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돼?(이광조 CBS PD)

이광조/ CBS PD

 단조로운 일상에서 스포츠만큼 좋은 재밋거리가 또 있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원초적인 패거리 정서를 끄집어내는 국가 대항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예상하지 못한 메달까지 쏟아지고 연아의 환상적인 연기까지 봤으니... 김연아 선수가 프리 스케이팅을 실수 없이 마치고 눈물을 쏟을 때, 하마터면 나도 따라 울 뻔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감동의 순간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스스로가 참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저런 감동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없었다고 하면 인생이 너무 불쌍한 것 같지만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슈퍼스타와 자신을 비교하다니 욕심이 너무 많다고? 그런 건 아니다. 그런 환상에 빠져서 살 나이도 아니거니와 어릴 때부터 특별하게 큰 꿈을 꾼 적이 없으니. 부러웠던 건 무언가를 위해 땀을 흘리고 그것을 성취했을 때의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것 그 자체다.

 바보 같은 놈, 네가 꿈도 꾸지 않고 노력을 안했으니 그렇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나 세계 최고가 될 수는 없고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보람과 기쁨, 보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재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도 살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살 권리는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이 뭔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고 목표를 이룬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란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처럼 보인다. 사방이 가시덤불이고 진흙탕이다.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집과 마음 놓고 산책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주변 환경, 깨끗한 공기, 훼손되지 않은 산과 강, 폭력 없는 학교, 적당한 월급... 40대에 접어든 나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은 어릴 때부터 이런 평화로운 세상에 사는 것이 꿈이었다. 꿈이 크긴 크네.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큰’ 꿈, 혼자서는 이루기 힘든 꿈을 수밖에 없다. 왜냐고? 개인적으로 무언가 특별한 성취를 이루기가 어려우니까. 거기다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에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너무 험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니까.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터넷을 뒤적이다 몇 가지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가 소개한 한국 직장 여성들의 고충. 직장 다니는 사람이면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보다 훨씬 더 잘 알지. 업무도 잘해야지 회식에도 빠지지 않아야지 출산휴가와 육아휴가는 눈치껏 알아서 줄여야지, 애들이 자라면 입시경쟁에 죽어라 한몫 해야지, 사교육비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집값은 비싸고... 결혼과 출산이 보통일이 아닌 거다. 그나마 선진국의 유수 언론에서 다뤄주니 포털에 기사나 실리는 거지. 정부에서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난리를 피우면서도 애 낳으면 지자체에서 돈 몇 푼 준다는 거 말고 뭐가 있나. 저출산 문제 해결한답시고 위원회니 뭐니 자리나 생겼겠지.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화면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또 다른 기사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 있다. “하이힐 폭행과 14억 통장의 진실은?” 서울시 교육청을 비롯한 교육청 비리에 관련된 기사다. 방과 후 학교 강사들에게 돈을 받은 교사, 학교 급식 업체와 교재 납품업체에서 뇌물은 받은 교장들, 장학사 시험 잘 보게 해주겠다며 뇌물을 받은 장학사들... 학부모들과 교육단체, 시민사회단체들이 그렇게 학교 직영급식을 요구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해 온 사람들이 벌인 일들이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08년 서울시민들이 직선으로 뽑은 ‘공정택’이라는 분이 있다고 한다. 기가 막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국회와 지방의회에 계신 분들의 다수가 여전히 학교 직영급식에 반대하고 교사들의 문제 제기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그들만의 왕국을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교육비 걱정에 학교급식의 안전성과 학교폭력에 노심초사하며 교육감 선거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이 이들의 왕국을 지켜주고 있는 꼴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건가.

 연아를 부러워하다 아직도 옷도 자기 맘대로 못 입고 머리도 자기 마음대로 못 기르고 일부 교사들은 물론 친구들로부터 얻어맞고 사는 학생들이 떠올랐다. 불쌍해도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쉽게 변할 현실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변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단초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방자치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바이라인(안수찬 한겨레21 기자)

안수찬/ 한겨레21 기자


 ‘바이-라인(By Line)’은 기사 끝에 붙는 기자 이름이다. 영문 기사 끝에 ‘Reported by ○○○’라고 쓰는 데서 비롯했다. 고관대작은 새 사무실이 생기면 책상 위 명패부터 챙길 것이다. 기자들에겐 바이라인이 명패다. 제가 쓴 기사에 제 명패가 달렸는지 꼭 확인한다. 남들 몰래 쓰다듬기도 한다. 내가 쓴 기사는 내가 낳은 자식이다.

 수습 기자는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를 쓰지 못한다. 제가 취재해 작성한 기사에 제 이름을 달지 못한다. 내 기사를 내 기사라 부르지 못한다. 대신 수습 기자를 교육하는 ‘일진 기자’ 또는 ‘사수 기자’(기자들의 세계는 조폭과 닮았거나 군대를 빼다 박았다)의 이름이 적힌다. 적어도 최초 두세 달 동안, 그 원칙이 지켜진다.

 6개월 수습 기자 시절의 막판에야 바이라인이 허용된다. 다만 여기에도 문턱이 있다. 단독 발굴 기사, 단독 기획 기사를 쓸 경우에만 수습 기자의 이름을 달아준다. 그런 걸 못하면 하염없이 바이라인 등장이 늦춰진다. 그 정도는 해야 기자 대접해줄 수 있다는 ‘조폭적이고 군사적인’ 선배 기자들의 텃세다.

