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여순감옥에서 이회영 선생을 만나고 왔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위장전입으로 시끄러웠던 민일영 대법관의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위장전입 5회 경력, 김준규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후보자 등 요즘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 정부 초기 때는 사퇴도 있었으나, 지금은 사퇴도 임명철회도 없다. 사과 한마디가 전부다. 거기에 정부여당 사무총장이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려면 이제는 국민들이 위장전입에 대해서는 접어줘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있는 판국이다.

 그러면 말이다. 위장전입으로 기소돼 전과자가 된 사람들이 많은데, 이제 모두 사면해줘도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은 눈 감고 넘어가도 된다는 것인가. 아무래도 후자 같다. 위장전입 5회라는 화려한 경력을 지닌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는 몇 번의 위장전입은 공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현 정부를 부르는 말들이 참 많다. 친서민 중도실용정부, 강부자․고소영정부, 기업프렌들리정부, 반서민정부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위장전입 정부’도 추가되었다. 정부 고위공직자 중 5명 가운데 1명꼴로 위장전입을 했으니 말이다. 정책과 사법처리를 집행할 집단 지도자가 위장전입 범법자들로 넘쳐나고 있으니, 사회 도덕성과 양심, 정의는 사라졌다. 존경해야 할 지도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정신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일영 대법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청문회에서 민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이 암울한 현실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이 떠오른다. 이번 여름에 중국 대련에 있는 여순감옥을 갔다 왔다. 안중근 의사, 신채호 선생이 서거한 곳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회영 선생도 이곳에서 서거하였다. 선생은 평생을 독립운동으로 살다가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생을 마감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삶을 보여주신 분이다.  

 조선과 대한제국 말기 많은 지배계층이 친일로 변절했을 때, 조선조 10명의 재상을 배출한 선생의 가문은 항일운동의 길을 걸었다. 선생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을사늑약 오적 암살 시도,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운동, 최초의 독립운동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한일병합 후에는 6형제 중의 넷째였던 선생의 제안으로 6형제와 그 가족 등 60여명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고, 만주에서는 전 재산을 들여 신흥무관학교 등의 여러 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1920년 봉오동, 청산리 대첩 또한 약 3,500여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상해 임시정부 초기에 참여했으나, 권력집중에 반대하여 신채호 선생 등과 함께 무정부투쟁에 나섰고, 분권화된 지방정부를 강조하며 마을공동체 설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재중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과, 절대 자유평등의 이상적 신사회를 건설코자 남화한인청년연맹을, 일본 고위관료와 친일파를 암살할 목적으로 비밀행동단인 흑색공포단을 결성하였다.

 결국 이회영 선생은 1932년, 만주일본군사령관을 암살코자 대련으로 이동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돼 여순감옥에서 고문으로 서거하였다. 이 때 선생의 나이는 65세였다. 이렇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동안, 거대 명문집안이었던 선생 일가는 끼니도 챙기지 못하는 빈민으로 살아갔다. 교육도 못 받고, 옷을 팔아 연명하며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굶어 죽기까지 하였다. 5남이었던 이시영 선생을 제외하고는 남은 5형제와 그 가족 대부분이 먼 이국땅에서 굶주림과 병, 고문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또한 선생의 장남이었던 이규창 열사는 남화한인청년연맹의 행동단체였던 흑색공포단을 조직한 후, 친일파 이용로를 암살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1년을 복역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출옥하였다. 우리 사회지도층의 많은 자녀들이 여러 특혜를 받는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선생은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재혼금지를 반대하고, 신분 평등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이회영 선생은 암울한 대일항쟁 시기에 평생 동안 지도자의 사회적 책무를 끌어안고 행동으로 실천하신 참 지도자였다.

 현 정부와 여당은 연일 불법집회, 노조 이기주의를 언급하면서 ‘법치’를 외쳐댄다. 또 지난 4월, 법의 날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성숙한 법치주의를 위해서는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기 전에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국회의원, 공무원, 법조인들이 먼저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바도 있다. 이렇게 법치를 중요시하는 정부와 여당이 범법자들을 임명, 동의하고, 임명받은 자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는 이 현실이 그들이 말하는 ‘성숙한 법치주의’인지 묻고 싶다.

 그 뿐인가. 용산에서 일반 서민을 폭력 철거민으로 둔갑시켜 불태워 죽이고도 수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반면, 한 방송국 작가의 이메일을 세상에 낱낱이 공개하였다. 재판에 개입한 대법관도 문제되지 않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등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과 단체가 표적감사와 수사 등으로 잡혀가고, 물러나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도 탄압받고 있는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성숙한 법치주의를 외치는 정부와 여당에 되묻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숭고한 정신, 자유와 평등의 인간의 기본권을 존엄하는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자들이 많을 때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지도자 층의 위장전입 등을 접어주고 가는 것이 성숙한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것인가를...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미국이 드디어 북한과 양자대화에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미국 여기자 석방을 위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미간의 관계개선을 위한 전환적 국면이 예고된 바 있다. 닫혔던 물꼬가 트이면 길이 생기듯 북미 간 고위급 양자대화의 흐름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혹자는 북미 양자대화의 시작이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엔안보리의 대북제재로 인한 국제적 압박이 효과를 거둔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능동의 힘과 수동의 벼랑 끝 처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헷갈린 나머지 정세 변화의 특징과 본질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로켓발사, 핵실험, 미사일 발사, 폐연료봉 재처리, 추출된 플루토늄 무기화, 우라늄농축시험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군사적 조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미 간 고위급 협상이 시작되는 정세의 전환적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이것이 정세 변화의 특징이다. 나는 정치, 군사적 외교 협상력은 힘의 역관계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계의 비핵화에 기여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비핵화군축협상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북미 간 정치군사협상으로 나아가고자 시도하는 정세이다.
 

