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럼비 해안에 도사린 거대한 괴물(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나는 지금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귀포경찰서는 지난 1일 나를 포함한 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해놓은 상태다.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고 경찰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다. 현재 정부당국과 해군은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을 철조망 펜스와 경찰병력으로 봉쇄중이다. 이로써 400여 년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의 삶의 배경이 되어왔던 구럼비의 바다는 처음으로 주민과 마을로부터 단절되었다.

 대검찰청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이른바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체포 작전과 공권력을 통한 강제진압에 나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강정마을이 제주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된 지난 2007년 5월 이래, 주민들과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단 한 차례도 불법적인 집회나 시위 등을 계획해 본 적도, 실행해 본 적도 없다. 오직 해군기지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바로잡을 합리적 해결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해왔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여론은, 기지 유치결정이 이뤄진 2007년 5월을 기점으로 더욱 확대되어왔다.

 이는 당시 결정의 부당성과 해군기지 사업 추진이 정당성을 결여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2007년 이후 도내 언론사들에 의한 매시기별 여론조사 결과는 최소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을 넘어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음을 공히 지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해군기지 건설계획 자체의 폐기 여론도 급격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구럼비 해안의 아름다움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국가적 사안으로까지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올레7코스를 찾는 탐방객들의 구전효과와 생명평화결사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비폭력저항에 대한 신념과 노력,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반대를 앞세운 무리한 주장과 폭력적 방식의 저항으로 임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당국이 ‘폭력시위’, ‘공권력 도전’ 운운하며 이 문제를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진압을 통해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국민적 저항만 더욱 키우는 일이다.

 지난 9월 3일, 평화비행기․평화버스 행사에는 바로 전날 이뤄진 공권력 작전의 삼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2천여 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다. 이 수치는 섬이라는 제주의 지리적 특성을 생각할 때 2만명 이상의 효과를 갖는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무력화를 위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손해배상청구와 같은 방법으로 발을 묶으려하고, 구럼비 해안을 물리력으로 통제한다고 한들, 평화에 대한 열망과 부정의에 대한 저항의 흐름을 잠재울 수 있을까?

 강정마을 구럼비의 자연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400여년 계속돼 온 이곳 주민들의 삶을 반영한다. 구럼비 자체는 이 마을 공동체의 역사이자 축적된 삶의 양식인 것이다. 구럼비 해안의 자연 그대로의 정경은 이곳 주민들 또한 이곳의 자연과 얼마나 평화적으로 관계해왔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들을 쏟아 붓고, 6만평 이상을 매립하는 기지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백보 양보해 설령, 해군기지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아홉 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연산호 군락지과 붉은발말똥게와 같은 다양한 생명의 보물창고이자 아름다운 경관지인 이곳을 잘 보전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경쟁력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구속 중인 고유기 선생의 편지를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보내주셨습니다.

 강정마을에 추진되는 해군기지 건설문제는 새만금-부안-평택에 이어서, 국가사업의 정당성과 추진방식의 문제를 또다시 제기한다. 설득과 대화의 노력보다는 오직 국가사업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추진에 나서고, 이에 대한 반대는 ‘종북좌파’로 매도하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이른바 국책사업 추진과정이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의 엄호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공안논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지금처럼 열려진 세상에서는 국가논리가 권위로서 작동할 공간은 협소하다. 이제, ‘국책사업’도 ‘국가안보’도 국민들의 광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반대와 이견(異見)을 감내하며 소통에 나서야한다. 그것이 진짜 효율성 있는 국가사업을 하는 방법이다. 무리한 추진논리와 방식으로 벌써 10년째 표류하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느 가을 오후, 높은 하늘을 배 위에 올려놓고 구럼비 바위에 팔베개하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가을의 파란하늘과 맞닿은 바다 지평선 아래로 산호들은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은 수백 년 동안의 진실이었는데, 해군기지라는 거대한 괴물은 이 엄청난 진실을 기억과 그것으로부터 상상의 감옥으로 밀어넣으려 하고 있다. 그 수백년의 진실을, 다가올 가을 어느 날의 오후의 현실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 감옥의 창살쯤이야 차라리 함께 산길을 넘는 벗일 뿐이다.


