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7일 오후 2시30분부터 군 당국의 허가유무와 관계없이 총기 사망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선두소초에 대한 현장 방문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현장조사단은 육군 예비역 중령 피우진씨, 육군 예비역 소령인 성주목 변호사,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전날 긴급체포 된 정모 이병에 대한 변호사 접견보고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5일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에 해병대2사단 총기 사망사건을 비롯한 인권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조사 실시 이유를 설명했다.

daero@newsis.com

[강화 해병대 총기난사] 유족들, 사망 경위 들으며 ‘고성’

해병대 총기사고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은 침통함으로 가득 찼다. 뜬눈으로 밤을 보낸 유족들은 5일 명확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유가족과 친인척 70여명은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밤을 보냈다. 일부는 오열하다 탈진해 링거주사를 맞았다. 장례식장에는 희생 장병의 친척과 지인, 군 동료의 방문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군의 중간조사 결과 발표를 들었다. 그러나 일부 유족은 사망 경위를 설명할 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승렬 상병의 아버지는 “아들이 ‘알 수 없는 연유로’ 상황실 밖으로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군이 발표했다”며 “한 사람의 명예가 좌지우지되는 일인데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박치혁(21) 상병의 고모 박모(45)씨는 “군이 처음엔 이송 과정에서 죽었다고 하더니 이젠 국군수도병원에서 죽었다고 한다”면서 “사망 경위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거냐”고 따졌다.

유족들은 숨진 장병에 대해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 군은 총기사고를 낸 김모 상병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뒤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나머지 장례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상기 육군 참모총장,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 박종헌 공군 참모총장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시민들은 해병대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한 네티즌은 “배우 현빈 입대로 개선됐던 해병대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최영기(31)씨는 “관심사병에 대한 세심한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인권센터 오창익 사무국장은 “관심사병 진단을 받으면 지속적인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데 최소한의 시스템조차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성남=정부경 기자


"무식한 MB에 끌려다니고... 엉망진창됐다"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행사... 소설가 조세희씨 등 참석


어느 순간부터 그는 '소설가'보다 '거리의 기록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원고지 더미에 묻히지 않고 거리로 나섰고, '펜'보다는 '카메라'를 드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2005년 12월 이후 거리에서조차 그를 볼 수 없었다. "5가지 병"을 앓게 되면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아픈 몸인데도 '꼭 참석해야 할 행사'에는 나와 여전히 남아 있는 '난쏘공'의 현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곤 한다.  



기자가 그를 최근 만난 건 지난 2008년 12월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운영하는 '마들연구소' 특강에서였다. 특강 말미에 그는 이런 말로 우리 시대의 진실을 날카롭게 일깨웠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다른 하나는 바보다."



"가난한 식당의 백구가 우는 게 슬펐다"



그로부터 2년 반 만인 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소설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행사에서였다. 그는 최근 "가난한 식당"에서 보았던 백구(흰둥이개) 얘기를 꺼내들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두 마리 개가 짖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왜 저렇게 짖는 걸까?'라고 묻길래, 내가 '통역해줄까?' 하면서 '배고파 밥줘라는 뜻이야'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개가 그렇게 '멍멍' 짖어대는데도 (주인이) 밥을 안줬다. 식당 건너편에 있던 개도 '멍멍' 짖어댔다. 내가 '나도 안먹었는데, 너도 안먹었어?라는 뜻이야'라고 얘기해줬다."



'가난한 식당의 주인'이 '배고픈 개'를 외면하는 풍경이다. 이는 약자들끼리조차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과 겹쳐졌다. 오창익 인권연대 국장은 "연대의 감수성이 낮아진 걸 꼬집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조씨는 "요즘에는 자다가 눈물이 나온다"며 "한국 현실에도 울고, 이루지 못한 일이 많아서 운다"고 말했다.



"난쏘공을 써놓고 가만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세상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숨막히고 몸도 나빠졌다.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가난한 식당의) 백구가 우는 게 슬펐다. 300년 전 동학 할아버지들은 싸우고 피해 다니면서도 그 땅 민중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민중들을 위해 개 한마리도 잡아먹지 않았다. 개는 인간하고 가장 가깝다."



