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글을 쓴다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버렸다. 결혼 전까지 내 일기장이 열 몇 권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초등학교에서 글을 배우고 쓸 수 있게 되면서, 방학일기를 몰아 쓰면서 언제부턴가 일기를 쓰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아마도 책 읽은 후의 감상문을 써오라던 숙제도 한몫했지 싶다. 게다가 매월 언니가 사다준 ‘계림문고’의 소년소녀 명작동화 시리즈도 단단히 한몫 했을 터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이 가져다 준 감동과 상상력을 드러내어 남기고 싶었고, 그리고 산과 들을 뛰어다니다 저녁 어스름이 지면 이집 저집 불러대던 아이들의 이름들...그 이름을 메아리로 남기고 뿔뿔이 흩어지는 동무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 야릇한 아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물론 나도 어김없이 엄마의 부르심에 집으로 끌려가듯 들어가야 했지만...

산이 주던 감동, 들판의 향기, 코스모스의 하늘거림과 그 냄새, 저녁 답의 애잔한 노을, 해거름의 알 듯 모를 듯 했던 쓸쓸함... 하루 동안 접했던 그 모든 감동과 느낌과 활동들을 내 언어가 닿는 한 가능한 표현해내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그 글을 통해 누구와 무엇과 소통하고 싶었을까? 여튼 그렇게 열심히 썼던 일기장이 두툼한 노트로 열 몇 권이 되었다. 그러나 소위 ‘생활전선’에 뛰어들면서 글은 점점 더 멀어지고,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것이 성명서나 기자회견문 종류로 한정되어 버리고, 사고마저도 그 틀에 갇혀 버리면서, 자연과 동무/사람이 주는 감동을 예전처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편이, 불안과 강박증을 가진 감동 불감 증세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물을 흘러보아 넘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일상의 감각이 무디어질 때, 일상은 매너리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일상이 새로운 것이 될 때는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도 중요하다. 같은 일상이라도 다르게 볼 수 있을 때 일상은 항상 변화무쌍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일상을 색다르게 볼 수 있도록 하게 하는 힘을 글을 씀으로써 회복할 수 있는 듯하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버스와 전철과 마을버스를 교대로 타야 하는 나지만, 버스 운전기사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보호박스 같은 곳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월요일이었다. 아마도 여기 이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곰곰이 일상을 두리번거렸었나 보다. 버스기사에 대한 폭행이 많았다는 뉴스를 언젠가 본 것은 같아 곧바로 추리를 해본다. 아마도 버스승객들의 폭행에 대비하기 위한 것인가 보다. 그럼에도 왠지 안쓰러웠다. 물론 운전 내내 좌석을 떠나기는 힘들지만, 보호대라는 경계로 승객들과 단절된 기사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까?,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의 안전은 안전인가? 속박인가? 뭐 이런...

 그러다가 얼마 전 대법원의 판결이 연이어 떠올랐다. 다세대 주택의 복도나 계단도 주민들의 허가 없이 들어오면 불법침입이 된다는... 물론 단서는 안전과 범죄 예방의 효과라는 것. 이제는 지인의 집이 다세대 주택이면, 지인이 집에 있음을 확인하고 가거나,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어 공동복도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뉴스를 보면서 순간 ‘뭐 이런 0같은..?’ 이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떠올라야 했다.

 그런저런 경계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날 아침에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사랑이 결혼을 하면 전쟁이 되는 레퍼토리... 아이가 생기면 더 강해지는 전쟁, 그 안에는 여전히 여자와 남자는 다르고, 아이는 여자의 몫이고, 돈 적게 버는 일/여성운동은 소일거리 이거나 취미이거나 이기적인 활동이라는 사고의 경계가 도사리고 있다. 그 경계로 인해 소통의 단절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따라서 단절은 지속된다는 결혼한 여성 활동가라면 한번은 경험했을 법한 그 뻔한 레퍼토리가 오늘 아침, 십 수 년 전의 내 경험과 꼭 같은 것에, 그 반복에 진저리치게 만들었었다. 내 딸은 달라질까? 라는 의구심과 함께...

 며칠 전 여성단체들이 모여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광안리를 지척에 두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두 한마디씩 했다. ‘토론은 무슨 토론?’, '이런 장소에서 정책을 논의하라는 것은 폭력이다‘, 등등... 들썩이는 엉덩이와 궁시렁대는 입들... 그러나 막상 토론이 진행되자 모두 진지하게 집중하는 모습이라니.

 뭐 모든 시민사회운동영역에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긴장감과 위기감이 일고 있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성운동영역도 마찬가지이고 그 대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위 대중, 여성들과의 소통의 방향과 방법, 정치권력에 접근하는 자세와 방법, 정권으로부터의 위기 대처방법, 그리고 여성운동들/단체들 및 제 시민사회운동들과의 연대.

