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린 나이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주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우주는 무한한 것이라고 하는데 나이 어린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주가 무한하다고 하면서 빅뱅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빅뱅이 한 점(Spot)이 폭발하여 현재의 우주가 되었다는 것인데, 도대체 얼마나 큰 점이길래 무한하다고 하는 건지, 그 한 점(Spot)이 무한하다면 그 한 점(Spot)의 밖에는 무엇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한 점의 밖은 무(無)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無)라는 개념 역시 이해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분자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몇 세기 전인데, 이제 인간은 분자보다 작은 원자, 원자에서 더 나아가 전자, 핵, 양성자, 중성자는 기본이고, 300여종의 소립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계속 확장되고 있다. 물론 과학의 수준이 현재 상태에서 파악할 수 있는 한도까지만 인간은 인식한다. 그러나 인식 범위의 확장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 모든 것이 의심에서 출발하고, 궁금증에서 유발된 것이다. 그런데 사회 인식 범위의 확장가능성은 열려있는가? 

 천안함이 침몰한지 벌써 20여일이 훨씬 더 지났다. 연일 TV, 신문, 인터넷 등을 통해 천안함과 관련된 속보가 보도되고 있다. 그런데 천안함과 관련된 그 어떠한 의혹도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뢰 공격이 있었다면 왜 화상을 입은 승조원이 없을까, 군이 보유하고 있는 Tod 영상은 왜 중간이 뭉텅이로 없을까, 군 통신망을 놔두고 왜 국제상선망으로 통신을 했을까, 해경과 해군 사이에는 왜 진술이 일치하지 않을까 등등 천안함 침몰에 관한 국방부의 발표와 관련하여 의문과 궁금증은 갈수록 증폭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당시 천안함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학의 발전은 과학적 발견과 그 발견을 위한 노력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은 과학의 발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경우에 따라서는 후퇴라는 양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회 발전의 밑바탕은 정확한 사실의 발견 내지 이를 위한 노력이고, 밑바탕이 마련된 후(내지 밑바탕을 마련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더 나은 사회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1200t급 초계함 천안함의 선수 부분이 수면위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해경 함선이 주변을 지나고 있다.

사진 출처 - 옹진군청

 그런데 천안함을 둘러싼 여러 정황은 전반적으로 매우 부정적이다. 정보를 소지하고 있는 기관이 스스로 침묵하거나 정보를 알고 있는 자에게 침묵하도록 강요하거나 거짓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발표하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다. 각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여러 의견과 의문을 쏟아내는 형국임에도 정작 천안함의 침몰 과정에 대해 모든 자료를 보유하고 있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침몰했던 천안함의 선체를 직접 확인하고 있는 군 당국의 신뢰할 수 없는 발표로 인하여 정확한 사실 관계조차 파악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는 군 당국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로써 천안함 사건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여러 계기들이 사장되고 있다.  