물론 난쏘공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 데는 '낮아진 연대의 감수성'에도 있지만, '성장주의 신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성장주의 신화는 과거 박정희 시대부터 현재 이명박 시대까지를 관통하고 있다.



"박정희 때도 '곧 선진국 된다'고 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 때도 그랬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사람마다 '가장 뛰어난 국가, 선두에 서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허깨비 같은 소리를 해댔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도 이상한 소리를 한다. 서양에서 500년, 600년 동안 해온 것을 (지금 대통령은)  단숨에 하려고 한다."



그렇게 "선진국 진입"을 외쳤고, "악에 굴복한 제3세계의 아버지"들이 열심히 살아왔건만 한국은 지금 '2세계'도 아니고, '1세계'는 더더욱 아니고, 이제 겨우 '2.5세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조씨의 생각이다.



 
 
▲ 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기념행사.  
ⓒ 구영식  인권연대






"아버지 세대가 무얼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4대강 사업'도 "단숨에 하려"는 것 중 하나다. 조씨는 "토건사업 때문에 죽겠어"라면서 '4대강 사업'을 입에 올렸다.



"박정희의 도덕이나 윤리를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자본(가)의 윤리도 믿을 수 없다. 그들과 일하는 관리들도 믿을 수 없다. 4대강에 아무 일 없다? 다른 나라에서 30년 하는 4대강 사업을 단숨에 하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그렇게 조급한가? 외국도 못나갔나 보다. (서양에서는) 건축물 하나가, 다리 하나가 몇백년 유지되는데…. 그 무식한 이에게 끌려 다니고…. 우리가 엉망진창이 됐다."



이어 조씨는 "이런 사람(지도자)과 엉망진창인 민중 속에서 좋은 일이 갑자기 생길 수가 있겠냐?라고 물었다. '선진국 담론'을 유포해온 지도자뿐만 아니라 "엉망진창인 민중"도 오랫동안 '성장주의 신화'를 지속해온 한 축이라는 지적으로 들렸다.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 동족을 학살한 원흉들에게 인사하러 가고, 전․노를 위해 한해 15억원을 쓰고, 독재자의 딸이 뭔가 뭔가 되려고 하고. (도대체 이런 속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나?"



조씨는 이날 "엉망진창"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한국의 미래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난 100년은 악인들의 세대"라고 규정한 그는 "다음 100년의 좋은 성장을 위해서 '적들'과 빨리 헤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을 상기시켰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한다. 잘못된 일과 불의, 그 앞에서 저질러진 범죄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 악을 저지하는 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



연대하지 못해 일어난 불행은 그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얘기다. 조씨는 "우리 세대가 싸우지 못했고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겪지 못했다"며 "(그래서) 범죄자들이 감옥에도 안가고 쌓아놓은 부도 내놓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조씨는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이 퇴보했고 (진지한) 고민도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면서 젊은 층의 냉소주의, 비관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나는 독재자들이 계속 태어나고 그들이 지배하는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비관주의자가 됐는데) 비관주의자는 나 한사람으로 충분하다"며 "냉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조씨는 "냉소주의는 나쁜 정치인이나 무식한 정치인이 가장 좋아하는 얘기"라며 "20대가 (냉소주의자나 비관주의자 같은) 엉망진창이 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요즘 유행하는 것이 '분노하라'다. 그런데 나는 힘을 다 잃어버려 분노할 수가 없다. 분노하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아버지 세대가 무얼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발언대를 내려온 조씨는 기자가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충고의 의미를 묻자 "(한진중) 희망버스가 가는 걸 두고 '니들 잘났어'라고 하는 것"이라고 답한 뒤 "노동 얘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시간 때문에) 못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신은 비겁자의 자식, 억울한가? 그럼 분노하라!"
'난쏘공' 조세희 작가, 3년 만에 공식 석상 나서 강연

3년 만에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공식 석상에 섰다. 1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12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약 40여 분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난쏘공' 출판 30주년 행사 이후 첫 공식 자리였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안수찬 <한겨레> 기자는 조세희 작가를 두고 "3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 글을 쓰는 것에 귀감이 되고 시대의 귀감을 보여주는 작가"라며 "우리 시대의 정직한 교과서를 썼고 힘 있는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소개했다.