 여성운동 안에서의 경계와 단절을 허물고 새로운 연대를 통해 힘을 집결해보자는 것이다. 여성운동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다름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 또한 다르게 접근하면서 그 안에서의 경계들이 만들어져 왔었다. 그리고 그 경계는 허물지 못할 공고한 벽으로 굳어 단절을 유래하기도 했다. 소통의 거부와 소통할 방식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진 벽들이었다. 이제 그 벽을 새로이 허물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허물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벽을 허물기를 원하는가? 왜 허물려고 하고 허물어야 하는가? 가 먼저 질문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단일한 대오를 만들고 대중들이 수용할 적절한 이슈를 선택하면 그것이 곧 연대가 되고, 광풍이 되어 이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사진출처 - 한겨레

 갑자기 일터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던 동료이자 친구와의 갈등이 기억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 이 정도는 니가 날 이해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생각하고 내가 기억하는 너랑 다를까? 배신감 드네..’ 이런 것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에서 출발했음이 보인다. ‘적어도 친구라면..’ 혹은 ‘여성운동 한다면..’ 이런 자기기대에 기반한 전제들이 실망과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나만이 옳다는 닫힌 사고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좋아는 하지만 다름을 안다. 그리고 가끔 그 다름이 불편하기는 하여도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 뭐 너니까!’, ‘흠, 나는 아닌데... 너는 그럴 수도 있겠지..’ 혹은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그 과정이 나도 그도 쉽게 된 것은 아니라 본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만남이 오면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도 못한다. 그러나 한계 속에서나마 갈등을 그나마 극복하게 한 것은 갈등을 숨기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한 수많은 부딪힘, 자기성찰 이런 것들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버스기사의 보호부스, 공용주택 복도와 계단의 외부인 차단, 남편과 아내의 소통의 벽, 그리고 여성운동들 안의 차이, 그로인한 경계들... 둘러보면 우린 너무 외롭다. 경계(boundary)는 곧 그 경계만큼 행동하게 하며 그 경계를 중심으로 각각의 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차이로서 경계는 필요하며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경계는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만 유용하다. 경계가 벽이 될 때 차이는 곧 단절이 된다. 사람간의 단절은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게 하지 못한다. 사물이나 객관화 시킨 대상이 된다. 기사와 승객의 단절은 그 사이에 기사와 승객의 책임과 권한의 다툼만이 존재한다. 오늘아침 기사의 기분이 어땠는지? 승객은 어땠는지? 같은 맥락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도 각각의 역할과 의무와 권리만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외롭고 외톨이이고 항상 경계하는 존재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계를 허물지 않되 단절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연대하고 또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경계를 인정하는 것, 경계를 넘되 내 것으로 남의 것을 채우려 하지 말 것, 혹은 그 반대. 경계란 언제나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등이 아닐까. 연대는 그래서 경계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계를 보고 인정한다는 것은 단일한 관점을 갖기를 바라는 것을 포기할 때, 역지사지를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을 때, 나나 너나 스스로 말하게 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운동의 연대는 운동하는 세력들 내부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의 같음을 발견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왜, 어떻게 다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속에서 같음이 발견될 것임으로.

 경계심을 유발하는 사회에서 경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위험사회를 인정하는 꼴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절을 위한 경계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경계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경계는 이미 그 안에 소통과 교류와 성숙을 포함하고 있다. 경계가 성숙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인적 조직적 성찰과 논의/소통이 또 필요하다. 때문에 그것은 삶이자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하고 될 수밖에 없다. 지속적으로 경계를 성찰하는 삶은 나와 타인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주의란 그래서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는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태도와 자세, 방식 등 과정에 관한 것이다. 여성주의는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건 다 똑같으니 제발 남도 좀 생각하며 살자구요. 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구요. 그리고 집단으로서 가장 큰 덩어리인 성별경계에서 볼 때, 남성여러분 제발 여성들의 경험과 입장을 생각해 보시라구요. 그리고 다 같이 행복한 게 뭔지 같이 고민해 보자구요.”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일요일(23일)인 오늘 국회에서 국장(國葬)이 치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지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 한 분의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달리 하셨다.  

 태어난 곳만 서울이고 어렸을 때부터 대학시절을 대부분 호남지역에서 보낸 나는 호남지역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오죽하면 호남에서의 ‘김대중 정서’가 타 지역의 ‘반 김대중 정서’를 불러 일으켜 대선 낙방의 주요한 이유가 되었을까. 어쨌든 나 역시 그에 대한 정서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대학원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고, 운동을 지속하고 있던 나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현안 이슈들로 인하여 당시 정권과 각을 세우며 심심찮게 “김대중 정권 퇴진하라” 라는 구호를 외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다른 정책들보다도 이라크 한국군 파병으로 인하여 당시 이라크에 있었던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최고의 칼날을 세우며 노무현 정부를 비난했었다.

