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인권센터 ‘민주와 인권회복’ 위해 목요기도회 개최 

한국교회 인권센터는 불법으로 민간인 사찰을 해 물의를 빚었던 한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 전 기무사)가 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여전히 민간인 사찰을 진행하고 있음이 밝혀져 ‘민주와 인권회복을 위한 목요기도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무사는 군내의 보안, 간첩활동을 막고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 및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기관이다. 이들이 민간인을 사찰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한국교회 인권센터는 지난 8월 12일 이정희(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무사에 의한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것을 계기로 “국가기관이 국민의 봉사자가 아니라,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 감시자로 나서는 행태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목요기도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지난 1990년 10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당시 이병, 29세) 씨는 “보안사가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303명을 상대로 불법적인 정치사찰을 벌였다”며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이에 재판부는 관련자를 해임하는 판결을 내렸고 1991년 1월 ‘보안사’는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으며, 사건을 폭로한 윤 씨는 1995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11년이 지난 뒤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불법 민간사찰에 대해 한국교회 인권센터 측은 “국가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에 의한 인권침해에 맞서 온 한국교회 인권센터는 금번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과거 독재정권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목요기도회를 개최해 민간인 불법 시찰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우리사회의 민주와 인권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며 기도회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번 목요기도회는 ‘국가기관의 민간인사찰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주제로 이정희(민주노동당) 의원, 오창익(인권연대) 국장이 발제에 나선다. 행사는 11월 19일 저녁 6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교회 인권센터는 윤석양 씨의 양심선언 및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폭로를 배경으로 창립됐다.
사무실 이전 안내] 인권연대가 서울 장충동으로 둥지를 옮깁니다. 

 평화를 빕니다.

 인권연대가 동소문동 시대를 접고, 장충동 시대를 엽니다. 11월 9일(월)에 이사합니다.

 새로 이사하는 사무실은 지금과 비슷한 크기지만, 엘리베이터도 있고, 접근성도 좋습니다. 보증금은 조금 더 적어졌고, 월 임대료는 비슷한 수준입니다.

 2003년 1월 삼각지에서 동소문동으로 사무실을 옮긴 지 6년 10개월만에 다시 사무실을 옮깁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인권연대는 회원님들의 관심과 격려 덕분에 내실을 갖추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장충동의 새 사무실 주변에는 NGO센터(우리함께 빌딩)를 비롯해, 전순옥 선생의 <수다공방>,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등의 사무실이 몰려 있고, 동국대학교도 바로 옆에 있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여건입니다. 바로 옆에 장충공원과 공원과 이어진 남산도 있어 산책하기도 좋습니다.

 주소는 바뀌지만, 전화번호는 그대로입니다. 다만, 대표번호는 예전 삼각지, 한남동 시절에 쓰던 02)749-9004를 다시 쓰기로 했고, 이전에 사용하던 02)3672-9443, 3672-0437 등의 전화번호나 팩스 번호 02)3672-0438는 그대로 사용합니다.

 바뀐 주소는 100 - 855 서울시 중구 장충동 2가 186-221번지 주암빌딩 402호입니다.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시면 주암빌딩을 치시거나 사무실 입주 건물 바로 앞의 <장충단성결교회>를 치시면 됩니다. 입주하는 건물에는 몇 대 쯤 주차도 가능합니다.

 사무실 이전 개소식은 11월 13일(금) 오후 7시에 새 사무실에서 엽니다. 조촐하게 막걸리나 한잔 나누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사무실에서 좀 더 힘차게, 그리고 성실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인권연대 드림

◎ 이사하는 곳 주소 : 중구 장충동2가 186-221 주암빌딩 402호
◎ 이사하는 날 : 2009년 11월 9일(월)
◎ 개소식 하는 날 : 2009년 11월 13일(금) 오후 7시부터

◎ 문의 : 인권연대 02-749-9004

도 1)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4분 거리(장충단교회 맞은편)

 

약도 2)
지하철 2,4,5호선 동대문운동장역 5번 출구에서 도보로 7분 거리(장충단교회 맞은편)

 서울 명동성당 맞은편에는 세칭 ‘판넬골목’이라 불리는 좁은 골목이 있다. 차 한대가 근근이 드나들 수 있는 100미터 남짓한 길이의 골목인데, 한때 이 골목 초입에서 끝이 나는 지점까지 대부분의 담벼락에는 마이클 잭슨, 제임스 딘, 오드리 헵번, 올리비아 핫세, 소피 마르소 등 내로라하는 월드스타 사진부터 그리스도교 성화, 이발소에나 걸림직한 풍경 사진 등 다양한 그림들이 액자에 담겨 걸려 소박하지만 인상적인 풍경을 연출해냈다. 지금은 표구하는 가게는 모조리 사라지고 술집과 밥집들만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이름은 여전히 판넬골목이다.