폐기종 등 여러 병을 앓고 있는 조세희 작가는 이날 연단에 서는 것조차 힘에 겨워보였다. 미리 준비한 종이를 든 손은 시종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35년 전 '난쏘공'을 쓸 때와 똑같았다. 시대가 바뀌지 않는 것에 좌절해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것.

그는 "현재 한국 사회는 엉망진창"이라며 "현재의 문제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조 작가는 "악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 가져야 한다"며 "현실을 비관하거나 냉소하지 말고 분노하라"고 당부했다.

아래 그가 연단에서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싣는다.

박정희, 아주 묘한 사람이다

내가 아프다. 요즘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2005년 11월 15일부터다. 왜 그런가 하면 현재 200여 개의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에 태어나 여러 가지 제한조건 속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에 몇 마디를 국가에 전하기 위해 여의도로 올라왔다.

그러다 이 국가를 지탱하게 하는 큰 힘 중에 하나인 경찰의 진압 작전에 휘말려 두 분이 돌아가신 날, 나 역시 다쳤다. 그 때부터 아프다.(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국농민대회에 참여한 농민 두 명이 경찰진압과정에서 머리를 맞아 사망했다.)

몇 군데를 크게 다쳤다. 5.18 때 이 땅에 태어났기에 겪은 가슴 아픈 일 다음으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날이었다. 그때부터 밖을 나가지 못했다.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병원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다니고 있다.

여기에 젊은 분들이 와 있다. 여러분과 달리 난 한국의 농경사회에서 태어났다. 거기서 태어나 박정희라는 아주 묘한 인간을 만났다. 여러분이 어떻게 배웠는지 몰라도 난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 배웠다. 그 치하에서 자랐기에 잘 안다.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서도 잘 안다. 동족을 학살하고 피 흘리게 한, 가장 나쁜 일을 한 사람이다. 그 사람과 악수를 해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시대도 살아서 김영삼을 잘 안다.

한국의 미래는 엉망진창, 왜?

말이 샜는데, 어쨌든 박정희 시대에 우리는 몇 백 년 동안의 일을 단숨에 이뤘다. 박정희가 했다고 한다. 도로도, 전기도 다 박정희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정희가 그렇게 부자집에서 태어나서 한 나라를 다 먹여 살렸는지 몰랐다.(웃음) 박정희는 가난한 농민의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

난쏘공을 한 권 써놓고 가만히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 (박정희가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그런 생각이 달라지리라 생각했는데 자꾸 엉뚱한 상황으로 나가더라. 박정희는 늘 우리가 선진국으로 될 거라 했다. 늘 발전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선진국인가.

노태우 때, 전두환 때도 마찬가지다. 몇 년 뒤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선 뛰어난 국가가 되겠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우겠다. 그런 허깨비 같은 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후한 점수를 줘서 2.5세계에 도달해 살고 있다. 국민총생산은 여전히 2만 달러를 넘어가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으쌰으쌰' 하더니 어떻게 됐나. 후하게 쳐줘서 2.5세대에 와 있다.

근데 지금 우리의 대통령도 똑같이 늘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명박은 박정희처럼 우리에게 잘 살게 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의 미래는 내가 볼 때는 답답하다. 엉망진창이다.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서양인들이 500~600년에 걸린 것들을 단숨에 해치워버리기 때문이다.

이명박은 땅 파는 게 뭐라고 왜 토건 사업을 하는지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500~600년에 걸쳐 해온 것을 이 뛰어난 인간들은 단숨에 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런 사회를 보면서 비관주의자가 되어선 안 된다. 나로 충분하다. 냉소주의자가 되어도 안 된다. 그것은 정치가들이 제일 좋아한다. 나쁜 정치인들, 무식한 정치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스무살 청년들이 엉망진창이 되어선 안 된다.

학자들도 엉터리다. 4대강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린 이명박 대통령이 뭘 생각하는지 다 안다. 하지만 우리는 무식에게 끌려 다니고 한 가지 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 이명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외국에도 안 나가봤는지 궁금하다. 건물 하나가 몇 백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고 다리 하나가 몇 백 년 동안 그대로 있는 걸 못 봤나.

