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잡겠다고…시민 DNA 영장없이 채취
경찰, 현금차량 탈취 수사 ‘인권침해’ 논란
용의자와 비슷하면 사무실 찾아가 채집해
한겨레 홍석재 기자
경찰이 ‘장기 미제 사건’ 수사를 한다며 영장 없이 일반 시민들의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24일 “지난달 14일 종각 근처에서 발생한 ‘영풍문고 앞 현금수송차량 탈취 미수 사건’ 피의자의 디엔에이(DNA)와 용의 선상에 오른 이들의 디엔에이를 채취해 대조하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이 피의자의 디엔에이는 당시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혈흔에서 경찰이 채취한 것이다.

경찰은 이 혈흔과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자료 등을 바탕으로 160~165㎝ 키에 안경을 쓴 30대 초반 남성들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디엔에이 정보를 채취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현장 주변에 근무하는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당사자의 동의를 구한 뒤 면봉으로 입안의 상피세포를 긁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사건이 평일 오전에 발생한 점에 주목하고, 당시 사고 현장 주변 지하철역을 이용했던 시민 3000여명의 교통카드 사용 명세를 확보한 뒤 이 가운데 디엔에이 채집 대상을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종로경찰서의 한 간부는 “당사자의 동의를 반드시 얻는 등 수사 절차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며 “수만명의 수사 대상자 가운데 상당한 신빙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수십명 선에서 디엔에이를 채집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은 관할 지구대에 수사본부를 꾸리고 신고보상금도 1000만원까지 올리는 등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사건 발생 한 달이 넘도록 수사가 진전되지 않자 디엔에이 수사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모든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인권 침해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디엔에이 활용 수사는 피의자를 특정한 뒤 법원의 영장을 받아 범인 여부를 가리는 게 정상적인 절차다. 이은우 변호사는 “영장을 받을 만큼 혐의가 확보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동의에 의해 디엔에이를 채취하는 건 ‘영장주의’를 회피한 사실상의 편법수사”라며 “여러 가지 생물학적 정보가 포함된 디엔에이를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하려는 위험한 태도”라고 말했다. 경찰은 2004년 경기도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지역의 주민과 대학생 등 4600여명의 디엔에이를 무작위로 채집해 ‘인권 침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이 수사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의 근거가 부족한데도 시민들을 범죄자로 보고 신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기사등록 : 2009-08-25 오전 06: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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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집행 범위 넘어 ‘분풀이 집단폭행’ 비난 자초
도넘은 경찰진압 논란
쓰러진 노조원에 전경 여러명 달려들어 짓밟아
작년 촛불집회 이후 되풀이…경찰 “통제 어려워”
한겨레 남종영 기자 길윤형 기자 김종수 기자
»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와 정당 대표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살인적 강제진압과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참가자들의 사례 보고를 들으며 참담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지난 5일 오전 8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조립3·4공장 옥상.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조합원 김진표(가명)씨는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맞아 휘청거렸다. 다시 뒤쪽의 다른 전경이 방패로 목을 후려치자 김씨는 맥없이 쓰러졌다. 전경은 방패를 들고 김씨의 목을 6번 내리찍다가, 그래도 화가 안 풀린 듯 발로 밟기 시작했다. 김씨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새우처럼 엎드려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한 명이 달려오더니 김씨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잠시 쉬던 전경은 다시 곤봉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김씨를 때린 전경만 5명이었다.

경찰의 진압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6일 노사간 협상에서 극적 타결을 이뤄졌지만,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찰의 쌍용차 평택공장 진입과정을 기록한 동영상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경찰은 이미 제압돼 저항할 능력을 잃은 시위자에 대해서도 여럿이 돌아가며 방패로 때리거나 내리찍고, 발길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개중 쌍용차노조 노동안전실장은 “조립3·4공장 등에서 20여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왔다”고 말했다. 육대웅 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기본부 법률원 변호사도 6일 “평택경찰서에 연행된 11명을 면담해보니, 대부분 어떻게 맞았는지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연행과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갑수 쌍용차지부 보건부장은 “법 절차에 따른 연행이 아니라 진압봉과 쌍절곤, 군홧발로 폭행을 한 뒤 끌고 가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기용(가명)씨는 5일 조립3공장 옥상에서 체포돼 손을 결박당한 채 진압봉으로 폭행을 당한 뒤 연행됐다.

