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임 사법연수원생들이 입소식 참석을 거부하고 법무부의 로스쿨 검사 임용 방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서까지 발표하는 사태는 대한민국 사법제도에 대해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권력기관인 검사를 로스쿨 원장의 추천에 따라 임용하는 것은 사실상 권력의 세습을 초래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최고의 엘리트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집단행동까지 나서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검사’라는 권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웅변해주는 것 같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사들은 ‘최우선 기득권층’이며 선망의 대상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그들도 인간이기에 속칭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가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지 모른다. 최근 검찰 조직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한 책 2권이 동시에 출간돼 주목을 끈다.
우선 ‘검찰공화국 대한민국’은 검사 출신의 김희수 변호사,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공동 저술한 책이다.
저자들은 검찰 조직에 가혹하리만치 비판의 날을 세운다. 검사들은 초임 시절부터 ‘우리 사회의 최고 엘리트’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다. 엘리트주의는 패거리 문화로 연결된다.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기에 굳이 외부의 시선 따위엔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영역에는 칼날을 들이대면서 자신들에게 관대한 것도 패거리 문화에서 비롯된다. 지난해엔 유난히 검찰 관련 스캔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자신들에겐 무디기만 하다. 예컨대 서울중앙지검이 ‘그랜저 검사’에 관련된 검사장과 부장 검사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대표적 사례다.
통상 검·판사들은 고생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사법연수원에서 4∼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검사로 임용된다. 검사 개개인으로 따지면 서민 출신이 적지 않고, 양식 있고 경우에 밝은 선량한 시민이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앉기만 하면 패거리 문화에 휩쓸린다는 것이다. 어느 조직에서건 출세를 목표로 한다는 것은 말릴 수 없다지만, 브레이크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으로 변질되는 게 문제다. 왜 그럴까.
저자들은 한국 검찰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일제 치하에서 만들어진 케케묵은 사법제도가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게 우리나라요, 일본에선 낡은 검찰제도가 이미 뜯어고쳐진 지 오래지만 우리만 구식 그대로라는 주장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권 신장으로 사회 각 분야는 적지 않게 개선됐지만 유독 사법제도만 기득권의 아성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독자적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독점 기소권, 기소재량권, 형 집행권 등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보 수집, 내사 등 법률로 정해지지 않은 활동까지 벌인다. 표적 수사,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등이 제도적으로 가능한 셈이다.
언제든지 궤도를 이탈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을 통제할 방안은 무엇인가. 법무부의 탈검찰화,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대검 중수부 폐지, 검찰권 분권화, 시민의 사법 통제 등이 제시된다. 그러나 집권자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라는 검찰 위의 조직을 만들려다 집단 반발에 부닥쳐 흐지부지했다. 그래도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또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브레이크 없는 벤츠’로 잘 알려진 검사 출신 김용원 변호사가 쓴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는 전관예우부터 스폰서 판검사까지 갖가지 법조 병리를 고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 나라 판검사들이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아니라 고래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저자는 판검사들을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 반대파를 물어뜯는 동물농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판검사들을 시켜 비판자들을 마구 물어뜯게 하는 일이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이 나라는 아주 특별한 동물농장이다.”
스폰서에게 놀아나는 판검사에 대해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판검사들에게 밥과 술, 그리고 여자를 사 주고, 용돈까지 주는 스폰서들이 있다. 변호사들이 판검사의 첫 번째 스폰서다. 그다음은 사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판검사의 스폰서가 될까. 무슨 일이 있을 때 크게 도움을 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두 책의 저자들은 거듭 집권자의 개혁 의지를 강조한다. 사법적 정의를 세우려면 집권자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