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 -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이스라엘은 적입니다. 그들은 내 고향인 레바논, 그리고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이웃이 아닙니다.”

와엘 사브 회장은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다. 레바논이 고향이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그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반응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오랫동안 체득한 처세술인 듯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이스라엘은 중동 평화 문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웃나라인 레바논 사람으로서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5월22일부터 28일까지 8일 동안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방문했다. 6주에 걸친 순회특파원 일정 중 첫 단추를 중동으로 꿴 셈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격변과 침묵, 경제적 번영과 답보를 대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기 위해 만나는 중동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이스라엘과 관련한 많은 질문을 던져보려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만나본 ‘중동’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공통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무력을 앞세워 이웃나라를 힘으로 위압하고 영토를 불법점령하고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그리고 그런 깡패 짓을 대놓고 하는데도 말리는 건 고사하고 편만 들어주는 미국에 대한 불만이 두 번째였다. 그것은 마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모든 학생들이 미워하지만 ‘완력’에 밀려, 그리고 학교가 채워준 ‘완장’에 눌려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는 학교 규율부장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사업가로 일하는 한 이라크인 알리 가잘은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이건 누구건 우리처럼 사업하는 사람에겐 아무 상관없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미국은 십년 넘게 사담과 친구로 잘 지냈고, 그 뒤로도 딴 짓 못하게 막아만 놓고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뒀다. 그러다가 왜 갑자기 쳐들어와서 이라크를 난리판굿으로 만드는가. 사담이 대통령일 때 나는 이라크에서 기업하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오히려 사담이 무너지고 나니까 극단주의자들이 내 공장을 불질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이민 올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업관계인 다른 이집트인 이햅 옴란의 말은 더 냉정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나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믿지 않는 것처럼 미국도 믿지 않는다. 왜 중동 평화가 안 되는가. 우리는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데 이스라엘이 평화를 원치 않는다.”

두 사람은 종교간 갈등이라는 인식에 대해서도 단호히 손을 저었다. 가잘은 “이라크에 유대인이 많이 산다. 천년 넘게 아무 문제없이 다들 어울려서 평화롭게 살았다. 중동 국가 어디에나 유대인들이 산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은 지금 어떤 처지인가.”고 반문한다.

이집트인 에즈딘 엘하산은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이 미국에게도 손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랍은 원래 상인문화가 발달해서 미국과 정서상 더 잘 맞는 곳”이라면서 “미국이 이스라엘만 옹호하면서 중동권에 반미 정서가 퍼졌고 결국 많은 중동국가가 소련과 가까워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는 “미국은 이스라엘을 얻는 대신 전체 중동권을 잃었다.”는 것이다.

6주간 순회특파원의 핵심 주제는 ‘공공외교’였다. 공공외교는 한국에선 생소한 개념이지만 간단히 말해 ‘상대방 국민의 마음을 직접 얻는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 외교가 외교관 대 외교관, 정부 대 정부라면 공공외교는 주체가 정부일 수도 있고 시민단체일 수도 있다. 대신 대상은 상대국 정부가 아니라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공감’인 셈이다. 문화외교, 학술교류는 물론 개발원조단체들의 활동도 공공외교에 포함된다.

한국 같은 나라에게 공공외교가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4대 강대국에 둘러싸이고 분단된 상황에선 힘으로 밀어붙이는 외교는 물론이고 한류 자랑만 하거나, ‘자랑스러운 1만년 역사’같은 허황된 국수주의 경쟁을 벌이거나, 다른 이웃은 나몰라라 하고 특정 이웃만 ‘편애’하는 행태 모두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란 문제의식 때문이다. 가령 ‘한미동맹’을 되살린다며 남의 나라 대통령 골프차량 운전이나 해주고 쇠고기 받아오는 방식은 접어두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상대국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는 걸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각인시킬 것인가, 이는 우리는 어떤 나라를 알릴 것인가란 주제로 직결된다. 고민은 근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가’란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얻어냈다. 이스라엘계 로비단체인 AIPAC는 미국 내에서도 최대 최고 로비단체다. 아무도 이 단체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중동인들의 ‘불신’을 보면서, 그리고 이집트 다음으로 찾아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한 각국 문화축제에서 팔레스타인 부스 앞에서 땡볕에 길게 늘어서 있는 헝가리 시민들을 보면서 나는 이스라엘 ‘공공외교’의 빛과 그림자를 본다.


 9월 런던에서 열리는 ‘템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은 YG 가수들의 공연을 촉구하는 영국 팬들의 플래시몹 시위
사진 출처 - YG엔터테인먼트

하긴 멀리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점령’하고 있다는 한류를 통해 달러 좀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해외에서까지 ‘K팝 공연 촉구 플래시몹’이란 신종 관제데모까지 만들어내고 한류를 무슨 신성장동력이나 되는 듯이 난리치는 정부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한류에 취한 한국의 슬픈 조급증과 물욕을 본다.  

