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주민발의 13호는 재산세율을 연간 부동산 평가액의 1% 미만으로 제한하고 세율을 올리더라도 연간 2%를 넘지 않도록 했다. 주민투표 끝에 65%가 찬성했다. 1978년 주 의회를 통과한 이 안건은 이후 캘리포니아 주 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당장 재산세 납부액이 절반으로 줄었고, 이때부터 캘리포니아 재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문제는 주택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재산세는 거의 변동이 없게 됐다는 점이다. 가령 1만달러 주택이 10년 뒤 5만 달러가 되더라도 세금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집값 상승을 따라갈 수 없다. 실제로는 세금이 계속 줄어드는 셈이다. 이 경우 두 가지 현상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소득불평등이 심해지고 재정압박은 심해진다. 더욱 큰 문제는 주민발의 13호가 향후 주정부가 세금을 인상하려면 주 의회 의원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규정했다는 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캘리포니아 주 법은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 재적의원 3분의2가 찬성하도록 하고 있다. 세금이건 예산이건 캘리포니아에선 원만한 합의가 힘들다. 세금을 더 거둬야 할 아무리 절박한 이유가 있더라도 3분의1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나 양당제인 미국에서 세금인상에 거부감이 강한 공화당 소속 의원이 주 의회의 3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증세는 꿈도 꾸기 힘들게 돼 버렸다. 이것이 초래한 끔찍한 상황이 바로 작년에 벌어졌다. 2007년 이후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캘리포니아 재정은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7월1일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재정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53억달러에 이르는 누적 재정적자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그해 7월부터 시작하는 2009회계연도 예산안을 주의회가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등 끝에 결국 주정부와 주 의회는 교육·복지·의료부문 예산 155억달러를 삭감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당초 예상했던 재정적자 가운데 예산삭감을 제외한 나머지는 산하 지방정부한테서 수십억 달러 빌리고 부동산을 매각하고, 태평양 인근해역에서 석유시추를 허용해 생기는 수입으로 메우기로 했다. 이 막대한 삭감안이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성남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계기로 지방재정 위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방만한 재정운용을 해온 것이야 원체 유명한 일이지만 자치단체 공기업까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재정조기집행 과정에서 지방채 발행을 독려하는 등 중앙정부가 지방재정악화에 책임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상황이 썩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일반적으로 재정위기 상황에서 선택하는 정책수단으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고 할 수 있다. 재정지출을 줄이고 각종 인건비는 동결하거나 삭감하고 신규투자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긴축재정을 할 경우 가장 먼저 줄어드는 것이 복지예산이라는 것은 외국 경험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보듯 공공부문 일자리를 줄이고 복지예산과 교육예산을 줄이면 한쪽에선 저소득층이 늘어나면서 공적부조예산이 늘어나 복지예산이 더 늘어나는 모순이 발생한다. 다른 한 쪽에선 다들 돈이 없어서 소비도 살아나지 않고 경제는 더 살아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세입감소가 계속된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정창수 좋은예산센터 부소장에 따르면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공적 부조(기초생활보장)에 쓰는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가량이라고 한다. 그런데 복지국가와는 거리가 먼 미국 연방정부가 쓰는 예산이 GDP 대비 약 4%다. 정 부소장은 “재해 관련 예산을 예방 중심으로 편성할 것인가 사후복구 중심으로 편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가 지방재정위기에서도 발생한다.”고 꼬집는다. 사후복구가 당장 중요하다고 해서 사후복구 중심으로 재해예산을 쓰다보면 해마다 사후복구만 하게 된다. 하지만 예방 중심으로 바꾸면 당장엔 돈이 더 들지 몰라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비용도 적게 들고 피해도 적게 입는다. 캘리포니아가 지금이라도 세금을 올린다면 당장엔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저소득층 복지와 공교육을 희생하고, 경찰을 해고하고 재소자를 석방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이 언제까지 통한다는 보장도 없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에 종합부동산세가 대폭 완화되면서 지방자치단체 세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제 우리도 ‘세금 깎아준다’는 감언이설에서 벗어나 ‘세금 더 내고 더 많이 나눠 갖자’는 생각을 하는 것이 재정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