 이러한 정세 변화의 규정력과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때,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하여 아직도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의식에 사로잡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무지한 혹자들에 대한 과학적 비판이 가능해진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필요충분조건들을 이제는 채울려고 나서야 하고 능히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반도 비핵화와 이와 맞물려 전개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 및 분단극복을 위한 북미간, 남북간 정치군사협상과정에서는 반드시 모든 문제를 포괄적,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안들이 합의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증진되는 가운데 합의사항이 철저히 이행되어야 한다.
 

 모든 한반도 문제의 포괄적, 근본적 해결을 위한 방안의 합의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볼 때, 향후 한반도의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는 정치군사협상과정에서 제기될 의제 중에는 북핵 폐기와 함께 이에 상응하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유엔사 해체 및 외국군대의 철수, 남북 사이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반도에 주둔하는 외국군대는 주한미군 밖에 없다고 볼 때,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정치군사협상의 의제에서 핵심적 사안으로  의제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절대로 없다. 혹자는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한미 사이의 쌍무협정이므로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한미 사이의 문제일 뿐 북미 간, 남북 간 진행될 정치군사협상의 의제가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물론 법리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과 함께 한반도에서 50년 이상 지속된 북미, 남북 적대 관계로 인하여 첨예한 핵 대결 상황까지 벌어진 군사적 대치와 긴장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정치군사협상에서 포괄적, 근본적 해결방안의 합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관념적인 주장이다.
 

 정전체제에서 전개된 한반도의 전쟁위기, 핵 위기, 한미군사동맹, 한미군사훈련 등 제반 상황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일일이 예를 들어 열거하지 않더라도 주한미군 주둔의 역사적, 현실적, 법리적 측면 그 어떠한 측면에서 보더라도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실질적 문제로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김명길(왼쪽)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공사와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주지사가
샌타페이에 있는 주지사 공관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

사진출처 - 한겨레

 북미 양자회담이 정세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북미 간 간극은 여전하다. 북한이 한반도 핵문제를 순조롭게 원만히 해결하자면 미국이 첫째로 대북적대정책을 완전히 포기하고 북미관계개선으로 나가야 하고, 둘째로 북미 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지체 없이 북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 철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북한의 입장과 달리 미국은 북핵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일탈국가의 비정상적인 대량살상무기 보유의 문제로 주한미군의 주둔과 무관하게 폐기되어야 할 문제라 단언하고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 및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는 남과 북이라는 입장이다.
 

 평화체제의 당사자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논쟁에서 핵심 중의 하나인데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하는 것은 미국을 평화협정의 직접 당사자로 하여 주한미군 철수를 규정한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주한미군의 철수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이고, 미국이 평화체제의 당사자는 남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북미 간 양자대화에서 북미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등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의 결과는 기본적으로 북미 양자가 평화체제의 당사자가 되고 북한 핵무기의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고받는 내용을 가지는 평화협정의 체결로 타결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이러한 획기적 정세 변화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대북적대의 상징이라 할 한미군사동맹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여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핵심적 과제인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금기하거나 회피하는 정책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정치군사협상 과정에서 난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평화체제의 당사자 지위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2009년 오늘 ‘북미 사이의 평화공존’이라는 본질을 향해 발전해 가고 있는 전환적 국면이 도래하였다. 그리고 현재 조성된 역관계로 보면 이러한 양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해질 것이다. 북미 양국은 멀지 않은 시간에 북미 사이의 평화체제가 주한미군이 철수되는 평화인가를 놓고 중대한 갈림길에 설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과정에서 남과 북이 주도적으로 주한미군이 나가는 내용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하여 정치군사협상의 실질적 당사자로서 역할을 다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그 날을 꿈꾸어 본다. 법률가로서 남북의 법률가들이 교류와 협력을 적극 추진, 강화하는 가운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평화협정안을 준비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한가롭게 떠 있다. 지난 해 가을에는 서울 거리의 가로수를 보며 가을을 느꼈는데, 올해는 들판에 나가 누워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다행이다.

  어제 신문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DJ의 묘를 파헤치겠다고 국립현충원으로 달려간 상황이 보도되었다. 최소한 죽음 앞에서 허허로운 관용이나 최소한 혼란스러워 할 줄 아는 인간의 심성마저 똑부러진 살기(殺氣)아래 파묻고 있다. 어쭙잖은 이념이 인간의 예의를 추월했다.

 기실, 해방 이후 한국사회가 고통스럽게 견뎌왔던 학살과 증오가 오늘 날에 재생되는 느낌이다. “노무현의 시신을 북으로 보내라”했던 경악스러운 망언의 기억과 다를 것 없는 맥락이다. 그런가 하면, 국가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 얘기가 터져 나오고, 경찰은 ‘과업’으로 ‘촛불’, ‘2MB'따위 키워드가 들어간 글이 자동으로 수집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 편린들 건너,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습관처럼 이어 온 ‘투표’가 부정당했다. 도지사 소환투표 날, 투표장에 갔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완장’에 감시당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특히, 아무리 새벽 밭일이 분주해도, 투표는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왔던 행위자체를 부정당한 촌로들은 인생의 끝물에서 알 수 없는 자기분열을 겪어야 했다.