 게다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궁극적 해결책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온 국민을 슬픔으로 눈물짓게 하고, 전군의 사기를 땅바닥까지 떨어뜨린 중대한 사안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 없는 현재와 같은 상황은 이전 정권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천안함이 왜 침몰했는가를 파악하는 문제는 우주가 끝이 없는 것인지, 전자, 양성자, 중성자, 핵보다 더 작은 물질이 있는지 파악하는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후자는 인식의 범위를 넓히기 위한 우연한 발견과 그러한 발견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충분할 수도 있지만, 전자는 이미 인식 가능한 사실이 존재하고 있고, 그 사실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그 사실을 바탕으로 발생가능한 동종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개선점도 찾을 수 있다. 그래야 적어도 장래에 비슷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여 더 나은 해군을 만들 수 있으며, 무엇보다 징병제가 유지되는 한 줄도 없고, 빽도 없고, 힘도 없어 군에 자녀를 빼앗길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안함 희생자 분들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영화모임>의 5월 작품은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2008)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다빈치 코드>, <뷰티풀 마인드> 등의 작품들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아온 론 하워드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은 물론이고 완벽한 닉슨이라고 호평을 받으며 각종 시상식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프랭크 란젤라의 연기력까지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1977년 4월, 미국 TV 뉴스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워터게이트 사건 인터뷰. 인터뷰를 통해 불명예를 씻고 정계로 복귀하고 싶은 닉슨과 국민이 원하는 진실을 밝히고 뉴욕 방송국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방송인 프로스트. 이 인터뷰는 이 둘의 개인적인 성공을 위한 대결의 장이기도 했지만, 언론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을 묻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진실의 여부에 대하여 워터게이트 사건 전반에 관한 흥미진진한 역사의 시간속으로 함께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10년 5월 4일(화) 저녁 7시 30분
  • 장소 : 장충동 경동교회 여해문화공간(동대문역사문화공원 4번출구 장충동 방면 3분거리)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749-9004)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Frost/Nixon
감독 : 론 하워드
주연 : 프랭크 란젤라 / 마이클 쉰
제작사 : 이매진 엔터테인먼트, 워킹 타이틀 필름즈
배급사 : UPI 코리아
제작국가 : 미국
제작년도 : 2008년
상영시간 : 122분
장르 :  드라마

SYNOPSYS

한물간 방송인 ‘프로스트’와 사임한 전직 대통령 ‘닉슨’
이들의 역전을 노린 숨막히는 대결이 시작된다!

 국민에게 아무런 진실도 밝히지 않은 채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임한 전직 대통령 닉슨(프랭크 란젤라).

 그의 사임 장면 생방송이 엄청난 시청률을 올리자 뉴욕 방송국으로 복귀하고 싶은 한물간 토크쇼 MC 프로스트(마이클 쉰)는 닉슨에게 인터뷰를 제의하고, 닉슨은 정치인과의 인터뷰 경험이 전무한 프로스트를 제압하며 정치계로 복귀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승낙한다.  

 모두가 기다린 4일간의 인터뷰 첫 날, 프로스트의 강한 첫 질문에도 불구, 닉슨은 대담하고 치밀한 말솜씨로 프로스트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모두들 닉슨의 승리를 확신하게 된다.

 닉슨의 선방에 당하고만 있던 프로스트는 인터뷰 마지막 날에 워터 게이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모든 것을 걸지만 빈틈없는 닉슨은 가장 노련한 상대이다.

 인터뷰를 통해 인생 역전을 노리는 두 사람, 승자는 한명일 수 밖에 없는 인터뷰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프로스트 vs 닉슨’
프로스트 쪽|너 같은 얼치기에 내 입을 열 것 같아?
닉슨 쪽|미국 시청자는 진실을 원합니다!

한겨레 박창섭 기자


» ‘프로스트 vs 닉슨’

한물간 방송인·닉슨 전 대통령
1977년 TV 인터뷰 실화 바탕

워터게이트 전모 밝히는 과정
예리한 시선 극적 긴장감 압권

인기 티브이 토론 프로그램인 문화방송 <100분 토론>의 시청률은 5% 정도다. 다른 토론 인터뷰 프로그램은 이에 훨씬 못 미친다. 대담, 방담, 인터뷰는 흥미와 재미 면에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1977년 여름, 미국 인터뷰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모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한물간’ 방송인 데이비드 프로스트와 중도 사임한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인터뷰다. 당시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뒤 3년 동안 사과 한마디 없는 닉슨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적지 않았다. 그에게 진실을 듣길 원했던 4500만명이 넘는 시청자들은 둘의 숨막히는 설전을 꼼짝도 않고 지켜보았다.


» ‘프로스트 vs 닉슨’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은 이 티브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실화를 담고 있다. 미국 뉴스 인터뷰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로 기록된 실제 인터뷰와,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인터뷰 이면의 다양한 모습을 되살려냈다.