 수습 기자 시절, 나는 지진아에 가까웠다. 동료 수습 기자들이 하나둘씩 ‘신고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나는 내 이름이 달린 기사를 지면에 내놓지 못했다. 1997년 11월3일 신문사에 입사하여 1998년 2월13일에 첫 ‘바이 라인’ 기사를 썼다. 그나마도 단독 발굴 따위가 못됐다. 민주노총이 파업에 돌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밤샘 회의를 하던 현장을 취재해 보고했는데, 선배 기자가 자신이 쓴 기사에 내 이름을 붙였다.

 다음날 새벽에야 신문에 적힌 내 이름 석 자를 보았다. 밤새 취재하느라 고생했다는 ‘정상 참작’의 결과였다. 반가움과 자괴감 사이에서 잠시 헤맸다. 좀 더 멋있게 강렬하게, 기왕이면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기분으로 첫 바이라인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 꿈이 무너졌다. ‘첫 경험’을 그렇게 치르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세상이 1등만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첫 번째 바이라인 기사만 기억한다. 두 번째, 세 번째 바이라인 기사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그보다는 다른 문제가 등장했다. ‘첫 바이라인’ 전까지는 내가 취재했는데 내 이름이 없는 경우가 문제였다. ‘첫 바이라인’ 뒤부터는 내 이름이 달렸는데 내가 취재한 흔적이 없는 경우가 생겼다. 내가 보낸 기사를 팀장이 ‘통째로’ 뜯어 고친 것이다.

 그것은 귀밑 머리털을 뽑히는 일이다. 치욕적이다. 약이 바싹 오르는데 버럭 주먹을 휘두르기엔 뭔가 모자라는 기분이다. ‘선배면 다야? 왜 이따위로 분리 해체해 버린 거야?’ 그런 분통의 대부분은 수습 기자의 자기기만이다. 기자 생활 몇 달 치러본 것으로는 괜찮은 기사 하나 제대로 쓰기 어렵다. 데스크는 그런 허점을 보충한다. 물론 이 메카니즘을 악용해 ‘자본과 권력의 얼굴을 한 데스크’가 후배 기자의 기사를 제 맘대로 왜곡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일을 겪진 않았다. 그래도 아프고 쓰리긴 매 한가지다. 내 바이라인이 오염되는 것 같아 치가 떨렸다.

 2000년대 초반인가 신문사에서 작은 논쟁이 일었다. 바이라인에 두세 명의 기자 이름이 한꺼번에 붙는 일이 있다. 여러 명이 협업 취재한 경우다. 원래는 ‘선배-후배’의 순으로 이름을 적었다. “일은 후배 기자가 더 많이 했는데, 왜 선배라고 앞에 이름을 다느냐”는 항변이 제기됐다. 그 뒤로 <한겨레> 바이라인에선 ‘연공서열’이 사라졌다. 더 많이 취재하고 더 많이 쓴 기자의 이름이 앞에 나온다.

 바이라인에는 이름만 적지 않는다. 기자의 전자우편 주소도 함께 적는다. 요즘 감성으론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껏해야 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일이다. 몇몇 언론사를 필두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입했다. 그때마다 기자들의 ‘저어함’이 없지 않았다. 불만을 품은 독자가 기자의 이름 석 자를 벽에 휘갈겨 쓰고 그 먹물 자리에 칼을 꽂는다 한들, 기자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 언론사로 항의전화를 해도 이리저리 돌려받으며 순간을 모면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우편은 다르다. 분노한 독자들이 바로 내 귀에 대고 항의한다.

 ‘이메일 바이라인’을 도입한 것은 잘한 일이다. 기자들이 직설적인 분노와 격려에 노출되는 것은 언론의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 전까지 기사에 대한 품평은 데스크의 몫이었다. ‘이메일 바이라인’ 이후 그것은 독자의 몫이 됐다. 물론 악의적인 것도 있는데, 감수할만하다. ‘이주 노동자가 저지른 한국인 테러·폭력·살인 사건’을 스크랩하여 매주 나한테 보내는 독자가 계신다. 이주 노동자 인권 기사를 쓴 뒤에 생긴 일이다. 그 독자 분은 나를 계몽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쌍욕을 적어 보내는 독자도 계신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인내심을 단련한다. 아직은 버틸만하다.

 이제 바이라인은 기자 개인의 인격을 표상하지만,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 신문의 대다수 기사에는 바이라인이 없었다. 특히 정치·사회·경제면 기사에는 기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는 영미권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기사는 기자 개인이 아니라 언론사 전체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지금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엔 바이라인이 없다.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기사를 써도 제 이름을 달지 않는다. 방송 뉴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뉴스는 방송사를 대표하는 앵커가 읽었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직접 얼굴·이름을 노출시키며 리포트 하는 일은 드물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면, 단연 명패를 내거는 편에 내 기자직을 걸겠다. 나는 무색무취의 기계가 아니다.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고 쓴다. 나는 <한겨레>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 매체의 품위를 표상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내 기사를 책임진다. 가끔 <한겨레>도 지면을 통해 헛발질을 하고 뻘짓도 하는데, 그걸 전부 내가 책임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우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 헛발질 기사가 나오도록 <한겨레> 뉴스룸의 민주성과 유능함을 높이지 못한 책임의 일부는 물론 나의 몫이다. ‘연대 책임’, ‘대표 책임’ 등은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바이라인은 ‘편집권 민주화’에 대한 잣대이기도 하다. 지면(또는 방송 보도)은 대표이사가 책임지는가? 아니다. 대표이사에게만 편집권이 있다면, 기자들은 대표이사의 명에 따르면 된다. 그 때의 언론은 대표이사의 ‘사유물’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언론이 그랬다. 그런 일을 막으려고 편집권을 지키는 대표자를 따로 정한다. 편집인, 편집국장, 보도국장 등이 그런 자리다. 