인권으로 바라본 세상
- 재정위기 ‘마른 수건 쥐어짜기’의 함정 -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2010.08.03 1
- ‘일제고사’와 ‘알 권리’, 그리고 교육 (황미선 위원) 2010.07.22 1
- 추락하는 것은 날개도 없다(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10.07.14
- 10대를 소비하는 사회 (이광조 CBS PD) 2010.07.14
- 사실이라면,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까 -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2010.07.14
- 하느님, 드디어 소원을 들어주시다(서상덕 위원) 2010.07.14
- 의심하는 이의 비애(김대원 위원) 2010.07.05
- 응원도 사고 팔고, 전쟁도 돈이 되는 세상 - 전국완/ 양강중학교 교사 2010.07.05
재정위기 ‘마른 수건 쥐어짜기’의 함정 -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일제고사’와 ‘알 권리’, 그리고 교육 (황미선 위원)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교육과정이란 무엇이고 학력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학교란 하드웨어에서 교육과정이란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을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여 독립된 주체로 살아나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길러내는 행위이다. 소위 우수한 교육전문가들이 만든 교육과정 속에서 개개인이 가지게 된 실력을 학력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학력을 단순히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험을 봄으로써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학력은 가르친 내용을 가지고 얼마든지 다양하게 측정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전국에서 몇 등을 하는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리고 일제고사가 그 궁금증을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해결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몇 등이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교육과정의 내용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2009년 학력평가를 위해 사용한 예산이 334억원이라고 한다. 반면에 학습부진아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은 같은 해에 243억 원이고... 여기서 일제고사가 과연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기 아이들의 등수에 집착(?)하는 학부모의 심리를 이용하여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한 술수에 넘어가지 말도록 하자. 알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분명 존재하고 더구나 자라는 과정에 놓인 학생들이 기준이 되지도 못하는 문제풀이 시험의 결과로 알게 된 전국단위 등수는 미리부터 그 아이를 재단하고 속단하는 잣대로 작동하고 있고 정상적인 교육과정의 파행을 몰고 와 공교육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끝으로 우리 모두 교육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그들이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면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각자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학교는 일제고사와 같은 시험을 통해 벽돌공장에서 찍어낸 벽돌과 같이 똑같은 아이를 만드는 장이 되라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숨막혀하고 학교를 재미없다고 하며 다니기 싫어하는 것이다. 이런 학교 교육에서 세계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관련하여 나는 두 가지 점을 제안하고 싶다. 일단 학교를 다양한 교육을 이행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한다. 아이들이 가진 다양한 특기와 욕구 등을 찾아내고 발전시키기 위한 장이 학교가 되어야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모두 사교육에 일임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구조라고 생각한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지만 반드시 가야할 방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면 방법은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고 본다. 초등학교 체육교과서에 수영을 필수교육이라고 하면서 거의 모든 학교에는 수영장이 없으며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 두 번째는 문제해결을 근본적인 것에서 접근해 보았으면 한다. 사회에 나가면 어차피 경쟁을 해야하니 어려서부터 경쟁에 몰입하도록 하자는 생각을 버리면 어떨까?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의적으로 경쟁을 선택할 수 있는 시점까지는 학교교육을 협력적 교육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든 교육내용이든 경쟁교육을 바꿔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꿔 나가 우수한 소수에 방점을 둔 교육이 아닌 모두가 행복한 학교로, 그런 교육의 형태로 전환시켜 나갔으면 한다. 