무엇보다 영화는 정치인을 인터뷰한 경험이 없는 한물간 토크쇼 진행자가 어떤 검사나 기자도 밝히지 못한 역사적 진실을 밝혀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과연 그는 어떻게 닉슨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었을까?

인터뷰 초반 프로스트는 닉슨에 완패한다. 거액의 출연료를 포함해 2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지만, 세번의 연속된 인터뷰에서 프로스트는 노회한 닉슨에게 꼼짝도 못하고 당한다.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라며 돌아선다. 프로스트의 동료들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마지막 네번째 인터뷰에서 그는 확실한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인터뷰 며칠 전 승리감에 도취한 닉슨은 프로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승리가 결정적이라며 프로스트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에 프로스트는 동료와 함께 도서관을 뒤져 닉슨을 몰아붙일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다. 물증을 들이대는 프로스트에게 닉슨은 “대통령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억지를 쓴다. 하지만 이 순간 게임 끝이다.


» ‘프로스트 vs 닉슨’

우리 사회에 프로스트가 있다면 누구일까? 혹시 사회의 목탁이라고 자처하는 언론일까?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정치권과 결탁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 아닐까? 또 한국 사회가 언제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느껴보거나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프로스트…>는 한국 언론의 슬픈 자화상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에서 언론계 종사자들부터 먼저 봐야 할 영화다. 누구든 재미를 느낄 것 같은 토론, 인터뷰 프로그램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2년간 진실을 놓고 두 사람이 벌였던 이 전설적인 티브이 인터뷰는 <더 퀸>으로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탄 피터 모건에 의해 2006년 연극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연극이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자, 명장 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연극에서 프로스트(마이클 신)와 닉슨(프랭크 랜젤라) 역을 맡았던 두 배우를 그대로 주연배우로 기용했다. 특히 실제 닉슨의 구부정한 태도며, 능구렁이 같은 말투를 생전의 닉슨보다 더 실감나게 재현한 랜젤라의 연기는 압권이다. 그런 만큼 올 아카데미상이 그를 무시한 것은 상당히 아쉽다.

<아폴로13>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등에서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출력을 뽐냈던 하워드 감독은 이번에도 그만의 장기를 제대로 보여준 듯하다. 인터뷰 영화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극적 긴장감과 흡입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사진 유피아이코리아 제공


조모아/ 버마NLD 부총무


 우리는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2년 동안 버마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매달 첫째 주 화요일에는 한남동에 있는 버마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나머지 화요일에는 종각역에서 한국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프리 버마 캠페인(한국)을 100회까지 진행했다.  

 2009년에 중단되었던 프리 버마 캠페인은 2010년 3월 부터 매달 한 차례, 마지막 주 화요일에 버마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 버마 내에 버마 군부는 선거법, 등록법 등의 법들을 발표했습니다. 버마 군부는 버마의 민주화 보다 군부를 위해 군대가 계속 통치 할 수 있도록 불공평적인 법들을 발표하고 있다.

 버마 국민들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도 군부의 잘못된 정치와 경제통제로 인해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으며 자유와 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소수 민족들도 평등하게 살고 싶지만 강제 노동, 강제 이주, 방화, 강간 등의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버마사람들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마 군부는 국제 사회의 요청과 항의들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버마 국민들을 고통속으로 내몰고 있다. 각 나라에 있는 버마 군부의 대사관들은 자국민들을 도와주지는 않고 세금으로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고, 버마 군부는 해외 기업 투자를 받아서 국민들에게는 쓰지 않고 군부 지도자들과 가까운 세력들만 배부르게 먹고 있다.

 3월 30일,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 발언을 하고 참가자들이 함께 “프리 버마”라는 구호를 외치자 현장에 있던 경찰이 해산하라며 1차 경고를 했다. 무서웠다. 아주 무서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프리 버마라고 빨리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우리는 경찰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경찰들도 외교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더라도 의무 때문에 한다고 생각한다. 버마 대사와 공무원들이 버마 민주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경찰관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마 민주화가 성공하면 한국 경찰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그렇지만 버마 군부 때문에 한국에 있는 우리 버마 사람들은 대사관 앞에서 “프리 버마”라고 외치기가 힘들다. 우리는 한국처럼 잘 사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

 대한민국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있고 유엔 사무총장이 있는 나라라고 우리 마음 속에 항상 생각하고 있다.