 제주시 어느 동에 사는 한 여성은 몇 번이고 투표하러 갈려고 했는데, 그 때마다 직면하는 눈초리와 무언의 억눌림으로 결국 포기해야 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심정을 모멸감이라 표현했다. 올 여름, 8월 26일 제주도 전역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된 8월2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천동
강정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투표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 한겨레

  투표장은 발길이 뜸했고, 그나마 있던 발길은 제지당했으며, 그래도 투표에 나선 4만 6천의 제주 주민들마저 싸늘함과 불안한 두려움으로 긴장했다. 투표가 폭력으로 대체될 수 있다니. DJ 서거 후 읽은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1967년 국회의원 선거와 71년 대선 등의 분위기가 이와 같았다. 학살과 증오를 배경으로 한, 검열과 분류의 암울한 과거 시스템이 재생된다면 철저히 이렇구나 하는 느낌, 참혹했다.

 DJ서거를 애도하는 신문광고를 전면에 싣고는 그의 생전 얼굴 밑에 “투표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버젓이 적어놓은 그들은, DJ의 묘를 파헤치겠다는 광기어린 반항만큼, 사실은 과거의 암울한 질서를 파헤쳐 재생시켜놓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지 모른다.

 최근 읽은 두 편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상은 결코 한 쪽만을 허락하지는 않는다는. 현기영이 10년 만에 발표한 ‘누란’ 속의 허무성은 자신의 트라우마로 인해 늘 현실 속에 재생되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한 달간의 노숙생활을 거쳐 지리산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좀 더 오래 전, 죽음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보다 오래된, 다름 아닌 한국 근대 학살의 기억에 대응함으로써 결국 자신을 통해 재생되는 가까운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다. 근본부터 다시 파헤치러 떠난 것이다.

 멸망과정이 아닌, 멸망 이후 폐허의 세상 위를 표류하는 부자(父子)의 행보를 그린 ‘더 로드(THE ROAD)'는 철저히 세상은 한 쪽이 아님을 보여준다. 사실은, 그 폐허란 ‘다시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를 폐하고,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된’ 새로운 지도를 비로소 생성(재생)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의 현실이 그와 같다고 하면, 세상은 틀림없이 다른 한 쪽을 숨겨놓고 있다.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2009년 7월 1일 이후 공소 제기되는 사건부터 적용하는 최초의 양형기준을 발표하였다. 형사사법의 투명성과 합리성 재고에 기여하기 위해 뇌물범죄, 성범죄 기준은 엄정한 양형을 구현하였으며, 횡령. 배임범죄 기준으로 이른바 ‘유전무죄’ 시비를 불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유형별로 합리적인 형량범위를 설정하여 양형의 편차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첫걸음이니 시비를 걸기보다 더 기대를 갖고 제안을 해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교계에서 일어나는 뇌물범죄와 국고보조금을 타내 횡령, 배임하는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엄격하게 세워주길 제안한다.

 개신교계의 일부 횡령사건 및 성범죄에 대한 사건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불교계에서 몇 년 동안 일어난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소득이 있는 곳에 당연히 세금을 내야 하지만, 한 푼도 내지 않고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타다 쓰는 조계종을 중심으로 보자.

 정부당국은 국고보조금의 관리가 너무 허술하고, 법원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해 법원이 앞장서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아래도표에서 보듯이 2007년과 2008년 수십억의 국고보조금을 타내려다 미수에 그쳤거나 자부담액을 채워 넣어야 함에도 적당히 넘어가려했다. 이전에는 관례, 관행으로 그냥 넘어가던 일인데 하며, 억울해 하는 불교지도자들까지 있다.

 세상이 맑아지면서 생기는 선의의 피해자라는 말을 접하면 이 분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스님’이 맞나 다시 돌아보게 된다.  

 유무형의 많은 특혜를 받는 종교인 또는 지도자들에 대한 엄한 양형기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다 보면, 반대의견이 훨씬 많다는데 또 놀란다. 어떤 종류의 종교를 갖고 있는 가를 뛰어 넘어 필자가 만난 법조인들은 대부분 관대하다.

 더 심각한 부패한 범죄가 많은데 종교인들의 수십억 횡령과 배임은 ‘새 발의 피’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 경험의 차이를 느끼게 되고, 종교계 시민단체 담당자로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답답한 마음이 일어난다. 권력과 기업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바른 태도와 단호함은 어디로 가고,  자신이 믿는 종교계 부패에는 눈 감는 또 하나의 다른 ‘우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종교계 스스로 내부로 부터 투명하고 엄격하게 처신한다면 사회법의 관용도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종교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리고 현재까지 내부를 맑게 하는 일에 소홀하다. 먼저 불교계 최대 종단이고 국민의 세금을 가장 많이 타다 쓰는 조계종이 그렇다.  

 아래 도표에 제시된 조계종의 24개 교구본사 중 5개의 교구본사에서 저질러져 사회법적으로 유죄의 판결을 받은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교구본사 이외 개별 사찰의 횡령사건을 합산하면 국민들의 세금이 허투루 쓰인 사례는 훨씬 늘어난다.

 2001년 부산 범어사에서 발생한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에 대해 법원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였고 총17억 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하여 결국 범어사에서 피고인을 대신하여 2007년 14억 원을 구청에 납부했다. 이 건에 대해 조계종의 대법원격인 재심호계원은 ‘공권정지 4년’을 선고했다. 종교계 내부의 자기 점검이 너무나 부족하다.