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요즘 유행이 '분노하라'다. 하지만 난 힘이 없어 분노하지 못한다. 어제 밤에도 제대로 잠을 못 잤다. 이 병은 완쾌되지 못하는 병이다. 언제 나를 쓰러뜨릴지 모른다. 힘이 하나도 없어 분노할 수가 없다. 분노에는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몰라서 그런지 힘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는 엉망진창인 인간을 그대로 놔둔다. 전두환, 노태우. 이 둘은 지금도 편하게 살고 있다. 200여 개의 나라에서 이런 일이 또 있겠는가. 야스퍼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것은 공동의 책임이라고 했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미래의 주인이고 희망이고 세계다. 역사에 우리가 참여해 같이 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혁명도 이루지 못했고 범죄자가 감옥으로 가지도 않았다. 되레 범죄자들은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일을 제대로 못했다. 독재에 굴복을 받아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여러분은 여기서 끝내면 안 된다. 아버지 세대가 뭘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떳떳하다고 큰 소리 치면 안 된다.

여러분은 비겁자의 자식이다. 제3세계 아버지의 자식이다. 그게 억울한가. 그럼 달라지자. 청와대가 달라지지 않으면 청와대로 갑시다. 이런 말을 하겠다. 나 자신에게도 욕을 하고. 냉소주의자가 되지 마라. 나도 언제 죽을지 몰라도 냉소주의자가 되진 않겠다.


/허환주 기자

‘난쏘공’ 작가 3년만의 외출 “비관주의자가 돼선 안된다”

그는 말을 하는 내내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떨리는 손은 짧은 강연이 끝날 때까지 이마를 떠나지 못했다. 소설가 조세희(69)씨. 심장과 폐에 병을 안고 있는 그가 3년 만에 어려운 외출을 했다. 2008년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난쏘공) 출간 30돌 행사 이후 처음이다.
그가 힘겹게 찾은 곳은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1일 열린 인권연대 창립 12돌 기념식이다. 그는 현시대 한국 사회를 “엉망진창”이라고 표현했다. “요즘 눈물겨운 현장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꽉꽉 눌러오고 있다”고도 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을 마음에 새긴 말이기도 하다. 그에게 ‘난쟁이의 삶’은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힘겹고 눈물겹다.

작가 조세희에게 현재는 ‘반동의 시대’다. “20세기 100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며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우리 공동체 안의 다수는 행복과 먼 거리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빠져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폭력만큼이나 이명박 정부의 조급증은 무섭다”고 했고, “몇십년 걸려서 해도 안 될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우리 세대는 독재자들에게 잘 저항하지도 못했고, 항복도 받아내지 못했고,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이들에게 힘줘 당부했다.

“비관주의자도 냉소주의자도 돼선 안 된다. 비관주의는 나쁜 정치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분노해야 할 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난쏘공’ 작가 인권연대 12주년 기념식서 연설
“한국은 지금 다 원점으로 돌아갔다…싸우라”

“분노하십시오. 분노하는 데는 굉장히 힘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지금 다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눈물겨운 현장 이야기가 우리 가슴을 꽉꽉 누르고 있습니다. 공장에서의 삶이 비인간적이라면 공장이 개조돼야 합니다. 국회에서 제대로 안 되면 국회가 개조돼야 합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소설가 조세희 선생이 1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12주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것을 주문했다.

 조세희 선생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독재자에게 저항도 잘 못하고 불복종 항복도 받아내지 못하고 여러분 일자리도 만들지 못한 제3세계 아버지들의 자식”이라며 “아버지 세대의 잘못을 기억하고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고 싸우라”고 말했다.

 조세희 선생은 폐기종 등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연단에 서서 40여분간의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병마로 인한 아픔이 아니라 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전국농민대회에서 경찰진압과정에서 경찰에 머리를 맞아 사망한 두 농민의 죽음을 불러냈다.

 “제가 아픕니다. 요즘. 요즘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2005년 11월 15일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태어나 여러가지 제한조건 또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 몇 마디를 국가에 전하기 위해 여의도로 올라왔다가 그 국가를 지탱하는 큰 힘 중에 하나인 경찰 3개 부대에 진압작전에 휘말려서 두 분이 돌아가신 날, 그 때부터 저는 (숨을 몰아쉬며) 아픕니다.”