 이강서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를 처음 만난 곳도 판넬골목에 위치한 한 허름한 주점에서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술이 몇 순배 돈 후 군종장교 전역을 앞둔 그가 풀어낸 교회에 대한 비전이나 삶에 대한 진지함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신부를 다시 만난 것은 몇 년인가 지난 후 당시 출입처로 드나들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에서였다.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는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빈민사목위원회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함께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공식 조직이다.


 몇 년이나 알고 지내왔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이 신부의 활동이 늘 열성적이면서도 인간적으로 다가왔던 기억만은 뚜렷하다. 그런 그를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한 번 무릎을 쳤다. ‘그럼 그렇지.’




 알려진 대로 이제 용산은 대표적인 ‘국민’ 전자상가로서의 이미지를 비롯해 미군기지, 호남선 기점, 쪽방촌, 국립박물관 등 수많은 이미지 속에 ‘참사 현장’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게 됐다.


 입동을 지내며 겨울의 초입을 넘어선 어느 날 바람이 숭숭 통하는 용산거리 한쪽에 친 천막에서 만난 이 신부는 생각대로 따뜻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경찰들에 밀려 찢기고 쓰러졌을 때도 그 특유의 따뜻함으로 냉정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내 물음은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오히려 내가 당황하고 말았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신부들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가?”


 신부들이 용산을 지키고 있는 현재의 핵심을 찌르면서도 교회 안팎에서 적잖이 들리는 질문들의 요지였다. 이 신부는 “순교를 해야만 할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누구의 허락을 받고 할 것이냐”는 답을 돌려주었다. 속이 뚫리는 듯 한 느낌이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강서 신부는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도록 누구 하나 나서서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 없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사진 출처 - 가톨릭신문


 “어떤 삶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어떤 종교, 어떤 지위에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 실존적 결단을 하는 문제입니다.”


 4, 5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신자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내게 자주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왜 하필 ‘또’ 신부들이냐?”는 거였다. 이러한 물음에 이 신부는 “얼마만큼 하면 충분히 기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면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하는 물음을 되돌려 주었다. 


 200일 넘게 용산 현장에서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나까지 38번째 언론 인터뷰를 한다는 이 신부, ‘시간의 무게’를 누구 못지않게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그였지만 시간에 대한 기준은 달랐다.


 “믿음에도 다양한 편차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신자와 세례를 준비하는 예비신자로 곧잘 나눕니다. 그러나 ‘신자’와 ‘예비신자’는 세례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계명을 하느님의 기준에 따라 사느냐 아니냐가 기준입니다. 하느님 이름으로 모였지만 하느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속적 시선만을 유지한 채 충분히 영글지 못한 신앙을 지닌 채 살아간다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한다 해도 그것이 신앙 성숙의 지표가 될 수 없습니다.”


 속이 후련해졌다. 대화가 깊어지면서 이 신부의 목소리에 조금씩 떨림이 실렸다. 눌러 왔던 생각들이 조금씩 고개를 드는 모양이었다.


 “이제 곧 참사가 일어난 지 300일이 되고 계절이 네 번 바뀌는데, 누구 하나 나서 책임 있는 사과 한마디 없는 이 모습이 과연 이성적이고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커다란 부조리는 바라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눈에 띈다면 그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한 번이라도 용산 참사 현장에 발걸음을 한 1000명이 넘는 신부들, 그들은 우리 시대 헐벗고 굶주리며 병들고 나그네 된 이들을 찾고 있음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인권연대 회원모임 12탄] "한겨레 영화 담당 이재성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 여행" 

 인권연대가 매월 운영하는 <영화모임>이 열 두번째로 만날 작품은 김미례 감독의 <외박>입니다. 

 <외박>은 2007년 한국사회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던 홈에버 노조 파업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510일간 지속된 투쟁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TV 뉴스가 보여주지 않는 투쟁 사이사이에서 벌어지는 여성노동자들의 생활과 변화를 담아내었습니다.