 약 8년 간 교구본사에서 일어난 횡령금액이나 횡령하려했던 금액을 합치면 서민의 입장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이다. 점심을 굶는 결식아동의 지원비로 손색이 없는 기금이 될 수도 있다.
 

연도

교구
본사사찰
 

결과(진행)

적용법률

2001-2007

ㅂ사 

대법원 확정 판결,

2007. 12 17억여원 환수(부산 00구청)

횡령 등

2005-2009

현재 진행

ㅎ사 

14억여원 횡령혐의 기소중지(4년간 수배 받다 09년 초 검거) 1심 징역3년(집행 예5년)에 추징금 3억원 선고

횡령, 사기 등

2006-2007

ㅁ사 

2007. 12

1년 실형 확정, 1심 4억6천 추징

고등법원 원심 확정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2006-2008

ㅇ사

1심판결(집유, 사회봉사명령)

벌금 2천만원, 1억7천여만원 반환

대법원 원심 확정

사기,

부동산실권리자명의등기에관한법률

2007-2008

ㅌ사

1심판결, 선고유예(500만원 벌금)

울산지법 

보조금의예산및관리에관한법률

2008

ㅌ종단

총무원장 벌금형

보조금의예산및관리에관한법률

자료 출처 - 참여불교재가연대 전문기관 교단자정센터
 

지난 2005년 전남 화엄사 전 주지 ㅁ스님은 재임 중 사찰 소유 문화재 관리 및 보수비로 지급된 국고보조금 13억 원을 수차에 걸쳐 장기간 횡령해 도피하다 지난 2009년 2월 서울 도심에서 불심검문에 의해 체포된 후 구속되었다가, 1심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 추징금3억을 선고받고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13억 원을 화엄사에 반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위의 아래 기준으로 보면 실형이 선고되어야 하고, 오히려 장기간 도피하였고 교구본사 주지라는 고위직이라면 가중치를 줘야한다. 그러나 종교인의 심판은 거꾸로다. 스님, 목사님 이라는 이유로 교구본사주지로 지역사회에 공헌한 점. 동종범죄에서 초범이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종범죄에서 재범일 확률은 95%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 횡령 배임범죄 양형기준>

구분

감경

기본

가중

제1유형(1억원미만)

~ 10월

4월~1년4월

10월~2년6월

제2유형(1억원이상, 5억원미만)

6월~2년

1년~3년

2년~5년

제3유형(5억원이상, 50억원미만)

1년6월~3년

2년~5년

3년~6년

제4유형(50억원이상,300억원미만)

2년6월~5년

4년~7년

5년~8년

제5유형(300억원이상)

4년~7년

5년~8년

7년~11년

자료 출처 - 대법원 홈페이지


 한편, 뇌물사건의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09년 1월 30일 경기도 전 시흥시장에게 개발제한구역 내에 설립한 사찰의 납골당 승인을 받는 대가로 5천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된 ㅎ스님의 경우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실형이 확정된 이 시장은 일반 형사사건에 연루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지방자치단체장직을 상실토록 규정한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시장 직을 잃었지만 뇌물을 준 ㅎ스님은 예외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뇌물범죄]에 있어서 뇌물액수에 따라 형이 결정되도록 하고, 뇌물액수에 따라 가중처벌을 규정한 입법자의 의사를 반영하였다. 또한 엄정한 형량범위를 제시해 형량을 규범적으로 상향 조정하여 종전 양형실무의 개선을 모색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5천만 원 이상 뇌물을 수수한 경우에는 원칙적인 실형을 권고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이라면 이 ㅎ스님의 경우도 엄정한 법원의 징계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심 이후 보석으로 나온 이 스님은 조계종 한 교구의 고위직에 출마하려다 포기했다고 한다. 조계종에서는 사회법으로 금고이상의 형을 받아야만 공직에 진출할 수 없게 조계종 종법에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교단이 금고이상을 기준으로 내부 징계를 하다 보니, 오히려 법원의 결정이 면죄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불교계의 몇 가지 사례로 살펴보았지만, 거대 종교계의 고위직 인사들의 부패 사례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법관이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고, 법관의 종교 선호도에 따라 양형기준이 달라지고 ‘종교는 많이 봐준다’는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종교계 관련 범죄인’의 기준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

 또한 종교계 스스로 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예방을 철저히 하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체 징계를 해야 한다. 교회나 사찰이 ‘인사청탁’이나 ‘뇌물전달’의 연결도구로 전락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양형기준이 필요하다. 예방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불교계는 그렇다고 본다.

 국민 53%가 종교인이고, 종교인도 모두 공평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유권무죄, 무권유죄가 되어서 안 되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면 큰 문제이다. 유리한 판결을 이끌기 위해 종교시설에 찾아가 같은 종교의식을 하며 양심에 어긋나는 보이지 않는 로비를 벌인다는 의혹이 있다면 더 큰일이다.

 대법관부터 시작해 모든 법관들이 ‘종교’에서 자유로운 심판을 하기 위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나쁜 종교인들에 대한 엄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꿈을 가진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춤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그 아이는 춤으로 세상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기에 언론의 관심도 유별났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소위 말하는 ‘특수목적고’에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최고의 무용수가 되겠다는 꿈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삐거덕거리게 되었습니다.

 그 삐거덕거림은 ‘선생’을 잘못 만난 것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담임교사는 첫 면담부터 노골적인 ‘촌지’를 요구했고 그렇게 가져다 바친 돈만 2년간 28회에 걸쳐 모두 480만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교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특정 학원에 다닐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교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브로커였던 셈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이 아이가 교사에게 불만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가졌다 하더라도 별 수가 없었을 겁니다.

