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어디에선가 헤겔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는 클리셰나 다름없는 마르크스의 아포리즘이 요즘 부쩍 자주 눈에 띈다. 슬라보예 지젝이나 가리타니 고진 같은 이름난 사상가들의 글을 통해서. 이런 현상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론>이 다시 유행한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세기를 들끓게 했던 현실 사회주의가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뒤 세계를 제패한 듯 기고만장하던 신자유주의가 허망한 실체를 드러내자, 세상의 구조를 설명하는 원전으로서 마르크스가 다시 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헤겔을 인용한 이유는 나폴레옹 1세와 3세가 노정한 역사적 아이러니의 반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민중들의 위대한 승리로 기억되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1848년 혁명이 나폴레옹 가문의 전제정치로 귀결되고만 아이러니 말이다. 

 마르크스의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당통 대신에 코시디에르가, 로베스피에르 대신에 루이 블랑이, 1793~1795년까지의 산악당(몽타뉴파) 대신에 1848~1851년까지의 산악당이, 삼촌 대신에 조카가.” 

 여기서 삼촌은 나폴레옹 1세, 조카는 나폴레옹 3세를 말한다. 나폴레옹 3세, 그러니까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1832년 사촌인 라이히슈타트 공작(나폴레옹 1세의 외아들)이 죽자 보나파르트 가문에서 프랑스 왕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뿐이라고 생각하고 왕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고 1848년 혁명 뒤 수립된 공화정에서 제헌의회 의원으로 정치에 데뷔한다. 이어 대통령 선거에 나서 옛 황제의 조카라는 혈통과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프랑스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그들의 이익을 모두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에는 높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헌법을 바꿔 스스로 황제가 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뒤 황제로 등극한 나폴레옹 1세의 반복이었다.

 가리타니 고진은 <역사의 반복>에서 황제로서 보나파르트의 정책은 그 자체가 모순으로 가득찬 것이었다고 단정한다. 보나파르트는 본질적으로는 보호주의자이지만 실천적으로는 생시몽주의자처럼 행동했다. 그리고 모든 계급의 이익을 모두 만족시킬 것처럼 선전했다. 중간계급과 농민들에게는 질서와 번영을, 빈곤층에게는 복지를 약속했다. 빵값을 낮게 유지했고 위생적인 노동자주택을 건설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쓴 소책자 가운데 <빈곤의 퇴치>(1844년)는 좌파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1930년대에 독일이나 일본에서 파시즘이 생겨났는데 그것은 보나파르트주의의 한 양상으로 보는 게 좋다. 우에서 좌까지 모든 당파, 계급, 민족의 지지를 모은 루즈벨트 대통령은 보나파르트주의자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2대 정당이라는 구조를 파괴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경제를 희생시키는 시장자유화인가 그것에 대한 보호인가 하는 대립은 눈앞에 놓인 최대의 정치적 쟁점 중 하나였다. 그들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처럼 행동하는 정치가는 ‘보나파르트주의자’라고 해도 좋다. 물론 그것이 항상 파시스트인 것은 아니다.”(가리타니 고진 <역사의 반복>)  

 파시즘을 보나파르티즘의 한 갈래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로 나폴레옹 3세의 집권 과정과 통치 스타일은 히틀러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먼저 선거를 통해 집권한 뒤 국민투표를 거쳐 합법적인 독재자가 된 점이 그러하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왕을 추방하고, 좌익혁명이 유산된 후에 생긴 바이마르공화국의 대표제 속에서 히틀러가 수상이 되고, 국민투표를 통해 총통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루이 보나파르트가 황제가 되었던 과정과 상동 적이라는 것이다.”(같은 책)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며,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때로 그것을 조작하기도 하는 것이 파시즘과 보나파르티즘의 또 다른 공통점이다. 


보나파르트가 삼촌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시작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시작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가리타니 고진은 파시즘이라는 개념의 재정립 필요성을 제기한다. “일반적으로 전제적인 정치형태를 파시즘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와 같은 용법은 잘못된 것이고 오히려 유해하다”는 것이다. 파시즘을 이렇게 왜소화시키면 “파시즘이 가지고 있는 어떤 매력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중략) 한마디로 말하자면, 파시즘은 러시아혁명(사회주의)의 침투에 대한 대항혁명(counter-revolution)이다. 그것은 반혁명(anti-revolution)과는 다르다. 파시즘은 그 자체가 혁명적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흡인력이 있는 것이다.”(같은 책)

 설명이 장황했지만, 누가 떠오르지 않으시는지. 보나파르트가 삼촌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시작했던 것처럼 박근혜는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시작했다. 보나파르트가 나폴레옹 1세 시절의 영광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이었듯이, 박근혜는 박정희 시대의 고성장과 번영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향수의 아이콘이다. 보나파르트가 자신을 모든 계급의 대변자, 갈등의 중재자인 것처럼 포장했듯이, 박근혜는 신뢰와 복지를 내세우며 만인의 연인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박근혜는 노련하다. DJ와 YS이후 사라진 ‘정치9단’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유일한 현역 정치인이다. 최대한 말을 자제하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정치를 통해 어눌한 캐릭터의 단점을 극복할 만큼 영리하며, 진보진영의 독점 테마였던 복지 이슈를 선점할 만큼 과감하다. 복지 이슈에서 여전히 방어적인 조중동과 경제 관료들, 전경련 등이 무안해 할 정도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결정적 순간에 일침을 놓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극대화한다. 