경쟁의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가 일등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미수다’라고 일컬어지는 프로그램에 어느 출연자가 미국의 교육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일등 옆에 교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 아이 중 가장 못하는 아이 옆에 교사가 있을 수 있는 학교교육을 만들었으면 한다. 모든 문제해결의 단초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된다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실천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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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도 없다(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6월 25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파견노동조합 사무실에서 2008년 경제위기로 해고된 세 명의 일본인 노동자를 만났다. 47세의 다나카씨(가명)는 27년간 계속 일을 하였지만 지난 2009년 생활보호(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가 되어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0세까지는 정사원으로 일했습니다. 처음에 배송회사의 트럭운전사였고 그 다음에는 닛산자동차, 자동판매기 회사, 와인창고관리를 하다가 43세부터 이쓰즈 자동차회사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습니다. 리먼 쇼크로 2009년 1월말에 해고를 당했지요. 아직 계약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도중에 그만두라 하더군요. 부당하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떤 보상을 받은 적도 없구요. 그저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찾을까, 그것만 고민했습니다. 살고 있던 회사의 료(일종의 기숙사)도 비워줘야 했기 때문에 당장 잠자리도 막막했습니다. 다행히 파견노조의 도움을 받아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재 36세의 야마타씨(가명)도 비슷한 처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 전문학교를 다닌 야마타씨는 전기공사자격증을 취득하고 공장을 전전하다 2002년부터 닛산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파견노동자로 일했다. 일본에서는 2003년부터 제조업 파견이 허용되었고 3년 이상 파견을 지속할 경우 직접고용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2002년부터 5년간이나 파견근로로 야마타씨를 고용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해고당하기 약 1년 6개월 전에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직접채용을 요구했으나 지금 회사가 상당히 어려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지요. 그리고는 계약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2008년 11월말에 해고당했습니다. 당연히 료에서도 쫓겨났구요” 30살인 스즈키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2008년 경제위기 때문에 해고당한 뒤 일자리를 못 찾아 생활보호 대상자로 살고 있다. “이쓰즈 자동차에 파견노동자로 일하면서 10킬로 20킬로 되는 부품을 대(다이) 위에 나르는 작업을 하다 허리를 다쳤어요. 같은 일을 해도 직접 고용된 사람은 저보다 10만 엔(한화 약 130만원) 정도를 더 받더라구요. 게다가 파견회사의 료에 살면 월 4만5천 엔의 임대료뿐만 아니라 가구나 전자레인지 등의 전자기기도 빌리는 것이라서 돈을 내야 해요. 그러다보면 실제 손에 쥐는 것은 얼마 안 되지요”
2008년 11월 비정규직과 근로빈곤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이래 올해로 다섯 번째이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는 충격이 너무 컸다. 일본은 종신고용과 숙련노동자, 품질중시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로 도배를 한 긴자의 휘황찬란한 거리에는 70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맥주집이 있다. 100년 전통의 음식점에는 자리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그런 일본이 그렇게 빨리, 그렇게 쉽게 무너진 것을 어떻게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나치게 비관적인 일본 학자나 노동조합만을 만난 것은 아닌지를 의심했지만 후생노동성과 지역 노동국을 방문하고 히비야 공원의 파견촌을 찾아 간 후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정해야 했다. 54년만의 정권교체를 지켜보면서 평생 일을 해도 근로빈곤의 덫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일본의 현실임을 납득해야 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이분들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도쿄 도청의 유명한 전망대에 한 번도 올라가본 적이 없다 하여 그곳에도 함께 갔다.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는 일본이 바로 한국의 미래가 아닐까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본을 방문하기 전 필자는 한국에서 임금 근로자의 43%가 일하고 있는 5인미만 영세사업체의 고용주와 노동자를 인터뷰 했다. 