 우리는 한류가 세계 만방을 '점령'해서 그 덕에 이수만 같은 사람이 달러 많이 벌어들이는 나라를 원하는건가? 독도 문제를 이슈해 보려는 일본 의원 세 명에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며 군복입은 아저씨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동계올림픽 한다고 개발업자들 배불려 주고 이건희 회장 사면에 면죄부를 주는 나라를 원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182억원을 들여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단계적 무상급식을 할 건지 물어보는 걸 주민투표랍시고 하는 나라를 원하는가? 

 우리는 어떤 나라를 원하는 것일까. 그게 해결이 안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외국에 알릴지가 해결이 안된다. 그게 안되면 글로벌만이 살길이니 해외 인재 영입해야 한다며 인도 사람 채용해놓고 고작 한국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며 삼겹살에 소주로 밤샘시키는 짓이나 벌이는 어떤 나라 대기업처럼 되기 십상이다.


돌아다니기 참 힘드네요 (김미영)

김미영/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약 세 달 전 다리를 다쳤다. 순간 넘어지면서 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인대가 늘어난 것은 뼈가 부러지는 것보다 더욱 오래 아플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몇 주면 나을 것 같았던 다리는 한 달이 넘고 두 달, 세 달이 넘어도 완치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가 다쳤으면 집에서 가만히 쉬어야 하지만, 참 무던히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아프면 쉬지 뭐 하러 밖에 나와”라고 말한다. 하지만 매일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는 내게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를 목적지까지 에스코트해 줄 백마 탄 왕자님이나 순간이동 초능력이 없는 한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어쨌든 일단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다리 한 쪽을 다쳐 걷는 것조차 힘든 나에게 서울 곳곳은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자취집 바로 앞에 있는 학교에 가는 것도 고역이다. 매일 다녔던 길이지만 아침마다 차가 많이 지나가는 줄 몰랐다. 길을 가다 내 주위로 차가 오면 잠시 긴장한다. 예전 같으면 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빨리 움직일 수 있었지만, 절뚝거리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는 차를 제 때 피할 수가 없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너무 일찍 빨간 불로 바뀐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나는 반도 건너지 못하다가, 내 바로 앞에서 우회전하는 차에 깜짝 놀란 적도 많다. 

 특히 내가 다니는 학교는 경사가 심하다. 2년 전부터 학교 초입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지만, 등교하는 것은 여전히 괴롭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왔어도 수많은 계단과 비탈을 지나야 한다. 더욱이 요새는 캠퍼스 내에 공사장이 많아졌다. 공사장 때문에 길이 막혀 우회해야 하거나, 좁고 안전하지 못한 길을 택해야 한다. 평소에 학교 다닐 때에는 그저 작은 불편함이었지만, 다리를 다친 나에겐 불편함을 넘어선 공포였다. 

 지하철을 타는 것은 더욱 문제였다. 지하철은 버스처럼 오르막, 내리막길을 지나거나 커브를 돌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하지만 너무 계단이 많다. 물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 수가 너무 적고 찾기도 힘들다. 하차한 후 엘리베이터가 내가 내린 승강장에서 불과 20m 안에 있는 경우는 행운 중의 행운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50m, 70m, 심지어 100m 이상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출구로 나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도 턱없이 부족하다. 승강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찰구를 나오면,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찾아야 한다. 나같이 다리가 아픈 사람들에게는 약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찾아도 문제다. 예를 들어, 5번 출구로 가기 원했으나 엘리베이터가 10번 출구 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서 다시 원하는 출구까지 걸어가든지, 아니면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더 선호하게 된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에스컬레이터의 시동이 꺼져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다리를 다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계단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 많은 곳에서 에스컬레이터의 한 쪽만 시동을 꺼놓는 경우 내려가는 쪽을 꺼놓는다. 사람이 많은 환승구간의 계단 역시 공포의 대상이다. 난간을 잡지 않으면 위태롭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사람들에게 밀리고 치이기 전에 계단 가장자리로 빨리 이동해야 안전하다.  


교통약자들의 이동을 위해 저상버스,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 등의 제도들이 있다.
사진 출처 - 뉴시스

 어려움도 막상 내 일로 닥쳐야 안다고 했던가. 다리를 다치고 나서야 매일 다녔던 길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길인지 알았다. 횡단보도의 너비와 신호등 시간, 엘리베이터의 수, 에스컬레이터의 속도 등등 이전에는 관심조차 없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불편을 경험하지 않는 한 몰랐을 것들이다. 이전에는 ‘저상버스’의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 했다. 계단 높이만 낮을 뿐 다른 버스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불편을 겪고 나서야 저상버스가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었다. 