우리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본 까닭(장경욱 위원)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7, 8월을 소위 왕재산 지하당 사건 변호단 활동으로 국가정보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소위 왕재산 사건은 검찰총장님께서 종북좌익세력 척결까지 언급하게 되신 바로 그 사건이다.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목표로 한 왕재산 사건 검찰 수사가 이번주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주말 잠깐이라도 여름 휴가를 다녀올 수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검찰 송치 이후 우리 변호인들보다도 훨씬 먼저 여름 휴가들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유치한 허깨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감동과 함께 국가정보원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야만적 수사를 물리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국가정보원의 소위 왕재산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들에 대한 몸수색, 가방검색 논란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변호인의 몸수색, 가방검색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모든 변호인에 대하여 몸수색(문형 보안검색대의 통과), 가방수색(X-ray 소지품 검사)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으로 처음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을 때 몸수색, 가방수색을 전혀 요구받지 않고 당시 불구속 피의자들의 국가정보원 조사 시 신문에 참여하였다. 당시 구금 상태의 피의자를 접견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가지고 들어간 아이폰으로 열심히 뉴스기사를 읽어보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국가정보원과 변호인들 사이에 몸수색, 가방검색 시비가 벌어진 이후에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 불구속 피의자를 대동하고 들어가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몸수색, 가방수색을 전혀 받지 않고 말이다. 아마도 국가정보원 출입 경험이 많은 변호인이라 예우 차원에서 특별히 시비를 걸지 않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어느날 갑자기 변호인의 몸수색, 가방수색을 이유로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구속 피의자들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그 과정에서 구속 피의자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렸다. 매일 매일의 조사 상황을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족들은 애간장이 녹았다. 이에 우리 변호인들은 국가정보원 수사관들과 몇 시간 동안의 설왕설래를 거듭하는 가운데 일정한 양보(가져온 가방을 도로 놓고 와서 문형검색대만을 통과하거나)와 합의(가방 검색은 허용하지 않고 문형검색대만을 통과하기만 하고 ‘삐’소리가 나더라도 핸드스캐너로 사후 조사하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하거나)를 거쳐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가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피의자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정보원은 변호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변호인들이 제출한 피의자 접견신청서, 피의자조사 참여 신청서 등을 통해 변호인들이 오로지 피의자들의 방어권 행사에 조력을 하기 위하여 피의자를 접견하고 피의자의 조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피의자들의 지위가 얼마나 형편이 없는지 또한 잘 알고 있다. 피의자들에게 차지하는 변호인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리라. 형사소송절차에서 특히 최초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고 방어적 위치에 있다. 바로 이때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감시하고 피의자가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구원자) 같은 존재가 변호인이다. 이들 변호인들이 수사절차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는 불가능하다.

수사단계에서의 피의자 지위는 급히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와 같은 처지라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궁박한 처지의 변호인과 피의자들을 상대로 보안시설 출입절차는 변호인 접견 및 피의자조사 참여권을 제한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출입절차를 거치면 되는데 변호인들이 이를 거부하여 국가정보원 청사 내로 출입하지 못한 것일뿐 자신들이 변호인의 접견과 피의자조사 참여를 불허한 적이 없단다. 출입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변호인들로 인하여 국가정보원 건물이 테러를 당하면 책임질 것이냐고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내가 묻는다. 그러면 처음에 아무런 검신, 검색 없이 왜 출입을 허용하였느냐고.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실수라고 답한다. 검신, 검색 시비가 붙은 이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 출입할 때는 왜 검신, 검색을 하지 않았느냐고.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는 문형검색대와 X-ray 소지품 검사대가 없어서란다. 내가 반문한다. 국가정보원 인천지부 역시 처음에는 핸드스캐너로 몸수색, 가방수색을 요구하다 그냥 변호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느냐고.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다. 핸드 스캐너로 내 몸과 가방을 수색했단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그들이 출입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보안시설의 방호목적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일관성 없는 출입절차를 들이대며 변호인들의 조력권을 위축시켜 변호인들을 길들이고자 함이다. 국가정보원 청사 출입을 안내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출입과정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왜냐고 묻는다. 신원조회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이런 논란이 약점으로 지적되어 부담이 되었는지 국가정보원 내규를 개정해 일정한 직급까지는 청사 출입 시 보안검색을 받는 방향으로 규정을 강화하겠단다. 변호인 신분을 확인하고, 변호인들이 오로지 변호권 행사 차원에서 방문한 것을 알면서도 변호인들에게 몸수색, 가방수색을 요구하는 것은 변호인들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변호권 행사를 방해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변호인의 접견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 위법한 출입절차를 전면적으로 뿌리치지 못하고 일정한 양보와 합의를 거쳐 피의자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던 변호인들의 궁박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조차 변호인들의 일관성 없음을 탓하며 국가정보원은 수사를 방해하는 변호권 남용 운운한다. 변호인들이 구속 피의자를 접견할 경우에는 출입보안절차를 준수하다가도 불구속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 신문에 참여할 경우에는 일단 피의자와 함께 국가정보원 안내실까지는 왔다가 보안검색대 통과를 문제삼아 귀가함으로써 소환 불응의 경우 체포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여 출석불응에 대한 정당한 이유로 삼기 위하여 검색대 통과문제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조작과 날조의 대명사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다운 분석평이다. 나무아미관세음보살!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사진 출처 - 씨네21