경찰의 이런 행태는 되풀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촛불집회 이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경찰이 분풀이성 폭행을 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시위자를 진압한 뒤 진압봉을 휘두르는 것은 경찰관 직무규칙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관 직무규칙 제87조는 ‘강제 해산 시에는 최소한의 물리력을 행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진압장비 남용도 도마에 올랐다.

경찰이 이번 진압에 사용한 ‘다목적 발사기’는 대통령령인 ‘경찰 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인질범의 체포 △대간첩·대테러 작전 △공공시설의 안전에 현저한 위해가 예상될 때 등으로 용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 권영국 변호사는 “이번 농성을 테러로 볼 만한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진압 작전의 특수성을 거론하며 노동계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과잉 진압이란 주장을 수긍하지 않았다. 고기철 경기지방경찰청 공보계장은 경찰관 직무규칙을 어겼다는 비판에 대해 “5일 진압작전에서 경찰 26명이 다치는 등 양쪽이 극렬하게 충돌한 전체적인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며 “현장에서는 공권력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도록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목적 발사기 사용에 관해서는 “일반적인 불법 시위자가 아니라 사제 대포와 화염병 등 살상 무기를 쏘거나 던지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길윤형 기자    fandg@hani.co.kr

기사등록 : 2009-08-06 오후 0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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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회원모임 9탄 -"한겨레 영화 담당 이재성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 여행"

 인권연대가 매월 회원님들을 위한 회원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영화모임>이 아홉 번째로 만날 작품은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입니다. <영화모임>이 선정한 첫 번째 한국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2007년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에 초청되었던 작품입니다. 장편 데뷔를 준비하는 신인 감독의 연애 이야기와 영화 준비 과정을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동시대 젊은이들의 산만한 관심사를 수다스런 입담으로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다”는 평과 함께 연애, 영화에 대한 고민과 정치, 문화, 의사소통을 아우르는 꼴라쥬가 흥미롭고, 이를 엮는 감독의 재기가 빛나는 영화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신선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삶의 다양함과 마주하고, 폭넓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것입니다.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9월 2일(수) 저녁 7시
  • 장소 : 인권연대 교육장(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2분거리)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3672-9443)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Milky Way Liberation Front

감독 : 윤성호

주연 : 임지규, 박혁권

제작사 : 청년필름, <은하해방전선> 제작위원회

배급사 :
 (주)인디스토리

제작국가 : 한국
제작년도 : 2007년
상영시간 : 99분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SYNOPSYS

연애도, 영화도 말로는 베테랑인 초짜 감독 영재.
사랑과 일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실어증에 걸리다!

말 많은 그를 말없이 받아주던 여자친구 은하는 떠나고, 화려한 캐스팅과 버라이어티한 투자 계획은 있으나 시나리오는 진전이 없다.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나름 예민한 영재는 설상가상으로 실어증에 걸린다.

구강 액션의 정점, 복화술을 구사하던 배우 혁권은 물심양면으로 감독 영재를 도와보지만 영화사 대표는 몽골 천재 쌍둥이 감독들에게 영재의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은 눈치다.

영화도, 연애도 점점 꼬여만 가는 영재.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영화의 진심을 믿습니까? <은하해방전선>

 아마도 윤성호의 영화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연애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는 인용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 윤성호의 장편 데뷔작인 <은하해방전선>은 감독 윤성호가 말하는 ‘윤성호의 영화 혹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과 겹친다. 자신의 단편들에서 외부 텍스트를 끊임없이 인용하고 조립해왔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단편들을 인용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영화들은 무언가를 내뱉는 순간, 내뱉어진 담론, 문장, 가치를 끊임없이 지운다. 말하자면 지움으로써 다른 차원으로 가볍게 이행한다. 그러니 이 의미심장해 보이는 제목은 사실, 말 그대로 사랑하는 ‘은하’에게서 해방되고자 하는 어느 어수룩한 감독의 슬픔을 지칭하는 것이다.  