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대기업에서 희망퇴직을 하고 두 번에 걸쳐 창업을 했던 정남길씨(가명, 48세)는 지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다. 그가 정규직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10여 년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을 보호해주는 사회안전망은 아무것도 없었다. 월 79만원을 받으며 모 청소업체에서 일하는 그에게는 아직 학생인 두 아이들이 있다. “제 탓이지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떨어뜨리던 정남길씨는 그래도 아쉬운 듯 이렇게 말했다. “너무 급여가 작아요. 1주 5일, 하루 8시간 꼬박 일하는데 퇴직금도 없고, 9개월 계약직이거든요. 그래도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인데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게 아쉬워요. 사회보험은 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난 직장은 5개월짜리였기 때문에 두 달 실직동안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습니다.” 지난 3년간 일본과 한국은 자살률이 전 세계 1, 2위를 다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마저 없는 사회, 혹시 일본과 한국이 그렇게 닮아가는 것은 아닐지, 일본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10대를 소비하는 사회 (이광조 CBS PD)
10대를 소비하는 사회
이광조/ CBS PD 가끔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 편의점에 들를 때가 있다. 동네건 회사 근처건 새벽 시간엔 보통 10대 또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이 편의점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서 그네들을 마주할 때면 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 어쩌다 술에 취해 함부로 반말 하고 행패를 부리는 손님을 보면 그런 불편한 마음이 더하다. 하지만 편의점에 들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10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계산대 앞에 서서 일하며 얼마나 받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 퍼센트 인상된 시급 4,320원으로 결정됐다. 해마다 그렇듯이 노사, 공익위원 3자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지루한 논쟁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시급 4,320원이면 하루 8시간씩 한 달에 하루도 안 쉬고 꼬박 일할 경우 1,036,800원에 해당되는 액수다. 사람이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현실적으로는 한 달 꼬박 일해도 100만원이 안 되는 돈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인상률을 봤을 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와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 인상률에도 못 미친다. 노동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임금의 하한선을 법적으로 정하는 최저임금. 최저임금은 애초부터 노동인구 중에서도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제도다. 그리고 우리사회에서는 이 최저임금의 가장 중요한 적용대상이 10대,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들이다. 편의점, 주유소,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 우리 주변에는 법정 최저임금을 받는 우리의 아들, 딸, 동생들이 도처에 널렸다. 80년대 중반 대학 주변의 아르바이트 시급이 1천원에서 많이 주는 곳은 1,500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25년 사이에 기껏 세배 정도 오른 건가. 그에 비해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이 60만원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대학등록금은 적게는 5배에서 많게는 8배까지 오른 셈이다. 국민소득도 늘어나고 민주화도 되고 선진국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최저임금은 왜 이리 안 오르는 걸까.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건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적은 최저임금 기준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 노동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은 1만 4,869개로 이는 2007년에 비해 3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점검 업체 2만5,505개 중 거의 60퍼센트에 이르는 업체들이 최저임금을 위반한 것이다. 이 통계 속에 얼마나 많은 우리 청소년들의 눈물과 한숨, 분노가 섞여있을까. 더구나 영세한 자영업자가 아니라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조차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면 할 말을 잊게 된다. 