  이번 상영회에는 <외박>을 연출한 김미례 감독이 특별히 참석합니다. 김미례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에 얽힌 이야기, 영화 이후의 이야기 등 다양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나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12월 2일(수) 저녁 7시
  • 장소 :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 일민미술관 5층 대강의실)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3672-9443)
  • 후원 : 미디액트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Weabak

감독 : 김미례

제작국가 : 한국
제작년도 : 2009년

상영시간 : 98분

장르 : 다큐멘터리

SYNOPSYS

 2007년 6월 30일 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일하던 5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상암 월드컵 홈에버 매장 계산대를 점거했다. 2007년 7월 1일은 기간제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시행되는 첫날이었다. 이 법안을 회피하기 위한 사측의 무자비한 계약해지와 비인간적인 차별에 대한 그녀들의 분노. 하지만 예정된 1박2일의 매장점거는 510일간의 긴 파업으로 이어졌다.

‘아줌마’는 왜 머리띠를 둘렀나
 - 홈에버 투쟁기록 다큐 ‘외박’ 만든 김미례 감독

한겨레

 이재성 기자

김미례(45·사진)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외박>의 주인공은 지난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이다.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 농성을 시작으로 마치 ‘엠티’(수련회)처럼 시작했던 이들의 ‘외박’은 510일이라는 긴 세월을 거치며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상징이 됐다.

가사노동에 ‘비정규직’ 이중고 떨쳐일어나
“현실외면 남성정규직 민주노총 반성해야”

 16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 <외박>은 이들이 ‘아줌마’에서 ‘노동자’로 변신해가는, 즐거우면서도 덜컥거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현장성과 직접성의 미덕을 품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기는 대단히 어렵다. 격렬히 반발하거나 통렬히 반성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16일 막을 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된 <외박>은 이들이 ‘아줌마’에서 ‘노동자’로 변신해가는, 즐거우면서도 덜컥거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현장성과 직접성의 미덕을 품고 있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기는 대단히 어렵다. 격렬히 반발하거나 통렬히 반성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김 감독의 카메라는 말해지지 않은 진실의 이면에 앵글을 맞추고 있다. 이를테면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홈에버 여성 노동자들을 “아줌마들”이라고 불렀다가 한 여성 대의원으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는다. 김 감독은 “이분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용어부터 혼란스러워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반찬값 벌러 나온 사람들이라며 저임금을 정당화하고, 임시직으로 규정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큐를 관통하는 문제 의식은 여성 노동자의 이중적 모순이다. 집에서는 가사 노동을 책임져야 하는 주부로서, 직장에서는 고객과 간부 직원의 고압적인 태도에 숨죽여야 하는 노동자로서의 갈등.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설겆이 하기 힘들어 죽겠다”는 남편의 손에 이끌려 파업 대오에서 이탈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성 정규직 위주의 조직인 민주노총은 일개 기업을 상대로 한 홈에버 투쟁에서조차 별다른 응집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만다. 김 감독은 “민주노총은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수위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외박>은 <노동자다 아니다>, <노가다>에 이은 김 감독의 세번째 장편 영화다.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 경험이 전혀 없는 그가 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사연은 자신의 가정사와 관련이 있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김 감독에게 결혼 생활은 장애물이었고, 이혼을 딛고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가족사부터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 말 무렵, 일용직 목수였던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간 곳이 건설일용직노동자협의회였다. 레미콘 운전 기사들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투쟁 과정을 그린 <노동자다 아니다>(2004)는 스위스 프리부르 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외박>은 굉장히 특별한 영화”다. “이 작품으로 저의 가출, 외박에 대한 서류 정리가 15년 만에 끝났어요. 그동안 끈끈하게 나를 구속해 왔던 답답함으로부터 벗어났고요. 일단 영화가 끝나서 좋고, 이제야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뜨거운 감자] 인권콘서트 HUMAN 3rd. - “김C, 하늘 안고 날다”

◎ 공연장 : 홍대 브이홀  ☞ 약도 클릭하기  (02-338-0957)
◎ 공연일시 : 2009년 11월 27일(금) 저녁 8시
◎ 주최 : 다음기획, 인권연대
◎ 주관 : 다음기획

◎ 티켓가격 : 33,000원 (인권연대 회원의 경우 22,000원의 할인된 가격으로 예매 가능)
◎ 입금계좌 : 우리 1005-801-523022(예금주: 인권연대)

◎ 문의 : 인권연대 02-3672-9443

뜨거운 감자의 인권 콘서트! HUMAN!!!
인권연대와 다음기획이 인권콘서트를 엽니다.

딱딱하고 어려운 ‘인권’이 아닌 즐겁고 쉬운 ‘인권’을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인권콘서트  ‘HUMAN’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생활을 꿈꾸는 인권콘서트 프로젝트 ‘HUMAN’ 그 세 번째 공연이 열립니다.