 그렇다면 지면(또는 방송보도)은 편집국장·보도국장이 책임지는가? 아니다. 편집국장에게만 편집권이 있다면, 기자들은 편집국장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그런 언론사에선 편집국장이 대표이사의 명을 받들어 취재 지시를 해도 편집권이 독립됐다고 강변할 것이다. 요즘 보수 언론이 그렇다. 그런 건 진정한 편집권 독립이 아니라는 게 현대 언론의 정석이다. 취재·보도 기자의 편집권까지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편집국장의 지시가 부당하면 그에 저항하는 기자가 탄생한다. 그때 편집권 독립을 지키는 것은 편집국장이 아니라 기자 개인이다.  

 그렇다면 지면(또는 방송보도)은 기자가 책임지는가? 아니다. 기자에게만 편집권이 있다면, 언론자유는 기자 마음대로 휘갈기는 일과 다름없다. 제 하고 싶은 대로 날뛰는 게 언론자유라면 한국은 진작에 아비규환이 됐을 것이다. 편집권은 독자에게도 있다. 언론은 사회의 사실·진실·관점을 담는다. 그걸 발생시키고 유통하며 소비하는 독자야말로 ‘뉴스’의 주체다. 오피니언 면을 늘리고 독자참여 기회를 넓히는 것은 편집권의 주체를 기자로부터 독자로 넓히려는 시도다.  

 그렇다면 지면(또는 방송보도)은 그 매체를 소비하는 독자가 책임지는가? 아니다. <조선일보>를 사서 보는 독자만 <조선일보>의 편집권에 대해 감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문·방송·인터넷을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은 ‘1차 소비자’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를 정기 구독하는 독자는 그 신문에서 취득한 사실·진실·관점을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사회화’시킨다. 생각을 품고 토론도 하고 행동도 한다. 그가 권력을 갖췄다면 타인을 ‘강제’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편집권은 궁극적으로 ‘공중(public)’에 있다. 나는 <조선일보>를 정기구독하지 않지만, <조선일보>가 자신의 독자를 발판삼아 공공의 여론장을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일 나의 세금이, 내가 뽑은 정부가, 내가 숨쉬고 있는 시민사회가 그런 <조선일보>를 수수방관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면 나는 반대할 것이다. 나 역시 ‘공중’의 하나이므로.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언론의 편집권은 ‘편재’한다. 두루 곳곳에 나뉘어져 있다. 이 점을 수긍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전제 하에서 기자는 ‘편재하는 편집권’의 핵심고리다. 기자가 ‘바이라인’을 쓰는 이유는 대표이사-편집국장으로 이어지는 언론사의 편집권과 공중-독자로 이어지는 시민사회의 편집권의 한 가운데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편집권 수호의 병사’라는 표식이다. 공중은 기자를 매개로 뉴스룸과 만나고, 뉴스룸은 기자를 통해 공중과 만난다. 이런 맥락에서 기자는 진정한 단독자다.  

 90년대 이후 신문·방송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바이라인을 도입했다. 기자 이름을 걸고, 기자 개인의 인격과 품위를 걸고,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대신 뉴스룸은 좋은 기자, 유능한 기자, 착한 기자, 성실한 기자, 공정한 기자, 진실을 보도하는 기자를 길러내고 보호하겠다는 약속이다.  

 내가 쓰는 기사 끝에 붙는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의 바이라인은 따라서 이런 뜻이다. ‘이 기사는 안수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한겨레> 뉴스룸을 거쳐 지면에 나가는 기사이지만, 취재·보도의 일차적 책임은 안수찬에게 있습니다. 중대한 착오는 매체 전체가 책임지겠지만, <한겨레>는 안수찬 기자의 능력과 시각을 신뢰하므로, 오늘 그의 이름을 빌어 <한겨레>의 기사를 전합니다.’

 
KBS 기자들이 공개한 영상 ‘기자 김인규를 말한다’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한겨레

 김인규 <KBS> 사장이 얼마 전, KBS 기자를 징계했다. 김 사장이 기자 시절,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리포트를 했는데, 그 화면을 공개했다는 이유다. 마이크 잡고 직접 리포트 했으니 김인규 기자의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였음은 당연하다. 기자가 보도한 기사를, 그것도 이미 공중에 공개된 공영방송의 리포트를, 비록 수십 년이 지났다 한들 공중의 소유임에 분명한 보도를, 잠시 들춰 사람들에게 내보인 게 무슨 죄인가. 김 사장은 그 바이라인이 부끄러운가, 아니면 바이라인을 달았지만 데스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강변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해 억울한가.  

 비록 이번의 시도는 모욕적인 징계로 귀결됐지만, KBS 기자협회는 바이라인의 의미를 새로 ‘발견’했다.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고 난 다음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기왕 들춰진 ‘바이라인의 휘발성’을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 <KBS> 9시 뉴스가 ‘땡이뉴스’로 전락하고 있는가. 그 기자의 이름을 모두 적어라. <KBS>의 주요 교양 프로그램들이 모두 정권 홍보물로 변질되고 있는가. 그 피디의 이름을 모두 적어라. 지금 권력의 방송장악을 강 건너 불구경하며 오히려 찬양하고 있는 신문 기자들이 있는가. 그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라.  