청년권익단체인 청년 유니온이 지난 5월 전국 6개 지역 427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4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5.8퍼센트가 2010년 기준 최저임금인 4,110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일하고 있으며, 편의점별로는 훼미리마트의 73.3퍼센트, GS25의 62.9퍼센트가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편의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가 아니었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임금이 그 밑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는 하한선을 법으로 정해놓은 것이지 딱 그만큼을 주라는 게 아니다. 더구나 그 대상이 10대,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고 밤낮 없이 아무 때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실제 임금은 그보다 훨씬 높아야 하는 게 상식에 맞을 것이다. 선진국 치고 우리처럼 하루 24시간 어딜 가든 편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라는 없지만 그나마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 수준이 우리의 2배가 넘고 심야시간에는 더 많은 임금을 가산해 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청소년들의 최저임금 문제는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가족의 소중함, 공동체의 가치, 어른의 책무를 강조하는 보수라면 부모세대와 우리사회가 보호해야할 청소년들을 이렇게 착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돈만 벌면 된다는 장사치가 아니라면 훼미리마트나 GS25 같은 재벌그룹 편의점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그래서 우리 편의점은 최저임금을 지킨다는 윤리강령부터 마련하고 편의점마다 이를 지킨다는 서약을 받고 인증마크라도 붙여라. 그런 다음 10대, 20대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될 수 있도록 시급을 현실화하라. 최저임금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정도는 줘야 된다는 사회적 합의이고 이런 합의는 영세업체에나 해당되지 재벌그룹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체인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편의점 출입구 옆에는 커다란 모니터에서 하루 종일 광고영상이 나온다. 카라, 소녀시대, FT 아일랜드, 빅뱅... 화려하게 차려 입은 10대 아이돌 그룹들과 창백한 얼굴의 10대 아르바이트생. 무심코 지나치지만 그 극명한 대비에 가끔 쓴웃음이 난다. 자식세대, 청소년들을 이렇게 착취하고 소비하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자식들을 잡아먹었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크로노스가 머릿속을 맴돈다. |
사실이라면,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까 -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사실이라면, 대통령으로 모셔야 할까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어려서 학교 다닐 때,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너무도 부담스럽고 벅찬 때가 있었다. 햇빛이 강렬한 무더위, 운동장에 서 괴로운 친구 얼굴들만큼이나 귀담기 힘들었던 선생님들의 훈시. 그럼에도 신기하게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다. “거짓말, 거짓말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던 그 말 이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힌 후 스스로 검찰을 떠난 분이니, 이 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고, 기억나지 않는 것도 사과하는 모습. 정치인의 새로운 탄생이라 뒤집어 상상해본다. 보통의 사람들은 사회 공공의 지도자들이 종교계에 당당하고 거침없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중심을 잡아 주길 바란다. 어려운 사람 돕고 좋은 일 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정 반대의 경우도 종종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을 도둑질해 국고보조금을 횡령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용서하지 않아야 참 정치인이다. 이번 봉은사 정치외압 논란도 새로 당선된 조계종 총무원장과 원내 대표의 면담에서 시작되었다. 만남의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템플스테이 예산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 중요한 사안이었다고 한다. 안 의원은 자신이 원내대표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주지를 그냥 놔두어서 되겠느냐”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자리에서 강남의 부자 절에 ‘운동권 퍼주기’ 하는 주지스님이 말이 안 된다고 당연히 했을 법도 하고, 같이 있던 한 분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결론은 성경구절 한 대목 그대로이다. ‘의로운 이’를 말하는 ‘욥’의 욥기13장에 “...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니라. 너희가 잠잠하고 잠잠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너희의 지혜일 것이니라...”는 말씀이다. 성경은 정치인이 사람에게 한 말은 기억해야 하며, 적당히 회피하고 넘어가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한다.