‘Human’은 ‘뜨거운 감자’와 ‘강산에’ 의 공연 프로젝트로, 두 팀은 지난 9월부터 1년간 매달 한번씩 번갈아 ‘인권’에 관련된 이야기로 콘서트를 열고 있습니다.

‘Human’ 콘서트는 우리 시대가 흘러가는 경향에 대해서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통해 우리 주변의 나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쉽고 의미있게 담아내어,보다 더 친근하게 우리 시대가 흘러가는 경향과 그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외되고 있는 인권을 음악을 통해 같이 생각해 보며, 즐겁게 그 안에서 뜻 깊은 의미를 찾아가는 공연을 만듭니다.

‘뜨거운 감자’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소수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 권리마저 인정받지 못해 손가락질 받고, 차별 받으며 이 땅에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아픈 사람들의 인권의 가치와 소중함을 함께 나누어 이 땅에서 공존해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세 번째 인권콘서트 ‘Human’은 ‘뜨거운 감자’의 공연으로 11월 27일 홍대 브이홀에서 열립니다. (다음 ‘Human’ 콘서트 : 강산에 콘서트 12월17일 예정 ) 이번 콘서트에는 특별히 피우진 중령(예비역)이 참석하여,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권콘서트의 주인공은 바로, 당신! 

더불어 살기 위해 마음 한자리 비울 수 있는 사람,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 세상을 바꿀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권연대 CMS 회원은 특별한 할인혜택을 드립니다.(2/3 가격에 예매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신청하러가기]

회고 이라크

 인류사 최고의 지향점인 평화가 한순간에 깨지는 장면을 보았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공교육을 마쳤고 특별 하지 않은 사회 조건 속에서 비교적 합리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여전히 자기중심성의 늪에서 헤어나고 있지는 못하나 다중(多衆)의 이익을 위한 삶을 가끔은 생각하는 나 같은 부류에게도 국제사회의 온갖 비난과 전 세계적인 반전여론을 무시하고 벙커힐 호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이 바그다드 한복판을 강타했던 2003년 3. 20일 그날은 잊기 어려운 상처였다. 특히나 개전이 시작된 그날 백악관에 앉아 한가롭게 개전 성명을 발표한 원숭이 부시의 표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뻔뻔 지수 측정기가 한계 없음을 깊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라크전은 도덕적인 전쟁이며 이라크에서 위협을 제거하는 것 이외에 야심이 없다”나 뭐라나.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어떤 교과서, 어떤 가르침 중에 “남의 생명을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방법이다” 라고 규정한 대목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산 인간 몇몇이 1970년대 산(産) 위인전에나 이름을 올린적은 있으나 역사의 평가는 냉혹하지 않았던가. 나폴레옹, 히틀러, 도조 히데키, 맥아더... 그리고 부시 (애비와 아들 둘 다). 수없는 죽음의 하치장을 만들어 그 희생자의 무덤 위에서 반세기도 가지 못할 허명(虛名)의 깃발을 세웠던 사람들. 모든 전쟁이 그렇듯 이라크에서의 살육과 호전적 제국주의, 이유를 모르는 죽음들과 그 주검을 가슴에 안으며 통곡하는 살아남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돈” 때문이었다는 것과 지구상에서 가장 돈 되는 자원이 석유라는 것, 그리고 이라크에 석유의 매장량이 풍부했다는 것은 이미 어지간히 똑똑한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이라는 고귀한 생명의 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져도 된다는 은폐된 광기의 표출이 전 세계의 지형을 흔들 정도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천해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나의 목숨 값을 얼마쯤 매기고 있을까도 생각했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이 돈으로 매매가 된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혹독한 전쟁을 겪고 있는 이라크의 고통 받는 민중들에게는 그 질문이 가장 현실적인 사실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가정(假定)으로 라도 성립될 수 없었던 질문을 품었던 나의 터무니없는 이성에 분노해야 했다.

니네들은 힘이 세서 좋겠다. 가진 거 많아 좋겠다.
그렇다고 아무나 줘 패면 미친놈 소리 듣는다.
니네 동네에는 어른도 하나 없냐 어찌 그리 막무가내냐
우리 동네에서 너 같은 놈은 열라 맞아 죽는다.