 
봉하마을 정토원에 안치된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영정사진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운명을 달리 하신 직후,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었고 그 슬픔에 적지 않은 당황까지 하였다. 아마도 당시 흘렸던 눈물은 정치를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구조적으로만 본 점과,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로만 사로잡혀 있었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반성 그리고 감성의 것인 듯싶다. 그러나 솔직히 감성 그 이상을 넘어선 내 스스로 완벽히 인정할 수 없는 그 어떤 종합적인 지점에서의 반성은 아니었다. 그리고 3달이 채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신 김대중 대통령의 죽음을 맞이하며 당혹감과 아쉬움과 슬픔이 또 한 번 가슴속을 지배하고 있다. 이 두 전직 대통령 시절에도 운동을 하며 집권자들에게 비판과 비난의 목소릴 냈으며, 지금도 운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현재의 대통령에게도 내용과 정도만 다를 뿐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가슴속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당혹스럽다. 정말 시간이 조금 더 흐른 이후에야 스스로에게 명확한 설명이 되겠지만 지금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민주주의’이다. 아마도 이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지금 최소한 나에게 두 분의 전직 대통령과 현재의 대통령이 같은 반열에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스스로 원치는 않지만 요 며칠 방송과 신문에서는 드라마틱했던 두 전직 대통령의 개인사를 내비치면서 계속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주의’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서도 볼 수 있는 ‘민주주의’는 현재 2009년을 지나면서 극적으로 그 의미와 정의가 재조명되고 있는 듯하다. 사전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뜻을 누가 모르겠냐 싶지만 이토록 익숙했던 단어가 요즘처럼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평소에는 몰랐다가 희박해지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상투적인 문장으로 정리되는 그러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운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전혀 느끼지 못해서 원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것이 지금에 와서야 이것마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것만이라도 없는 이 사회가 얼마나 억울한지 느끼고 있다. 이 설명하기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느낄 수 있는 이것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전진되었던 민주주의였다. 집회를 하고 시위를 하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 할 수 있었고,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없어서 쩔쩔매지 않았던 그것은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동의하지 않고 문제가 많다고 믿었던 그 정부정책들도 어느 정도 민의(民意)를 두려워했고 여론을 참고했던 이유는 그동안 존재감이 없었던 민주주의였다.

 아마도 백가지 이상이나 있을법한 대통령에 대한 평가기준들 중 현재 내가 두 분의 전직대통령이 사망한 사실이 슬프고 안타까운 이유는 이 ‘민주주의’가 뒤로 돌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민주주의’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도 힘든 이 험난한 시기에. 

 이 글을 빌어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부디 편안한 곳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


위대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상주에 귀농한 지인이 있어 몇 몇 사람이 찾아가 하루는 논에서 피와 잡초를 뽑고, 하루는 비 내리는 밭에서 콩을 옮겨 심었습니다. 평소 허리 숙여 잡초와 피 뽑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관계로 등과 다리의 평소 사용해본 적 없는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했고, 일주일 동안 제대로 걷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그 친구는 남들이 다 쉬러 나간 후에도 논에서 나오는 길에 눈에 띄는 잡초와 피를 뽑느라 제일 늦게 나오고 일하러 들어갈 때는 제일 먼저 논으로 들어갔고, 콩을 한줄기라도 더 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쉴 때 남은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농부의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속되는 야근에 힘이 부쳤는지 결국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로와 면역력 약화가 원인이라고는 하는데 아무튼 시쳇말로 나이롱환자 노릇하느라 일주일을 허비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 중 아침에 한차례 회진을 도는 교수와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오면, 그들의 말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혈압·체온 체크를 하러 오면 그 결과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이 환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게차에 다리를 깔려 뼈가 부러진 분, 자동차 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치신 분, 공익요원으로 근무를 하다 발목 관절을 다친 분 등등 많은 환자들이 의사들의 말 한마디를 신주단지 모시듯 따르고 조심조심하는 모습을 보며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느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기간이 끝나고 또 다시 일상의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반이 무너져 버린 몸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남북화해, 평화를 위해 남은 생의 불꽃을 태우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비록 서거에 임해서이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이 없는 상황을 보면서 완벽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내 생에 이런 정치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치인으로서 욕심이 없었을 리 없겠지만 그 깊은 곳에 항상 자신의 주인으로 국민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원조 촛불' 정치인 김대중 76년 3월 1일 암울했던 유신시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일형 박사
(앞줄 오른쪽) 등과 함께 서울 명동에서 유신철폐를 위한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왼쪽이 김옥두 전 의원이고 김대중 뒤로 부인 이희호씨와 권노갑 전 의원이 보인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땅을 일구는 농부의 손길에서 먹거리 하나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진정한 농심을 찾게 되고,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를 어루만져주는 의사의 손길에서 진정한 의술을 찾게 되며, 가난과 고통으로 시름하는 국민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정치인의 품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게 됩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업무 분야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계가 대신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세분화될 일자리에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업무수행 능력을 요구받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업무처리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객관적이고 고도화된 업무능력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누구 하나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들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단 하루도 지탱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전문가는 제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때에야 비로소 존재의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부 전문가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그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대상을 잘못 찾은 것 같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그동안 쌓아 온 모든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경찰 전문가들은 시민을 상대로 폭압적인 살인 진압을 자행하고, 국가가 국민의 세금을 들여 양성한 법률 전문가인 검사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를 말살하는데 그들이 가진 온갖 지적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 매일 매일 TV 속에 그려지는 정치 전문가들의 행태를 통해 그들의 가슴 속에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을 찾기는 어려운 반면 자본가들과 기득권자들만이 보이는 것은 저만의 편견은 아닐 것입니다.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신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오로지 신뢰만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이. 그 자리를 채울 신뢰를 어떻게 다시 쌓아갈 것인지 암담하기만 합니다.