 ‘교통약자’라는 말이 있다.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등 생활하면서 이동하는데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교통약자는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4분의 1이라고 한다. 교통약자들에게는 이동하는 장소마다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다. 저상버스가 확충되고 지하철 계단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는 등 많은 제도들이 도입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진정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지난 4월부터 ‘2011년도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수립해 순차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1385개인 어린이보호구역을 1505개로 확대, 노인보호구역 13개소를 지정, 보행교통 불편지점에 대한 횡단보도 총 20개소를 개선하는 등 교통약자 우선의 도로환경을 조성해 나갈 계획이라 한다. 이런 대책이 교통약자들의 입장에서 서서 올바로 시행이 되길 바란다. 

 인대가 늘어나서 나는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불편을 겪고 있다. 발목보호대 정도만 하고 다니는 것도 이렇고 불편한데 그동안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들은 얼마나 큰 불편을 겪고 있었을지 새삼 느낀다.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하루에 몇 번씩은 사람들에게 툭툭 치인다. 계단 하나하나, 작은 비탈 하나하나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다쳤다는 이유로 이런 불편을 감수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불편하고 위험하면 나오지 말라는 말은 더더욱 가혹하다. 교통약자는 누구나, 언제든, 어디에서든 될 수 있다. 교통약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라면 모든 이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길이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이 있다. 이 법의 제3조는 ‘이동권’에 대해서 말한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결국 경험하고서야 알았다.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도 우리가 가진 중요한 권리라는 것을.


아주 오래전 이야기 -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단군 이래 최대 국운상승의 기회라고 떠들어 대던 1988년 서울올림픽이 마침내 열리던 그 해, 올림픽을 위해 몇 년간 아침 길거리 청소도 하고, 버스 탈 때 줄도 섰지만 올림픽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치러지지 않았고 아마 한 명의 외국인 관광객도 들리지 않았을 작은 도시의 고등학교에 나는 입학했다.

 작은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역에서 하나밖에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약간의 자부심과 입학식 날부터 밤 11시까지 진행되는 야간자율학습의 고통이 그 시절 내 기억조각들의 대부분이었다.

 그때 내가 중학생과는 다른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은 실제 소총 무게와 비슷한 플라스틱 모형 총을 들고, 허리에는 수통까지 차며, 군복을 입은 선생님에게 제식훈련을 받았던 ‘교련’과목의 등장이었다.

 학년 간 위계질서가 군인들의 계급 간 차이처럼 아주 엄격했던 당시의 고등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을 예비 군인처럼 취급했던 교련과목은 묘하게 어울렸던 것 같다.


1970년대 "목총 들고 분열"
1944~2008년재까지 교육활동 홍보사진과 추억의 교육관련 사진전 입선작 전시회 가운데
1974년 태백 기계공고학생들이 교련시간에 목총을 들고 분열을 하고 있는 모습의 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교련시간도 입시위주의 학교정책 때문에 다른 예체능계 과목과 같이 자율학습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일 년 중에 단 하루 ‘교련’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각인되는 날이 있었는데 그것은 학교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다는 ‘교련검열’이었다.

 교련검열은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토요일 오후 1학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2학년 학생회간부와 교련간부들이 실시하는 일종의 생활지도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단순한 생활지도에서만 끝나지 않고 선배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1학년 학생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런 시간중의 하나였다.

 바로 옆 반의 매 맞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아서 조를 이뤄 끊임없이 들어오는 선배를 맞이하는 1학년들의 심정은 공포 그 자체였다.

 선배들은 머리길이와 옷차림에서부터 교실 청소상태, 심지어 개인의 소지품까지 검사 했고 규정에 벗어난 학생이 있으면 어김없이 뒤로 불려나가 걸레자루로 매타작을 당했다. 그나마 교칙을 위반했다던가 해서 맞으면 좀 나은 경우였고, 이유 없이 불려나가 매를 맞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키가 크다고 다른 큰 친구들과 함께 불려나가 맞았다. 어떤 경우는 아예 반 전체가 대답소리가 작다고 단체로 맞기도 했다.

 ‘검열’을 빙자한 선배들의 공식적인 폭력행사는 교사들의 묵인아래 이루어졌다. 내가 2학년 때 어떤 교사는 수업시간에 웃으면서 “이번 교련검열은 좀 살살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한 선배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오래된 전통이라는 명목아래 학교 구성원들 중 누구하나 문제제기가 없었다. 폭력행위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1학년들조차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분위기 속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지나갈 정도였다.