 기왕이면 그 기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무슨 기사를 쓰고 보도했는지도 적어라. 그들이 제 이름을 걸고 내보낸 기사 가운데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 반드시 따져 물어라. 지금 당장 따질 수 없다면, 5년 뒤에 10년 뒤에, 그들의 생전에 안 되면 훗날 역사책에라도 밝혀 적어라. 그것이 현대 언론이 기자 개인에게 ‘바이라인’의 명패를 씌워준 이유다. <KBS>를 비판하지 말고, <KBS> 기자 개인의 이름을 적어 비판하라. 조중동이라 싸잡지 말고,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의 바이라인을 들어 비판하라. 기왕이면 그 바이라인으로 떠받든 수많은 텍스트를 한두름에 엮어 비판하라.  

 지금 언론자유가 흔들리고 편집권 독립이 위협받는가. 기자한테 일일이 책임을 물어라. 그 기자가 역사의 죄인이 되기 싫다면, 공중과 만나고 대표이사·편집국장과 긴장할 것이다. 제 이름 석자 내걸고 기사 쓰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면, 제 이름 석자에 오욕의 낙인이 찍히는 일에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기자의 인격을 걸고 보도하겠다고 언론 스스로 공언한 일이 벌써 20년 전이다. 그들의 잘못을 왜 매체에게 뭉뚱그려 묻는가. 한 놈씩 잡아 패라. 그러라고 바이라인이 있다.


용산참사, 되풀이되지 않도록... (홍승권 위원)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1년 가까이 장례도 치르지 못하던 억울한 원혼들의, 시커멓게 그을리고 뒤틀린 육신을 마침내 땅속에 안장시키는 장례가 지난 주말에 있었습니다. 이미 떠난 지 오랜 그 몸을 비로소 땅에 뉘었으니, 비록 뒤늦은 일이지만, 원혼들과 유족들을 위해서는 그나마 다행입니다.  

 장례식 날, 서울역에서부터 용산 남일당 앞까지 무장한 경찰들이 잔뜩 진을 치고 있어 과연 이 장례가 소위 정부와의 합의 아래 치러지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들이 이건희 단독 사면이나 세종시 원안 수정 강행 등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합의’니 ‘타결’ 뉴스로 여론을 어르려고 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분들이며 상주의 처지를 생각할 때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희 사면의 예에서 보듯이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이 ‘프렌들리’한 이명박 정부는 정말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끝끝내 가혹하군요. 저들이 진정 국민을 섬기며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무리인지, 또 다시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의 진압 교본에도 없는 상식 이하의 ‘대국민 전투’로 국민을 살상하고서도 아직까지 경찰 간부 중에서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는 이가 없는 채로, 또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피해자들인 철거민들이 거꾸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이런 식의 재개발로 이 같은 비극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제도를 보완하지 않는 한, 이번 장례로 용산참사(백기완 선생께서는 참사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셨지요!)가 일단락되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유족들은 오랜, 길에서의 생활을 접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집안 살림을 돌보아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원혼들의 피맺힌 바람을 기필코 이루어내야 할 책무가 새삼 지워진 셈입니다.

 돌이켜보면, 남일당 그 자리에 나와 내 형제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억울한 상황과 죽음을 내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함께한 사람은 그야말로 소수였습니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천주교 사제들과 송경동 시인을 필두로 한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이름 없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들….

 
참사 355일 만에 열린 ‘용산참사 장례식’을 마친 유족과 시민 3000여명이
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앞에서 노제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율법사가 ‘내 이웃’이 누구냐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다들 강도를 만난 이를 못 본 척 피해 가는데, 사회로부터 따돌림 당하던 한 사마리아 사람이 곤경에 처한 그 사람을 기꺼운 마음으로 돌보아 주었고 곧 이러한 사람이 이웃이라고 예수는 가르쳐 줍니다. 이웃 사랑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체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분명하게 성경에 나와 있건만, 한국 사회에서 이천만 명이나 된다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님 말씀을 어디에다 감춰놓고 교회를 다니는 걸까요?

 하기사 그 예수님을 따른다는 교회에서도 웃어른인 장로라는 자가 전과 14범의 몸으로 파렴치한 거짓을 일삼으며 거뜬히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또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나서는 입으로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서민을 위한다고 강조하면서 하는 일마다 그와 정반대이니, 새삼 더 할 말이 있겠습니까. 요즘 이 정권이 하는 짓을 보면,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래 이처럼 우리 말과 글이 본디의 뜻과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인 예가 또 언제 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용산참사의 원인을 되짚어보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국민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에서부터, 왠만한 정치인이나 언론 할 것 없이 끊임없는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되뇌는 현실을 보면 우리 모두 경제발전과 돈 되는 것에 환장한 속물이고 그런 연유로 오늘날과 같은 비극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라도 돈이 주인행세 하는 지금의 세상 이치나 논리를 무시해 버리고 좀더 자유롭게 살 여지는 없는 걸까요?

 2010년 올해는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 등 굵직한 현안들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이 소중한 선거를 통해, 국정 운영에 대해 개념도 없고 거짓말투성이에 몰상식한 저들에게서 권력을 되돌려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하여 이 정권이 오로지 가진 자들의 편에 서서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는 동네에선 5년 전부터 지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은평시민신문’이라는 인터넷판 지역신문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동안 이 신문을 통해 구청과 구의회가 얼마나 전근대적이고 형편없이 돌아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귀한 지역신문이 드디어 지난 연말부터 종이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해, 앞으로는 더욱 많은 지역 구민들에게 구의 소식들을 좀더 상세히 잘 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일들이 우리의 일상과 환경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얼마쯤 낙관하는 전망을 펴 봅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힘을 내 열심히 살아 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재판관의 고민(정 원 위원)