역발상으로 비틀어 상상해보자. 기억나지도 않는 사실을 인정하며, 불교계에 유감과 사과의 뜻을 전하는 너그럽기도 하고, 수용적인 의원이기 때문에 여당의 대표로 출마할 자격이 있지 않나싶다. 안 의원은 모 사찰을 매년 방문하기도 하는, 종교 교류의 모범을 알고 관용을 실천하는 정치인이다. 가끔 스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 단점을 극복한다면 더 높은 역할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한국 속담에 ‘거짓말도 새끼를 친다.’는 말이 있는 줄 모르는 시민들에게 평생학습을 하도록 교훈을 준 국민의 은사이기도 하다. 누가 알았겠는가! 한국 속담에 ‘거짓말도 잘하면 오례 논(올 벼를 심는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있을 줄이야. 거짓말도 잘하면 도움이 된다는 뜻의 이런 속담이 있는 줄 모르는 시민들도 거짓말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 머리 좋은 분이. 잠잠하기를 기다리던 끝에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사실이라면 유감이다”고 한 것은 체면을 앞세운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인은 기억나지 않아도 반성하는 신 버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이런 상상이 사실이라면 안 의원은 대통령을 하셔야 한다. 더구나 템플스테이 예산을 더 많이 받기 위해 나온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유감’을 밝힐 필요가 없는데도, 종교계에 먼저 선물 보따리를 내 놓는 것이 정치인이다. 참 보기 좋은 모양새이다. 마구 비틀어 보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을 계속 꼬이게 만드는 분이라도, 상식의 차원을 넘어, 계속 반복하면 깊은 속내가 무엇인가 있는 건 아닌지 헷갈리고 기대를 하게 된다. 거짓말과 관련해 ‘로터’는 ‘거짓말은 눈사람 같아서 오래 굴리면 그 만큼 커진다.’고 했다. 눈사람의 크기가 한 국가를 덮을 정도가 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거짓말쟁이가 받는 가장 큰 형벌은 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 한다는 것보다, 그 자신이 아무도 믿지 못한다는 슬픔에 빠지는데 있다’고 했다. 차기 한나라당 대표가 되어야 할 분이나, 대통령이 되셔야 할 분은 이런 논쟁에서 자유롭고, 정치와 종교가 결탁해 서로 주고받기를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는 깔끔한 분이었으면 좋겠다. 정치와 종교가 오염되지 않는 사회. 이런 생각이 꿈일까, 한나라당을 아끼는 분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
하느님, 드디어 소원을 들어주시다(서상덕 위원)
하느님, 드디어 소원을 들어주시다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신이시여! 제발 이 지긋지긋한 징크스 좀 깨주세요.” 누구에게나 남모를(또는 말하기도 거시기한) 징크스가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징크스가 있으니, 선거권을 갖게 된 이후로 내가 찍은 후보 가운데 한 사람도 당선된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고사하고 하다못해(이렇게 얘기하면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시의원이나 구의원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 ‘역사’ 속에서 살아온 내게 지난 6.2 지방선거는 또 한 번의 중대한 고비였다. 이번에야말로 내 삶에 따라붙은 지긋지긋한 징크스 가운데 하나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기억하겠지만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선 사람들 가운데 친환경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건 이가 있었다. 아들 넷, 그 머릿수만큼이나 벅찬 교육의 무게에 눌려있던 내게 그의 공약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당시 신문이나 방송의 사회면을 장식하던 ‘기러기 아빠’들의 뒤를 따라 ‘펭귄 아빠’의 삶을 각오하고 아이들을 외국으로 내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나에게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은 교육현장에서는 물론 보통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일로 다가왔다. 무상급식은 자라나는 학생들이 한 끼의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드러나는 현실 외에도 우리 사회에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고 이를 풀어가는 새로운 양식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노둣돌을 놓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또 다시 뇌리 한 구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기억의 한 조각. ‘이번에도 내가 찍어서 안 되면 어쩌지….’ 무상급식이라는 공약이 여기저기서 공격당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의 고민은 더 깊어만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의 고민도 덩달아 커졌던 모양이다. 당장 2011학년도부터 무상급식이 이뤄지면 산술적으로 우리집은 매달 수십만 원에 이르는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투표 당일 우리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마음이었다. ‘하느님, 제발 이번에는…. 제 마음 아시죠.^^;;’ 그리고 이튿날 나는 20년 넘게 나를 따라다녔던 징크스가 깨어졌음을 확인하고 모두에게 감사했다. 기러기 아빠들의 쓸쓸한 죽음에 대한 기억과 펭귄 아빠를 향한 결연한 각오, 세상을 향한 의구심 등이 뭉쳐 몸 속 어딘가에 오래도록 쌓여있던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족쇄와도 같던 징크스를 벗어난 상쾌함이란…. 교육이, 자라나는 아이들은 물론 우리 모두의 미래를 가꾸는 일이라 여기며 세상의 모든 부모들처럼 교육문제에 노심초사해왔던 우리 부부에게 지난 6월의 기억은 가슴 벅찬 현실이자 역사의 새 장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부모의 느낌과 감동이 조금은 전이된 모양이다. 당장은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아니지만 바뀔 수 있고 바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변화를 바랐던 모두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갈 책임은 그 희망에 표를 던진 우리 모두의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끝으로 나의 오랜 징크스를 깰 수 있도록 올바른 선택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이다.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