 그러한 교련검열은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이번에도 중간고사를 치룬 어느 토요일, 학생회 간부를 포함한 수 십 명의 2학년들은 자율학습 중인 같은 반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환호를 받으며 긴 걸레자루를 들고 1학년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1학년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는 아련한 추억의 노랫소리와 같이 2학년들을 미소 짓게 만들 뿐이었다.

 그러나 다음 월요일 학교에 갔을 때 담임은 싸늘한 시선과 함께 다짜고짜 지난 토요일 교련검열 갔었던 학생들을 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난 교련검열 때 걸레자루에 맞은 1학년 학생 중 몇 명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공식적인(?) 묵인으로 일관했던 교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학생들을 다그쳤고 결국 몇몇 가해자 학생들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수 십 년을 내려왔다는 전통의 교련검열은 더 이상 실시되지 않았다.(그 때 교련검열을 하지 못했던 2학년들은 안도했을까? 아쉬워했을까? 아니면 분개했을까?)

 고작 1년의 차이지만 너무나 엄격한 선후배간의 위계질서, 그래서 선배들의 명령이라면 잘못되고 비상식적이어도 전통이란 명분아래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분위기, 자기가 선배가 되어서는 불과 1년 전 자신들의 모습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완벽하게 악습의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묵인하며 방치하다가 정작 사고가 터지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관리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래서 귀신도 잡는다는 어느 부대의 총기사고 전후사정을 들으면서 문득 생각난 아주 오래전 나의 경험담이다.


“2011년 9월 유엔 회의”에서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각성”이지 정치인의 허세가 아니다(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 소장)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 소장
(Dr. Mahdi Abdul Hadi, PASSIA)
http://www.passia.org

 다음은 Mahdi Abdul Hadi (PSSIA 소장,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이 보내온 "2011년 9월 유엔 총회"에서 논의될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승인과 관련한 내용으로 홍미정 교수가 전해왔습니다. 번역을 위해 홍미정 교수와 자원활동가이신 김현수씨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요시 알퍼(Yossi Alpher)가 제안한  "팔레스타인 건국 수용하기"(뉴욕 타임즈, 2011년 6월 24일)는 다음과 같은 부질없는 전제들을 기반으로 한다.  

1)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는 임무를 성취한 것으로 간주하고 사임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권을 행사하면서 협상을 계속 진행할 것이다. 

2) "압바스 수반의 심복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어떤 선거에서도 살아남고, 협상은 “과거와 다름없이” 지속될 것이다!  

3) 팔레스타인 사회는 파타와 하마스로 분할되어 유지되며, 하마스는 그 입장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4) 팔레스타인 국가는 예루살렘에 관하여 타협하지 않고, 난민 귀환권에 대한 공정하고 정당한 유엔 결의안 194호(1948년)를 적용하지 않고 건국될 수 있다.    

5)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국가"라는 용어를 수락하고 영토 교환에 대해 동의할 것이지만, 유엔 분할 결의 181호(1947년)를 완전하게 실행하도록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 181호는 전 팔레스타인 영역의 56.47%에 이스라엘 국가, 42.88%에 아랍 국가, 약 0.65%를 국제 통치 영역으로 규정한다.) 

5)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44년 동안 이스라엘 점령 통치하에서 창출된 "감옥의 문화" 아래에서 계속 지낼 것이며, 파타와 하마스의 화해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붕괴를 포함하여 가자지구로 “이스라엘 행정권”을 조건부로 확장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지침을 수행할 것이다.  

6) 팔레스타인 국가 내에서 이스라엘의 “안보 상황”은 오늘날과 비슷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안보 필요성이 무시되고, 새로운 국가가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보호도 무시될 것이다.  

7) 2002년 아랍 평화안(The Arab Peace Initiative)은 이스라엘이 거부하고 보류한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있다.  

 그러나 너무 늦기 전에, “9월 유엔 회의”에서 이스라엘이 “각성”하라는 조언을 충분히 수용해서 네타냐후 총리와 그러한 부류 정치인들의 허세로부터 벗어나길 바란다.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고 1967년 경계를 국경으로 획정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계획 승인을 위한 제안서를 7월 20일경에 유엔 총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역사적인 결정은 1993년에 PLO-이스라엘이 상호 인정한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러한 결정을 이끈 다음의 A. 내부적, B. 지역적, C. 국제적 요인들은 위의 요시 알퍼의 전제들이 잘못되었음을 명백하게 밝혀준다.


Mahdi Abdul Hadi (PSSIA 소장,
팔레스타인 국제문제 연구소장,
http://www.passia.org/)

 A. 팔레스타인 내부적 요인: 유엔 투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1) 세계무대에서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을 통합하고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의 화해가 활력을 얻을 것이다.

2) 무익한 협상 때문에 발생한 정치적 공백을 채울 것이다.