 누군가는 박근혜 주변 인사들이야말로 정통 TK(대구경북)들이어서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더 말 안 되는 사람이 많다고 전한다. 박근혜가 집권하면 이명박 정부보다 문제가 많은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게 될 거라는 걱정이다. 돌이켜보면, 박정희의 공화당에서 전두환의 민정당으로 계승된 대한민국 수구정당의 역사가 YS의 민주계를 수혈한 신한국당부터는 족보가 꼬이기 시작한 게 사실이다. 이재오나 김문수, 박형준 같은 변절한 운동권들이 주류를 차지한 이명박 정권은 더욱 이질적인 집단이 되었다. 이른바 친박이 친이와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이유는 박근혜라는 아이콘과 더불어 자신들이 정통 티케이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정통 티케이가 보기에 영포라인은 변방의 북소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정통 티케이가 정권을 놓친 지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만큼 이들은 오래 굶었다. 

 지금 우리는 박근혜라는 한국의 보나파르트를 통해 역사의 반복을 목도하고 있다. 박정희라는 비극에 이어 박근혜라는 희극을.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2011년 봄, 제주의 서정(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 제주4.3과 해군기지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1.
 이른 아침, 딸아이의 등교를 챙기고 잠깐 누웠다는 것이 또 다시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문득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의 기운에 깨어나긴 했지만, 어느 덧 시간은 늦은 아침이다. 그래도 얼른 털고 일어나지 못했던 것은 비단 아침햇살의 따사로움이 준 안락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지나간 일들의 단상들이 번갈아가며 내 몸의 무게중심을 자꾸만 바닥으로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 봄은 떨어지지 않는 감기와 더불어 그늘처럼 드리워진 상념으로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줄도 몰랐다.

 해마다 4.3 시기가 돌아오면, 육지로부터 이런 저런 단체와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다. 제주 4.3의 역사를 배우고, 그 흔적들을 살펴보기 위함일 것이다. 4.3 63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런 현상은 이어졌다. 그 중 어느 한 단체에서 나보고 제주4.3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해군기지 문제도 언급해 달란다. 4.3과 해군기지...

 이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6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살육의 장면을 상상하고 죽음의 이미지에 나를 밀어 넣는 일은 괴로운 것이었다. 해마다 4.3이 도래하지만, 고백하건데 이 시기에 열리곤 하는 각종 4.3 관련행사로부터 난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좀 떨어져 있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유족은 아니지만, 4.3시기마다 재연되는 비극의 기억에 동참하는 일이 나에게는 무언가 버거운 ‘의무’ 같은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현실의 해군기지 문제까지 얹어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하는 일이었다.

 2005년으로 기억한다. 4.3 57주년 위령제가 봉행되는 평화공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4.3영령 분노한다. 해군기지 철회하라”, “평화의 섬 역행하는 해군기지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고, 4.3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있은지 2년이 다 된 시기에 열리는 위령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4.3유족 일부가 “이런 데까지 와서 시위냐!”며 격렬한 항의와 심지어 발길질까지 해대는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심한 자괴감에 흔들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국가’폭력에 의해 크나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4.3문제가 어렵사리 ‘국가’차원에서 해결 되어가는 마당에, 또다시 해군기지 문제로 ‘국가’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 일부 유족에게는 부담이자 훼방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 사건은 4.3문제의 해결이 지향하는 상생과 화해, 평화의 논리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 이전에, 유족은 물론 어쩌면 제주의 주민 누구에게나 그것이 피해의식이든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4.3과 해군기지 문제는 현실에서 같이 가고 있었다.