 문제는 아이의 집안 사정이 갑자기 나빠져 학부모가 교사를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때부터 불거졌습니다. 아이가 마침 어떤 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했고 학교에 한 번 오라는 교사의 호출을 받았지만 학부모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정상 ‘봉투’를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부터 교사는 브로커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학부모에 대한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상습적인 폭행과 잦은 반성문 강요가 반복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 또한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급기야 2009년 3월에는 반성문을 잘못 썼다는 이유로 목 부분을 맞아 3개월째 병원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장기간 입원으로 학교에서는 유급처리가 되었고, 아이는 결국 대학진학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꿈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광주드림


 이런 일이 있고 나서야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참교육학부모회 등 광주지역에 있는 인권단체들이 사건의 부당함과 해당 교사의 처벌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에 접수한 민원이 광주시교육청에 이관되어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청의 태도는 상식 밖이었습니다.(어쩌면 상식일지도 모릅니다.) 1차 조사에서는 피해학생과 학부모는 만나지도 않은 채 해당 교사의 진술만을 토대로 ‘증거자료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2차 조사에서는 담당 장학사가 피해학생의 심리상태가 심각함을 인정해놓고도 심리상담 프로그램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3차 조사에는 3자 대면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청이 내린 결론은 광주시 교육의 신뢰를 상실했다는 이유를 들어 ‘엄중경고’에 그쳤습니다. 한 아이의 꿈을 무너Em린 반교육적인 교사에게 교육청은 ‘너 정말 조심해’라고 얘기한 것이지요.

 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교사의 태도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3자 대면을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요구에 대해 ‘다시 한 번 오라 가라 하면 당신들 앞에서 확 죽어버리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억울해서였을까요? 아니면 믿는 무엇인가가 있어서였을까요? 한 아이의 꿈을 ‘자살’이라는 협박으로 무마하려는 그 사람을 어찌 ‘교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미 교육자의 자격을 잃은 사람에게 기껏 ‘경고’밖에 할 수 없는 교육청의 안이함은 딱 ‘그 나물에 그 밥’이 제격입니다.

 광주는 교육열이 꽤 높은 곳입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3년간 수능시험 전국 1위라는 결과는 어느 정도 짐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1위가 아닙니다. 2009년 현재까지 광주전남에서 자살한 아이들이 모두 13명에 이릅니다. 대부분 광주지역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성적도 1위지만 아이들의 자살도 부끄러운 1위인 셈이지요.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청은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비위 사실이 명백한 교사는 감싸고, 정작 보살펴야할 아이는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꽃다운 아이들이 죽음으로 말하고 있는데도 교육청은 뻔뻔하기만 합니다. 결국 또 성적으로 덮을 속셈인 게지요.

 무용수의 꿈을 키우던 아이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오늘은 발로 찼다.…진짜 죽고 싶다. 정말 살기가 싫다. 엄마가 아픈데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이 책이 내 유언장이 될 수도….” 춤으로 승승장구하던 아이가 이제는 죽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15층 난간에 서기도 했다고 합니다. 13명의 죽음도 모자란 걸까요? 또 한 번의 죽음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또 어떤 변명을 해야 하는 걸까요? 교육청이, 아니 교육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인터넷에서 고식지계(姑息之計)를 검색하면 “한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임시로 둘러맞추어 처리하거나 이리저리 주선하여 꾸며 내는 계책”이라고 나온다. 많이 쓰이는 말로 ‘눈 가리고 아웅’일터인데, 찾아보니 유사한 고사성어가 꽤 있다.

 가랑잎으로 눈을 가리면 남들이 자신을 보는 줄도 모르고 속이려든다는 것(柯葉遮眼, 가엽차안)이나, 귀 막고 방울도둑질 한다 - 즉 방울 소리가 제 귀에 들리지 않으면 남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일컫는 엄이도령(掩耳盜鈴) 역시 비슷한 뜻이다. 타조가 도망가다가 힘들면 모래 속에 머리만 박는다는 타조 머리 감추기(鸵鸟政策, 타조정책) 역시 이웃사촌 쯤 되겠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눈 가리고 아웅’해야 할 일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11,42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노동부의 [사업체 기간제근로자 실태조사] 결과 보도자료(2009년 9월 4일)를 ‘어쩔 수 없이, 할 수 없이’라고 덮을 수 있을까?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지난해부터 100만 대란설을 주장하며 “7월 이후 해고되는 비정규직 연인원이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강변하였다. 또한 2009년 7월 발간된 노동부의 [비정규직(법) 관련,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비정규직법이 정규직 전환법이라는 것은 오해에 불과하다. 기업은 2년이 넘기 전에 계약만료 시점이 되면 언제든지 고용을 종료시킬 수 있다. 정부가 실직자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고용대란만 강조했다는 것도 오해이다. 왜냐하면 법 개정이 비정규직 실직을 막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라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해고대란은 사실무근이다. 실태조사 결과 넓은 의미의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10명중 6명 내지 7명이기 때문이다. 계약종료 된 3, 4명의 경우도 자발적 이직인지, 해고인지 아니면 기업의 경영사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비정규직 법 때문에 해고된 경우는 발표된 수치보다 적을 수 있다.

 
민생민주국민회의 회원과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정문 앞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기획해고’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만약 정규직 전환 지원 대책이 마련되었다면, 해고대란만 조장하지 않았다면, 기업의 권리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오해와 진실’과 같은 노동부의 안내서만 아니었다면 정규직 전환 수치는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 최소한 해고 규모 과장과 관련,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보도이다. 하지만 장관의 발언과 지시 때문에 계약종료가 늘었다 해도 그 책임을 질 방법이 있을까. 이미 해고된 사람을 원직복직 시킬 수 있는가. 목숨줄인 밥줄을 끊은 책임을 무엇으로 질 것인가.

