생겨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개정안은 불심검문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들은 쏙 뺀 채 경찰의 권한만 강화해놓았다”며 “국회 본회의 통과를 막을 수 있도록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원들을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검·경 동원 ‘여론 길들이기’ ‘천안함 공안정국’ 심상찮다

ㆍ‘좌초설’ 조사위원 수사
ㆍ인터넷 글 대대적 색출
ㆍ경찰 대테러 비상령도

정부가 천안함 사고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다른 주장이나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속속 수사에 착수하고 인터넷상의 여론 감시나 경비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정부가 천안함을 빌미로 여론 길들이기에 나서고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해 해군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민·군 합동조사단의 신상철 민간위원을 지난 22일 공안1부에 배당, 수사 중이다. 민주당 추천으로 합조단에 포함된 신 위원은 지난 3월27일 모 경제신문에 해군이 사고 직후 제시한 ‘작전지도’를 근거로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하는 등 최근까지 합조단의 조사 과정과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과 기고를 해왔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천안함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을 고소한 사건도 맡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11일에는 현역 해군장교를 사칭, 천안함 침몰 사건의 원인을 자체 사고로 묘사한 네티즌 장모씨(22)를 정보통신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는 천안함 사고 조사발표 직후 침몰 원인 등을 둘러싼 근거없는 비방이나 불법행위 엄단에 나섰다. 사이버테러 대비 경보 단계를 ‘정상’에서 ‘관심’으로 격상하고,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불법 집회·시위가 열리면 원칙에 따라 엄정 대처토록 주문했다. 경찰은 인터넷상의 천안함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작업에 나선 상태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천안함 진상조사 결과 발표 직후 전국 경찰에 ‘을호비상’을 내리고 대테러 작전부대의 출동태세 점검에 나섰다. 을호비상은 집단사태의 발생으로 치안질서가 불안해지거나 대규모 재난·재해 발생시에 발령되는 비상근무령으로, 천안함 침몰 직후에 이어 두번째 내려졌다. 강 청장은 21~22일 전국 지방경찰청장 불시 화상회의를 열고 인천공항과 지하철 역사 등을 돌며 직접 경비태세를 점검하기도 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가 검·경을 동원해 정부에 불리한 여론을 틀어막고 공권력 동원을 강화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며 “정부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일은 전제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오 국장은 “유언비어 단속 등을 통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가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나 네티즌들이 제기하는 의문을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풀어주는 게 정부의 임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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