 자신의 어수룩함을 화려한 말발로 감추는 영재(임지규)는 장편 데뷔를 준비 중이다. 그는 바로 그 말발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 은하(서영주)에게 실연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준비하던 영화는 난항을 거듭하고 그 스트레스로 영재는 급기야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그러나 실어증은 갖가지 묘기, 이를테면 복화술과 입에서 나오는 피리소리 등으로 대체되면서 자기기만적인 영재의 말들을 기의없는 음악으로 만든다. 영재의 실어증은 사랑도, 영화도, 글도 모두 입으로 하는,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의 두려움의 징후다. 혹은 소통과 사랑의 처절한 실패 앞에서 부서지기 전에 소심하게 한 걸음 뒤로 빼는 물러남이다. 그런 영재 앞에 은하가 아닌 새로운 사랑(이은성)이 나타난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며 영재는 자신의 말만 주야장천 내뱉기 전에 그녀의 눈과 입을 ‘들을 수’ 있어야 함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영화는 영재의 내면적 변화의 시간에 대해서는 무심한 편이다. 그건 이 영화가 강박적으로 말의 의미나 정치, 거대담론을 불신하고 있다는 인상과도 연결된다. 때때로 영재가 소비하는 수많은 말과 감정은 이 냉정한 세상과 부딪치는 제스처가 아니라, 그 세상의 중심에 들어서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과 냉소의 제스처처럼 보인다. 또한 영화는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영화, 사랑 등을 그 자체로는 텅 빈 기표로 반복 사용하며 무언가 남겨짐을 거부하고 지속적으로 유보하고 있다. ‘담론을 패션(fashion)으로 만듦으로써 발언이 되게 하기’와 ‘담론을 또 하나의 매혹적인 상품으로 소비하고 말기’ 사이에서 이 재기발랄한 영화는 위태롭게 스스로를 시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맹자가 양혜왕을 접견했다.

 왕이 말했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만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만약 한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하면 나의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그 아래에 있는 대부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선비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위아래가 다투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면 나라는 위태로워집니다. …(중략)… 왕께서는 인의를 말씀하셔야지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나라를 이롭게 하겠다는 양혜왕의 선의(善意)마저 이기주의라고 꾸짖었던 맹자가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인배들 천지라고 혀를 차지 않을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 땅과 건물을 사서 재산증식에 몰두해온 분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나는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명언(!)을 남긴 장관 후보자부터 남의 돈으로 수십억짜리 집을 사들인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현 정부는 소위 우리나라를 이끌어간다는(가고 싶어 하는) 분들의 추악한 면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을 환원하겠다는 대선 당시의 공약을 이행한다며 밝힌 재단 설립 계획 역시 많은 사람의 비웃음을 샀다. 공약을 지키기도 그렇고 그냥 먹어버리기도(식언하기도) 그렇고, 전전긍긍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대통령이 되었다고(종신대통령도 아니고) 한꺼번에 남한테 주겠나.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 결과가 재산을 기탁하는 대신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었을 터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일 한다는 명목으로 세금도 안 내거나 덜 낼 수 있을 테고, 측근들을 재단에 포진시켜 놨으니 내 맘대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사회 환원 방식조차 참 이명박스럽다고 생각한 게 단지 나 혼자만일까.

 새삼스런 말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사회적 힘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이기주의에 있다. 방법과 절차를 불문하고 이명박처럼 돈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이기주의. 국민들 저마다의 이기주의가 하나의 힘으로 모여 강남 졸부의 화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아니나 다를까, 지금 우리나라는 (가진 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의 광풍에 휩싸여있다.


현금까지 뿌려가며 신문 시장을 망쳐놓은 조중동. 이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언론환경은
지금보다도 더욱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먼저 ‘4대강 살리기’(실은 죽이기).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을 (눈물을 머금고) 4대강 죽이기로 축소하면서까지(그래도 30조원!) 삽질에 집착하는 배경에는 건설업계의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국내 최대 건설회사 CEO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의 눈에 멀쩡한 자연이 망가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급하면 그 흔한 환경영향평가 한번 거치지 않고 삽질부터 시작했을까. 이 사업이 아니었다면 공터에서 공치고 있을 포크레인과 불도저의 감가상각비만 생각해도 얼마인가. 4대강 삽질이라는 게 강바닥을 파서 수량을 많게 하고 둔치나 보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모래밭과 습지로 아름다운 자연 하천을 한강처럼 인공구조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한강의 얼마 안 되는 자연 습지(여의도 샛강을 비롯한)를 파헤치고 있는 건 또 어떤가. 아무리 서울시장 한 번 더 하고 싶고, 대통령에 욕심이 있어도 그렇지 한 때 환경운동연합 회원임을 자랑하고 다녔던 사람의 이명박 따라 하기는 참 볼썽사나운 노릇이다. (대통령의 꿈을 이룬) 이명박을 움직이는 힘이 철저히 계급 이기주의라면, (대통령을 꿈꾸는) 오세훈을 움직이고 있는 힘은 출세욕이라는 개인 이기주의다.