 그리하여 전문가로서 맡은 소임이 일반 대중, 시민,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로서 쌓아온 실력을 왜곡된 방향으로 사용할 때,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사회를 지탱해나갈 신뢰, 훼손되고 실추된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모습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아닐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위대영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했다.

 왕이 말했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한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하면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그 아래에 있는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선비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위아래가 다투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중략)…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지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나라를 이롭게 하겠다는 양혜왕의 선의(善意)마저 이기주의라고 꾸짖었던 맹자가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인배들 천지라고 혀를 차지 않을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 땅과 건물을 사서 재산증식에 몰두해온 분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나는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장관 후보자부터 남의 돈으로 수십억짜리 집을 사들인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현 정부는 소위 우리나라를 이끌어간다는(가고 싶어 하는) 분들의 추악한 면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을 환원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공약을 이행한다며 밝힌 재단 설립 계획 역시 많은 사람의 비웃음을 샀다. 공약을 지키기도 그렇고 그냥 먹어버리기도(식언하기도) 그렇고, 전전긍긍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대통령이 되었다고(종신대통령도 아니고) 한꺼번에 남한테 주겠나.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 결과가 재산을 기탁하는 대신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을 터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일 한다는 명목으로 세금도 안 내거나 덜 낼 수 있을 테고, 측근들을 재단에 포진시켜 놨으니 내 맘대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사회 환원 방식조차 참 이명박스럽다고 생각한 게 단지 나 혼자만일까.

 새삼스런 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회적 힘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이기주의에 있다. 방법과 절차를 불문하고 이명박처럼 돈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이기주의. 국민들 저마다의 이기주의가 하나의 힘으로 모여 강남 졸부의 화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아니나 다를까, 지금 우리나라는 (가진 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광풍에 휩싸여있다.


현금까지 뿌려가며 신문 시장을 망쳐놓은 조중동. 이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언론환경은
지금보다도 더욱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먼저 ‘4대강 살리기’(실은 죽이기).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을 (눈물을 머금고) 4대강 죽이기로 축소하면서까지(그래도 30조원!) 삽질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건설업계의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국내 최대 건설회사 CEO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눈에 멀쩡한 자연이 망가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급하면 그 흔한 환경영향평가 한번 거치지 않고 삽질부터 시작했을까. 이 사업이 아니었다면 공터에서 공치고 있을 포크레인과 불도저의 감가상각비만 생각해도 얼마인가. 4대강 삽질이라는 게 강바닥을 파서 수량을 많게 하고 둔치나 보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모래밭과 습지로 아름다운 자연 하천을 한강처럼 인공구조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한강의 얼마 안 되는 자연 습지(여의도 샛강을 비롯한)를 파헤치고 있는 건 또 어떤가. 아무리 서울시장 한 번 더 하고 싶고, 대통령에 욕심이 있어도 그렇지 한 때 환경운동연합 회원임을 자랑하고 다녔던 사람의 이명박 따라 하기는 참 볼썽사나운 노릇이다. (대통령의 꿈을 이룬) 이명박을 움직이는 힘이 철저히 계급 이기주의라면, (대통령을 꿈꾸는) 오세훈을 움직이고 있는 힘은 출세욕이라는 개인 이기주의다.