 이렇게 변호인의 조력이 부재한 틈을 타 국가정보원은 구속 피의자들을 상대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추태를 부렸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불러서는 수십명의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역할을 분담하여서는 오로지 자백을 강요할 목적으로 피의자가 겁을 먹도록 어르고 모욕하거나 회유하였다. 조사 시 눈을 감는다고 욕하고, 몸을 스트레칭하였다고 위협하고,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고 팔로 턱을 괴거나 엎드렸다고 반말하고 야단쳤다. 조사 시 수사관에 대한 무례를 이유로 피의자들을 들들 볶아대고 닦달하였다. 옛날 같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실토하게 했을 것이란다. 그 옛날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에 근무하였다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경력 소개에도 바짝 쫄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위협과 농간에 피의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겹쌓여 지쳐 나갔다. 휴식 없이 숨 돌릴 틈 없이 수사관들에게 하루 종일 계속하여 시달리다 보면 피의자들은 불안감에 동요하고 조금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수사관들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라도 수사관들에게 사정할 수밖에 없고 악역 담당의 수사관들의 위협과 모욕에 시달리다 담배 한 가치 건네주며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을 거는 수사관들이 천국에서 온 구세주로 다가서는 비정상적 정신공황상태가 되고 만다. 그 수사관들의 시혜에 보은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변호사가 국가정보원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느냐, 변호사가 진술거부하면 모든 증거가 휴지조각이 되고 무죄가 될 거라고 말하더냐, 변호사가 검색대 통과 핑계대고 들어오지도 않는데 피의자를 위해서 수임료 받고 해 주는게 뭐냐, 변호사가 당신 이용하는 거다, 자기들 이름이나 알리려는 것이지 피의자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변호사가 형을 대신 살아 주냐 형량이 두려우면 차라리 우리에게 협조해라 등 피의자와 변호인을 이간질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말이 혹 진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탈출구가 있었다. 이번 여름 기막힌 현실에서 고난을 겪은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끝내 견뎌내고 당당히 자존심을 지키고 회복하는데 일등공신이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 이야기이다. 인간성을 고양시키고 인생관을 새롭게 부흥시켜 준 암탉 ‘잎싹’의 얘기를 들려주며 국가정보원의 비인간적 수사에 맞서 ‘잎싹’을 떠올리며 묵언명상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지리한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여 할 일이 따로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고생담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잎싹’을 떠올리며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하였다. 이를 피의자들과 함께 실천하였다. 왕재산 사건 수사 와중에 마침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되었다. 우리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러 갔다. 주인공 ‘잎싹’이 마냥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헌신하고 싶어서였다. 검찰총장에게 한마디 전해주고 싶다.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외치기 전에 ‘마당을 나온 암탉’ 동화책을 꼭 읽고 영화 또한 꼭 단체관람 하시라. 거기에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검찰의 자존심과 신뢰를 회복할 중요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왕재산 사건 기소에 즈음하여 곧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외치는 무리들이 또 한바탕 난리들을 치겠구나. 허깨비들의 한바탕 난리는 금방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한다. 주문을 왼다. 아멘, 나무관세음보살!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개인용 마이크, 소셜 네트워크 (조재희)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의 미니홈피에 방문했다. 홈페이지 방명록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갖 비난과 욕설로 도배가 돼 있었다. 원인은 웹상의 한 동영상에 있었다. 영상의 제목은 ‘지하철 막말남’이었다. 한 청년이 지하철 내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상대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다. 이를 목격한 시민이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다. 그 후 이 영상은 인터넷에 던져졌다. 한 트위터 글은 수없이 리트윗되었다. 글의 내용은 ‘지하철 막말남은 OO대학교 OOO’였다. ‘막말남’의 신상을 공개하는 글이었던 것이다. 동명이인들의 미니홈피는 테러를 당했다. 내 친구도 그 중 한명이었다. 해당 학교의 게시판 또한 그러했다. 잠시 뒤 학교는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동명의 재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한 네티즌의 작은 장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동명의 학생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순식간에 ‘패륜남’이 되었을 것이다. 네티즌들의 공공의 적이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허위 정보 유포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 여자 아나운서가 투신자살로 사망했다. 이 사건은 SNS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은 미니홈피의 게시 글에서 시작됐다. 아나운서 본인이 직접 올린 글이었다. 글은 현직 야구선수와의 성적관계를 담고 있었다. 잠시 후 최초의 글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이미 수습은 불가능했다. 아나운서의 사생활은 전달에 전달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SNS라는 확성기가 이용됐다. SNS 사용자들은 각기 한마디씩 보탰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많은 루머와 추측이 더해졌다. ‘소셜이 아닌 소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끝내 해결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개개인에게는 짧은 글 한마디에 불과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처럼 한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는 SNS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 주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 없이 정보교환이 가능하다. 가족, 친구들과 언제든 안부를 주고받는다. 정치인, 연예인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SNS가 계층 간의 소통통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대중에게 알릴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목적 지향적인 참여행위가 유도된다. 최근의 반값 등록금 시위가 대표적이다. 이들을 한 곳에 모은 힘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였다. 이처럼 SNS는 우리사회에 많은 순기능을 한다. 이미 대세가 돼버린 상황 또한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부작용을 이대로 방치할 순 없다.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의식과 가치관 형성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로썬 충분치 않다. 인터넷 전반의 문제 또한 개선돼야 할 것이다.  