강정 바다는 해군기지 건설로 매립될 예정이다. 공사장비가 바다까지 나가 있다.
사진 출처 - 조성봉

 2.
 해군기지 문제를 언급할 때 마다 나는 이 문제가 제주의 숙명과도 같은 일임을 강조하곤 한다. 그것은 제주가 처한 ‘위치’ 때문이다. 이는 해군기지 문제를 염려하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지난 1937년 일제가 제주에 군비행장을 건설한 이래로 매 15년마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돼 온 군사기지의 시도는 이를 증명한다. 그만큼 제주는 지리적 위치상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인 것이다. 비단 군사기지 문제가 아니더라도 유사 이래 제주는 늘 제주를 둘러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세력 확장을 위한 교두보, 혹은 전진기지로 위치지어져 왔다. 그 때마다 제주민들은 외부세력에 의해 때로는 침탈에 따른 가혹한 학대로, 때로는 동원된 강제노역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유린당해 왔다. 그런 제주가 오랜 고난의 역사를 뒤로 하고 근대에 들어 섬의 척박함이 오히려 천혜의 자원으로 재발견되면서 국민관광지로 각광받게 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계의 섬’으로 인정되는 등 ‘기회의 역사’로 나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 때,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설득력도 없고 명분도 취약한 해군기지 건설이 군사요충지와 평화의 섬이라는 긴장관계 속에서 수십 년 버텨온 제주의 미래를 허망하게도 한순간에 군사적 갈등의 지대로 편향지어버리는 것이다. 많은 도민들은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곧이어 공군기지도 들어오고 말 것이라는 우려에 공감한다.  

 ...

20세기 동북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제주는 오히려 그 지정학적 위험성을 더욱 강하게 경험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대전 말기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제주에 주둔하게 되면서 제주는 일본 본토 수호를 위한 대규모 전쟁터가 되기 직전에 가까스로 그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20세기 제주 역사의 최대 비극이었던 4 ․3의 경험도 제주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일정한 연관이 없다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

만일에 한국, 중국, 일본, 동북아3국이 상호존중, 공동번영의 정신을 버리고 권주의적이고 팽창주의적인 태도로 나아가게 된다면 제주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지정학적 중요성은 다시 위험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일 일단의 팽창주의적 움직임 속에서 제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게 된다면 제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는지 상상해 보아야합니다.
그것이 다른 나라의 팽창주의적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제주는 국제적 위험성 앞에 노출되고 말 것입니다.

...

 2001년 제1회 평화포럼에서 행해졌던 제주도지사의 개막 연설문 중 일부이다. 당시 위 연설의 주인공은 현직 우근민 지사이다. 그런 우근민 지사가 왜 이제 와서 "단 한 번도 해군기지를 반대해본 적이 없다”면서, 어찌 그리 당당히도 해군기지 공식 수용입장을 서둘러 밝혔는지 더 이상 묻고 싶지 않다. 다만, 그게 누구였든 이제 와서 매년 연례행사로 확대 개최하겠다는 그 평화포럼의 제1회 도지사 연설문 내용의 핵심이 바로 위의 그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용은  ‘가능성과 위험’ 이라는 논제로 제주의 위상과 미래를 매우 확고하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제주의 대표가 10년 전 국제사회 앞에서 공식 천명한 바로 그 제주의 ‘가능성과 위험’이 이미 지금 첨예하게 현실로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을 제주도민 모두가 똑바로 봐야 한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본격적인 공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 조성봉

 연설문의 내용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제주 4.3 역시 지리적 위치로 인한 제주의 운명을 배경으로 벌어진 사건이었다. 비록 제주도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므로 이를 확보하기 위해 강경진압작전을 폈다는 식의 구체적인 근거는 없지만, 해방이후 벌어진 한반도를 둘러싼 미.소 양진영이 벌이는 냉전대결에 있어서 한반도는 매우 민감한 위치에 있었고, 여기에 제주도에서 벌어진 5.10 단선반대운동은 당시 미군정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억제’되어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 미 국무부와 군부 사이에 벌어진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도 불구하고 4.3 당시 대량 학살을 가능케 했던 초토화 작전이 실질적인 미국의 군사 통제권 하에서 비롯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는 전후 냉전체제에 대응한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 정부가 채택한 4.3진상보고서상의 내용인 것이다.


 3.

 국가로 인해 제주의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현실은 4.3이 과거의 역사가 아닌 진행형이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나는 4.3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해군기지건설이 2002년 안덕면 화순을 근거지로 추진된 이후, 남원읍 위미 2리, 위미 1리, 그리고 지금의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그 양상은 더욱 첨예해졌다. 심지어 강정마을의 한 주민은 "4.3때도 이와 같지는 않았다"고 할 정도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문제 따른 주민 갈등 문제는 4.3 이후 최대의 사건이라는 지적이다. 기지건설 문제로 인한 갈등양상은 마을 공동체내에서 그 동안 쌓아왔던 친척, 이웃 간 관계의 미덕과 한 마을의 공동체성마저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식의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았다. 