 더군다나 노동부가 나서서 실제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는지 조사할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해고대란 문제에 대해 보도자료는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며  세 가지 근거를 들어 피해간다. 그런데 그 이유 중 두 가지는 매우 이상하다. 하나는 2년 이상 근속자 중 법 적용대상자만을 파악한 결과이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100만 해고대란설에는 법 적용대상자가 아닌 자들이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종전 전망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인가.

 다른 하나는 법 적용 이전에 2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감소한 것이 원인이란다. 그리고 2009년 1월부터 7월까지 ‘전월대비’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가 줄었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가끔 “선수끼리 이러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해당 자료가 그러하다. 보도자료에는 빠뜨렸지만 전월대비 대신 전년동월대비 자료를 살펴보면, 2009년 1월부터 6월까지 2년 이상 기간제 근로자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다만 7월만 감소하였는데 그 원인 중 하나가 공공기관에서의 기간제 계약종료일 가능성이 높다.    

 모든 공공기관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공공기관에서의 계약종료는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경쟁압박을 받는 민간기업 대신 공공기관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OECD 국가들과 달리,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는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서부터 사람을 자른다.

 심지어 정규직을 기간제로 바꾸고 싶어 한다. 올 초 필자가 다니는 회사에서 4년이 넘은 정규직 신분인 필자에게 갑자기 2년짜리 고용계약서를 쓰라고 강요하였다. 말문이 막혀 필자의 신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회사의 대표는 “기간제”라고 답하였다. 만약 전 직원이 아무 말 없이 고용계약서를 썼다면 100% 기간제로 이루어진 최초의 공공기관이 탄생할 뻔 했다.

 노동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100% 기간제를 꿈꾸는 기업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계약이 끝나면 사람을 자를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나 정규직 전환지원금은 없다는 언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에서 정규직 전환에 동참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 기간제를 만들겠다는 꿈은 그래서 ‘꿈’이겠지만 밥줄이 달려있는 근로자들은 가끔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100%가 아니라 10%라도 그 대상이 자신일 수 있기 때문에.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버지 영정 앞서 울지 못한 홍일 씨

고문의 상처는 시대의 아픔과 겹쳤다
 

 그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하얀 국화 꽃송이에 묻혀 옅은 웃음 짓고 있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기만 한 사내. 손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국화꽃 한 송이를 고인의 제단에 힘겹게 올리며 누군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허공만 바라보던 그 사내. 전 국회의원 김홍일이었습니다.
 

 검은 치마저고리에 흰 리본을 머리에 꽂고도 차마 남편을 보낼 수 없어 고개 들지 못하는 어머니의 슬픈 어깨를 쓸어주지 못하고, 망연자실해 하는 가족들의 가슴을 안아주지도 못한 채 비둘기 속살 같이 흰 머리카락의 무게조차 버거운 듯 겨우 고개만 들고 있던 그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이었습니다.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90년대부터 서서히 진행되던 병이 그가 의원직을 잃고, 언론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2006년 즈음에는 급속히 진행 되어 그를 휠체어에 주저앉힌 것입니다. 언론은 그가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두 번의 옥고를 치루고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것과 그 때문에 몹쓸 병을 얻었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지난 23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고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 장면.
사진출처 - 시민사회신문

 

 그의 어머니 이희호 여사도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고문의 와중에도 혐의를 허위로 자백하지 않기 위해 홍일 씨가 자살기도까지 했었다고 자서전에서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사람을 잃은 슬픔도 컸지만 자신의 생명을 던져 지키고자 했던 아버지의 죽음에도 통곡으로 답하지 못하는 백치가 된 아들의 눈빛은 국장(國葬)기간 내내 더 큰 슬픔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가 야만의 시대, 고문의 잔혹사를 증명하는 표식이 되어 이 쓸쓸한 역사를 향해 거칠게 항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취 없는 외과 수술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은 학살로 들어선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인사 20여명을 북한의 사주를 받아 광주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군사재판에 회부한 사건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학살의 책임을 민주인사에게 돌리고 그 중 김대중을 수괴로 낙인찍어 결국 대법원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그 사건에 관련된 이들은 예외 없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거꾸로 매달려 물 몇 양동이를 마시는 건 기본이고, 갖가지 고문에 정신이상을 일으켜 수사관을 엄마라 부르기도 했으며 고문 수사관이 지치거나 진술서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조사기간 내내 심한 매질을 당했습니다.
 

 그 즈음 광주시민 학살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돌리다 붙잡힌 시인 황지우는 자신이 당한 고문을 ‘마취 없는 외과수술’이라고 했습니다. “거꾸로 매달린 내 몸에서는 나도 모르게 어찌할 수 없는 짐승소리가 났다. 죽을 수 있는 희망조차 없던 그곳에서 고문의 효과는 견딜 수 없는 자기 혐오감이었다. 나는 그 혐오감을 기본 정서로 80년대를 살았다. 죽을 수도 살수도 없었던 시절에 나는 견딜 수 없어서 시를 썼다.”(나의작품 나의 얘기-흉측한 삶, 80년대 고문체험 중)
 

 그의 고백에서 묻어나는 절절한 아픔을 짐작할 길은 없지만, 나는 2006년 남영동 평화 인권센터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번 들어가면 모두가 간첩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던 남영동 대공 분실의 구조를 보고 놀랐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빛과 벽돌로 짓는 시”라고 읊었던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서 지어진 이 건물은 거짓을 진실로 자백받기 위한 오직 고문의 용도로만 만들어 졌습니다.
 