3) PLO와 PA를 외부 행위자의 영향력으로부터 해방시켜서 분쟁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활동의 장을 열 것이다.

4)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을 동원하여 비폭력 운동을 발달시키고, 아랍의 봄 문화의 일부가 될 것이다.

5)  모든 삶의 측면(교육, 건강, 경제, 관광 등)에 영향을 끼치는 “감옥의 문화”를 종결시킬 것이다.

6)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문을 열어 디아스포라(난민)에서 무조건적인 귀향으로 이끌 것이다.

7)  가자지구의 포위, 폐쇄 그리고 분리를 끝낼 것이다.

 B. 지역적 요인: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중요하다.

1) 아랍의 봄은 시민 국가, 민주주의, 법치주의, 아랍의 존엄성의 탄생에 대한 열망과 함께 전염성 자스민 열풍을 확산시켜 왔다. 팔레스타인도 예외가 아니다.

2) 새로운 아랍 연맹 사무총장 나빌 알 아라비(Nabil al-Arabi)는 협상 과정이 끝난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포스트 빈라덴 시대에서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UN,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2003년 로드맵 협상 때 구성됨) 상황은 과거가 되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재선 운동 기간 동안 행동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유럽 연합 27개 국가들이 전원 합의에 이르지 않을 것이고, 현재 아랍의 통치자들은 정치, 외교, 재정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2002 아랍 평화안을 고수하지도 않고, 미국과 직접 연루되거나 충돌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알 아라비는 유엔이 후원하는 국제회의를 선호하고, 그러한 방향에서 “9월의 유엔 회의”를  “시험대”로 간주한다.

3) 아랍 연맹과 새로운 이집트는 “9월 유엔 회의”를 완전히 지원하고 있으며, 터키는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안을 여러 번에 걸쳐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C. 국제적 요인: 유엔 총회에서 분쟁의 국제화는 다음으로 이끌 것이다.

1) 유엔 총회에서 토론을 위하여, 지난 60여 년 간 실행되지 않은 유엔 결의안을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관련 문서들을 공개할 것이다.

2) 예루살렘에 관한 토론을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즉 독점적인 이스라엘의 도시가 아니라 개방되고, 공유되는 도시라는 인식으로 국제 관리하의 예루살렘(베들레헴 포함)에 관하여 토론할 것이다.

3) 이스라엘의 점령을 종식시키는 것과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반대하여 미국과 다른 몇몇 국가들이 거부권을 행사하였던 것이 드러날 것이다.

4) 유엔 192회원국들 중 대략 2/3 또는 그 이상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명확하게 지지하고 승인할 것이다.

5) 팔레스타인이 국제 사법 재판소를 포함한 모든 국제기구의 정회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6) 팔레스타인에 국제군에 의한 보호를 요청할 기회가 열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의 식민화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국제적인 노력이나 논쟁이 역할을 할 것이다.

7) 초안 협상, 모호한 협상,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체제(PA)라는 오슬로 문화를 끝내고,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가 하나의 국가로 바뀌는 것을 도울 것이다.


미스 리플리(서상덕 위원)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거의 신경질적이다 싶을 정도로 TV드라마를 싫어한다. 거기다 눈물까지 짜내는 멜로까지 합세하면 거의 혐오(?)하는 수준에 이른다. 어릴 때도 온가족이 한데 모여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어머니가 인기드라마를 방영하는 채널로 돌리면 열이면 열 투덜대며 딴 놀이거리를 찾곤 했다.   

 개연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주제나 산으로 가는 스토리, 억지스런 내용까지는 어떻게 근근이 견뎌본다 해도 부조리와 불의를 ‘영웅’이나 ‘성공’이란 단어와 대치시켜버리는 앞에서는, 어떤 유별난 정의감이 있는 게 아닌데도 보기조차 힘겨워질 때가 많았다. 그런 드라마에, 주인공의 부침에 따라 박수를 치기도 하고 혀를 차는 어머니 모습에 짜증을 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한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하는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에 알레르기가 있다시피 한 나로서는 일부러 찾아 ‘본방사수’를 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지만 재미있다는 주위 얘기에 끌려 식당이나 터미널 등에서 사람들 어깨너머로 슬쩍슬쩍 넘겨다본 적이 있다. 이 드라마는 호텔을 배경으로, 화려한 성공과 실패 속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담아낸 전통 멜로드라마를 표방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돈도, 학벌도, 운도 없는, 그래서 부당한 일을 당해도 도망치거나 참는 것으로밖에 세상에 응전할 방법이 없는 낯익은 우리 이웃의 딸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우습게도 단순한 거짓말 한마디에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 않던 문들이 활짝 활짝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이 발견한 현실은 굳게 믿었던 도덕교과서의 내용과는 전혀 딴판으로 속는 사람이 바보고 속이는 사람이 웃는 승리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드라마 '미스 리플리'
사진 출처 - MBC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왜 인기를 끄는 걸까. 아마 지금 당장은 거짓말쟁이가 더 신뢰를 얻고 나쁜 사람들이 더 많은 걸 누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눈앞에서 까발리고 끝내는 그런 삶이 파탄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드라마에서 사회는 여전히 거짓말을 권하는 부조리투성이 세상처럼 보인다.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거짓말은 성공의 계단쯤으로 치부되며 세상살이에 있어 훌륭한 도구로까지 포장된다.