 국가폭력이라는 관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해군기지 건설후보지로 강정마을이 정해지면서, 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을 치르고 있다. 40여명의 주민들이 각종 사건으로 고소. 고발돼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 현행범 신분으로 주민들을 체포해 물린 벌금만 5,000만원을 넘기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서귀포신문이 전문의에게 의뢰해 강정마을 주민들의 상태를 조사한 결과에서, 조사대상 주민의 40%이상이 ‘죽고 싶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해군기지 문제로 주민들에게 생겨난 단절, 증오, 상처와 같은 것들은 분명 어떤 폭력의 산물인데, 그것이 명백히 국가사업을 매개로 이뤄진 점을 반영하면, 해군기지를 밀어붙이는 당국의 모습은 또 다른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행정 절차'라는 형식논리에만 의존한 채 기지건설이 추진되어지는 과정은, 해당 주민에게 있어서는 명백한 '폭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련의 기지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구체적인 국가의 모습은 동원과 회유, 고소, 조작 등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주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넘어 깊은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동원된 포크레인이 이제 바다앞까지 다다랐다. 마치 바다를 건져올릴 태세다.
사진 출처 - 조성봉

  4월, 동백이 지는 시절, 강정마을이 쓰러지고 있다. 연일, 포크레인을 앞세워 기지건설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군 당국의 모습은 마치 원래부터 이 곳은 전쟁을 위한 요새임을 하루라도 빨리 낙인찍으려는 듯 보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기지가 지키고자 하는 국가안보는 도대체 어느 국민을 위한 것인가?. 주민의 희생을 대가로 국민위에 올라서는 기지가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 평화는 누구의 평화인가?


'필리핀 처녀와 결혼하세요' - 임아연/ 한밭대 학생

임아연/ 한밭대 학생

 한 여자가 찾아왔다. 친구 집에서 홈스테이를 시작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웃이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물 두 살이라던 그는 다짜고짜 내게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남자는 얼핏 봐도 나이가 꽤나 있어 보이는 한국인이었는데, 얼마 전 그와 결혼했다며 곧 남편이 데리러 오면 한국에 가서 함께 살 작정이라고 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듯 내게 한국어 몇 마디, 한국 문화 몇 가지를 물어 보는 얼굴엔 온통 한국으로 간다는 설렘과 들뜸으로 가득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그에게 나는 축하한다든지, 앞날을 축복한다든지 하는 행복을 빌어주는 말을 하는 것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남편이 몇 살이냐, 어떻게 만났냐, 남편이 영어나 타갈로그어를 좀 할 수 있느냐 등을 꼬치꼬치 물었던 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필리핀 처녀와 결혼하세요' 따위의 현수막을 보게 될까봐, 아니 그걸 읽고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게 될까봐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꽃다운 청춘을 40대 남자에게 판 건지 어쩐 건지는 내게 솔직하게 털어 놓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나 기분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사람을 사고파는 것은 이미 역사책 속에서 노예제도 철폐 이후에 끝난 일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비인간적 행위들이 모양새를 바꿔 한국 사회 곳곳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급에 따른 봉건 질서가 막을 내린 이후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해졌다고 말하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소위 선진국 여성이 아닌 필리핀과 같은 동남아시아 제3세계 국가 여성들만 상대로 거래(?)하는 것만 봐도 자본에 따른 권력이 작용 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다문화가정 합동 결혼식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백번 양보해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서로 인연이 닿으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치자. 그래서 그들의 만남이 알선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이렇게 돈 주고 사들인 '사람'을 말이 안 통한다며 무시하고, 화풀이 대상으로 삼아 때릴 수도 있다는 데에 문제가 또 다시 발생한다. 마치 비싼 돈 주고 사들인 물건이 생각보다 맘에 들지 않을 때 보이는 반응처럼 돈을 지불한 만큼 제 값을 하길 사람에게 바라는 형국이 되고 만다. 더 이상 인간은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지 않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에 따른 불평등, 비인간적 행위, 인간 존재가치의 추락을 보여주는 일들이 비단 이것뿐이겠냐 마는 몇몇 필리피노들이 내게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마음이 쓰라렸던 건 이들이 생각해온 한국에 비해, 이들이 경험한 한국이 더없이 초라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류 문화의 영향으로 포장되어 만들어진 한국의 이미지보다, 그래서 그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한국보다 실제로 부딪혀 경험했던 한국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너무나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집 근처에서 마주치던 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을 때 이미 한국으로 떠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앳된 얼굴엔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생글 거리던 미소로 가득했었다. 철모르고 마냥 좋아하던 그에게 만큼은 뉴스에서 마주치던 이주 여성들의 문제가 피해가기를, 내가 걱정했던 부분들이 한낱 기우였기를 바라본다. 부디 여느 새댁들처럼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부디.