의심하는 이의 비애(김대원 위원)
김대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아직 외국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특히 한국어와 문법이 비슷하다 하여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일본어도 외국어였다. 그나마 발음은 괜찮게 들리는지 준비한 인사말 몇 마디에 모두들 감당하기 힘든 주제로 대화를 시도해 온다. 특히 일본인들에게는 천안함 사건이 여전히 큰 관심거리이다. 물론 대부분 일본 언론에서 보도하는 대로 북한의 도발임이 분명하고 전쟁이 곧 일어날듯 한데 일본에게도 심각한 일이라며 호들갑 떠는 내용이다. 그것을 한국인인 나에게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대략의 내용만 접한 것으로 아는 척 하기도 그렇거니와 내 일본어 수준으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도 어려워 별 일 아니라 하고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의도적인 도발임이 분명한 사건을 겪고서도 어찌 그리 태연할 수 있느냐고 되물어 오기에, 결국 몇 가지 의문을 이야기하며 좀 더 기다려 볼 일이라 설명하는 중 조금 흥분해서 오히려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로 골머리 앓고 있는 일본과 미국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른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반문했다.
내 딴에 상식적이라 생각되는 수준에서 가진 의문이었는데 대부분 깜짝 놀란다. 어떻게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내용 이면의 것을 내다 볼 수 있느냐며 대단하다고 한다. 이들이 어찌 알까. 한 두 해가 아니라 수십 년간 당하면서 살아 온 끝에 갖게 된 지혜라는 것을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지혜라 자부하기에는 뭔가 미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 쪽이 정상일까? 주변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사는 것과 어떤 소식이든 들으면서 사실일지부터 고민하며 살아온 우리의 삶. 정상 비정상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지만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물론 진실을 모른 채 살고 있는 이들도 안쓰럽지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로 구성된 '천안함 조사결과 검증위원회'의
우장균 한국기자협회장(가운데)이 지난 6월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한 검증 없이 보도한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늑대소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치는 거짓말쟁이 소년 이야기가 있다. 몇 번 씩이나 마을 사람들을 속인 끝에 실제 늑대가 나타났지만 결국 아무도 사실이라 믿어주지 않았던 이야기. 물론 거짓말 한 소년 탓이라 여기면 그만일 테지만, 결과를 알고 난 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의 마음이 오죽 복잡했을까.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거나 속은 사람의 마음이 더 혼란스럽고 아프다는 사실을 저들은 알까.
여하튼 그 뒤로 국내 소식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음모론 유포 혐의로 몇몇 사람이 입건까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내용을 살펴보다 보니 ‘지나치게 사건 진행 간의 개연성에 집착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간과된 가정들을 지나치게 맹신하고 근거로 삼는’ 것을 음모론이라고 한단다. 어느 심리학자는 음모론이 ‘자기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채택하고 맞지 않는 것은 버리는 심리행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리여서 사건의 해석이 쉽지 않은 경우 단순명쾌한 음모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누가 음모론자인지 명확하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간과했던 가정을 맹신하며 근거로 삼고 있는지, 누가 자기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을 고집하는지, 누가 보통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서둘러 단순명쾌한 답을 내놓았는지 분명하지 않은가.
온갖 어이없는 음모론으로 나에게 꽤나 구박받았던 후배에게 오랜만에 연락해보아야겠다. 그 친구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언제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그 친구의 의견이 궁금해지다니 나도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누구 때문일까?
