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 정부 들어 많은 부분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87년 이후 눈물겹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성과가 ‘좌빨들의 편향’으로 공격받으며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촛불세력의 반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한심한 발언은 불의의 시대라는 진단에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일련의 후퇴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의 후퇴는 한심한 수준을 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미 촛불국면에서 보여주었던 경찰의 대응은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국치안에 힘쓰지 말고 민생치안에 힘쓰라는 국민의 요구는 물대포 직사로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또한 촛불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열풍도 군사정권이 보여주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 활동에 국민은 없고 정권의 요구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런 경찰 활동이 최근 들어 공안경찰로 굳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일부언론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경찰청이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정보과 형사들에게 좌파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지원세력, 자금 및 조직 현황 등을 파악하라고 되어 있다. 반대로 우파 후보들에 대해서는 우파 후보 승리를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벌어지자 소위 진보후보들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악할 일은 또 있다.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전남대 학생을 벌건 대낮에 학교 안까지 들어와 강제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봉고차를 대동한 사복경찰들이 몸싸움까지 벌이며 강제 연행했고, 경찰을 깡패로 오인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행된 학생은 2008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총련의 의장 대행을 한 이후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수배를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혐의라고 하는 것이 실익이 불분명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고, 고작해야 학교에 숨어 지내야 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과연 이 학생에게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대학 안에서의 연행을 할 만큼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관 건물
사진출처 - 문화일보
 

 이 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공안경찰로 급격하게 후진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활발하게 논의되다가 좌절되었던 것이 검찰의 일탈을 기회로 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설치, 중수부 폐지 등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만 인정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안이 있지만 수사의 개시와 진행은 경찰이 하고, 종결은 검찰이 하도록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은 경찰 활동이 완전하게 민생치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 경찰은 정보와 보안 등 소위 공안부서가 밥을 먹여주는 꼴이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와 생활안전부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시국치안에서 민생치안으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권 조정 요구도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지지 또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 스스로는 실력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찰 활동의 변화 없이는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 경찰에게는 검찰과의 자존심 문제를 넘어 사활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보와 보안에 무게가 실린 공안경찰에게 수사권이라는 무기까지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만을 바라보는 경찰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권과 공안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국민의 감정은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이 진심으로 수사권 조정을 하고 싶다면 공안의 탈을 벗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니라 국민의 힘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갈등의 시대를 끝내고 통합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작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 치러진 직후 라디오를 통해 행한 이명박 대통령 연설의 표제다. 그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 관용과 타협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어느 덧 노무현 서거 1주기가 다가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통합의 정치’를 필생의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별명이라고 밝혔던 ‘바보 노무현’도 실은 여기에 기인한다. 그는 분열을 조장하는 지역주의 정치의 종식, 민주주의 세력의 통합을 위해 끊임없는 결단에 임했다. 그런 결과, 그는 2000년 총선에서 보다 유리했던 서울의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 출마하는 선택을 하였다. 결국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바보 노무현’이 되었다. 그러나 2년 후,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야권연대’가 오랜 시간 회자되었다. 위기 앞에서 늘 연대와 통합의 필요는 등장했다. 연대와 통합은 분명 이익의 희생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그 이익의 희생이 공평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명분이다. 여기에서 상대적으로 힘을 갖춘 세력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고 이해를 뛰어넘는 명분으로 시대의 돌파구를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 이번 지방선거 야권연대 논의의 핵심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지방선거 야권연대 논의의 관건은 민주당이 제대로 시대를 읽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미, 소위 ‘중앙’의 야권연대는 깨졌다. 그나마 몇몇 지역에서 그 불씨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 속내를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그 과정의 험난함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곳에 민주당이 있을 것이다. 제주만 하더라도 어려운 사정 끝에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의 도지사 후보 단일화가 성사되었지만, 여기에 민주당 후보는 있을 지언정 민주당은 사실상 없었다. 당초 사실상의 전략공천을 의도했던 유력후보가 도덕성을 문제 삼는 여론에 밀려났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그 유력후보에 대한 미련 앞에서 민주당의 시대정신도 밀려나 있었다. 결국 민주당의 후보가 단일 후보로 결정되었지만, 이 후보는 당분간 한나라당과 동시에 자신을 후보로 공천한 정당인 민주당과도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제주 야권도지사 후보단일화 경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고희범 후보(가운데)가 단일후보로 결정되었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부자정책, 일방주의의 국정을 펴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합론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지만,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얘기하는 한나라당 정권을 넘어설 진짜 민주주의가 불안하다. 87년 6월 항쟁 이후, 분열로 얼룩졌던 이 나라 민주주의 세력의 ‘회복’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의 희망을 만들어내는 ‘진실한 통합’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이든 국민참여당이든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자임한다면, 스스로 ‘바보’가 될 준비도 해야 한다. 바보는 당장의 이익 보다는 시대의 고통을 먼저 본다. 그 고통의 한복판에 뛰어 들어 진실함을 발휘할 때, 얼마간 ‘삐쳐있던’ 희망도 비로소 환하게 웃음을 주지 않을까? 

 바로 몇 시간 전 제주의 야권 도지사 단일후보 경선결과를 발표하는 행사를 치렀다. 이 자리에서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한 한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6월 항쟁때 다른 생각, 다른 의견, 다른 세력들이 모였지만 구호는 오직 하나였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우리가 바보가 되는 순간, 각기 다른 정당, 시민세력들이 외칠 구호는 단 하나다. ‘사람 사는 세상’, 그것이 아닐까?
 이번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반MB·반한나라당의 승리,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나의 구호를 손에 잡히는 희망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바보들의 통합’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 이 글을 쓴 고유기 위원장은 ‘제주희망정치(준)’의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하며, 최근 제주 야권연대를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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