인문대와 경영대를 서성이는 날들 (유혜진)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교육학을 공부한다. 4년 전 수능을 마치고 한참 원서를 작성하던 그 시절, 부모님은 내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진학하길 원하셨다. 대학 4년 내내 꼬박 3천만 원 가까운 돈을 대학에 헌납해도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일자리 하나 얻을까 말까한 현실 앞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한민국 부모의 심리였다. 하지만 나는 인문학부에 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2007년 아직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부제가 운영되었던 시절, 우리 학교의 단과대학 구분에 따르면 '교육학과'는 인문학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교육 사회학 분야에 관심이 많던 나였다. 그럴 바에야 임용고시에 유리한 사범대나 교대에 가라는 부모님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없는' 고집을 부렸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세 질을 한 달 만에 읽어 내려가면서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사학과 진학도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4년 후, 지금 나는 집과 취업스터디를 오가는 변변치 않은 휴학생에 불과하다. 그때 교대를 갔다면 나는 '최고 신부감'이 될 수 있었을까.

 대학 동기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 윤동주의 감성적인 시어에 푹 빠져 그 후예가 되겠다며 국문학과에 입학한 친구가 있다. 그는 지금 최소한의 효도는 해야겠다며 신림동의 한 원룸에서 행정학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불교철학에 심취했던 또 다른 친구는 4학년이 되자 대학원에 갈 집안 형편도, 기업에 취업하기도 여의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가 '장관'이 아님을 한탄하며 고시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했다는 기쁨도 잠시, 대한민국 20대의 혹독한 현실에 정면으로 부닥치고 말았다.

 어떤 이들은 입학 이후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경영학이나 경제학으로 전과해 자신의 학적에서 인문학을 지웠다. 또 다른 이들은 가까스로 이중전공을 할 수 있게 되어 취업시장에 턱걸이했다. 남아있는 몇 명만이, 수강생이 10명 남짓으로 준 전공 수업 강의실의 분위기를 전할 뿐이다.    


지난 해 중앙대는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6개 학과ㆍ학부로 통폐합하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물론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자면 한없이 개인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시절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높은 수능배치표에 안착하지 못했음을 탓하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듣지 않은 자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예 자본의 논리가 넘실대는 대학의 현실에 적응하는 능력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어떨까. 여기에 대고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 같은 이라면 '노력 없이, 고통 없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호통 칠지도 모를 일이다.

 인문학을 홀대하는 대학과 사회 분위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피부로 느끼는 장벽은 높았다. 사회는 철저하게 '기업화된' 인재만을 원했다. 대학은 이에 장단을 맞출 뿐이다. 상경계열 전공자가 아니면 지원조차 할 수 없는 회사가 수두룩하고 그마저도 온갖 스펙으로 무장한 이들의 피 튀기는 전쟁이다. 이 대열에 합류할 수 없는 학과와 학생들은 사회는 물론, 대학 내에서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해가 갈수록 하는 수없이 전공을 바꾸거나 고시로 발을 돌리는 후배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90%가 대학을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학생들을 기업에 진출할 산업인력만으로 취급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학문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진리와 자유의 전당이라 자부하는 대학의 첫 번째 임무다. 하지만 지금 4년의 대학생활은 개인들의 서로 다른 개성과 창의성을 단 하나의 논리로 획일화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자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폭력에 가까운 처사다. 대학은 자율화가 추진하지만 그 '자율'은 학문과 학생을 위한 자율이 아닌 시장과 자본으로 향하는 자율뿐이다. 빠르게 회계장부를 읽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데만 급급한 대학교육 속에서 왜 우리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없냐는 하소연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같은 회사의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숨지고 자살을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생으로 사는 것은 힘들다. ‘인문대 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더욱 팍팍한 일이다. 시장논리에 빠르게 편입하는 대학구조 속에서 인간의 역사와 철학, 문학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앙대 등 일부 대학들은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문학과를 통·폐합해 실용학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국문학을 공부하든 철학을 공부하든, 회계학이 대학생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필수교양’이 되었다는 소식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직 내가 다니는 대학의 인문학과는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점점 후배받기 힘들다는 하소연이 많다.

 9월이면 나는 복학해야 하지만 돌아갈 곳이 없다. 1950년대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증축된 이후, 현재 교육대학 건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 곧 철거될 예정이다. 역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에게는 유일한 터전이었던 건물이 사라진다. 그 자리에는 지하 3층 지상 9층의 최신식 경영관이 들어선다고 한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최신식 인프라를 갖춘 건물에서 공부하게 된다는 소식은 분명 반갑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학생 공청회는 소리 소문 없이 치러졌다. 그리고 우리는 전교생의 교양수업이 이루어지는 '종합관' 언저리에 2개 층만을 빌려 사용할 것이라는 발표만이 있었다. 씁쓸하다. 학교 안에서도, 또 학교 밖에서도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한 이 느낌은 우리를 인문대와 경영대 사이 그 어딘가를 서성이게 만든다.


