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변호사


 5월은 좋은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달력에 빼꼭히 기념일이 적혀있는 달이다. 5월은 신록의 계절이기도 하다. 갓 피어난 여린 잎들이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면서 보석처럼 찬란한 초록빛으로 세상을 뒤덮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5.18 광주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5월은 슬픔과 분노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한 5월의 슬픔과 분노를 담아낸 노래가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광주항쟁의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노동운동에 헌신한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그 노래. 그 비장한 가락을 듣고 있노라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는 맹세를 할 자신이 없고,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사람들도 저절로 마음이 뜨거워지곤 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지 않는 5월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그 때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무고하게 총칼로 짓밟았을 때 시민들이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졌다면 지금 이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도청에 남아 끝까지 남아 저항한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했을까 하고... 만약 그 때 시민군의 목숨을 건 저항이 없었더라면 군대가 총칼로 장악한 숨죽인 세월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 패배주의에 젖어 술잔을 기울이며 ‘모난 돌이 정 맞는다’거나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을 속삭이며 뒷골목에서 슬픔과 분노를 삭였을 것이다.  

 만약 5.18 광주항쟁이 없었다면 87년 6월 항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아가면서 독재타도를 외치던 사람들, 시위대에게 박수를 보내고 손수건을 흔들고 모금에 동참하던 사람들... 그 모든 일은 광주에 대한 분노와 부끄러움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87년 6월이 없었다면 그나마 최소한의 민주주의라도 가능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10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흥구 교수의 말처럼 우리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모두는 ‘광주의 자식들’이다. 그리고 광주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촛불’로 이어지고 있다.   


5·18민중항쟁 3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7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전야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옛 전남도청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올해 정부가 주최하는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금지했다. 한술 더 떠서 한나라당의 대표라는 사람은 축하화환을 보냈다고 한다. 공수부대가 수많은 시민을 총칼로 짓밟은 과거를 축하하겠다는 것인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는 구호를 내걸고 정권을 차지하고, 지난 정부의 흔적을 모두 없애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에게는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5.18 광주의 기억마저도 지워버려야 할 대상인가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5.18 기념행사에 ‘님을 위한 행진곡’ 대신에 ‘방아타령’을 틀겠다는 희한한 발상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행태는 5.18 광주와 그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것이고,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뿌리가 5.18 광주 시민을 무고하게 학살한 전두환, 노태우의 ‘민정당’에 닿아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화가 나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본질을 드러낼수록 무엇이 미워하고 분노할 대상인지 더 분명해질 테니까.

 오늘은 5.18이다. 온종일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고맙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본다. 비장한 가락이 이런 날씨에 딱 어울려서 좋다.



<영화모임>의 6월 작품은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2007)입니다. 야구영화를 만드는데서 행복을 찾고 진정으로 행복했다고 말하는 김 감독의 이번 영화는 이전 작품과는 또 다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화 <스카우트>는 80년대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했던 투수 선동렬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로 간 스카우터의 고군분투를 그린 작품입니다. 감독은 5.18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굉장히 가볍게 하지만 의미있게 그려내며 영화 속에서 역사가 어떻게 대중과 만나는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합니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10년 6월 8일(화) 저녁 7시 30분
  • 장소 :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동대문역사문화공원 4번출구 장충동 방면 3분거리)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749-9004)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Scout
감독 : 김현석
주연 :
임창정, 엄지원
제작사 : 
두루미 필름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제작국가 : 한국
제작년도 : 2007년
상영시간 : 94분
장르 :  드라마, 스포츠




SYNOPSYS

당신은 어디 있는가?

미치도록 잡고 싶다!

1980년. 화려한 휴가를 꿈꾸던 대학 야구부 직원 호창에게 불가능한(?) 미션이 떨어진다.

라이벌 대학에 3연패의 치욕을 떨쳐 버리기 위해,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광주일고 3학년 선동열을 스카웃 해오라고 명받은 것!