김대원 위원은 성공회 신부로 일본 릿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응원도 사고 팔고, 전쟁도 돈이 되는 세상 - 전국완/ 양강중학교 교사
전국완/ 양강중학교 교사 16강을 끝으로 우리에게 남아공 월드컵은 아쉽게 끝이 났다. 하지만 지구 반대쪽의 낯선 그라운드에서 혼신을 다해 코리아의 열정을 보여 준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들이 선물한 환희와 감격을 벅차게 맛보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린 우루과이 전에서 종료휘슬이 울리자 장대비 속에서 펑펑 울던 선수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짠하다. 그리고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동네 닭집도, 피자집도, 호프집도 모처럼 특수를 누린 것 같아 다행이다. 소규모 자본으로 가게를 꾸려가는 우리들의 평범한 이웃들이 월드컵 덕분에 수입을 올렸다니 이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이제 좀 그만! 잘 끝났다.’는 생각도 못지않게 많다. 우리 팀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TV 앞에서 마음을 다해 응원하긴 했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부르는 응원가가 특정기업의 소유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래서 시청광장에선 특정한 노래만 불러야 된다는 더 황당한 소식이 들리고, 우리 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중계권을 독점구입한 모방송국이 100억 원씩 수익을 올리고, 덩달아 유명 연예인들이 응원가를 부르며 마트를 광고하고, 아이스크림을 광고하고, 에어컨을 광고하며 돈을 펑펑 벌어들이는 걸 보면 씁쓸하다 못해 슬그머니 역겨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듯해서 말이다. 피겨스케이팅도 돈이 되고 축구도 돈이 되고, 응원도 돈이 되고……. 이제는 그 돈벌이에 지나간 아픈 역사인 전쟁도 주요메뉴로 등장한 것 같아 황당함을 넘어서 걱정이 든다. 요즈음 전에 없이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지난 10년 동안의 대북정책은 폐기되고 점점 남북관계가 험악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천안함 사태로 남북이 그야말로 극도의 긴장상태에 와 있는 지금, 여기에 화답하듯이 전쟁영화, 드라마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피웅피웅’ 총알이 날아다니고, 무차별 총격에 사람들이 퍽퍽 쓰러지며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귀청을 찢는 듯 한 폭음에 집과 사람이 날아가는 장면들이 안방에서, 극장에서 매일같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붙잡는다. 그런데 그 화면 속에서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시절 불렀던 ‘아ㅡ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ㅡ 주먹 붉은 피로 원ㅡ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해 떤 날을....’ 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어르신들은 ‘니네가 빨갱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해?’라며 60년 전 기억이 떠오른 듯 부르르 떠신다.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다’ 하시면서도 매번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시는 그 표정에는 은근히 지난날에 대한 향수도 어린 듯하다. 또 아이들은 화면 속에서 ‘전쟁의 참담함’을 읽어내기보다는 재미있고 적당히 스릴도 있는 전쟁놀이를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드라마와 영화의 기획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보수적인 권력층의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도 분명 깔려 있겠지만, 수백억을 들여서 만든다는 건 그 이상의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창 남북관계가 험악한 지금, 나라의 불안한 안보상황을 기회삼아 ‘전쟁’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 2000년인가 개봉되었던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개성공단도 없었고, 남북 간의 교류도 많지 않던 그 시절, 남북의 군인들이 우정을 나눈다는 매우 비현실적인 내용이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나와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가 그려낸 민족분단의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 울고, 분단문제를 바라보는 영화의 진정어린 시선과 극복에 대한 절절한 열망에 감격해서 울었다. 한참을 눈물범벅이 된 채 앉아 있다가 벅찬 가슴을 안고, 희망을 안고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품었던 희망은 10년이 지난 지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우리 인간의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돈을 내고 감상하는 상품이지만, 그것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상품이 아닌 진실이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엄청난 비극이었던 ‘6·25’,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전쟁’과 그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하고 진정어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뜨거운 가슴, ‘전쟁’ 속의 진실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다. 이런 것들까지 ‘돈’으로 환산하려는 천박한 계산 앞에서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