 최근 날치기로 통과된 언론악법이야말로 이기주의의 결정판이다. 자전거에 상품권, 현금까지 뿌려가며 신문 시장을 망쳐놓은 조중동이 결국 신문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되니까 방송을 하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언론에 약한 재벌 총수들이 방송사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지금보다도 더욱 철저히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세월이 변한 것일까? 과거 같으면 수십 번도 더 뒤집어졌을 소식을 접해도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같은 건 이슈조차도 잘 안 된다. 왜 일까? 조중동이 외면해서?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기무사의 망동을 이대로 두고 지나갈 경우 기무사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반정부 인사들을 미행하고 감시할 것이라는 것을. 국정원은 합법적으로 국민들을 사찰하고 도청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의 자유도 언제든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그런 무관심과 불감증의 밑동에 있는 것이 우리 각자의 이기주의다.

 그나마 측은지심은 남아있는 것일까?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다. 그 뜨거움이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길 바란다. 두 분은 역사와 대의에 자기 몸을 진정으로 바치신 분들이다.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이 소인배들이 판치는 시대에 대한 뜨거운 경고라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남아 있다. 문제는 우리 안의 이기주의다. 우리가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고 일어설 수 있다면 여론주도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지난해 촛불 시위 때처럼 말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며칠 전 선거법 관련 전교조 교사들의 공판소식을 전해 들었다. 20명 전원에게 징역 6월에서 2년 2월의 실형이 구형되었단다. 피의자들의 절절한 최후진술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특히 소환당시 암선고를 받고 힘겹게 투병했던 우리 지회장 선생님의 최후진술을 대하면서, 치료하느라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선생님의 야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법정에 다녀 온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뭐, 이런 놈의 세상이 다 있냐!’ 는 울분을 서로 토해내며……. 

 업무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급식업체와 학원장들에게 수십억 원을 지원받고, 교육청 실, 국장과 교장, 교감들을 동원해 선거를 치른’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6월을 구형한 검찰이 개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다만 교육적 충정의 발로로 주후보를 지원했던 이 힘없는 교사들에게는 교육감보다 훨씬 무거운 형을 내린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이유로. 이 정권과 검찰의 후안무치에 또 다시 기가 막혀 온다. 이중 잣대라고 지적하기에도 이제 신물이 난다. 차라리 그냥 딱 까놓고 말해라.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전교조 때려잡으라고 난리였는데, 기회가 좋아서 낚아챈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긴 촛불집회 때 안전한 먹거리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온 유모차부대의 엄마들에게 ‘아동학대’죄를 들이댄 이 정부의 검찰인데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교육의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기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이를 조직적으로 위반함으로써 교육 공공성을 해친 것이 인정되어…’ 라며 검사는 중형 구형의 변을 늘어놓았다. 교육의 공공성이라고 했는가? 검사는 그 뜻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있기에 그 말을 갖다 붙인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최소한 ‘교육의 公共性’이라 함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도 침해받지 않을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보장해야 하며, 나아가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건강하게 발전시켜가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교육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과 매일 호흡하며 생활하는 우리 교사들이 보기에 작금의 교육현실이 그런 대원칙에서 심각할 정도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되기에 그 위기의식에서 우리 교사들이 나선 것 아닌가.

 교육의 균등성 면에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목고, 국제중, 자립형 사립고의 난립, 고교등급제 등 일련의 교육정책들이 결국은 소수의 엘리트학생들에게는 유리한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엄존하는 학력위주의 사회현실 속에서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나라 모든 학부모에게 자녀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누가 더 많은 양질의 사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종착지는 결국 달라지게 돼 있다.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균등하지 못한 릴레이를 펼친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성에 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성적이 곧 실력은 아니다. 또 성적향상이 교육의 다가 아니다. 또한 모든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도 없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알며, 각기 다른 다양한 실력과 소질을 키워 나름의 꿈을 키우고, 또 펼치면서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진짜 중요한 건 다 생략하고 모든 아이들이 성적향상만을 향해 질주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 향상과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되는 분위기다. 언젠가 모 학원에서 어느 특목고의 입시문제를 아이들에게 학원차 안에서 나눠주는 사건이 있었다. 뒤늦게 합격이 취소되고 학원도 문을 닫는 듯 했으나, 결국 학부모들의 소송으로 학생들은 다시 합격 조치되고 학원도 슬그머니 다시 문을 열었으며, 지금 성업 중이다. 학교는 또 어떤가. 특목고준비를 하는 중3학생들의 경우, 학년말엔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요구에 많은 학교들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교실 밖 어딘가에서 입시준비를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적이 모든 가치보다 위에 자리하면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묵살되는 현실, 각종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면서 교육이 교육을 배반하게 하는 이 현실이 또한 교육공공성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교사는 검사의 말처럼 ‘국민전체의 봉사자’이지,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특정 계층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전체, 더욱이 약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3월 10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교육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10년 전 복직에 즈음해 김귀식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난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가슴 속에 새겨두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진실을 가르치려면 우리 교사들은 어떤 권력기관이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양식과 교육관을 지니고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한다.  