 미디어는 하나의 중요한 권력이다. 이를 이용해 ‘개인 대 집단’의 구도에 놓일 땐 폭력이 될 수 있다. SNS를 통해 개인용 마이크를 하나씩 갖게 되었다. SNS는 자신만의 일기장이 아닌 것이다. 의사표현을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글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해 고려해봐야 한다. SNS의 발전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는 기성언론의 ‘색깔사냥’, ‘마녀사냥’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면서 그들의 ‘여론 사냥’에 염증을 느껴왔다. SNS는 이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우리가 비판해 온 기성언론의 행보를 따라가선 아니 된다. ‘신상 털기’에 이은 인신공격은 ‘여론 사냥’과 다를 바가 없다. 양자 모두 ‘무차별, 무책임 공격의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인 전국 트위터 강정당 회원들이
지난 7월 2일 제주시청 앞에 모여 강정마을 “절대보존지역해제” 취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처럼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중이 참여를 유도하는 힘으로 SNS가 활약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최근 포털사이트의 신상정보유출이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개인정보가 개인의 것이 아니 게 된 것이다. 이는 무분별한 ‘신상 털기’에 힘을 보탠다. SNS의 빠른 정보 교류는 이에 날개를 달아준다. ‘신상 털기’는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한다. 이 과정에서 법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허위 정보일 경우의 구제수단도 없다. 포털 사이트들의 레이아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SNS의 글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글의 위치는 뉴스와 인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SNS의 글은 뉴스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 더해져 있다. 필터링도 전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공공 혹은 전문가의 의견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들도 주의해야 할 상황이 있다. SNS에서 드러난 사실이나 주장을 기사화할 때이다. 해당 주장이 극히 일부분일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여론을 잘못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를 접하는 시간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문이나 이메일을 접하는 시간보다 많다고 한다. SNS 신뢰도 조사의 결과도 주목해볼만하다. SNS의 정보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40%나 되었다.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12.3%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였다(출처 - 에스코토스 컨설팅 '2011년 소셜미디어 참여 연구'). 기성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들의 수는 상당하다. 이들에게 SNS는 ‘개인 언론’이 되었다. 기성언론이 무관심한 영역에 대한 ‘대안 언론’이기도 하다. 기성 언론의 권력자들은 SNS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SNS의 심각한 부작용을 이유로 든다. 우리 스스로가 정화하여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사리 만든 ‘민주주의의 통로’를 확고히 할 수 있다.


년간의 유엔인권활동 마무리, 비판, 그리고 다시 활동을...... -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올해 6월 3일 프랭크 라 뤼 유엔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17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국 표현의 자유 보고서(8개 분야, 16개의 권고안)를 발표하였다. 한국 상황에 대해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많지만 결론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이명박 정권이후에 한국에서의 전반적 표현의 자유는 후퇴되었고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두드러지게 위축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권고안을 이행하기 위해 정부 측과 국회(천정배 의원실), 그리고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이 공동으로 8월 17일에 국회에서 보고서 후속이행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로써 2008년 8월 유엔특별보고관에게 최초로 한국에 인권침해 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후 3년여의 유엔인권활동(엄밀히 말하면 유엔 특별절차에 진정한 이후 진행되는 프로세스)이 마무리 되었다.  


지난 5월 말 유엔인권이사회 17차 세션 한국 NGO 참가단 출국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지만 이 활동은 2008년 촛불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 광우병수입협상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그해 6월을 정점으로 정부의 심각한 탄압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민변을 포함한 인권시민노동단체들은 유엔이라는 상대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외부기구에 한국 인권침해상황에 대해서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요청하는 유엔특별절차(UN Special Procedures)를 활용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국내단체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함께 2009년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과 아시아 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결국 한국의 상황을 인식한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2010년 직접 한국을 조사 방문하였고, 이를 2011년 6월에 보고서로 발표한 것이다. 이를 위해 꼬박 3년 동안 국내 수십여 인권, 시민, 노동단체들이 연대활동을 하였고 국제인권단체들도 많은 수고를 기울였다.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단체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고 나름 상세하게 한국 표현의 실상에 대한 언급과 함께 적절한 권고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단체들 간에는 성공적인 활동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다른 유엔활동인 유엔 조약기구 활동(한국이 가입한 국제인권조약의 이행을 감시하는 기구에 NGO 보고서를 제출하는 활동)도 그렇지만 한국 정부에 대한 권고안이 강제력이 없기에 정부에서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 이번 권고안에도 포함되었지만 유엔의 권고안들의 상당수가 1995년도부터 반복되고 있다.(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기존 유엔권고안에 대한 이행 등) 그래서 유엔권고안에 대한 실효성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고 있다. 또한 이행평가 토론회에서 정부담당자는 “특별보고관 보고서의 권고사항 이행계획을 수립할 예정이 없다”고 발언했다. 또한 이번에 같이 활동했던 활동가는 “유엔의 활동은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얻어지는 결과(권고)도 나쁘지 않지만 들어가는 품은 많은데 비해  실효성이 부족하여 피로함이 높은 활동인 듯하다”라고 평을 하기로 하였다. 일리 있는 평가이다.  

 상반된 평가 속에서 유사하지만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유엔 UPR(국가별인권상황정례검토)활동이다. 아직 제대로 된 평가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누군가는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활동은 활동가의 상상력을 빼앗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든다고 한다. 나 역시 스스로 내적인 평가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한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한 번의 시도로 잘못된 구조와 현실이 변화된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정말 비현실적인 기대일 뿐이고, 몇 번을 해도 여전히 국가보안법과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있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 될 때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까지 계속 맨땅에 헤딩도 하고 계란으로 바위도 치고 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지금은 냉정한 평가와 이성적 판단보다는 우직하게 한 우물을 깊게 파내려가는 우공이산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분명히 내 자신의 합리화임이 틀림없다!!