[아시아투데이=방성훈 기자 ] 검사의 무분별한 기소(공소제기)에 따른 시민들의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24일 인권실천시민연대, 법률소비자연맹 등 시민단체들은 국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심사소위원회(이하 검찰소위)의 개혁안이 기소독점권을 무기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검찰의 권한 남용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기소권 남용으로 시민 인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늘어났지만 피해를 본 시민에 대한 보상은 없거나 미미하고 검사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검찰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검찰소위 개혁안은 중수부를 없애느니 마느니 등 시민들과는 실질적으로 별상관이 없는 사안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형식상으로는 행정부인 법무부 산하 기관이지만 기소권을 독점하고 수사권 및 수사지휘권을 가지며 실질적으로 법원에 준하는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

검찰에 이런 막강한 권한과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인권보호와 공정한 수사에 검사가 앞장서라는 취지다. 하지만 검찰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런 권한을 시민들을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되레 검찰의 권한남용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시민들의 호소만 끊임없이 제기되는 실정이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홍금애 법률소비자연맹 기획실장은 “교통사고가 나도 보험에 의한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는데 형사보상법에 의해 이뤄지는 보상은 변호사 비용조차 감당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이미 망쳐버린 한 개인의 인생에 대해 누가 보상을 해줄 것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무죄선고를 받아도 실추된 명예는 어떻게 보상해줄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어 “2010년에 100만명이 고소·고발을 당했고 80만명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 중 12%가 기소를 당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고 기소했는 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에게는 불성실한 수사를 남발하면서 권력층에게는 봐주기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서민들의 검찰에 대한 체감 불만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권력실세의 비위사건에 대해서는 꼬리자르기식 수사를 하면서 일반 시민의 경범죄 사건에서는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행태를 보이는 등 정치적 성향 때문에 야당 등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이제는 비일비재한 일이 됐다.

◇ 강한 자에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검찰

일단 검사에 의해 기소되면 법률적 신분이 피고인으로 낙인찍히면서 직장, 가족 등 생활 전반은 엉망이 되기 시작하고 사회에서는 이미 그 자체로 범죄자나 전과자 취급을 당한다.

가정이 파탄나거나 직장을 잃고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등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죄가 없더라도 일단 기소를 당하면 무죄판결을 받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그동안의 기간에 겪은 정신적 고통, 사회적·재산적 피해 등에 대한 보상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기소는 검사가 사법경찰관에게 송치받은 사건, 직접인지 등으로 수사한 사건에 대해 피의자가 유죄라고 판단, 법원 재판에 넘기는 절차다.

당연히 검사의 기소는 신중히 이뤄져야 하지만 검사의 주관적 독선으로 이뤄지거나 정치적인 압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엄중한 견제나 통제책이 필요하지만 이를 위한 실효적인 수단은 마땅히 없는 형편이다.

피고인인 재판에서 무죄선고를 받더라도 보상이 없거나 미미한 수준인데 반해 수사 검사나 기소 검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별다른 제제나 불이익조처를 받지 않는다.

피고인의 경우 구속영장 발부나 하급심에서의 유죄선고 등으로 수감 생활을 하다가 최종 판결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때에만 국가보상청구권 행사를 통해 '쥐꼬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형사보상법에서 규정하는 최대 보상금은 하루에 해당연도의 최저임금법상 일급최저임금액(2011년 3만4560원)의 5배로 2011년 현재 상한액은 17만2800원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검찰의 잘못된 기소로 인해 피해를 입는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무분별한 기소를 막을 수 있다”며 “형사보상이 구속된 피고인에게만 이뤄져 피고인이 겪어야 하는 큰 고통을 현실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고 불구속 피고인의 경우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억울하게 기소당한 시민들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확대돼야 한다. 현재의 보상체계로는 힘들다. 벌금으로 조성되는 기금은 모두 국가예산으로 쓰이고 있는데, 약 1조 500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기금을 보상금으로 쓰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몰수기금으로 보상금을 충당하는 경우도 있다. 놔두면 돈세탁이 이뤄지고 다른 범죄에 이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범죄자금의 환수요건이 까다로운데 다시 범죄에 쓰일 돈이라면 규제를 좀 느슨하게 해서 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우선 기소부터, 수사는 마음 내키는대로

지난 2009년 1월 검찰은 ‘허위통신죄’ 처벌조항인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제1항을 적용하여 ‘미네르바’ 박대성씨를 구속기소했다.

검찰이 이 조항을 적용하여 수사·기소한 사건들은 촛불집회, 천안함 침몰 등 정부의 활동과 관련해 국민의 의견대립이 있는 사안이었다.

이 조항은 50여 년 전 제정돼 2008년에야 처음으로 적용됐고 위헌성 논란이 제기돼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후 검찰이 기소한 사건들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기소권 남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형평에 맞지 않는 법적용의 사례다.