광주로 급 파견된 호창. 경쟁 대학의 음험한 방해공작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가운데, 잡으러 온 괴물투수 선동열 대신 그가 만난 건 7년 전 헤어진 연인 세영. 이소룡이 죽던 날 갑자기 이별을 선고하고 사라졌던 세영은 7년 만에 만난 호창을 불편해 하고, 세영을 짝사랑하는 동네 주먹 곤태는 호창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괴물투수의 부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선동열이 경쟁대학으로 스카웃 됐다는 소문에 서울은 발칵 뒤집힌다. 동열이의 얼굴도 아직 보지 못한 호창은 사태가 악화되자, 곤태를 끌어들여 연합작전으로 ‘선동열 보쌈작전’까지 펼치는데...

호창은 과연 괴물투수 스카웃을 성공할 수 있을까?

7년 전, 그녀는 정말 이소룡 때문에 호창을 떠났던 것일까?

호창이 선동열을 찾아 헤매던 9박 10일의 마지막 날, 세상이 몰랐던 비밀이 드러난다!


비주류를 향해 바치는 찬가 <스카우트>

시대의 아픔 속에서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 김현석 감독의 소시민 찬가

  주성철


 5·18 광주민주화운동 열흘 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화려한 휴가>의 또 다른 버전은 아닐까 궁금하겠지만, 김현석 감독은 친절히 ‘99% 픽션’이라는 자막까지 넣어뒀다.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는 바로 야구와 더불어 소심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다. 그러니까 <스카우트>는 그의 이전 두 영화인 <YMCA야구단>(2002)과 <광식이 동생 광태>(2005)가 한몸으로 만난 영화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시대의 암울한 공기가 흐른다. 스포츠 에이전시의 세계를 다뤘던 <제리 맥과이어>(1996)의 한국적 저개발의 기억이라고나 할까?  

 1980년, 대학 직원 호창(임창정)에게 광주 출장 명령이 떨어진다. 광주일고 3학년 ‘괴물’ 야구선수 선동열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스카우트해오라는 것. 하지만 경쟁 대학이 이미 점찍어둔 상태고, 행방 역시 묘연해 출장 일수는 늘어만 간다. 그런 가운데 호창은 광주가 고향이자 옛사랑이기도 한 대학 후배 세영(엄지원)을 만나 마음이 흔들린다. 세영은 7년 전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사라졌었지만, 호창에게 선동열의 어머니를 소개시켜주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비밀리에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던 세영은 경찰의 포위망에 걸려들고 호창은 그녀를 구하려 동분서주한다.  

 김현석 감독은 당시의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경쾌한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의 세계 안에서 광주의 건달 곤태(박철민)도 진심으로 시를 낭송하고, 짝사랑 세영을 구하기 위해 온몸으로 경찰서에 뛰어든다. 이처럼 독특한 감각으로 갈지자를 걷는 그의 유머는 <스카우트>에서도 여전하다. 1980년이라는 시대적 무게 안에서 그의 관심은 실패한 소시민이다(당시 선동열은 K대로 갔었기에 영화는 처음부터 실패의 기록임을 못 박고 시작한다). 임창정은 김현석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1998)에서 야구선수 대신 야구심판이 됐던 남자를 연기했고, <스카우트>에서는 한때 불미스런 일에 휘말려 야구를 접은 남자를 연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극중 호창의 투구폼은 눈에 띈다. 선동열의 아버지 몰래 투구 연습을 할 때, 그리고 세영을 구하기 위해 경찰서의 전구를 깨트릴 때도 그는 언더스로로 공을 던진다. 오버핸드를 정통파라 할 때 언더스로는 그야말로 ‘정통’이 아닐뿐더러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그 어떤 것이다. 소재든 유머든 취향이든 정통의 것을 비껴나려는 감독의 의도도 그 안에 있다고나 할까. <스카우트>는 세상 모든 비주류를 향해 바치는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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