 이 드라마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리플리’는 누구나 한 번쯤을 들어보았을 전설적인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주연한 프랑스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 주인공의 극중 배역인 톰 리플리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가난한 청년 리플리는 부잣집 친구를 죽이고 그의 대역을 하는데 그의 이름은 친구를 모사, 복제(replication)하는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이름을 딴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진짜로 믿고, 현실을 부정하여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정신병리 현상을 말한다. 리플리 증후군에 빠진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살게 되는 인격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이들은 자신이 한 거짓말마저 사실로 믿기 때문에 스스로 거짓말을 인식하지 못한다. 당연히 자신이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때문에 결국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이란 성에 갇혀 스스로를 질식시켜 죽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미스 리플리, 미스터 리플리들이 넘쳐나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하다. 선을 선으로, 악을 악으로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아는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많은 ‘리플리’들이 일취월장, 승자의 권리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도무지 거짓의 꺼풀이 벗겨지지 않을 듯한 우리 사회의 흐름. 이런 숨 쉬기조차 힘들게 느껴지는 공기가 대중들로 하여금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리플리 대열에 끼지 못하면 억울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또 다른 거짓을 가공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미스 리플리’는 거짓말로 만들어지는 달콤한 세상이 곧 악마가 안겨주는 독배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드라마보다 강한 현실의 성에 갇혀 스스로를 질식시켜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 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자연을 허물어 자유를 잃다 - 임아연/ 한밭대 학생

임아연/ 한밭대 학생

 사람들은 높은 담장 안에 스스로 갇힌다. 더 크고 굵고 튼튼한 자물통을 찾는다. 이렇게 자유를 떠나 불행을 택한다. 장담할 수 없는 성공, 부에 대한 욕심, 그 알 수 없는 맹신에 기대어 사람들은 도시로 밀려든다. 그 도시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면 그들은 새로운 도시들을 만들어 낸다.

 필리핀에서 지내온 1년 가까운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의 삶이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우스갯소리처럼 답했다. "아주 좋아요, 마닐라만 빼고." 필리핀 북부에 있는 평균 2천 미터가 넘는 까마득한 산맥을 여행하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두 형제를 만났다.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곳은 어디냐고 물었다. 형제가 대답했다. "다 좋은데… 파리 빼고는."

 파리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확실히 마닐라보단 서울이 좀 더 번듯하긴 하다. 그런데 이런 비교가 무의미 할 만큼 서울도, 마닐라도 너무 복잡하다. 매일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은 끔찍하다. 도심 한복판에서 크게 숨 한 번 들이마시기엔 폐 건강이 염려되고, 잊을만하면 살인사건 뉴스로 세상 흉흉하다. 서울에선 CCTV가, 마닐라에선 정복차림의 경비원들이 수시로 감시하고, 모든 집들의 문들은 둔탁하게 잠겨있다.

 시골로 떠났다. 온 가족이 외출을 하는데 허름한 나무문을 대강 닫아 놓는다. 담은 말 그대로 담의 역할을 하기보다 외관을 꾸미기위한 장식에 더 가깝다. 허리 높이 쯤 되게끔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놓거나 나지막한 꽃나무가 담을 대신하기도 한다. 콘크리트로 두껍게 쌓아올린 벽이 아니라 더운 기후에 맞게 사방이 트인 니파 오두막을 짓는다. 밥 때가 되면 근처 바다 양식장에서 잡아온 물고기와 새우를 바나나 잎에 올려 낸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지니고 있는 필리핀의 민다나오섬
사진 출처 - 한겨레

 적어도 내겐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두 세 개의 문을 지나야만 하는 마닐라보다 바람도 참새도 개구리도 마음대로 집 안에서 쉬었다 가는 시골 마을이 좋았다. 에어컨 빵빵 나오는 기숙사 방 보다 야자나무 그늘 아래 해먹에 누워 낮잠 한 숨 늘어지게 자던 그 시간이 더 행복했다.