정 원/ 인권연대 운영위원


 굴곡 많은 우리 역사는 법관에게 힘겨운 과제를 부여해 왔다. 위헌적인 실정법은 법관에게 합헌적인 판결이 성립할 수 있는 재량의 여지를 박탈했다. 1950년 6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은 피난 중에 우리 헌법상 최초의 대통령 긴급명령 제1호를 발한다. “비상사태하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이 그것이다. 전쟁이라는 극도의 비상사태(“비상사태라함은 단기4283년6월25일 배한괴뢰집단의 침구에 인하여 발생한 사태를 칭한다. 특별조치령 제2조)를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중형(重刑)이 규정되어 있다. 절도나 손괴(損壞) 행위만 저질러도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며, “정보제공, 안내, 기타의 방법”으로 위와 같은 행위를 도우면 마찬가지로 처벌된다. 더욱이 재판은 한 번으로 종결되며(單審制), 판결을 하면서 증거설명을 생략할 수 있다. 위헌적인 법령이었다. 더 큰 문제는 위 긴급명령이 자의적으로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수복한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군을 격파하고 있다는 대통령 담화를 신뢰한 채 피난 시기를 놓친 국민들을 ‘부역행위자’로 매도하며 특별조치령에 따라 처단하였다. 그러나 모든 법관이 실정법에 따라 재판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였던 유병진은 여러 가지 구실을 달아 무죄를 선고한다. “부역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부역을 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말라. 일단 후퇴할 때라도 국민을 속이지 말고 피난할 여유를 주라” 유병진 판사가 그의 저서 ‘재판관의 고민’에서 밝힌 생각이다.

 위헌적인 실정법을 적용해야 하는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유신시대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 위헌 조치를 쏟아냈고 다수의 법관은 실정법에 따라 재판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사실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악법도 법이다”를 권위주의 정부가 ‘도덕’과 ‘윤리’시간에 지속적으로 교육해 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최근 법원은 일련의 사건들에서 실정법을 준수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도 검찰(‘일부 검찰’이겠지만 검사동일체 원칙상 ‘검찰’이라고만 한다)과 일부 세력은 색깔론을 제기하며 법원의 좌경화를 성토하고 있다. 그러나 미네르바 사건, KBS 정연주 사장 사건, PD수첩 사건들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지극히 정상적일 뿐 반대진영이 주장하는 좌경이나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롤모델(role model)로 삼는 ‘선진국’ 법원은 동일한 판단을 내릴 것이 확실하다(다만 선진국 판사들은 우리 같이 대단한 검찰 동료가 없기에 이런 사건들을 해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에 관하여 우리사회가 1987년 이후 20년 이상 묵묵히 이룩한 성과이다.

 
법원 모습
사진 출처 - 노컷뉴스

 하지만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강기갑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사건의 판결이다. 변호사 단체까지 나서 판결의 법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과거 긴급조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던 때의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전진하고 있지 못하다. 담당판사가 어떠한 고민의 결과 무죄라는 결론에 이르렀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검찰이 법리를 무시한 엉터리 판결이라고 엄청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기소 자체의 정당성에 대하여는 추호의 의심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사건이 과연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기소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다수의 정상적인 국가들은 우리처럼 검찰에 무제한의 기소재량을 주지 않는다. 대배심(grand jury)과 같이 시민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도록 보장하기도 하고, 사전에 판사의 예비심사를 거치도록 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가 없는 우리의 경우 검찰은 기소 재량을 신중히 행사해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그러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재량을 강자(强者)의 논리에 충실하게 행사했다. 권력자의 범죄에 대하여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며 칼을 거둔 것이 대표적이다. 강기갑 의원 사건의 경우 국회의 자율권을 고려해 가능한 공소권을 발동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찰권을 행사할 재량이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검찰의 불기소가 국회의 문제는 국회의 자율로 해결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공무집행방해’라는 지극히 협소한 측면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에 이르게 된 파행적인 국회 운영을 방지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우리 법원은 전통적인 기본권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성숙한 판결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용산 사태에서 극명히 드러난 것처럼 생존권이라든지, 난민(難民) 지위 인정과 같은 사회적 기본권 분야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기본적인 실정법 차원의 고민에서 맴돌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총수 등 경제적 강자에 대한 관대한 판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 두드러지는 법원의 ‘부경화’(富傾化)’ 현상이다. 2010년 법관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정 원 위원은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주홍글씨 ‘중딩’들을 위한 고백(김영미 위원)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인터넷에 ‘알몸 졸업식 뒤풀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올라오면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지난 11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중학교 졸업식이 끝난 뒤 선배인 고교생 20명이 남녀 졸업생 15명을 알몸으로 만들고 이들을 촬영한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속에는 남녀 중학생들이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쓴 채 알몸으로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 장면, 속옷을 벗는 장면 등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결국 졸업식 알몸 뒤풀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가해학생 전원을 기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이들이 어린 중학생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무서운 중딩’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우 평범하 편이다.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의 학생들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말를 걸어야 할지,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막막한 아이들도 있고 교사들에게 대거리를 하거나 욕설을 퍼붓고, 아주 가끔 폭력을 쓰는 아이들도 있고, 수업이 안 돼서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교사들도 있다.  


경기도 고양지역의 한 중학교 졸업식에서 남.녀 학생들이 전라의 모습으로 뒤풀이를 하는
사진 10여장이 13일 인터넷 사이트에 유포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인터넷에 유포된 일부 사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가정 모습을 살펴보면, 부모들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거나 부모들의 이혼과 별거로 인해 홀로 아이를 키우거나, 조부모님 댁에 맡겨서 키워지곤 한다. 그런 아이들은 유소년기의 대부분을 학원과 인터넷, 게임, 텔레비전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속에서 경쟁과 파괴의 경험을 가지게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우리는 진심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는지....