 교사는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소매상이 아니다. 그런 건 다른 곳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교사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의 메시지를 찾아 내가며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지나간 역사의 편린들을 단순히 암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지난 역사의 공과 과를 꼼꼼히 분석하고 앞으로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반성하고 토론하는 사람인 것이다. 교사들의 이런 교육활동이 가능할 때에 진정 우리의 교육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정권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 고소, 고발로 난도질당한 교단엔 어느새 울분과 투쟁의 기류 대신 무기력과 자조 섞인 침묵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내쳐진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그래도 교단에 남아 버텨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자위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표정을 잃어가는 교사들. 보았으되 보지 않은 듯, 들었으되 듣지 않은 듯, 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도 꾹 참으면서 쏟아지는 업무에 함몰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너무 우울하다. 학원에서 새벽까지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아이들,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을 보아도 교육자로서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펼 수 없는 우리들이 진정 교육의 주체라 할 수 있는가. 

 힘들었던 해직기간을 마치고 복직하게 되었을 때의 그 벅찬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이제 더 이상 교단이 행복하지 않다. 지난해 동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며 사직서를 던지고 표표히 교단을 떠난 후배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지금에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이 질식할 듯 한 분위기를 그는 조금 일찍 감지하고 떠났지 싶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데 건강한 교육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까. 

 교육당국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가경쟁력’ 진정한 실력과 경쟁력은 이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폭압과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열려있는 사고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개성과 소질을 지닌 아이들을 조화시켜 내는 교육적 시스템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미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교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생각에 반하는 다른 어떤 주장이나 견해도 용납하지 않고 마치 점령군인양 국민들을 폭력으로 통치하려는 정부, ‘잃어버린 10년’을 부르짖으며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는 패륜적인 정부, 그나마 살아 있던 원칙과 상식마저 일시에 엎어버린 정부당국에 마지막으로 바란다. 

 당신들의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눈곱만큼도 양보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아가 백성들이야 어찌됐든 이를 더욱 부풀려 자손만대 누리려는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무식과 어리석음의 소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나라의 앞날이 조금이라도 걱정된다면, 그리고 ‘국가경쟁력’이 제고되길 바라는 게 진정이라면 ‘전교조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그야말로 선정적이고 원한에 사무친 듯 한 구호들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제발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군보안사령부(약칭 보안사)라는 곳이 있었다. 1980년대에 안기부와 함께 공안 사건에서 악명이 드높던 기관이다. 원래 보안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과 군인들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내의 정보수사기관이지만, 한때는 공공연히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도 했었다.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보안사라는 기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잘 나타나 있다.

 수사권한도 없는 기관에서 민간인들을 불법으로 연행해서 수 십 일간 구금하고(불법체포. 감금죄), 잠을 안 재우고, 거꾸로 달아매고, 각목으로 기절할 정도로 구타하는 등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해서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내고(특가법상의 독직폭행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안기부 수사관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수사서류를 만들기도 했다(공문서 위조죄).