석유가 그렇게도 좋더냐 석유 마시고 살아라.     
전쟁 놀음이 그렇게 신나면 니들끼리 싸워라
니네는 평화란 말이 전쟁이냐 이 배워먹지 못한 놈아
옛말이 하나도 그른 것 없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너희 눈엔 하나도 안 보였지만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이유 없이 죽어가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통곡이
너희들은 전쟁이라 우겼지만 우리는 학살이라 말한다.  
너희들은 정의라 우겼지만 우리는 탐욕이라 말한다.   
“돈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미련한 세상
 돈과 사람의 목숨을 바꾸는 미련한 세상

                                                                      “미련한 세상” - 이지상 글, 곡

 전쟁이 빨리 끝나기 전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해서 미국에 눈도장 확실히 찍고 이라크 재건 사업의 국익을 따내자는 국회의원의 소름끼치는 얘기가 들려올 때는 내가 사는 나라가 맞기는 한가 싶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고 수십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파병 반대를 외쳤지만  그 사이 젊디젊은 청춘을 팔아 돈을 벌기위해 그들 스스로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 부르는 살육의 현장에 우리의 병사들을 보낸 참여정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남의 집에 불이 나면 휘발유 더 뿌려 완전히 태운다음 다시 집 지을 때 기둥뿌리 하나라도 더 팔아야 네가 잘산다고” “그런 상황에선 네가 직접 휘발유 들고 가지 말고 만만한 옆의 집 아이를 시키라고. 그 아이가 죽건 말건 상관하지 말라고”

 자신의 아이들을 꼭 이렇게 가르쳤을 것 같았던 지독한 파병찬성론자 S의원은 “안보가 남편” 이셔서 아들이 없었고 보수의 원조를 자처하신 K의원은 아들을 군대 근처에도 보내지 않았으며 해병대 출신의 H의원은 본인이 자원해서 이라크에 가겠다고 해놓고는 낙선하신 백수 신분이 오래인데도 여적 소식이 없다.


똑같다 그들의 얘기... 기분 잡치는

 전쟁 참 쉽게 일어난다. 1830년 프랑스가 알제리를 침략한 표면적 이유는 알제리의 태수가 프랑스 장교의 뺨을 때렸기 때문이고 1937년 중일전쟁의 시발(時發)은 노구교를 지키고 있던 일본군 병사가 다리 밑에서 오줌을 누었기 때문이었다. 베트남 전쟁(1964년)의 이유가 된 통킹만 사건도 미국 정보국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는걸 보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해 안달 하는 특정 이익 집단은 드러나지 않게 많다.

 잘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80년대 초에 제공한 대량 살상무기를 찾는다는 이유로 시작되었고 아프간 침공은 9.11테러의 주모자로 지목당한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 전쟁의 구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과 다만 특정 이익 집단인 부시와 그 일당이 정권 잡은 기념으로 화끈하게 한탕 땡기기 위해 세계 양심의 조롱을 무릅쓰고 원숭이 짓 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터무니없는 이유 때문에 20세기 이후 전쟁으로 죽어간 생명이 1억하고도 6천만 명이 넘는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고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한지도 9년째 접어들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다산 동의 부대를 파견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해 종교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 둘과 파견비용 꼬박 모아 부모님대출금 갚으라고 송금 했던 젊은 병사를 잃었다. 정부는 그들이 바친 목숨으로 인해 전쟁으로부터 철수한지 22개월 만에 다시 군대를 파견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라크 파병 때는 수십만의 시민이 모여 반대할 기회라도 있었는데 이번 결정은 그럴 기회도 없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이라크 파병당시 파병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논리가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방송전파를 탄다는 것이다. 해외 파병이 국위선양과 국민 애국심 강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거나 전쟁터에 생떼 같은 목숨들을 보내면서 국익을 챙겨야 한다거나 UN의 42개국이 파병하고 있으니 파병 안하면 국제사회에서 왕따 된다는 협박 얘기가 대부분이다. 아~ 또 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소원해진 한미 공조 관계의 복원이란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그곳에 의료 선교를 자원해서 간 친구 부부가 있었다. 카불 인근의 열악한 병원에서의 진료와 현지 의과대학에서 수술법등을 가르쳤는데 제일 아쉬운 것이 부족한 약품과 의료 기기였고 아이들이 마땅한 시설 하나 없어 총알 껍데기 만지며 놀아야 하는 교육환경 이라는 소식을 자주 전했었다. 주목할 만한 산업기반이 없고 농지가 부족하니 배곯아 퀭한 눈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기 안쓰럽다는 말도 꼭 전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기구가 지난 9년 동안 아프간에 지원한 돈이 약 150억 달러쯤 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6조원이면 그 나라 돈으로 엄청 날 텐데 나는 그 친구로부터 병원이 하나 더 늘었다거나 공장이 지어졌다거나 적어도 수도 카불 시내 사람들이 밥을 굶지는 않는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아프간 남자의 평균 수명이 42세라는 말은 들었다. 내가 거기서 태어났다면 지금쯤은 벌써 하늘의 판결을 받고 내세가 있다면 그곳에 가 있어야 한다. 태어나는 영아의 네 명중 한명은 부모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는다. 16조원이면 그 정도의 열악한 상황을 얼마간은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금액인데도 여전히 그곳의 소식은 암울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 젊은 병사들이 매일같이 쏘아댄다는 포탄이나 군수 지원 비용으로 또는 그들의 목숨값 으로 쓰였을 것이고 그중 아주 일부는 부패지수 세계 8위라는 카르자이 정부의 관료들 손에나 쥐어졌을 것이다.