오세훈은 어쩌다 오세이돈이 되었나(이재성 위원)

- 한 정치인의 우생학적 퇴화에 관한 짧은 기록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국회의원 시절의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종로 담당 사건기자였고, 오 시장은 막 국회의원에 당선된 새내기 정치인이었다. 환경운동연합 사람들을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그와 합석하게 됐다.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그는 환경운동연합 회원으로서 나름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피 끓는 청년이었던 나는 대놓고 물었다. “왜 하필 한나라당이냐”고. 그리고 내친김에, 김영삼의 신한국당과 전두환의 민정당, 박정희의 공화당, 이승만의 자유당 등 한나라당의 뿌리를 언급했던 것 같다.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본산이라는 말까지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뜻은 통했을 것이다.

 조용한 카페였고, 환경운동연합 사람들과 함께 간단히 맥주를 마시는 자리였는데, 뜻밖의 질문을 받은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뭐라 반박도 하지 않고, 변명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 그가 아직 한나라당 입당의 논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명분이야 애초부터 있을 턱이 없었다. 정치를 하고 싶긴 한데,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게 됐다.

 그런 시선을 의식해서였을까, 국회에 들어간 그는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과 보조를 맞춰 당을 개혁하려고 했다. 5·6공 세력 용퇴를 주장하며 17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는 약간 멋져 보이기도 했다. 그런 개혁 이미지 덕에 그는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고, 강금실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시장에 당선됐다.

 서울시장이 된 그가 처음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정책은 ‘현장시정추진단’ 신설이었다. 서울시 공무원 3%를 일률적으로 솎아내 쓰레기 줍기 등 허드렛일을 시킨 것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줘 스스로 그만두게 하려는 구조조정 방안이었다. 철밥통 공무원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불만을 이용해 대중적 인기를 얻어보려는 책략이었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방식에 공무원들은 경악했고, 여론의 지지도 시원치 않았다. 아마도 우익 인기영합주의자로서 오 시장의 면모가 처음 드러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때 생긴 오 시장의 별명이 다섯살훈이다.


파괴된 서울시청사의 모습

 오 시장이 도덕이나 원칙, 역사를 중시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내 드러났다. 이른바 서울시 청사 기습 파괴 사건이었다. 서울시 청사를 리모델링하려는 서울시와 갈등을 빚던 문화재위원회가 등록문화재인 서울시 청사를 사적으로 격상시키려하자, 서울시가 건물 일부를 기습적으로 부숴버린 것이다. 풍납토성 유적 발굴지를 훼손했다고 경찰에 입건됐던 재건축아파트 주민들이 혀를 내두를 일이었다. 나는 이 사건이 오 시장의 사람됨을 판단하는 중대한 시금석이었다고 본다. 자신에게 득이 된다면 문화재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든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장으로서 이렇다 할 치적이 없던 오 시장은 본격적으로 이명박 따라 하기를 시작한다. 청계천 복원을 흉내낸 한강르네상스, 서울광장을 흉내 낸 광화문광장(잔디와 콘크리트의 차이?), 대운하 사업을 흉내낸 경인아라뱃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이명박 대통령이 구상만 밝히고 임기 내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를 흉내낸 세빛둥둥섬 등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토건사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대선 성공 모델인) 전임자의 길을 좇아 대권을 향한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 시장에게는 이명박 같은 천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이 완공되자마자 하늘은 집중호우를 뿌려 광화문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올해는 광화문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곳곳이 쑥대밭이 됐고, 급기야 우면산마저 무너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시민들은 오세이돈이 경인 아라뱃길 사업으로 서울을 베네치아처럼 만든다더니 진짜 물바다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오세이돈과 더불어 오잔디라는 별명도 얻었다. 서울광장 잔디를 새로 깔자마자 큰비에 둥둥 떠버렸기 때문이다. 세빛둥둥섬은 개장 행사인 모피 패션쇼 뒤 문을 닫았다. 누리꾼들은 세금둥둥섬이라고 불렀다.

 정확히 말하면, 오세훈의 불운은 단순한 천운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지 못한 아둔함에서 기인한다. 이명박의 청계천은 비록 짝퉁이긴 하지만 ‘복원’이라는 환경 운동적 화두에서 출발한 사업이었다. 서울광장 역시 민주적 도심 공간 마련이라는 관점에서, (잔디 광장이라는 형태로) 왜곡되긴 했지만, 일정정도 서울시민의 바람을 담아낸 것이었다. 이명박은 자신의 전공을 십분 살려, 당시 시대적 화두였던 ‘환경’을 ‘토건’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오세훈의 토건사업에는 아무런 논리도 파토스도 없다.

 요즘 뜨거운 논란의 대상인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도 마찬가지다. 오 시장은 이번에도 시대정신을 놓치고 있거나, 거꾸로 읽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후보였던 시절, 환경이 화두였다면 지금은 복지가 화두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7일 오전 서울 을지로입구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오는 24일 실시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홍보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복지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반(反)신자유주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고삐 풀린 시장독재를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가 전 지구적 과제가 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의 복지 확대론은 대한민국의 경제규모에 걸맞는 수준의 복지를 확충해, 경제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수준이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좀 더 근본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했다. 부자감세와 재벌 몰아주기(고환율·법인세 삭감·4대강) 정책으로 재정은 바닥나고 (고환율 정책의 결과) 물가는 치솟고 있다. 700조원의 가계부채와 폭등하는 전셋값, 악무한적인 사교육비 등등 서민생활은 파탄으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 관련 예산은 되레 깎았다.