두 농민의 죽음으로 연설을 시작한 조세희 선생은 1970~80년대 성장주의 시대를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토건사업에 몰두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조세희 선생은 “단숨에 경부고속도로를 뚫더니 지금 4대강도 마찬가지”라며 “구미·유럽에서 건물 하나 짓고 다리 하나 세우는 데 몇 백년이 걸리는 일을 우리는 조급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희 선생은 이런 ‘조급증’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여전히 ‘제자리’임을 지적했다.

 “박정희때 뭐라 그랬습니까. 우리는 곧 선진국이 된다 그랬어요. 노태우때, 전두환때, 몇 년 뒤에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두에 선 뛰어난 국가가 되겠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배우겠다. 그런 허깨비 같은 소리를 해댔어요.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주 후한 점수를 줘서 2.5세계에 도달해 살고 있습니다. 국민총생산(GNP)은 여전히 2만달러 넘어가지 못했어요. 아시아에서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으쌰으쌰하더니 어떻게 됐어요? 2.5세대에 와 있어요.”
 조세희 선생은 야스퍼스를 인용하며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인간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과 불의, 저질러지는 범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눠지게 된다”

 조세희 선생은 마지막으로 분노하되 냉소는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여러분이 미래의 이 땅의 희망이고 주인이고, 세계 역사에 참여해서 같이 해야 할 미래”라며 “현실을 비관하거나 냉소하지 말라”고 말했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사진 김원 인권연대 회원 제공


3년 만에 공개 강연 ‘난쏘공’ 작가 조세희

“여러분이 이 땅의 주인이고 희망이고 미래입니다. 아버지 세대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1일 오후 7시30분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기념 강연회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69)는 “비관주의자, 냉소주의자가 되면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비관주의, 냉소주의는 나쁜 정치가, 무식한 정치가들이 제일 좋아하는 일”이라고도 했다. 이날 강연장에는 청중 800여명이 모였다.

조씨는 “한국의 미래가 답답하다”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모두 선진국이 된다, 발전한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다 잘 살게 하겠다고 했는데 엉망진창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개발시대의 그늘을 다룬 <난쏘공> 저자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난쏘공>을 하나 써놓고 가만히 있었다”는 조씨는 “아이들이 자라면 달라지겠지 했는데 그 사이에 엉뚱한 방향으로 가버렸다”며 아쉬워했다.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그는 “나라가 엉망이니 숨 막히고 병이 나기 시작하고 점점 나빠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뚫어야 한다고 했을 때처럼 엉망진창입니다. 박정희, 대기업 재벌들, 그들과 같이 일하는 한국 관리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뭘 생각했는지 우리는 다 알면서도 질질 끌려다닌다”고 한탄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송장세대’라고 표현했다. “분노하라고 하는데 힘이 있어야 분노를 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분노할 힘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20대들은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라. 냉소주의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공동의 일, 공동의 숙제를 해낼 수가 없다.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라고 젊은이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을 덧붙였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지른 범죄행위들을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악을 저지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나눠 지게 되는 것이다.”

조씨는 2008년 11월 <난쏘공> 30주년 출간 기념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후 3년여 만에 공개 석상에 나왔다. 2008년 당시 조씨는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 아닌 '허황된 구라'다"
[프레시안 books]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 아니다>

한둘이 아니다. 아물만하면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견딜 만한 생채기도 있었지만, 때론 피멍이 들기도 했고, 큰 흉터를 남기기도 했다. 그들의 문법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서도 그랬으니, 불자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람 많이 모인 곳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은 차라리 낫다. 시끄럽기만 할 뿐이니 그냥 지나쳐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그저 시끄럽게만 구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때론 가슴을 후벼 파는 짐승의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2004년 동남아 일대를 덮친 지진 해일(쓰나미)을 두고 김홍도 목사는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다. 그것도 이슬람 때문에, 불교 때문이란다. 조용기 목사는 일본 지진 해일이 "우상 숭배" 때문이라고 했다. 제 것도 아닌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한다고도 하고, 어떤 시장들은 기독교인만의 거룩한 도시(聖市)가 되어야 한다고 성시화(聖市化)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말에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사찰에 들어가 땅 밟기랍시고 갖가지 저주의 말을 쏟아내고, 우상이라며 단군상이나 불상의 목을 쳐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산중 석불에 시뻘건 페인트로 십자가를 덧칠해 놓기도 한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부리는 패악질도 문제지만,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당하는 상처는 훨씬 깊다. 종교 문제에 대한 말다툼 끝에 인간관계가 끊어져 버리는 경우는 너무 흔한 일이다. 아내나 남편이 이단이 되었다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거나 목사들의 '이단 클리닉'에 넘기기도 한다.