억지 수사로 억울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문제되는 경우도 있다.

한 판사는 “심증으로는 유죄라고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지만 엄격한 형사사건의 특성과 검찰의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사람들이 보상을 청구하면 재량의 범위 안에서 덜 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부실한 수사와 증거부족으로 올바른 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부당한 이득을 받는 사람까지 생겨나는 실정이다.

◇ 사법개혁안, 검찰이 달라질까?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검찰소위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검찰은 기소권 남용과 관련된 사항에서 검찰시민위원회와 기소검사실명제를 제외하고 사법개혁안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검찰소위는 검찰시민위원회 명칭을 검찰심사시민위원회로 하고 고등법원에 설치하자는 의견이 주류였으나 독립기관으로 하자는 소수의견도 있었다. 기소검사실명제는 전원이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

오 국장은 “국회 사개특위의 개혁안은 실질적으로 검찰권을 통제하는 효과가 전혀 없다. 검찰의 반발은 이후 진행될 검찰개혁 작업을 미리 봉쇄하자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권은 검사들을 위한 권한이 아닌 국민을 위한 것인데 검찰의 폐쇄적 조직문화와 검사들만을 위한 무소불위의 검찰권 행사를 계속하겠다는 집단이기주의적 태도에 불과하다”며 유감을 표했다.

앞서 지난 19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단체들은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개혁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들은 "촛불시위, PD수첩, 미네르바, 교사 시국선언 등에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권 남용 등 인권침해 사례가 부지기수이지만 검찰은 기소검사실명제 등 사법개혁안 일부만 제외하고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등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에 대한 국민의 통제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핵심이다. 국회는 흔들림 없이 사법개혁 입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내부 실속부터 다져야

검찰 관계자는 “민감한 사건은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수사와 관련해 지시를 받기도 한다. 독립적인 수사를 하기에는 외압이 너무 많다. 하지만 잘못됐을 때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와 기소에 대한 책임은 사건을 담당한 주임검사가 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이 있을 때는 관련자들을 모두 책임자로 봐야 하고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여론이 일고 있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생 황모(32)씨는 “최근 몇 년 검찰의 행태를 보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검사는 하기 싫어졌다. 지시에 따른 것이라 해도 검사로서 지켜야 할 정의와 형평의 원칙을 무시하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민감한 정치나 사회적 이슈와 관련한 수사는 소수 수사부서가 대부분 독점해 과잉수사나 부실수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편중된 수사권한으로 인해 공정하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는 검사들까지 비판받고 있다.

일부 검사들은 수사에 문제가 있음에도 강행하고 있지만 인사상 불이익은 없고 오히려 승진의 사유로 작용하고 있어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함을 드러냈다.

김희균 교수는 “검찰은 독립성과 민주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집단이다. 정권의 하수 기관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해줬지만 많은 폐해 및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성과 민주성 양립을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시민감시체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잘못된 수사나 권한을 남용한 검사에게는 인사상 불이익 등 책임을 물어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신뢰받을 수 있는 검찰로 거듭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방성훈 기자 dvdbang@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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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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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 자격 - 성실한 분,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는 분, 인권연대의 활동에 공감하는 분, 그리고 열정을 가진 분, 늘 배우면서 아는 것을 실천하며 살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든지 지원 가능합니다.

◇ 채용 시 우대 사항 - 인권연대에서 인턴활동을 했거나 인권연대의 실천활동이나 교육활동에 참여해 본 경험이 있는 분은 우대합니다. 꼭 인권연대가 아니라도 관련 활동 경력이 있는 분이나, 관련 연구 실적이 있는 분도 우대합니다.

◇ 모집 일정
   - 원서 접수 :
2011422일() - 510일() 까지
   - 서류 전형 후 1차 합격자에게 개별 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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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목)
   - 합격자 발표 : 최종 합격자에게 개별 통지
   - 최종 합격자는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
활동가로 채용됩니다.   
   - 근무시작일은 협의 가능하지만, 채용 즉시 업무 개시가 가능했으면 합니다.
 

◇ 제출 서류
   - 인권연대 상근활동가 지원서

◇ 근무 조건
   -주 5일 근무/ 4대 보험, 상여금, 휴가, 안식월 제도(수습기간 이후 적용)/ 급여는 단체 내규에 의함

◇ 접수와 문의
   - 접수 : 지원 서류 접수는 전자우편으로만 받습니다 :
hrights@chol.com
   - 서류 접수 시 전자우편 제목에 [
활동가 지원]이란 말머리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예 : [
활동가 지원] 홍길동)
   - 제출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749-9004)/
http://www.h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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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공화국, 대한민국> 저자 강연회

 검찰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스폰서 검사”에서 “그랜저 검사”, “정치검찰”, “최대 암적 존재”까지.  