 전통적인 가정이 빠르게 붕괴하는 가운데 아이 하나 키우는 일은 전쟁이 된 지 오래다. 저출산은 국가적으로 생산력 저하의 문제겠지만, 가계로서는 가장 직접적이며 비통한 생존의 선택이다. 무상급식을 넘어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국가가 제도로 책임져주지 않으면, 그런 국가를 저버릴 수 있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고 있다.

 오세훈의 결정적 패착은, 유권자들에게 생존의 문제가 된 복지정책을 대권가도의 재료로 바라본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의 무상급식 공약이 진보진영의 뜨거운 호응을 얻는 걸 보면서, 오 시장은 여기에 각을 세운다면 보수진영의 강력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덫에 걸린 것이다. 그가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천명하자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바보 같은 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한나라당은 선거에서의 유불리와 이념적 선명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 마당에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는 정책을 들고 나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 안되지만 무상보육은 필요하다는 황 원내대표의 논리는 전 국민적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오 시장은 주민투표 안건을 이리저리 바꿨다. 스스로 주민투표의 불필요성을 인정한 꼴이다. 차기 대선 불출마도 선언했다. 시민들은 그가 차차기를 노리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말이다. 오꼼수라는 별명만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  

 오 시장은 이제 대권 욕심에 눈먼 정치인을 넘어, 정치적 무뇌아로 인식되고 있다. 영리하게도 좌파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복지에 한다리를 걸치며 민심의 눈치를 보는 박근혜와도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오 시장은 마키아벨리스트 중에서도 급이 낮은 저질 마키아벨리스트다.

 재미있는 건, 그런 오 시장을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든 도우려 한다는 점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해야 하나. 오 시장과 이 대통령에게 관중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 춘추시대 철학자 관자의 어록 중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스스로 물어보라. 이 중 어디에 해당할지.