맹목적이고 폭력적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다. 최소한의 상식도 외면하는 사람들. 그들은 광신적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들은 곳곳에 포진해있다. 마냥 피하기만 할 수도 없다. 일터와 학교에서, 거리 곳곳에서 지금도 그들의 복음이 선포되고 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한 무명인도 비슷한 고민을 했나 보다. 그는 광신적 근본주의자들에게 받은 상처를 잊지 않고 간직했다. 그리고 치밀한 자료 조사와 함께 한 권의 책을 썼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 아니다>(삼인 펴냄). 도발적인 제목이다. 419쪽이나 되는 두툼한 단행본 한 권이 오로지 이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쓰였다. 이 책은 구약과 신약을 동시에 경전으로 갖고 있는 기독교인들, 특히 광신적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도발이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 아니다>를 쓴 최동훈은 무명인이다. 책날개에 달린 지은이 소개로도 저자가 누군지 알 수 있는 단서는 별로 없었다. 무명인이 받는 푸대접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최동훈의 책은 <강원도민일보>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으니 독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책 속에서 이 책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이 아니다>와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무명인의 책이라고 허투루 볼 일은 아니다. 최동훈은 만만치 않은 내공을 바탕으로 성경을 분석했고, 그 결과 근본주의자들의 허구를 단박에 깨버리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근본주의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기독교 신자들은 구약 뒤에 신약을 합해 놓은 <성경>을 하느님의 책이라 믿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책은 글자 한자 한자가 모두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에 단 하나의 틀림도 없는 것이다. 이른바,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이라고 한다. '디모테오 2서' 3장 16절의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 등의 구절이 그 근거란다. 그래서 성경은 전혀 틀림이 없단다. 바로 성경무오설(聖經無誤說, 성경무오류설)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계시(啓示)는 한자어 그대로 열어서(啓) 보여주는(示) 것이다. 베일을 젖혀서(비밀 같은 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성경에 오류가 없다면, 그건 단지 신을 드러내 보여주는(啓示) 목적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만 오류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역사적·과학적 사실과는 무관한 지어낸 이야기들이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신화'도 마찬가지다.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곰이었던 사람(熊女)과 결혼해 단군을 낳고, 단군을 조선을 세워 1500년 동안 다스렸다는 이야기는 진흙으로 남자를 만들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를 뽑아 만들었다는 창세기의 이야기처럼 허황되기 짝이 없다. 단군의 1500년은 아담이 930년을 살고, 아담이 130세에 낳은 아들 셋은 920년을 살았고, 셋이 105세에 낳은 아들 에노스는 905년을 살았다는 '창세기' 6장의 이야기처럼 황당하다.

구약과 삼국유사에는 역사적·과학적 사실과 무관한 허황된 이야기들이 잔뜩 나오지만, 죄다 백해무익하다고 내칠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이야기 속에 담긴 오래전 선조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맥락이나 교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으면 된다.

그러나 성경을 틀림없는 하느님의 책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의 경우엔 다르다. 말 뜻 그대로 옛날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한 글자도 빠뜨리지 말고 다 믿어야 한단다. 성경에 대한 약간의 의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의심하거나 물으면, 곧바로 '불신지옥'이라는 어마어마한 협박을 들이댄다.