* 서툰 한국말이지만 조모아씨 글의 원문 내용을 살리기 위해서 따로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유일신 잘못 해석, 예수의 ‘보편적 사랑’ 놓쳐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 기독교도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2005년 인구총조사에서 전체 인구 가운데 약 30%가 개신교(18%)나 가톨릭(11%) 교도로 조사돼 있다. 기독교를 한국보다 일찍 도입한 일본에서 같은 시기 기독교 인구 비율이 0.8%(개신교 0.45% + 가톨릭 0.3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높은 기독교 인구는 연구대상임에 분명하다.



리영희 프리즘>의 필자로 지난 3일 밤 서울 마포의 아트앤스터디에서 열린 연속강연에 나온 이찬수 목사(종교문화연구원 원장·사진)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후에 분단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것에는 더 이상 기대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새로운 것은 대체로 서양, 특히 미국 문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믿으면 미국처럼 부강해질 거라고 생각했지요.”

이 목사는 한국 기독교의 비극이 여기서 싹텄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미국의 보수적 근본주의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불상 앞에서 허리 굽혀 절을 했다는 이유로 강남대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뒤 복직투쟁과 종교대화 운동을 벌여온 이 목사는 일찍이 한국 기독교의 본질을 꿰뚫은 이로 리영희 선생을 꼽았다.

리영희는 스스로 종교인이 아니라고 했고, 때로 종교 혐오적인 발언도 했다. 이 목사는 “리영희가 비판한 종교의 90% 이상은 기독교였다”고 했다. 그는 리영희의 기독교 비판은 본말이 전도된 제도 종교에 대한 것이었지 종교성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리영희의 사회비평서인 <스핑크스의 코>(2006)에 종교 관련 발언이 나온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부처의 자비의 가르침과 예수의 사랑의 계율을 정신생활의 지침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 일요일에 예배당이나 성당에 가서 신부나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든가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옆구리에 눈에 드러나게 끼고 다니면서 ‘예수 믿으시오!’를 외치는 식의 ‘종교’라면 그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 나는 다만 나의 삶에서 성경을 읽고 불경을 읽으면서 석가모니와 예수의 삶을 따르고 싶어할 뿐이다.”(48쪽)

이 목사는 여기서 ‘무신론적이지만 가장 유신론적인’ 리영희 종교관을 읽는다. 이 목사가 리영희를 원용해 비판하는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폐해는 우상숭배와 유일신에 대한 오해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문자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허리 굽혀 불상에 절 하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욕망과 마음을 굽히고 돈에 허리를 굽히는 행위가 사실상 우상숭배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습니다. 또한 유일신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 계시다(無所不在)’라는 뜻인데, 그저 숫자 ‘하나’라고만 여깁니다. 이것은 초등학생 수준의 종교 이해입니다.”

유일신과 관련, 이 목사는 리영희의 군 시절 당시 회고를 인용했다. “최전방에서 축복기도를 하는데 결국 북쪽을 저주하는 식으로 기도하더랍니다. 신은 없는 데가 없는 보편적 존재인데 인간의 욕망 때문에 전쟁을 벌여놓고는 신의 이름으로 국군만 축복하고, 북쪽 사람들은 저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겁니다. 리영희의 이 말은 종교학자들이 해온 신학 연구의 정곡을 찌른 겁니다.”

문장과 강연으로 독재에 대항해 험난한 길을 걸으면서도 예수나 붓다의 마음도 동시에 살아 내려고 했던 지식인. 교도의 수는 많지만 종교가 진정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리영희는 성찰을 촉구하는 존재이다.