 이전에 파견되었던 특수부대 이름이 “다산”과 “동의” 였다. 병사들 목숨 팔아서 미국상전 잘 모시고 국익 팔아서 자기도 이익 좀 보자는 사람들이 지은 이름이니 허준 선생이나 정약용 선생이 달가워 할 리가 없다. 다산의 시 “애절양”에 나오는 자기 양물을 자른 이가 군포를 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참 그 이름지은사람 양심도 없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세계인권선언 60주년과 재소자 인권의 의미

 지난 2008년은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반포된 세계인권선언이 60돌 환갑을 맞는 해였다. 세계인권선언은 ‘우리 시대 인류양심의 최고의 표현’이자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으로 불린다.

 ‘아름다운 약속’의 핵심은 사람이면 누구든지 인권, 즉 존엄성을 누리며 사람답게 살 권리를 존중, 보호, 증진하겠다는 것. 이러한 약속은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재소자도 비켜가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약자와 소수자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약자와 소수자한테도 인권이 보장될 때 강자와 다수자가 인권을 누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재소자로 통칭되는 교정시설의 수용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넘어 정신적, 도덕적 약자라는 점에서 가장 대표적인 약자집단이다. 재소자의 인권상황은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인권보장의 실질적 척도로 기능한다.   


재소자집단의 프로필

 우리나라의 재소자 수는 08년 9월 현재 47,408명이다. 이중 31,842명은 기결수로 선고형량을 복역 중이고 15,503명은 미결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 63명은 감호처분대상이다.   

 기결수는 살인범 3,957명, 강도범 4,121명, 조직폭력범 1,838명, 폭행상해범 988명, 사기횡령범 3,545명, 절도범 5,393명 등이다. 기결수 중에는 누범(16,177명)이 초범보다 많다.

 연령별로는 40대(9,846명)가 가장 많고 30대(9,350명), 20대(6,384명), 50대(4,378명) 순이다. 60대 이상도 1,269명이나 되고 16세 이상 20세 미만도 251명이다.      

 그 밖의 재소자 통계, 예컨대 학력별 통계라든가 형기별 통계 등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재소자의 대부분이 빈곤층 출신으로 학력이 일반시민과 비교해서 현저히 낮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교육권, 특히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

 사람은 누구나 교육을 받을 권리, 특히 문해(literacy)교육 등 초등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선진국 초입에 서 있는 지식경제사회에선 중등교육도 인권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은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기 때문에 초중등학교의 중도탈락자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초중등 교육을 계속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지식주기가 짧아지는 시대상황에서 교육권은 불가피하게 평생교육을 받을 권리로 바뀐다. 우리 헌법도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국가에 평생교육 진흥의무를 부과한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에 발생한 초중고교과정 탈락자 수는 초등학교 중퇴자 16,793명을 포함해서 총 55,525명에 달했다. 이들 중 43%(23,645명)가 학업에 복귀하지 않았다.

 미복귀 탈락자 중 상당수는 교정시설로 흘러들어온다. 학업중퇴 수용자는 수용기간 중 중단됐던 초중등교육을 계속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재소자교육의 모습

 교정시설에선 다양한 학과교육과 직업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학과교육으로는 수용자의 학력수준에 따라 초중고교 검정고시 교육, 방송통신대학 교육, 독학학위 취득교육, 전문대학 위탁교육이 실시된다.  

 문자해독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가장 기초적인 문해(literacy)교육이 제공되며 소년수용자에게는 방송통신고교 교육과정이 제공된다. 정보화 교육과 외국어 교육도 가능하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직업교육훈련이 실시되며 출소예정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창업교육 기타 출소준비교육이 제공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 교정시설은 교육훈련 측면에서 구색을 갖춘 것 같지만 실질은 딴판이다.  