 50센티미터가 족히 넘는 두께의 대문을 넘으면 피의자들이 출입했던 건물 뒤편의 조그만 문이 나옵니다. 두 눈을 가린 피의자들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철컹’ 대는 철문이 닫히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수십 바퀴쯤 돌아 5층 조사실에 도착할 때는 모든 피의자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곧이어 닥칠 끔찍한 상상을 하며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거기서 민주당 고문 김근태는 수사관의 발밑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박종철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반국가 단체의 조직사건이 만들어 졌고, 납북어부와 조국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재일교포 학생들도 간첩이 되었습니다.
 

 그대는 아직도 잠자는 돌
 

 살인적 고문이 민주화 인사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자신들의 집권에 반대하는 조그만 틈새조차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는” 애국자만이 살 수 있었던 그 시대에는 신문 연재소설의 삐딱한 한구절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얼굴, 정부의 고위관리가 이상스레 촌스런 모자를 쓰고 탄광촌 같은 델 찾아가서 그 지방의 아낙네들과 악수하는 경우, 그 관리는 돌아가는 차 속에서면 다 잊을 게 뻔한데도 자기네들의 이런저런 사정을 보고 들어 주는 게 황공스럽기만 해서…. 세상에 남자 놈 치고 시원치 않은 게 몇 종류가 있지. 그 첫째가 제 복 좋아하는 자 들이라니까. 그런 자들 중에는 군대 갔다 온 얘기 빼놓으면 할 얘기가 없는 자들이 또 있게 마련이지.”
 

 작가 한수산은 1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중앙일보에 연재 해왔던 소설 <욕망의 거리>에 삽입된 단 두 구절 때문에 1981년 5월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 끌려가 책 한권으로는 다 쓰지 못할 고문을 당했습니다.
 

 조선시대 사극에서나 나올법한 장단지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주리를 트는 고문,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 씌우고 고춧가루 물을 퍼붓는 고문, 열 손가락에 전선을 묶어놓고 스위치를 올리는 전기고문까지. 이미 널리 알려진 한수산 필화 사건의 개요입니다.
 

 산문시에 가깝게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체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작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절필을 선언했고, 그를 고문했던 노태우(당시 보안사령관)가 대통령이 된 1988년 고국을 등지게 됩니다.
 

 이 사건에 함께 연루되었던 7명중에는 고독한 술꾼, 서정을 사랑한 시인 박정만이 있습니다. 소설가 김성동의 표현대로 그는 기갈지옥에서나 온 것처럼 액체로 된 것이라면 하다못해 농약까지도 마시고 싶어 했던 술꾼 이었습니다.
 

 ‘이마를 짚어다오,/산허리에 걸린 꽃같은 무지개의/술에 젖으며/잠자는 돌처럼 나도 눕고 싶구나.
 

 -중략-
 

 말이 죽고 한 침묵이 살아/그것이 더 큰 침묵이 되더라도/이제 내 눈을 감겨다오./이 세상 마지막 산, 마지막 선 모양으로.(잠자는 돌, 박정만 시)
 

 술을 사랑했던 만큼 인간의 묻어둔 감성을 사랑했던 한국 서정시의 별은 한수산과 함께 끌려갔던 3박 4일이 지난 후,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 남은 흐느적거리는 연기처럼 자신을 버렸습니다. 직장을 잡지도 못했고, 가정을 원만히 꾸리지도 못했습니다. 그가 혹독한 고초를 겪은 이유를 그 자신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말이 죽고 침묵만 살아 더 큰 침묵이 되었던 살기어린 시절의 저녁이면 그는 어김없이 술에 취했고, 술에 취하면 누구든 붙잡고 물었습니다. “내가 왜 그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를 제발 알려 달라”고.
 

 한수산과 같은 대학을 나왔고, 책 출판 관계로 몇 번 만났던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간 한국의 마지막 서정시인 박정만은 고문의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고 88올림픽 폐막식이 열리던 10월 2일 오후 봉천동 그의 집 화장실에서 고작 마흔 셋의 나이에 ‘잠자는 돌’이 되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킨 것은 그가 죽기 전 시마(詩魔)에 들어 초인적인 힘으로 옮겨 적은 300여 편의 시 뭉치뿐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은 민주화 운동가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임을 강조했었다고 합니다. 야만의 시대에는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야만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독백으로 읽힙니다.
 

 그의 통곡하는 모습을…
 

 인권연대 운영위원회가 끝나고 뒷풀이를 하는 지난해 가을 밤 늦은 시간, 함께 있던 오창익 사무국장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가을 저녁에 취해 거나하게 술을 마신 그의 지인이 경찰과 시비가 붙어 공무집행 방해혐의로 경찰서에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부랴부랴 경찰서에 찾아간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자신을 끌고 온 경찰에게 항의 했다는 이유로 그의 지인은 손목에 수갑이 채워진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무리 사소한 이유라도 경찰의 권위에 도전 하는 시민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입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MB시대 인권의 시계가 얼마나 거꾸로 돌아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30년 전 군사정권이 했던 일중 ‘고문 빼고는 이 정부가 다 하는 것 같다’는 한 인권변호사의 넋두리는 이제는 고문도 할 것 같다는 우려가 되고, 곧 현실이 될지도 모릅니다.
 