[ 출처 : 경향신문 ]

 인권연대가 매월 회원님들을 위한 회원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영화모임>이 열 한번째로 만날 작품은 데이비드 레프, 존 쉐인필드 감독의 <존 레논 컨피덴셜(confidential)>입니다.

 <존 레논 컨피덴셜>은 존 레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조지 해리슨으로 구성된 1960년대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전설의 그룹 비틀즈(The Beatles)의 일원이었던 존 레논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로 60년대 중 후반부터 70년대 초까지 아티스트로서, 사회 혁명가로서 존 레논의 행적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달부터는 광화문 네거리의 미디액트(옛날 동아일보사 사옥, 현재 일민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합니다.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많은 분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11월 4일(수) 저녁 7시
  • 장소 :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5호선 광화문역 5번출구 일민미술관 5층 대강의실)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3672-9443)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The U.S. vs. John Lennon

감독 : 데이비드 레프, 존 쉐인필드

배급사 :  (주)영화사 진진
제작국가 : 미국
제작년도 : 2006년

등급 : 12
상영시간 : 97분

장르 : 다큐멘터리, 뮤직


SYNOPSYS

그 이름만으로도 세계 젊은이들을 뜨겁게 달구는 혁명적 비틀즈 존 레논!

그의 Post-Beatles 스토리를 담아낸 문제적 다큐멘터리 - <존 레논 컨피덴셜> 

신선하고 독특한 음악으로 60년대 세계 대중음악을 장았댔던 전설적 그룹 비틀즈 그리고 그 전설적 명성을 뒤로하고 화려한 무대가 아닌 민중 시위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존 레논! 비틀즈 이후, "Gove peace a chance!" 라는 슬로건 아래 음악과 반전 현화 시위 운동을 통해 미국으로 대변되는 기득권 세력의 권력횡포에 정면 승부했던 존 레논의 긴박하고 드라마틱했던 시간을 기록한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 영화.

미국 vs 레넌 무슨 일이 있었나
비틀스 이후 ‘위험한 행보’ 음악과 인터뷰로 추적

한겨레

이재성 기자


 다큐멘터리 ‘존 레논 컨피덴셜’


비틀스의 리더 존 레넌에 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존 레논 컨피덴셜>의 공동감독 데이비드 리프와 존 셰인펠드는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1990년대 들어 비밀 해제된 미국 에프비아이(연방수사국) 공식문서들 속에서 닉슨 정부가 추진했던 존 레넌 추방 작전의 단서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역으로 추적해 나간다. 닉슨이 왜 그렇게 존 레넌을 두려워했는지를, 존 레넌이 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존 레논 컨피덴셜>은 비틀스 이후,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오노 요코 이후’에 집중한다. 전위예술가 요코를 만난 존 레넌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느낀다. 재치있고 유머러스하며, 자유로운 예술가였던 레넌은 요코와 무정부주의자들을 만나면서 점점 더 구체적인 목표의식을 지닌 급진적인 투사로 변해간다. 세상의 비밀을 발견한 청년은 “미치광이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외친다.

레넌-요코 부부는 자신들의 유명세를 평화의 메신저로 활용할 줄 아는 탁월한 선동가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자루를 뒤집어쓰고 언론과 인터뷰했으며, 암스테르담과 몬트리올(미국에서 하려 했으나 금지됨)에서는 신혼여행 대신 일주일 동안 침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침대 시위’를 벌였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대신 조건을 달았다. 침대 위에 붙은 “베드 피스”라는 문구를 보이게 하라는 것이었다. <해피 크리스마스>라는 곡을 발표하고 나서는 노래 가사(‘워 이즈 오버’-전쟁은 끝난다)가 적힌 벽보를 세계 7대 도시에 광고판처럼 붙였다.