 아프지 않은 이상 재소자는 주간에는 거실 밖에서 작업을 하든가 교육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단적인 예로 2007년 12월 현재 직업훈련 중인 수용자는 모두 3,279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업시설과 교육프로그램이 부족한 탓에 현재 재소자 중 과반수는 여러 명이 함께 쓰는 거실을 하루 종일 지킨다. 이런 상황에서 교정시설이 범죄학교로 둔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인문학적 평생교육의 중요성

 교정당국에서는 초중등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재소자들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계속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성인 수용자에게 계속교육을 제공하는 특성상 교육내용과 방법에서 많은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2007년 이래 인권연대가 교도소 내에서 인문학 교육을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방적인 인성교육이나 실용적인 직업교육과 달리 자기성찰을 주된 목적으로 삼는 인문학적 교육이 처음으로 교도소 담장을 넘은 셈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고병권의 진단에 따르면 “범죄의 기술은 삶의 기술의 부족, 즉 삶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는 기술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지금과 다르게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당신은 인문학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주도적 사고역량으로서의 인문학적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은 대부분 암기대상으로 전락하는 철학사강의를 개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필요한 것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깨우침을 얻는 자기성찰의 길로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직업교육의 중요성

 중범죄를 저지른 장기 수용자들은 갖가지 자격증을 취득한 후 출소해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과차별이 심한데다 쓸모없는 기술교육을 받은 탓이다.

 출소-실업-재범-재입소의 회전문식 인생경로를 방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노동시장에서 쓸모 있는 직업교육훈련이다. 효과적인 직업훈련체계를 갖추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재범의 위험을 줄이려면 교정행정의 초점을 직업교육훈련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교도소별로 효과적인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교정체계 전체로서는 매우 다양하고 수준 높은 직업교육이 제공되도록 기본방향을 잡으면 될 것이다.    


맺음말

 재소자들은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폭력에 노출되며 사람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 동네, 학교, 법집행기관 중 어느 한군데서도 인격적 대접을 경험하지 못한 탓에 반사회적 품행으로 기운 경우가 많다.    

 국가의 교정시설이 단순히 자유가 제약된 상황에서 죄 값을 치르게 하는 형집행 기능을 넘어서 진정으로 수용자의 교정교화를 원한다면 수용자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인권피해자’로서의 또 다른 자아를 끄집어내서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무 생각 없이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관성적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인문학적 교육이다. 일자리로 통하는 실용적인 직업교육과 자기성찰로 이끄는 인문학적 교육을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편적으로 제공할 때 비로소 교정시설은 범죄학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곽노현 위원은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성서(요한복음 5,1-18)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예루살렘에 있는 ‘베짜타’라는 연못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따금씩 물이 휘도는 일이 있곤 했는데 그 때 제일 먼저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어떤 병도 다 낫게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연못 주변에는 물이 휘도는 순간 먼저 뛰어들 태세로 온갖 병자들이 모여 있었다. 거기에는 삼십팔 년이나 병을 앓아온 중증 환자도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다.

 내내 변방에서만 활동하던 예수가 어느 날 예루살렘이라는 이스라엘의 중심지로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가 목격한 현장이 바로 저 베짜타 못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의 현장이었다. 베짜타 못가는 이른바 선착순의 논리에 따라 일등만 구원되는 곳.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남을 밟아야 하는 곳, 저마다 남의 어깨를 딛고 일등을 향해 치닫지만 결국 자신은 물론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더 큰 아픔과 상처를 남겨줄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에 삼십팔 년 된 병자도 언제일지 모를 그 막연한 일등을 꿈꾸며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다. 하지만 늘 경쟁에서 밀렸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