 우리의 학교모습 역시 고백하건데 졸업식날 졸업반 담임을 제외하고 참석을 가급적 피하고, 교실이 난장판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교실출입을 못하게 했다.  

 지난해 가을 인터넷에 떠돌던 학교폭력의 변종인 ‘빵셔틀’이 문제가 됐을 때도 이 언어조차 생소해 학생들에게 물어보던 중 내가 평소에 지켜보던 학생임을 알고서 괴로워했다.

 결국 대통령의 관심으로 인해 가해학생을 형사처벌하는 사회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해주었을까? 

 미성숙한 학생시절의 잘못을 사회적 주홍글씨로 완성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가정, 학교, 사회가 공동책임을 지고 이들의 인성을 더욱 돌볼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서 이들의 변화를 지켜보았으면 한다.

 교사부터 학생들에게 경쟁을 중시하고 가슴으로 사는 아름다운 마음 교육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소리에 더더욱 귀 귀울이며 그들의 문제에 가슴깊이 같이 고민할 수 있는 통로들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기보다는 흠을 잡고 몰아붙이는 무서운 세상 속에 이 아이들이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며 서로를 배려하며 친구끼리 서로 아끼는 것부터 예쁘게 사는 모습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신연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09년 유엔에서 본 한국 사회권의 모습은? -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2009년 11월 초 유엔사회권위원회(이하 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비준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이하 사회권규약)에 따라 한국에서의 사회권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심의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회의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었다. 규약에서의 사회권의 범위는 차별, 노동 3권, 노동조건, 여성, 환경, 교육, 주거, 사회복지, 장애, 문화, 과학, 저작권까지 소위 ‘먹고 살기위한 모든 영역에서의 권리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심의에서 정부는 위원회 위원들도 놀랄 만큼의 인원인 44명의 대표단을 파견하여 위원회 위원들로부터의 질문에 응답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의 회의가 있기 전에 정부는 종합적인 사회권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심의 회의 때에는 사회권 위원들과 정부관계자와의 질의응답이 약 이틀정도 이어졌다. 이 심의에 대비하여 한국의 사회권 관련 단체들(저자가 활동하는 단체도 포함됨)은 위원회 위원들에게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보고서에 대한 엔지오 대안보고서를 작성, 제출하였고 심의 때에도 위원들과의 사전미팅을 통해서 엔지오의 의견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심의과정에서 정부는 각 행정부서가 추진했거나 진행 중인 정책과 법안에 대한 홍보와 그에 대한 긍정적 측면의 평가만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권 관련 이슈 중 어두운 면이나 불평등한 부분에 대한 설명과 파악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정부가 제출한 사회권보고서에도 이 부분은 엔지오들이 지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국정부의 보고서와 심의과정에서 정부의 답변은 한마디로 한국의 사회권은 잘 보장되어 있고 한국정부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무척이나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권에 대한 최종적 평가와 권고가 담겨있는 위원회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가 11월 24일에 발표되었다.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와 심의과정에서의 정부답변에 대해서 최종견해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한국 사회권의 현실은 갈수록 악화되어가고 있고, 대부분의 사회권 영역에서 규약이 보장하는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정부는 규약의 당사국으로써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그 노력 또한 미비하다고 평가하였고 총 36개 항의 권고항목을 발표하였다. 이는 곧 유엔사회권위원회가 정확하게 현재 한국의 사회권의 현실이 새로운 정부와 연동되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인지하였고, 한국의 높은 경제성장에 걸 맞는 사회권보장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권고한 것이다.

(한국정부에 대한 유엔사회권위원회 최종견해는 아래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음.
http://minbyun.org/?mid=act_02&document_srl=28807&listStyle=&cpage=)

 하지만 정부는 위원회의 최종견해가 발표되자마자 성명을 발표하면서, 위원회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을 언급하면서 이는 관례상 어긋난다고 하면서 위원회의 최종견해를 혹평하였다. 그렇게 글로벌 스탠다드 하면서 국제기준을 외치더니만, 국제기관에서 한국의 사회권 현실을 정부와는 다르게 평가하니 이제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정부의 눈에는 한국의 사회권 현실은 유엔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판단하고 있나보다.

 정부가 뭐가 그리 억울해서 이례적으로(사실 조약기구 최종견해 발표이후 당사국이 의견을 내는 것은 거의 드물다) 성명을 발표하나 싶어 정부의 보도 자료를 보았는데, 역시나 정부보고서나 심의 때의 발언과 비슷한 논리로 억지를 불이고 있는 것이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작년의 국가인권위 조직축소에 대해서 위원회는 21%의 조직 감축은 심각한 우려사항이고 이에 인권전문가를 포함한 인적, 물적 자원을 배정하기를 권고하였는데, 이에 정부의 항변은 국가인권위원회 임원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조직축소도 모든 행정기구의 개편과 연관되어 있기에 인권위의 독립성은 충분히 보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무슨 삽질하는 소리도 아니고... 당시 국가인권위를 포함한 대부분의 정부조직들이 개편 되어 감축 된 것은 사실이나 그 폭은 2%에 불과하였고 인권위는 21%를 감축하였다. 사회권위원회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상대적으로 과도한 감축임이 분명하기에 정부가 국가인권위에 인적, 물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는 권고인데, 정부는 자꾸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하니... 참... 