 사람들은 지켜야 할 게 많을수록 더 높이 담을 쌓고 여러 겹의 문을 만들어 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더욱 서로를 믿지 못해 감시하고 경계해야만 했다. 흙과 나무보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더 많아진, 도시화된 곳으로 밀려든 사람들이 그랬다. 누군가가 말했다. "'sugar-free.' 있는 게 아니라 없는 게 자유로운 것"이라고.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이 우리나라 평창에서 유치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이 김연아가 프리젠테이션 할 때 입고 나온 옷 브랜드가 어디냐고 관심을 가질 때, 문득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던 나의 20대 초반 그 어느 무렵에 무작정 혼자 찾아간 강원도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큰 품으로 가만히 나를 위로하던, 평화롭던 자연이 생각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곧 몇 년 사이에 그 깊고 울창한 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만들어 질 것이다. 결국엔 자연에게도, 사람에게도 그 터널 굵기 만한 상처가 가슴에 뻥 뚫리겠지. 더구나 개발엔 항상 투기가 쫒아 오기 마련일 테니, 머지않아 '지켜할 게 많은 사람들'이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고속철도가 지나는 길목을 따라 담을 쌓고 두꺼운 자물통으로 스스로 가두려 할 것이다.

 개발로 인한 편리함이 꼭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내가 그러했듯 누군가는 손 때 묻지 않은 자연의 품에서 위로받을 텐데,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그 풍요로웠던 자연이 도시의 모습으로 냉랭하게 돌아서 버릴까 두렵다. 4대강 사업 지역에서 폭우에 쓸려 내려가던 시뻘건 강물이 피눈물 같았는데 이제 강원도의 눈물까지 보게 될까 마음이 무겁다.


오바마가 구상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안과 보편적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 (홍미정 건국대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홍미정/ 건국대학교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요즈음 팔레스타인인들은 오는 9월에 유엔 총회로부터 1967년 6월 경계 내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승인받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우선 팔레스타인인들은 2011년 7월 15일에 유엔 사무총장에게 호소문을 보낼 예정이다. 그런데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UN,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2003년 로드맵 협상 때 구성됨)는 2011년 7월 11일 워싱턴에서 새로운 중동 평화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수뇌 회담을 개최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이 새로운 평화안이 2011년 5월 19일 버락 오바마의 워싱턴 연설에 토대를 둔 것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엔차원에서 국가 건설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워싱턴 연설에서 오바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9월에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받으려는 행위는 이스라엘 국가의 합법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창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동시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안보에 헌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소외시키려는 국제 사회의 토론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오바바의 연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중단시키고, 팔레스타인인들과 그 영토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에 묶어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두 국가 해결안(Two-State Solution), 즉 유대 국가로서의 특별한 정체성을 갖는 이스라엘과 비무장 팔레스타인 국가 계획안을 제시하였다. 이 해결안은 튀니지와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지역에서 진행되는 민주화 요구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잠재적인 혁명 세력인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 점령상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인종 차별주의적인 점령 정책을 실행시키는 이스라엘도 권위주의적인 아랍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동 전역에서 진행되는 민주화 열풍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19일 워싱턴 연설에서의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
사진 출처 - AP연합

 유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강조하는 오바마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역을 구체화시키면서, “생존 가능하고,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국가는 1967년 경계에 토대를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측이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오바마의 워싱턴 연설은 조지 W. 부시가 중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협상의 결과물인 2003년 로드맵(Road Map)에 토대를 둔 것이다. 로드맵은 2003년 조지 W. 부시가 중재하여 당시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과 팔레스타인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가 서명했으며, 현재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서 성취된 최종 협정이다. 로드맵 전문은 “양 측이 협의한 해결안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출현으로 이끌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로드맵 협상에는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UN,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가 참관하였다. 4자 위원회는 미국의 계획을 추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제안했던 2003년 로드맵은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 단체 해체를 요구함으로써 내전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이것이 로드맵의 최우선 목표였다. 오바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연설들에서, 하마스 테러리스트라는 주제는 거의 매번 강조된 반면,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이스라엘 군대와 점령민들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잔혹한 테러 행위는 언급된 적이 거의 없다. 하마스의 테러 행위와 이스라엘의 테러 행위는 그 규모나 빈도수에서 비교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의 시각은 절대적으로 이스라엘 편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워싱턴 연설에서도 오바마는 파타와 하마스의 통합이 이스라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현재 직면한 난제라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며,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와 아랍 국가들은 이 난국을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3일 카이로에서 파타와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13개 파벌 사이에서 통합 협정이 이루어졌고, 파타와 하마스는 1년 이내에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임시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오바마와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주장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합 정부 구성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2003년 로드맵과 2011년 오바마의 연설에서 구상한 팔레스타인 국가는 유대 국가로서 정체성을 갖는 이스라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잠재적인 혁명 세력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손쉽게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구상으로 출현한 팔레스타인 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대안은 이스라엘 군사 점령지와 이스라엘 국가 영역을 한 국가로 완전히 통합하면서,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한 국가 안(One State Solution)이다. 이 해결안은 혈통이나 종교 같은 배타적인 정체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인종차별주의에 토대를 둔 유대 국가의 특성을 버리고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 대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20세기 초 국제 연맹(the League of Nations)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민족 고향(Jewish National Home) 건설을 내세우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윤곽을 세웠고, 유엔(UN)은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 국가 영역과 아랍 국가 영역으로 분할(UN Resolution 181)하면서 이 문제를 격화시켰으며, 현재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내세우는 미국은 극단적으로 이스라엘 편향이다. 계속되는 유혈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혈통과 종교를 넘어서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에 토대를 두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오디션, 그 한 여름밤의 꿈 (김새봄)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쉽게 ‘가난’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젊은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여길 뿐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넬라판타지아’ 노래가 시작됐다. 카메라는 청중들의 경이에 가득 찬 표정을 클로즈업 했다. 심사위원석과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한국판 폴포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는 껌팔이 인생, 22살의 청춘이다.