닉슨 정부가 존 레넌의 힘을 깨닫고 두려워하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존 싱클레어 석방운동이었다고 영화는 전한다. 반전평화주의자였던 존 싱클레어는 마리화나를 피운 혐의로 연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을 두 대 때려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존 레넌은 <존 싱클레어>라는 노래를 통해 “두 대에 10년, 미국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웃겠네”라고 야유했고, 법원은 판결을 뒤집어 싱클레어를 석방했다. 이후 닉슨 정부는 존 레넌을 상대로 거의 반공개적인 미행과 도청을 일삼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한 명의 자유로운 예술가에게 쩔쩔맨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원제 <미국 vs 레넌>은 한국 개봉 제목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화자는 존 레넌 자신이다. 대개의 다큐와 달리 해설자가 따로 없다. 존 레넌이 출연한 방송 인터뷰를 축으로 관련자들의 증언, 당시 뉴스와 자료 화면을 촘촘하게 엮었다. 인터뷰 대상자는 바비 실 블랙팬더당 의장을 비롯한 당시 극좌파부터 닉슨 정부 관계자들까지 폭넓다. 영화를 재미있게 하는 것은 인터뷰와 인터뷰, 화면과 노래 사이에 존재하는 논리적 연관성이다. 영화에 흐르는 40곡의 노래 중 37곡이 비틀스 이후 만든 곡들이다. <해피 크리스마스(워 이즈 오버)>뿐 아니라, 당시 반전 시위대의 대표곡이었던 <기브 피스 어 챈스> <이매진> <파워 투 더 피플> <러브> 등의 명곡은 이야기와 절묘한 대구로 절창을 이룬다.

평화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백주대낮에 경찰에게 얻어터지는 광경은 일종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촛불시위의 원조도 60~70년대 미국 반전 시위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도 평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이 시도했지만 살해당했다.” 존 레넌은 이렇게 말하며, 자신도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고 예감했을까. 얼마든지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위대한 뮤지션은 그렇게 세상의 한 가운데서 자신을 불태우다, 1980년 한 미치광이 팬의 총에 맞았다. 여전히 전쟁과 탐욕으로 얼룩진 오늘의 세계, 존 레넌을 무덤에서 불러내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31일 개봉.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강산에] 인권콘서트 HUMAN 2nd.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공연장 : 홍대 브이홀  ☞ 약도 클릭하기  (02-338-0957)
◎ 공연일시 : 2009년 10월 23일(금) 오후8시
◎ 주최 : 다음기획, 인권연대
◎ 주관 : 다음기획
◎ 티켓가격 : 33,000원 (인권연대 회원의 경우 22,000원의 할인된 가격으로 예매 가능)
◎ 입금계좌 : 우리 1005-801-523022(예금주: 인권연대)

◎ 문의 : 인권연대 02-3672-9443

딱딱하고 어려운 ‘인권’이 아닌 즐겁고 쉬운 ‘인권’을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인권콘서트  ‘HUMAN’

2009년 9월 20일 첫 공연부터 1년 동안 매월 진행되며 뜨거운 감자와 강산에가 격월로 출연해 즐겁고 쉬운 생활 속의 인권을 노래할 이번 콘서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두번째 주자는 '강산에'입니다.

‘강산에’는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받는 소수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 권리마저 인정받지 못해 손가락질 받고, 차별 받으며 이 땅에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아픈 사람들의 인권의 가치와 소중함을 함께 나누어 이 땅에서 공존해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할 것입니다.

인권연대 CMS 회원은 특별한 할인혜택을 드립니다.(2/3 가격에 예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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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두 명의 전직대통령이 재임했던 지난 10년을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라는 차원에서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그 기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성찰할 것은 무엇이고, 또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짚어주실 것입니다. 민주파 집권 10년의 교훈은 무엇인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짚어주십니다.