 다른 내용도 그 주제가 다를 뿐 수준은 비슷했다. 그래서 엔지오들은 다시 정부의 성명에 대해서 그 반론을 작성하여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관련 자료는 http://minbyun.org/?mid=act_02&document_srl=29319&listStyle=&cpage= 에서 찾을 수 있음.)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이행 촉구 기자회견
사진 출처 - 필자

 엔지오들은 약 2년에 걸쳐 엔지오 대안보고서와 심의참석을 준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를 꾸준히 지켜봐온 결과 정부는 참으로 치사하고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하나의 대상을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은 판단이 될 텐데, 정부가 보는 한국의 사회권의 현실은 한국의 엔지오와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생각과 너무도 다르다. 사실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을 것이고 그 정도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이야기도 통할 텐데, 정부는 한국의 사회권현실을 너무도 좋게만 보고 있으니, 좀 더 노력해야지 하는 위원회의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고 유엔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형국이 되었다. 엔지오의 의견은 시작 때부터 무시했으니 그렇다하더라도 이제 유엔의 권고도 못 받겠다고 저러니 누가 이야기해야 하나? 딱 하는 짓이 미운 7살 아이의 행동인데 매를 들어야 하나?      


너희에게(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신하영옥/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조직국장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전날부터 내린 눈이 세상을 덮고, 그리고도 사락사락 눈이 내렸지.

 그 좋다던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지하를 제외하곤, 모두 뒤엉켜 버렸어. 5분이면 되던 기다림이 30분을 넘고, 15분이면 되던 운행시간이 30분을 훌쩍 넘기고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해 결국 차에서 내려 뚜벅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도 길은 눈 천지였지. 그게 어제였으니 오늘은 좀 나아지려나? 

 어릴 적, 눈이 오면 세상은 온통 동화 속이었지.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날 때까지 눈싸움인지, 눈 치움인지를 하던 시절에 눈은 기쁨 그 자체였어. 그 때도 눈이 오면 차는 달릴 염을 못 내었었지. 신작로라 불리던 넓은 길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누구의 발길도 허락지 않았었다. 단지, 눈으로 인해 괜스레 일찍 일어난 나와 동무들의 발길과 웃음과 고함과 장난질만 허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눈은 눈 그 자체로 환희이고 기쁨이었지.

 언젠가 신작로가 더 넓어지고 평탄해지면서, 그리고 눈들이 적게 오기 시작하면서 눈이 오면 온 뒤의 그 처절함이 먼저 상상이 되어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어. 차바퀴에 치이거나 떠밀려 진흙과 한 덩이가 되어 눈인지, 흙인지 구분이 안 되던 그 형상이, 도저히 눈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져서 눈이 오면, 그 자체로 기쁨이기보다는 그 뒤의 처참함이 먼저 떠올라 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강박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눈은 생활의 불편함과 대중교통시스템의 한계를 생각하게 하는 기제가 되어버렸네. 눈은 아무 변화도 가치도 없는데 눈을 바라보는 나는 변덕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눈은 참 이뻐. 여전히 세상을 동화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기도 하고. 그리고 새해와 눈은 참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다 덮어버리고 새롭게 세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니 말이야. 덮는다고 덮어질까 만은...

 지난한 해, 참 어이상실이란 말이 어찌 잘 어울릴까 싶을 만큼 어이없는 일들이 많았다. 기대는 했으나 기대이상으로 치달은 사건들과 시간들에 감사하다 해야 할까? 돌아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너희들을 생각하니 슬퍼진다. 작년에 애가 고등학교에 가고, 그나마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이 있어 위로가 되었는데 그나마 없어졌다지? 아이는 혼자 공부하다 지쳐 드디어 학원을 가보겠다고 했다지? 알아보니 과목당 몇 십 만원이 넘는다지? 어째야하니? 한 달 겨우 끊어줬다고 했나? 그 다음은 어쩌냐? 그나마 지금까지 혼자 잘 해 왔던 애에게 감사해야할까?

 그리고 아이 둘을 어찌어찌, 그것도 명문대를 보내긴 했는데, 큰 넘은 군대로 가고, 작은 넘은 일요일까지 알바를 한다니 그 애 인생도 한심하다며 웃음으로 때우던 너의 피곤한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소위 ‘two job’을 가진 너를 보면서, 월요일이면 금요일보다 더 피곤하고 지친 너를 보면서 내가 해 줄 것이라곤 “몸은 좀 어때?”라는 립 서비스만 할 수 있는 나로선, “가난이 정말 대물림이 되는 거 같아서, 애들을 보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라며 입을 닫던 네 곁에서 나는 그나마 조금 나은 내 현실에 안도하고만 있었다. 미래로 장학금인지 뭔지 있었는데 그것마저 수급자가 될 것인지, 장학생이 될 것인지 사이에서 초조해 해야만 한다는 기사가 곧 너였었지. 제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제도를 만들고자 했던 나였음에도 요즘은 그 제도가 우리 삶과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지 너희들을 보면서 실감하고 있다. 그 복지라는 제도 말이야.

 너희들 곁에서 같이 술 마시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나는, 술값을 계산할 때도 각각 나누어 내는 것에 너희들을 대신할 수도 없는 나는, 아니 나도 불투명한 현실과 미래를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인 게야. 우리 어째야 하니? 그나마 그런 절망스런 기분과 생각이 오래가지 않도록 바쁜 우리 현실과 두뇌에 감사도 하고 순간순간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살 수 있는 너희들의 긍정적 힘에 감탄도 한다. 예전에 “빚을 조금 지면 빚이 짐인데, 너무 많으면 아무렇지도 않아.”라던 ‘돈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해탈’을 한 듯 하던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돈을 넘어선 것인지 돈에 눌려 자포자기 한 건지는 모르나, 여튼 그 선배의 일상은 해맑았으니, 가진 넘들 돈 좀 빌려 쓰고 갚지 않는 객기도 필요치 않나 싶다.