“왕도의 주군은 백성의 지지에 승부를 걸고, 패도의 주군은 군대의 지지에 승부를 걸며, 쇠퇴하는 주군은 지배계급의 지지에 승부를 걸고, 망하는 나라의 주군은 여자나 보석에 승부를 건다.(王主積于民 覇王積于將士 衰主積于貴人 亡主積于婦女珠玉)” <관자> 「추언편」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오리무중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2005년 28사단 GP 총기난사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한 지 6년 만에 해병대 총기사건으로 안타까운 젊은 청춘 4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총기 사건 하루 전날에는 해병대 2사단 병사가, 일주일 후에는 해병대 1사단과 2사단에서 병사와 원사가 각각 자살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특공여단 병사 2명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 직후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군 관계자들은 앞 다투어 진단과 대책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인에 대한 정밀진단 없이 사후약방문식의 진단과 처방이 난무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이 요구한 인권실태조사는 해병대사령관의 공문 하나로 거절당했고,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토론회는 발제문 하나 없이 “모범생인 줄 알았던 자식이 비행청소년이더라”는 말도 안 되는 장관의 잔소리로 끝을 맺었다. 며칠이 지나 이명박 대통령은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발언을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대가 과거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그보다 더 좋아진 사회에 우리 군이 적응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대통령이 헌법 제69조 취임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증진을 엄숙 선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장병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인식이 이러함에도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국회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GP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윤광웅 국방부장관 해임안을 제출함과 동시에 현 원내대표인 황우여, 원희룡 의원 등이 앞장서서 이와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해병대 총기 사건 이후, 야당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국방장관 해임안과 국정조사권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는커녕 단 한 명의 의원도 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포기한 무능한 야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해야 하는 것은 문민우위 헌법 하에서 지고지순한 진리이다. 하지만 국회 국방위원회 차원에서 단 한 차례도 전군에 대한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없다. 야당은 지금이라도 해병대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방장관 해임안을 제출해야 하며, 국정조사권 발동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군인권법과 국방감독관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 전체가 군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단 한 차례도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하지 않았고, 1950년대의 큰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87년 민주항쟁 이후에도 군대는 성역화 되다시피 방치되어 있었고, 민주화운동을 한 386들은 대부분 감옥살이로 군을 면제 받은데 따른 군대 문제에 대한 자기검열로 인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거대한 병영사회이며 군사주의 문화가 민간에 미치는 영향이 큼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변혁하지 않은 채 인권, 노동, 여성운동이 진일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지난 7월 5일 오전 해병대 장병들이 강화도 해안 초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해 25만명 가량이 군에 입대하고, 그만큼의 인원이 전역을 하고 있다. 군 입대를 앞둔 예비 입영자들은 인생의 막장에 들어가는 것처럼 불안해한다. 전역한 예비역들은 ‘지금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라며 자신의 군 생활에 대해 거들먹거리는 식으로 불안을 부추긴다. 군대에서 당한 인권침해를 커밍아웃(?) 하거나 간증(?)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발상일까?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옹졸함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흔히 남자는 모름지기 군대를 다녀와야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전혀 신성하지도 않고, 인간이 되기보다는 사육되어 길들여지거나 전역 한 후에 다시 군대 가는 악몽을 꾸는 등 무의식 속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러한 트라우마가 왜곡되어 집단화된 남성동맹이 민족주의와 만날 때 집단적 광기를 발현하며 군가산점제 부활에 편승하여 여성과 장애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당당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거나 전역 후 집단소송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스스로의 존엄성을 찾고, 국가에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세상에 맞을 짓은 어디에도 없고, 손으로 때리는 것만 폭력이 아니고, 갈굼, 언어폭력도 폭력이다. 존엄성이 파괴된 군대는 군대가 아니라 양아치 집단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도 강원도 화천 모 부대에서 총기 사건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군에서 억울하게 죽은 젊은 원혼들의 한을 달래는 굿판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무늬만 글로벌 캠퍼스? (유혜진)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학기,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전철역까지 운행하는 학교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지 5분 남짓.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곳이 한국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이어폰 사이로 오고가는 수많은 중국어의 행방이 궁금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버스 뒤편을 바라봤다. 버스 한 쪽에는 10여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중국의 대학교인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옆에 앉아 있던 히잡을 두른 여학생이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나는 2년 전 지도 교수님과 함께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배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3일만 시간을 내달라는 교수님의 부탁에 나는 흔쾌히 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오리엔테이션은 교수님이 사적인 시간과 비용을 들여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해마다 대학 당국이 뽑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증하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교수님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신 것이었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 지인을 따라 혹은 자국에서 입시에 실패한 외국인 유학생이 대학 입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여느 유학생처럼 서툰 외국어(한국어) 실력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 문화와 대학 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빠르게 3일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 2년 동안 통 연락이 없던 이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동안의 한국 생활이 어땠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쉴 새 없이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어 장벽이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초라며 한 발짝 물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대학 당국과 한국 학생에 대한 비판은 그칠 줄 몰랐다. 해외에 지사까지 두고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때 대우와 한국에서의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의 Y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장OO씨(25)는 "각 대학별로 유학생 지원 담당자가 있긴 하지만 증가하는 유학생의 수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의 수강이나 언어, 학교생활 등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 고 털어놓으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유학생에게 친절한 교수님도 있지만, 외국인 학생을 한국 학생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정OO씨(23,여)는 "일부 유학생이 대리출석을 하거나 학기 내내 결석을 하고 시험만 보는 경우도 있어 우려가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2010년 Y대를 졸업하고 취업한 중국인 루OO씨(26)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엄격한 외국어(영어나 일본어) 실력이 요구되지만 일부 지방 사립대를 중심으로 한국의 대학 입학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대학 입학 기준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는 후문을 들려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한국 학생들의 이중적인 시각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백인 유학생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비롯되는 인종차별적 대우는 대부분의 학생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바였다. 대다수 한국 학생이 자신의 학교가 외국인 학생이 많은 '글로벌' 캠퍼스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강의실에서는 유학생을 외면하기 십상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학점 경쟁이 심한 오늘날, 함께 팀 프로젝트를 진행해야하는 경우라면 함께 과제를 풀어나가는 기쁨을 얻기보다 다른 팀원에게 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실제로 서울의 S 사립대를 다니는 한국인 유란희(23,여)씨는 "중국어나 일본어 강의가 개설되면 한국 학생의 상당수가 자신들의 강의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경험담도 털어놨다. 일부 동아리나 언어교환 프로그램, 몇몇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면 대다수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과 어울리기는 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의 수가 급증하고 있지만 캠퍼스 내에는 그 어떤 제도적, 인식적 차원의
개선도 일어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캠퍼스 내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학과 단위의 자치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에서 어눌한 말투를 가진 외국인 유학생의 자기소개를 듣는 일은 이제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강의실에서도 팀별 과제를 위해 팀을 짜다보면 외국인 학생 한두 명쯤은 함께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3700여 명에 불과했던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2003년 1만 명을 넘어서더니 2010년에는 8만 3000여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전체 대학생 중 0.1%에 불과하던 외국인 유학생 비율은 이제 2.3%까지 증가하게 된 것이다. 양적인 캠퍼스 글로벌화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지만, 그 내실은 어떠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차적인 성찰은 외국인 유학생의 학생 수를 늘리는 데만 급급한 대학 당국에게 필요하다. 대학 당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대학의 '글로벌화'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많은 외국인 학생을 유치해 한국 학생과 유학생 모두의 학업과 연구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 수만을 늘려 각종 대학 평가의 국제화 지수에서 높은 점수를 얻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일부 지방 사립대는 부족한 대학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정원 외 선발이 가능한 외국인 유학생을 무분별하게 선발해왔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를 방관한 채 쉽게 입학 승인을 해주었다. 유학생의 양적 증가에만 몰두한 나머지 학생 관리 서비스가 부실함은 물론 한국 학생들의 인식 개선도 이뤄지지 못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빚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얼마 전 외국인 유학생의 중도탈락이나 불법취업이나 불법체류 등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화' '다문화'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화두다. 대학도 앞장서서 이 트렌드에 맞추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수적인 증가와는 반대로 질적인 차원의 '글로벌화'에 대한 의문을 감출 수가 없다. 적절한 제도와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는 자세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면 이는 사실상의 '폭력'과도 같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오는 길, 이슬람 문화권에서 온 한 친구가 자신은 언제쯤 교내에서 마음 놓고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혁명과 촛불: 아주 짧은 인권의 세계사(육영수 위원)