 보안사에서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동안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권도 없는 보안사의 민간인 수사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이 정도면 기소할 요건이 성립되었다”고 법률검토까지 해 주었다. 보안사가 수사권한도 없이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보안대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지도 잘 몰랐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절대 꾸며낸 말이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민간인들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권한을 행사하던 보안사는 1990년대까지도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하게 야당정치인 등 민간인을 사찰하다가, 윤석양이라는 청년의 양심선언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지자 다시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약칭 기무사)로 바꾸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씨(가운데)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몰래 찍은 동영상(오른쪽)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최근 기무사가 다시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민주노동당의 당직자와 가족까지 미행하고 촬영을 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수구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외치더니 드디어 20년 전으로 돌아갔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후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틀이 정착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기관이 버젓이 법을 어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1년 만에 이 정부는 온갖 불법이 난무하던 2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버렸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수구언론이나 청와대, 여당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뻔 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냄비근성의 국민들이니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문제는 절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한 사건이다. 87년 국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이후에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오던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간인 사찰에서 시작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간인을 수사하고,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건국 이후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그 사건들 중에는 보안사의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참을 수 없는 공안본능을 조기에 잠재우지 못한다면,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 속도로 보아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순식간일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미행하고, 나의 사생활이 낱낱이 군 수사기관에 보고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창살이 없다 뿐 그것이 감옥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보안사의 민간인에 대한 고문 수사 이야기를 먼 옛날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뱀 꼬리보다는 닭대가리가 되라.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가끔 듣던 얘기다. 대학에 가서는 ‘데모를 하려면 아예 총학생회장이 되든지 주동자가 되라’는 얘기도 가끔 들었다. 학생회 간부나 이른바 운동지도부가 아니라도 실컷 얻어맞는 건 기본이고 여차하면 고문까지 당하는 터라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조언을 하지 않았지만 나름 세상이치를 좀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 중에는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뭘 하든 남들의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라!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이 조언 속에 참 많은 함의가 담겨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간이 갈수록 무섭게 다가오는 게 있으니 그건 ‘어느 쪽이든 권력에 접근하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였다. 이런 제기랄. 권력에 환장했나? 20대 때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하지만 그 말 속에 켜켜이 담겨 있는 경험과 역사를 조금씩 체감하면서 때론 열패감에 때론 분노에 휩싸이곤 한다. 왜? 그 때 그 어른들의 충고를 새겨듣지 않아서?


 언론사라는 곳에 있다 보니 우리사회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사람들을 직접 보기도 하고 그들의 얘기를 자주 접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이른바 정치엘리트(?)가 충원되는 경로를 비교적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뱀 꼬리보다는 닭대가리가 되라’는 말이 왜 이토록 오랫동안 우리사회의 처세술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절감할 때가 종종 있다.


 이와 관련해 우선 가장 흔히 목격하는 사례는 대통령 선거다. 선거 때가 다가오면 이른바 캠프라는 것이 꾸려진다. 선거운동을 하는데 캠프가 없을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 선거캠프라는 것이 참 재미있다. 가치관과 정책에 공감해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없지 않겠지만 우리사회에서는 대선 캠프라는 곳이 취업 창구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를 돕던 참모들이 후보가 당선된 이후 보좌진으로 일하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어느 사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여기서 취업 창구라고 말하는 건 국정운영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참모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저런 떡고물을 생각하며 캠프에 이력서를 들이밀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가 당선된 뒤 그들의 전문성이나 가치관, 목표의식과는 관계없이 높은 연봉과 영향력이 보장되는 자리로 취업이 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이다. 대통령 한 사람이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이런 낙하산이 얼마나 될까? 세 보진 않았지만 너무 많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회의실에서 방문진 신임이사로 선임된 이사들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몇 차례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선거를 통한 취업이라는 관행이 굳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은 이른바 지식인들이다. 교수, 기자,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등.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캠프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면 누구는 국회로 가고 누구는 청와대로 가고 누구는 공기업 이사와 감사로 가고... 대선 후보 캠프라는 곳이 이렇게 취업 창구가 되다보니 정책이나 가치관 따위는 별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먹고 살려고 직장 구하는데 까짓것 정책이니 가치관이야 뭐 대수겠는가. 취직시켜주고 인정해주고 돈 많이 주면 그만이다. 반대로 취직 제대로 안 시켜주고 똑똑한 나를 제대로 대접 안 해주면? 볼 거 뭐 있나, 안녕이지. 하여 김대중 후보 캠프에 얼쩡거리던 사람이 ‘친북좌파’니 어쩌니 하면서 반 김대중 투사가 되기도 하고 노무현 후보 캠프에 취업원서 넣었던 사람이 ‘잃어버린 10년’이니 어쩌니 하면서 이명박 정부에 참여해 투사가 되기도 한다. 거 참.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주군이 최고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칼만 차지 않았지 이들은 사무라이들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찾아 권력의 주변을 떠도는 사무라이들.


 문제는 이런 사무라이들의 눈에는 주군만이 보일 뿐 정작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세금을 내는 국민들은 안중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능력은? 뭐, 주군에게 충성하고 반대세력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면 충분한 것 같다. 뭐 또 사회라는 게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거지 나 하나쯤 어떻게 한다고 조직이 안돌아가고 세상이 망하고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과거에 뱉었던 말들? 세월이 가면서 생각도 변하고 그런 거지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이라고 이런 사무라이들이 없었을까마는 요즘은 아닌 게 아니라 좀 걱정스럽다. 왜냐고? 단순히 취직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너무나 전투적이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에도 이런 사무라이로 의심되는 몇몇 이사들이 입성했다. 이들은 ‘왜곡, 편파방송을 일삼아 온 문화방송을 바로잡겠다’는 굳센 결의를 다지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래, 문화방송이라고 왜 문제가 없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서 고쳐야겠지. 그런데 왜, 당신들이 ‘왜곡, 편파방송’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는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관련 보도에 그토록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문화방송이 언론 신뢰도 1위를 차지했을까? 국민들이 왜곡, 편파 방송에 세뇌가 되어서?