 신 새벽에, 그것도 새해 벽두에 시답잖은 주절거림을 용서해라. 보이지 않는다고 없지 않더라는 얘기를 언젠가 떠들었듯이 눈에 덮였다고 없어진 것이 아닌 듯이, 단지 눈을 가지고 장난질 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처럼, 어이상실로 뒤덮인 이 상황을 가지고 놀자. 그런데 어떻게 놀 수 있을지는 아직도 감감하긴 하다. 그래도 그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게야. 이제는 어떤 대상이던 싸우기보다 놀고 즐기면서 그 대상을 넘을 수 있을 때도 되었지 싶다. 왜냐면 이제 우리 벌써 반백년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장난질할 수 있는 장난감이나 궁리해보자.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새해에는... 이런 표현 정말 진부하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할 말이 이것밖에 없으니 어쩌겠니? ^^; 새해에는, 2010년에는 눈 덮인 한적한 마을처럼 마음속에 결코 버릴 수 없는 동화하나 만들고, 그 동화를 지키기 위한 놀이 감 하나 만들어 그렇게 저렇게 살아보자.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눈이 되면 어떻겠니? 허물도, 슬픔도 서로 덮어주어 정결함만 남도록 하는 그런 눈 같은 존재들이 되자.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오는 너희들아.


오누이의 간절한 새해소망, 종교자유와 학생인권! -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손상훈/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상담위원

 호랑이와 관련된 좋은 이야기 말고, 모양새 불편해 듣기 싫은 썩은 동아줄 전래동화이야기가 있다.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오누이까지 어찌해보려 하지만, 하늘도 남매의 간절한 기도에 호응하여 썩은 동아줄을 내려 보냈고, 그 줄을 타고 올라가던 호랑이는 줄이 끊어져 크게 탈이 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눈부신 발전을 해 온 종교계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급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먹어버리려는 호랑이처럼 인정사정없이 치달아온 기성 종교계에서는 내부에서 일어난 잘못된 일들에 대한 반성의 모습이 결여되어 보인다. 특히 대다수의 종교계가 사학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호랑이 해’를 맞이해 사학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반성과 자신들의 허물을 고쳐버리는 결단을 내려주었으면 한다.

 올 해에도 어김없이 모든 종교계 최고지도자들은 갖가지 덕담과 희망을 전하고 있다. ‘용산문제’해결에 종교계가 기여했다는 이런 메시지에 더해 종교계가 못 고치고 있는 차별사례 하나씩이라도 바꿔준다면 더 존경스러울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불교계 한 종단의 종립대학에서 조교를 선발할 때 수계증이 없으면 뽑지 않았던 최근 방침을 바꿔준다든지 특정종교 학생동아리가 구성되고 강의실을 빌려 유명한 강사를 초청해 자유로운 집회를 갖도록 했다는 소식 같은 것이다. 또한, 절에 가서 절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한 선생님도 다시 대학 강단에 돌아갔으며, 강남의 한 불교계 설립 중•고교는 불교의식과 교리를 강화하려는 계획을 취소하고, 동아리교회의 담임목사를 종교교사로 초빙하여 국내최초로 학생들이 종교교육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 종교사학들은 학부모가 보내고 싶은 최고의 학교로 뽑혔다고 한 언론사가 밝혔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상상의 날개의 마지막이고 현실은 추운 날씨 같다.

 한 고등학생이 2004년 6월 예배 참여를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며 학교방송을 이용해 호소한다. 이 학교 학생회장이었고 공부를 매우 잘했던 이 청소년에게 해당 학교는 한 달이 채 안되어 ‘퇴학’처분을 내렸다. 이 학생의 아버지는 교회의 직분을 맡았던 분이었지만, 아들의 인권을 보호해 주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을 것이다. 종교계의 편협한 발전이라는 ‘막 되먹은 호랑이’가 한 학생과 부모들을 잡아먹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 학생은 45일을 단식하고, 또 단식을 했었다. 광대뼈가 보이게 달라진 마른 얼굴은 마음고생의 ‘상징’처럼 많은 부모들에게 각인되기도 했었다. 이 사건을 모두 알고 있지는 않겠지만, 종교사학에 다녀본 지금의 학부모들은 모두 가슴이 타 들어갔으며, 여전히 불타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육되기를 바라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든지 비슷할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종교문제, 종교교육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폐쇄적이고 닫힌 자세로 있는 게 오늘날 종교사학의 현실이다. 학생인권을 지켜달라는 한 고등학생의 법정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도대체 종교사학의 종교교육이 청소년을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괴력이  어디서 나오는 지 해결

강의석씨는 지난 2004년 서울 대광고등학교에 재학 중에
예배선택권을 주장하다, 퇴학처분을 받고 종교자유 침해
손해배상 소송 등을 제기하였다.

사진 출처 - 필자

방법은 무엇인지 종교 지도자들은 제시해 주길 요청한다. 종교계 지도자들은 호랑이를 피해 ‘간절한 기도를 하는 이 땅의 오누이’들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탤 것을 호소한다. 한 학생이 제기한 한국사회 종교자유인권의 판단이 대법원에 맡겨져 있고 이 땅의 수많은 못된 호랑이 들은 여전히 썩은 밧줄을 잡고, 오누이들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누이들의 소망과 기도’에 답하는 대법원과 종교계 지도자들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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