 평소 검찰개혁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형사법학자와 변호사, 그리고 인권운동가가 <검찰공화국, 대한민국>를 썼습니다. 검찰개혁은 ‘민주화’의 과제입니다. 

 검찰 개혁 필요성과 검찰 개혁 방향을 저자에게 직접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참여바랍니다.

○ 일시: 2011년 4월 11일(월)부터 5월 2일(월)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총 4주
○ 장소: 만해 NGO 교육센터 2층 대교육장☞
약도 클릭
○ 모집인원: 30명(수강신청은 선착순으로 마감합니다)
○ 수강료 : 전체 4강 35,000원(개별수강 시 1강좌 1만원, 전 강좌 수강 시 도서 증정, 단체활동                가 및 인권연대 CMS회원, 학생 20%할인)
○ 입금: 우리은행 1005-801-523022 (예금주: 인권연대)
○ 주최 : 인권연대
○ 후원 : 삼인출판사
○ 문의: 02-749-9004/
hrights@chol.com www.h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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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일정>

4월 11일(월) :  검찰 개혁 절박하다 - 검찰 개혁의 필요성 /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
-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진행되는 내년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검찰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엄정중립과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검찰 권력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 미래 권력세력과 거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오창익, [시론]‘검찰 개혁’ 절박하다 (경향신문 2011.3.7)

4월 18일(월) : 검찰의 길을 묻다 - 검찰의 역사 / 김희수 변호사
- 법, 그리고 법집행은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상식이자 갈등을 조정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검찰의 법집행이 과연 그런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결국 야만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었는지 살펴보겠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34쪽

4월 25일(월) :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다 - 검찰의 현주소 /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특정 정치 세력이나 정치인을 죽이거나 살리는 일, 특정 기업을 죽이거나 살리는 일,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2008년 촛불집회에서처럼 시민을 폭행한 경찰관은 단 한 명도 처벌하지 않으면서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2000명 가깝게 처벌하는 일 등을 통해 검찰은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권력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147쪽

5월 2일(월) :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 - 우리 시대가 바라는 검찰 /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김대중 정부는 이 같은 비전과 함께 구체적인 개혁안으로 고등검찰청 폐지, 송무와 인권 업무를 전담할 국가변호사 제도 도입,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기능 조정, 공안 기능의 축소, 인권 송무 기능의 강화, 법무정책 연구 기능의 조정, 교정보호청 신설, 출입국 관리 업무의 조정, 개방형 인사제 등을 제시했다. 지금도 유효한 개혁 방안들이다. -<검찰공화국, 대한민국>, 234쪽


양길모/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제 6기 대학생 인권학교가 지난 1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남영동 인권기념관 7층 교육장에서 진행되었다. 몹시도 매서운 한파가 불어 닥친 날임에도 불구하고 40여명의 대학생들이 참가하여 인권에 대한 열의로 교육장은 활기에 넘쳤다. 대부분 개인적으로 강의를 신청하였음에도 어색한 분위기 보다는 강사들의 열띤 강의 속에 대학생들이 녹아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때마다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담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3일간 진행된 대학생 인권학교에는 안수찬(한겨레21 기자),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이희수(한양대 교수),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이 강사로 참여하였다. 강사들은 인권이라는 큰 주제를 자신의 전문분야에 녹여내어 강의를 진행하였다.

 안수찬 기자는 대학생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세우는 시기에서 여기 저기에 기대고자 하지 말고 단독자가 되어야 하며, 일상 속에서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에서 다양함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하고, 혼을 토해내듯이 열정을 가져야하며, 글 쓰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한다고 당부하였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대학생들에게 스스로 사유하며 자기 형성의 자유를 갖는 자유인이 될 것을 당부하며, 특히 소박한 자유인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생존조건을 위해서 자아실현을 잠시 유보할 수 있겠지만, 자유인이 되기 위한 자아실현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지나치게 물질적인 조건에 집착하지 말고 스스로 사유하는 자유인이 되라고 말했다.

 하종강 소장은 우리가 흔히 노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고루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는 허구임을 대학생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사회의 절대 다수 구성원들이 숭고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노동자임을 인식해야 하고, 그 노동의 의미를 올바르게 인식해야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노동의 문제를 바라볼 때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오창익 사무국장은 대학생들에게 인권의 의미와 그 특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기본적으로 인권은 자유권, 사회권, 평등권과 같이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권리이며, 유기체처럼 점차 확장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권리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인권이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보편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약자, 소수자들에게는 보다 편향되게 보장해주어야 한다. 또한 인권이라는 것은 단지 국가에서 소극적으로 최소한을 보장하면 그 의무를 면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하는 권리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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