 생전에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사람들을 용서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노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신이 더 괴로울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전두환 씨는 전직들이 가장 편했을 때가 국민의 정부 시절이었다는 덕담(?)도 했습니다.
 

 전두환 씨가 서거하신 아버지의 영전에 꽃을 바쳤을 때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김홍일 전  의원의 심정은 어땠을까를 생각합니다. “죽음의 고통은 주되 죽음이라는 영원한 휴식은 주지 않았던(황지우 윗글)” 고문자의 환영을 그의 시선은 쫓아가지도 못하고, 사지는 굳을 대로 굳어 고문자의 멱살잡이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데도 과연 김홍일은 전두환을 용서할 수 있을까.
 

 국장 기간 내내 비친 그의 모습에서 원귀처럼 되살아나는 고문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부모 잃은 슬픔을, 꺼이꺼이 우는 그의 목소리라도 들었으면, 부리부리 했던 큰 눈으로 쏟아내는 눈물이라도 보았으면 마음이 이리 착잡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김홍일 전 의원, 그가 울부짖으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다시 일어나 고문으로 얼룩진 이 잔혹한 역사 위에 회한의 곡소리 한번 크게 우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화해와 용서, 사회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한 고문자들의 레토릭은 해원(解怨)의 통곡이 끝난 뒤에 논해도 좋을 듯 합니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전시행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전 대책이 절실하다 (김영미 위원)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질병이 세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재앙이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중세 유럽. 피부가 흑색이나 자색으로 변해 결국은 죽게 된다는 흑사병(페스트)은 14세기 유럽 대륙을 덮쳤다. 전체 인구의 1/3 이상이 몰살되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선주민의 무려 90%가 몰살되었다. 학살도 있었지만, 스페인에서 유입된 천연두 등의 질병에 대한 면역이 없어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지난 세기에도 스페인 독감이 맹위를 떨쳤다. 1918년 처음 발생해 스페인에서만 한 달 동안 800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4천만 명 정도가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중세 유럽, 스페인 등 제국주의의 학살이 멈추지 않았던 ‘신대륙’ 아메리카, 1차 세계대전의 참화가 대륙 전체를 휩쓴 20세기 초의 유럽 대륙. 하지만 전쟁이나 학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어갔다. 

 해서 질병의 공포는 끊이지 않는다.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소련 독감, 급성호흡기 증후군인 SARS, 조류독감을 거쳐 이번엔 신종 인플루엔자가 나타났다. 

 올 4월 멕시코에서 처음 시작된 신종 플루는 이전 시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달된 교통의 영향으로 급속도로 전 세계로 확산되어 8월 23일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감염자 수는 20만 9천여 명, 사망자 수는 최소한 2천백8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감염자 수도 4천3백 명을 넘어섰다. 감염자 수 증가 속도가 좀 주춤하고 있지만, 가을, 겨울에는 어떤 상황을 맞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개학이 되어 학생들의 집단감염이 크게 늘어날 거란 우려도 있다.


사진출처 - 한겨레

 개학 후 보건실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평소에 무뚝뚝하고 건강한 근정이(중1)를 만났다. “선생님 체온 좀 재주세요, 어제 축구를 하다 다리가 삐었어요. 밤에 다리가 아프면서 열이 났어요. 근데 뉴스에서 열이 나면 신종인플루엔자에 걸렸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빨리 보건실로 가서 체온 측정하래요, 너무 무서워요” 체온계로 측정하니 36.8도였고, 자기의 체온을 확인한 근정이는 아주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 전날 오후 뉴스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아침에 신용산초등학교를 방문한 모습과 이 학교의 모든 등교생을 대상으로 교문 앞에서 발열 검사를 실시하는 모습이 나왔고, 아이들은 자기도 혹시 신종인플루엔자에 걸리지 않았는가 걱정하여 양호실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교육부는 초중고 모든 학교에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체온계를 구입하여 교문 앞에서 일일체온측정을 실시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교과부의 이런 무신경한 전시행정으로 인해 학교는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다. 

 “신종 플루 얘기가 나온 지 꽤 되었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아직도 발열검사를 못하고 있어요. 비용 문제도 그렇고, 체온계 구하기조차 쉽지 않거든요.”
 
인천 ㄴ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일선 학교의 빠듯한 예산으로는 위생물품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모든 학교들이 약국이나 의료기 상에서 손소독제와 체온계를 단시간에 구입하다 보니 동이 나서 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학교 현장은 수많은 학생들이 장시간 밀집해 있는 만큼 신종 플루 감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학부모들이 자비로 위생물품을 사서 학교에 비치하는 등 전반적인 준비가 대단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더욱 체계적이고 세밀한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학생 전체에 대한 예방백신 접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2009.9.2 한겨레신문 중)

 개학을 맞아 신종 플루의 집단발병이 우려되는 것에 비해 학생들에 대한 예방 대책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교문 앞에서의 발열검사가 고작이다. 그리고 신종 플루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학원 감염에 대한 예방대책은 전무한 형편이다.

 6월말부터 신종 플루에 대한 예방교육과 일일보고가 실시되었는데, 교과부는 개학후의 상황에 대비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체계적이고 세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미리 앞날을 대비하여 신종 플루의 치료 예방을 위한 백신개발과 충분한 검사 장비를 확보하고 학원 감염에 대한 대책들을 준비했어야 했다.

 학교가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진정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보다 강도 높은 보건교육과 학생들이 건강한 생활을 하며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노력이 시급하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불광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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