 한 개인의 세상분투기 덕분에 그의 노래에는 사연이 실렸다. 다섯 살부터 길거리 생활을 해왔다는 그는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성악공연을 보고 음악에 매료됐다. 길거리 음반가게에 앉아 홀로 음악을 배웠다. 그의 삶의 역사의 혹독함과 고난 그리고 시련을, 재능경연 오디션에서 노래로 극복한 그는 주목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와 함께 거리에서 청춘을 보내는 가난한 껌팔이 소년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주목받은 그에겐 타고난 목소리와 노래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의 대다수 껌팔이들 중 재능오디션에 나와 승리를 거머쥐어 감동적인 인생역전 스토리를 선사할 이, 얼마나 될까. 99%는 그처럼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세대와 시대, 사회의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축소돼 버린다. 개인이 속한 집단, 개인이 속한 세대와 시대, 개인이 속한 사회라는 큰 맥락을 삭제시킨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 광풍이 부는 오디션의 속성이다.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는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수천만 명 중에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승리를 위한 긴 경쟁이 시작된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필요 없다. 실제 사회가 혈연과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경쟁의 우위를 다퉈왔던 것과 차별화하려는 오디션의 의도다. 실제 껌팔이 소년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갈고닦은 성악실력을 갖고 있었더라도 실제 성악가가 되기 위한 사회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학력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능력만 봐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현실세계의 진입과는 다르다. 당신의 능력만 봐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의 처절한 사연을 시청률의 담보로 잡아챘다. 끔찍한 삶의 비극을 그가 부른 노래의 감동의 밑바탕으로 깔아줬다.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껌팔이의 노래였다. 그렇기에 감동을 선사한다고 방송은 떠들어댔다. 그것은 진짜 승리였을까. 아니면 그저 오디션의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일까. 이제 무대는 끝났다. 지독한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 그의 행로가 이의 답을 마련해줄 터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최성봉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다만 우려되는 것이다. 결국 껌팔이 소년의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을지도 모를 무대가 일회성에 그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의 승리는 오디션 무대 진행 중에서만 빛을 지닌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오디션이 끝나면 그의 노래도 끝이 난다. 오디션이 사회와 절연된 처절한 개인의 사연만을 무대에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디션에 울려 퍼진 감동의 노래는 그저 꿈이었을 뿐, 현실세계에서 그는 앞으로도 줄곧 껌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와 유리된 오디션 무대는 공정사회가 구현되지 못한 이 세계에 달콤한 유혹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디션이 끝난 뒤에 현실사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디션은 그저 환상과 꿈의 세계일 뿐 결코 현실의 세계마저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약속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 한 켠에서는 청춘의 문제가 시대와 세대, 그리고 사회의 문제임을 외치는 대학생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연이어 청춘 개인의 승리자인 백청강과 껌팔이 소년이 뜨고 뉴스와 신문이 소리 높여 이를 보도한다. 그러나 수일간 계속되는 대학생들의 외침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학생이 거리로 나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다. 청년실업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학교 청소부 아주머니의 최저임금 보상을 위해 지지하는 손길도 있다. 대학생들의 이런 외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춘의 시련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외친다. 그렇기에 손을 맞잡고 연대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청춘의 가난과 시련 또한 개인의 극복만으로 가능하다는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청춘은 오디션이 아니다. 청춘은 단 한 번의 승리와 무한경쟁의 게임이 아니다. 청춘은 진짜 삶이다. 청춘은 모두가 함께 숨 쉬고 먹고 뛰는, 살아있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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