 그 처절한 현장이 예수의 눈에 들어왔다. 특히 그 오래 된 병자를 보고 예수가 물었다: “낫기를 원하느냐?” 병자가 답한다: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병자는 남이 먼저 연못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자신의 병이 낫지 못한다 생각했다. 자신이 먼저 들어간다면 자신 때문에 남은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히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등을 지향하는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누군가의 희생과 탈락을 근거로 해서만 성립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를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정말 예수다운 방식으로 그를 이렇게 구원한다: “일어나 네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어느 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일어나 요를 들고 걸어간다는 것은 그가 치유되었다는 증거이자, 자신을 격리시켰던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공개적 증거였다. 다소 비약처럼 느껴지는 이 간결한 대화와 치유의 사건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치유란 경쟁사회에서 일등하는 방식이 아닌, 경쟁사회를 벗어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를 소외시키거나 낙오시키지 않고서 누군가를 치유하고 살리는 행위, 그것이 예수가 행했던 방식인 것이다. 물론 예수는 성서에 따르면 병을 고쳐주고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성인은 “공을 이루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功成而不居)는 노자의 가르침과 통한다고나 할까. 이 예수는 누군가를 반드시 죄인으로 만들고 마는, 더 많은 이들을 낙오시키고는 소수만이 의인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독점하는, 그러한 사회적 구조를 거부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예수가 병자를 치유한 날이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이었다. 오늘날도 이스라엘에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은, 율법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밀가루 반죽과 설거지는 물론 글쓰기 같은 것도 거의 할 수 없는 날이었다. 노동을 피하고 그저 쉬는 날이었다. 물론 예수도 그러한 율법적 문화 안에서 태어나 살아간 이로서, 당연히 안식일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문자화된 법적 규정 그대로가 아닌, 법의 ‘정신’을 지키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안식을 추구했다. 가령 예수가 보건대 병자에게 안식은 치유이고 굶주리는 이에게 안식은 한 끼 식사였다. 그러니 병자 치유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굶는 이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안식일이라도 기꺼이 노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안식일에 벌어진 그 치유 사건을 두고 당시 지도자들은 예수가 안식일 법을 어겼다며 비판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예수를 사회적 관례와 질서의 교란자로 간주하고서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했다. 이에 대해 성서는 이렇게 전한다: “이 때부터 유다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신다 하여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

 예수 시대 지도자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병자가 치유되는 살림과 생명의 사건보다는 예수가 규정과 관례를 어겼다는 사실만 크게 보였다. 고통스러운 병도 앓지 않고 굶을 일도 없던 풍요로운 사람들이었던 탓인지, 아픈 자, 굶는 자의 고통은 안중에 그다지 없었다. 관례적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은 그러한 규정을 관리하는 자신들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예수가 이른 나이에 십자가라는 처절한 사형 틀에서 죽게 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몇 일전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일제고사’(학업성취도평가)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파악하고 각종 문제점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전국의 학교와 학생들을 서열화할 뿐더러 일등을 향한 무한경쟁 체제를 강화시키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행사이기도 했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진 학교나 학생을 지원해서 학교들 간, 학생들 간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라지만, 그렇지 않아도 뜨거운 경쟁적 일등 지상주의에 다시 불을 붙여 더 많은 심리적 낙오자들을 만들게 될 가능성도 못지않게 큰일인 것도 분명했다. 외고나 자사고 같은 곳에 대한 지원이 일반고보다 세배 이상이나 많다는 며칠 전 뉴스 보도대로라면, 학교 간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계획과 의지도 의심스럽게 느껴지는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일제고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서 대안적 체험학습이라도 떠날라치면 그 학습을 주도한 교사에 대한 징계도 대번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대로 세워졌다는 학교들도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나는 교사를 징계하기는 마찬가지이거나 때로는 더하기도 하다. 예수는 일등 지상주의를 거부했지만, 예수를 따른다는 기독교 학교도 일등 지상주의로 내몰기는 매한가지이거나 상대적으로 더 한 경우가 많다. 일착으로 연못에 들어간 날랜 행위만이 하느님의 축복인 냥 가르치기가 다반사이다. 만일 그러한 경쟁 지상주의에 반대했던 예수처럼 행동하면 죽거나 떨려나갈 수밖에 없기는 여전한 상황인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평등 사회를 꿈꾸었던 예수의 선배 요한(루가복음 3,5-6)도 여전히 제 명에 못 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시 헤로데 왕의 실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참수당한 요한을 성인으로 모시고 그 말씀을 따른다면서도 정작 교회 안에서조차 그 요한의 정신은 실종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요한이 오늘 우리 시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여러 걸음 양보해 참수는 아니더라도 온갖 징계와 보복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예수와 요한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앙의 이름으로 사형시켰듯이, 오늘 교회도 신앙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여전히 무수한 죄인을 양산해 놓는다. 요한의 말을 기억하고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리스도교인 아니던가. 그런데 어찌 예수를 따른다면서 경쟁 사회에서의 첫째를 하느님 앞에서의 첫째와 동일시하고 학교의 말째를 하느님 나라에서의 말째로 만들어놓을 수 있겠는가. 무수한 죄인들, 셀 수 없는 낙오자를 양산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이것저것 양보한다 해도, 학자적, 교육적 양심대로 한 일을 두고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이지 규정과 관례 운운하며 징계하고 정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종교문화연구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