구약은 신약과 전혀 다른 맥락의 책이다. 집필 의도도 다르고, 심지어 언급되는 하느님도 서로 다른 존재이다. 최동훈이 지적하듯 "구약이 하나님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호령하는 하나님이라면 신약의 하나님은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할 것이라고 가르치는 하나님"(358쪽)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늘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님이라면 신약의 하나님은 언제나 뒷전에 물러나 있는 하나님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요란한 하나님이라면 신약의 하나님은 조용한 하나님이다. 구약의 하나님이 수다스러운 하나님이라면 신약의 하나님은 침묵하는 하나님이다." (359쪽)

기독교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십계명만 해도,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오는 십계명은 각각 다르다. 앞의 것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에 의해 직접 체결된 계약으로 나오지만, 뒤의 것은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상기하는 맥락에서 제시되고 있다. 내용도 조금씩 달라서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제4계명이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일곱째 날 쉰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신명기'에서는 이집트 노예 생활을 회상하며, 해방자인 하느님을 기억하는 날로 여겨지고 있다. 구약에는 이런 식의 충돌과 오류가 곳곳에 있다. 구약의 권수도 개신교는 66권, 천주교 73권, 동방정교회 76권, 에티오피아 정교회 81권 하는 식으로 제각각이다. 그저 그러려니 할 일이다.

교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도 구약의 창조 설화는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아담은 진흙으로,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를 하나 뽑아 만들었다는 것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진짜로 남자는 여자보다 갈빗대가 하나 적은 줄 알았다. 하느님이 하얀 수염이 달린 인자한 얼굴의 할아버지인줄 알고 있던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모두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

글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깨닫도록 돕는 것처럼 어린이들에게 단순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문제될 건 없다. 그저 알기 쉽게 믿으면 천당, 믿지 않으면 지옥 또는 착하면 천당, 악하면 지옥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그럴만하다. 어린이들에게 더 이상 쉽게 이야기할 도리가 없을 정도까지 쉽게 설명하는 건, 어쩌면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배려이며 책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단순화가 주일학교 초등부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거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의 기독교 사상은, 사실 사상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것도 없지만, 대개 유치부나 초등부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최동훈이 관찰하기에 불교도나 기독교도나 모두 자기 종교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교도들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가 기독교 사상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양 착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 사상은 정통적인 의미에서 단 하나로 귀결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다." (15쪽)

최동훈이 꼽은 기독교 사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단순화'였다. 기독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여덟 음절로 단순화된다. 단순하게 믿음만을 강조하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당하는 자연재해도 '하나님의 심판'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이웃과 연대하는 사랑의 실천이나 최소한의 도덕보다도 그저 믿음만을 되뇌는데 가장 든든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성경이다. 그래서 최동훈은 성경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나는 성경이 하나님이 내려 주신 책일 리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다. 그래야 도덕보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가치관에도 변화가 올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변화가 와야 종교로 인해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깊게 깔린 불신과 반목의 그늘도 조금은 가시리라 보기 때문이다." (66쪽)

지은이의 집필 의도처럼 이 책이 불신과 반복의 그늘을 조금이라도 거두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순한 믿음을 넘어선 도덕이 무엇인지는 '마태오서' 25장에 나온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지만, 정작 예수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기준은 예수를 믿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면서도 예수의 육성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저 예수만 믿으면 된단다.

최동훈은 신학 연구자가 아닌데도 구약에 대해 꼼꼼한 분석을 내놓았다. 가끔 거칠기도 하고 때론 다른 이의 연구 성과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그의 논증은 치밀하고 접근은 진지하다. 어떤 신학자의 글보다 쉽게 읽히고, 무엇보다 빨리 읽힌다. 논리는 명쾌하고, 때로 깊숙한 폐부를 찌르는 듯한 통쾌함도 느낄 수 있다. 기독교를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다만, 서문이 너무 길고 장황해, 자칫하면 책을 그냥 덮어버릴 뻔 했다는 점은 아쉽다. 할 말이 많겠지만, 꼭 해야 할 말들만 절제된 목소리로 들려주었으면 좋았겠다. 책의 뒷부분에 성경 구절 색인을 넣어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글은 <공동 번역 성서>를 바탕으로 썼다. 그래서 책 제목에 언급된 '하나님'은 공동 번역에 따라 '하느님'으로 썼고, 인용한 성경 구절도 모두 공동 번역을 따랐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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