육영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프랑스혁명이 연상시키는 공포의 상징물인 기요틴은 사실 평등하고도 인도주의적인 죽음을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혁명이전의 앙시앵 레짐(구체제)에서는 출생과 사회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의 사법적인 죽음이 선고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목을 베는 참수형은 귀족에게만 허용된 특권적 죽음이었고, 제3신분으로 분류되었던 평민 범죄자들은 목을 매는 교수형으로, 이단이나 마법과 수간(獸姦) 같은 도덕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몸을 형틀에 묶은 뒤 뼈를 체계적으로 부러뜨려 목숨을 빼앗았다. 사지를 찢어 죽이는 가장 야만적인 능지처참 형벌은 왕에 대한 반역죄를 감히 도모한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다.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혁명 덕분으로 신분의 높고 낮음과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죄인들은 공평하게 고통 없는 찰나적인 참수형을 맞이했던 것이다.  

 위와 같은 끔직한 ‘죽음의 평등’ 외에도 프랑스혁명은 근대적인 인권개념의 탄생지라는 평가에 걸맞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개혁을 실천했다. 고문과 노예제와 같은 비인간적인 제도가 철폐되었을 뿐만 아니라, 배우(!)와 유대인 및 사형집행인과 같은 직업적·인종적·종교적 소수자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리고 “인간의 여러 권리들에 대한 무지, 망각(소홀), 또는 멸시가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낳은 유일한 원인”이라고 천명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서〉(1789년)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인권의 중요성을 계몽하는 좌표가 되었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며”, 안전과 압제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이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의 하나”라는 조항들은 근대 인권이 지향·성취해야 할 기본목표를 명시했다. 

 유감스럽게도, 근대적 인권의 탄생이 인간성의 자동적인 성장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행진하지 못하고 때로는 소용돌이에 휘감기며 때로는 위험한 여울목에서 실종되거나 익사한다. 예를 들면, 1792년의 자유로운 이혼법은 나폴레옹의 등장과 함께 가부장권의 손아귀에서 옥죄였다가 왕정복고와 함께 1816년에 취소되었다. 아이티혁명의 흑인영웅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로 잡혀와 외딴 감옥에서 1804년 사망했고, 1830년부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이슬람교도) 남성들은 뒤늦은 1947년에야 공민권을 획득했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서〉가 보편적인 원칙으로서 인권의 청사진을 제공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성―계급―인종의 편견과 차별에서 유래하는 인권의 억압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오늘날 관점에서 되씹어보면, 남녀평등, 성소수자의 권리, 노동과 복지의 권리, 휴식과 사생활의 권리, 이주외국인의 국적획득과 귀화의 권리 등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혁명적 과제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다. 

 민족/제국주의 시대라고 알려진 19세기 후반부에서 냉전시대로 특징되는 20세기는 역설적으로 인권의 중세(암흑)시대였다. 민족‘자결’주의라는 배타적인 신념은 다른 언어적·종교적·인종적 소수민족들을 증오하도록 선동하는 나팔소리로 전락했고, 좌파/우파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무한경쟁의 수레바퀴 밑에서 인권은 산산이 조각나고 깜깜하게 감금당했다. 1944년에 영국과 소련은 곧 출범할 유엔헌장에 인권 항목을 포함시키자는 다른 나라들의 제안에 반대했고, 미국은 모든 인종의 평등에 관한 구절을 포함시키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바야흐로 인권은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통제하고 배급해야 할 권력으로 변질했으며, 동시에 특정 이데올로기적 올바름을 후원하고 확장시키는 무기로 작용했다. 이런 세계사적 위기 속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서〉의 기본정신을 계승·발전시킨 〈세계인권선언문〉이 1948년 유엔의 주도하에 발표되었다. 프랑스혁명이 발생한 150년 후에야 인권은 비로소 재 정렬된 기준선에 서서 힘찬 달음박질의 호각소리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 인권선언문
사진 출처 - 네이버

 우연히(?) 〈세계인권선언문〉이 공표된 1948년에 독립국가로 출범한 우리나라가 지난 반세기 동안 경험한 인권의 역사는 어떤 무늬와 빛깔일까? 제1공화국 이승만 독재시절→박정희 제3공화국과 유신정권→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이명박 정부를 거치는 동안 이 땅에서의 인권은 어떻게 부침하고 왜 후퇴했는가? 독재자를 하와이로 내쫓았던 4·19 학생혁명의 값진 희생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폭력에 맞서는 촛불축제로 부활하는가? 공기관의 민간인 불법사찰, 쥐(G)20정상회담 포스터 농담사건, 창공의 크레인에 위태롭게 고립된 노동권 등 시대착오적인 인권침해의 ‘배후’에는 누가 비겁하게 숨어 있는가?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심각하게 성찰하는 시간이야말로 이 땅에서 ‘인권적 인간형’이 단련되고 숙성되는 위대한 순간이다. 강조하건대, 누구의 이름을 ‘대한민국 인권탄압 실명사전’에 기록해야 하는지 우리는 (장마더위보다 더 짜증스러울 정도로) 물어보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좋은 질문은 틀린 대답을 늘 이기기 때문이다.

육영수 위원은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