※ 강사 소개 – 이대근
이대근 정치 · 국제 에디터는 명쾌하면서도 색깔 있는 칼럼으로 경향신문의 진보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인권연대가 매월 회원님들을 위한 회원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영화모임>이 열 번째로 만날 작품은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입니다. 이주 노동자와 여고생의 만남을 담백하고 경쾌한 리듬으로 그린 <반두비>는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머의 소재로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정치의 유머화 혹은 유머의 정치화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인종차별적 안티세력의 공격에 시달리면서 논란을 촉발 시킨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모임>에는 <반두비>를 연출한 신동일 감독이 특별히 참석합니다. 신동일 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에 얽힌 이야기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성가족>,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등의 화제작을 연출하고, 시애틀 국제영화제 뉴디렉터스 경쟁부문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기도 한 신동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반두비>, 감독과 함께 관람하실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10월 5일(월) 저녁 7시
  • 장소 : 인권연대 교육장(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2분거리)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3672-9443)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Bandhobi 

감독 : 신동일

주연 : 백진희, 마붑 알엄

배급사 :  (주)인디스토리
제작국가 : 한국
등급 : 18
상영시간 : 107분

장르 :  드라마

SYNOPSYS

세상이 껌인 소녀, 세상이 벽인 청년과 친구가 되다!

엄마는 애인 챙기느라, 친구들은 학원 다니느라 외톨이인 민서는 누구보다 자립심이 강한 당돌한 여고생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원어민 영어학원 등록을 위해 갖가지 알바를 해보지만 수입은 신통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카림의 지갑을 수중에 넣고, 발뺌하다가 엉뚱하게 그와 엮인다. 민서는 다짜고짜 경찰서에 가자는 카림에게 소원 하나 들어줄 테니 퉁 치자는 당돌한 제안을 하고, 카림은 1년치 임금을 떼먹은 전 직장 사장 집을 함께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민서는 얼떨결에 시한부 ‘임금추심원’이 되긴 했지만, 낯선 카림이 옆에서 걷는 것조차 신경이 쓰이는데…

신동일 감독의 ‘관계 3부작’ 마지막 작품 <반두비 >

 <반두비>는 <방문자> <나의 친구, 그의 아내> 두편의 장편영화로 ‘신동일파(?)’라 부를 만한 강력한 강성 지지자들을 형성해낸 신동일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관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방문자>는 여호와의 증인 청년과 결함이 많은 386 지식인의 우정을 그린 관계에 관한 우화였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성공한 386세대와 그의 하층민 친구의 사연으로 그려진 관계에 관한 죄의식과 불안증이었다. <반두비>는 지금 이 안에 살고 있는 두 이방인의 관계에 관한 해학적이면서도 날카로운 고찰이다. 전작에 비한다면 좀더 미래의 상을 걸고 뻗어나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민서와 카림이 관계를 쌓아나가는 장면 또는 마음의 친구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장면에 관한 묘사는 전작들보다 훨씬 유하고 재미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게 하는 이 영화 속 세계의 구조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민서는 맛난 것을 사먹기 위해 돈에 욕심을 낸 것이 아니라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 돈 욕심을 낸다. 영어학원에 가기 위해 돈을 훔치고 싶은 여학생, 이라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상을 자극하는 현실이 지금 극장 문을 열고 나가면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신동일은 정말 간절하게 말하고 싶어 한다.
 

 감독의 전언은 확고한데 직설적 화법이라는 면모도 확고하다. 그건 신동일 영화의 뚝심이자 동시에 여전히 어떤 문젯거리로 남아 있다. 전작에 비해 유연해졌어도 이런저런 독한 농담들을 나열하는 것은 오히려 영화의 맥을 방해하는 것 같다. 그 농담을 듣게 될 당사자들이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정치적 영화에서 분노와 야유가 정서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의 모순을 끌어안으려는 영화는 늘 그 자신의 형식적 구조의 문제도 함께 끌어안아야 하는 고됨이 있다. 마음은 여전히 맑되 형식은 더 간교해지는 신동일 영화의 길은 어떨까, 궁금하다. 어쨌든, 그래도 <반두비>를 보고 나면 마음의 온기가 돌아 좋다.

 

글 : 정한석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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