 칼이든 펜이든 입이든 마구 휘두르면 화를 부르게 되어 있다. ‘왜곡, 편파방송’이라는 당신들의 진단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대한민국 방송 산업과 언론에 대한 당신들의 고민과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제발 그것부터 냉정하게 생각해보기 바란다.  


 생전에 노무현이 ‘웨스트 윙’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즐겨 봤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나도 그 드라마를 구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감상평을 한 마디만 한다면 ‘왜 노무현이 이 드라마를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정도 되겠다.


 웨스트 윙이란 백안관 서쪽 구역을 말하는 것으로 대통령 참모진들이 일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짐작하셨겠지만 백악관 참모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드라마는 토론으로 시작해 토론으로 끝난다. 백악관 비서실장까지 포함해 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토론을 벌이고 대화를 나눈다. 거기에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 토론 속에 정책이 담겨 있고 가치관이 담겨 있다. 물론 재미까지.


 드라마를 유심히 보면서 생각해봤다.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내 눈길을 끈 건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공간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에 문이 여러 개가 있다. 비서실장과 바로 문이 이어진다. 대통령은 언제라도 필요하면 문을 열고 비서실장과 대화를 할 수 있다. 비서실장 사무실은 조금만 움직이면 참모진들 사무공간과 곧바로 이어진다.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또 다른 문은 복도와 연결되는 듯한데, 이 복도도 백악관 참모들 사무공간과 이어져 있다. 대통령이 이 복도를 걷다가 참모와 마주쳐 이런 저런 얘길 하는 장면도 자주 볼 수 있다. 바깥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도 있다. 대통령은 관저에서 회랑을 지나 곧바로 집무실로 들어간다.


 대통령이 백악관이라는 공간에서 중심축에 위치한다. 대통령은 필요하면 언제라도 참모들을 불러 ‘토론’을 할 수 있다. 백악관이라는 공간 자체도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서 웬만한 집회라도 열리면 집무실에서 구호 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런 공간구조를 강원도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에서 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겨레하나’가 주최한 답사를 인솔하던 사진작가 이시우씨한테 듣기로는 철원군당 위원장 사무실은 1층에 있다고 한다. 노동당사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철원 노동당사 최고 책임자 사무실이 있는 셈이다.

 청와대라는 공간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직 대통령이 작년에 몇 번째인가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했던 말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시민들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었다.”


 왜 뒷산에 올라갔을까? 설마 대통령 집무실에선 노랫소리가 안 들리는 건 아닐까?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안 들릴 정도라면 대통령 집무실은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고립된 공간이 아닐까.


 그렇게 토론을 좋아했다는 노무현조차도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점점 토론에서 멀어져 갔던 기억이 난다.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진 사무실을 아예 다른 건물에 배치했다고 한다. 참모들과도 만나기 쉽지 않으니 국민들 얘기 듣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1일부터 개방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일 오전 문화연대, 참여연대, 야4당 서울시당 
계자 20여명이 광화문광장조례안을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은 참석자들이
피케팅을 했다는 이유로 미신고 불법집회로 판단해 수차례 해산 요청 후 참석자 10여명을 연행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얼마 전에 광화문 광장이 문을 열었다. 처음엔 순진한 맘에 광화문 광장이 생기면 청와대와 몇 백 미터는 가까워지니까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봤다. 하지만 역시나. 광장에서 기자회견도 못한다는 희한한 정부 방침이 나왔다. (도덕시간에 배운 기억이 난다. 북한에선 수령님 말씀이 헌법보다도 위에 있다고.)


 앞으로도, 현직 대통령은 시민들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들으려면 힘들게 뒷산까지 올라가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럴꺼면 광화문광장에 확성기라도 설치해 주는 게 ‘선진화’로 보나 ‘글로벌 스탠다드’로 보나 맞는 것 아닐까.


 @뱀다리(蛇足): 광화문의 명물이 됐다는 게 광장일까? 차도 한가운데 분수대와 화단, “큰 칼 옆에 차고” 있던 충무공을 “큰 칼 옆에 들고” 있는 왼손잡이로 바꿔놓은 이순신 동상, 거기다 초등학교 때부터 봤던 그 자세 그대로 세종대왕 동상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이것저것 꽉 채워놓아서 풍물패 길놀이 하기도 쉽지 않겠다. 내 눈엔 아무래도 광화문 광장이 아니라 광화문 ‘공원’으로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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