 최근 날치기로 통과된 언론악법이야말로 이기주의의 결정판이다. 자전거에 상품권, 현금까지 뿌려가며 신문 시장을 망쳐놓은 조중동이 결국 신문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되니까 방송을 하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언론에 약한 재벌 총수들이 방송사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들이 방송을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언론환경은 지금보다도 더욱 철저히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로 급격히 바뀔 것이다.

 세월이 변한 것일까? 과거 같으면 수십 번도 더 뒤집어졌을 소식을 접해도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같은 건 이슈조차도 잘 안 된다. 왜 일까? 조중동이 외면해서? 더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이 자신의 문제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기무사의 망동을 이대로 두고 지나갈 경우 기무사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반정부 인사들을 미행하고 감시할 것이라는 것을. 국정원은 합법적으로 국민들을 사찰하고 도청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 같은 장삼이사들의 자유도 언제든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그런 무관심과 불감증의 밑동에 있는 것이 우리 각자의 이기주의다.

 그나마 측은지심은 남아있는 것일까?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겁다. 그 뜨거움이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길 바란다. 두 분은 역사와 대의에 자기 몸을 진정으로 바치신 분들이다.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이 소인배들이 판치는 시대에 대한 뜨거운 경고라면,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남아 있다. 문제는 우리 안의 이기주의다. 우리가 이기주의의 껍질을 깨고 일어설 수 있다면 여론주도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지난해 촛불 시위 때처럼 말이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며칠 전 선거법 관련 전교조 교사들의 공판소식을 전해 들었다. 20명 전원에게 징역 6월에서 2년 2월의 실형이 구형되었단다. 피의자들의 절절한 최후진술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특히 소환당시 암선고를 받고 힘겹게 투병했던 우리 지회장 선생님의 최후진술을 대하면서, 치료하느라 앙상하게 뼈만 남았던 선생님의 야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법정에 다녀 온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뭐, 이런 놈의 세상이 다 있냐!’ 는 울분을 서로 토해내며……. 

 업무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 ‘급식업체와 학원장들에게 수십억 원을 지원받고, 교육청 실, 국장과 교장, 교감들을 동원해 선거를 치른’ 서울시교육감에게 징역 6월을 구형한 검찰이 개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다만 교육적 충정의 발로로 주후보를 지원했던 이 힘없는 교사들에게는 교육감보다 훨씬 무거운 형을 내린 것이다. ‘교육의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이유로. 이 정권과 검찰의 후안무치에 또 다시 기가 막혀 온다. 이중 잣대라고 지적하기에도 이제 신물이 난다. 차라리 그냥 딱 까놓고 말해라.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전교조 때려잡으라고 난리였는데, 기회가 좋아서 낚아챈 것뿐이라고 말이다. 하긴 촛불집회 때 안전한 먹거리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온 유모차부대의 엄마들에게 ‘아동학대’죄를 들이댄 이 정부의 검찰인데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교육의 공공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따져 봐야 할 것 같다. 기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상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이를 조직적으로 위반함으로써 교육 공공성을 해친 것이 인정되어…’ 라며 검사는 중형 구형의 변을 늘어놓았다. 교육의 공공성이라고 했는가? 검사는 그 뜻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있기에 그 말을 갖다 붙인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최소한 ‘교육의 公共性’이라 함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어떤 이유에서도 침해받지 않을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보장해야 하며, 나아가 그 방향성에 있어서는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건강하게 발전시켜가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교육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과 매일 호흡하며 생활하는 우리 교사들이 보기에 작금의 교육현실이 그런 대원칙에서 심각할 정도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되기에 그 위기의식에서 우리 교사들이 나선 것 아닌가.

 교육의 균등성 면에서,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특목고, 국제중, 자립형 사립고의 난립, 고교등급제 등 일련의 교육정책들이 결국은 소수의 엘리트학생들에게는 유리한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엄존하는 학력위주의 사회현실 속에서 교육열이 남다른 우리나라 모든 학부모에게 자녀들을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또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누가 더 많은 양질의 사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종착지는 결국 달라지게 돼 있다.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균등하지 못한 릴레이를 펼친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성에 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성적이 곧 실력은 아니다. 또 성적향상이 교육의 다가 아니다. 또한 모든 아이들이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도 없다. 진정한 교육은 성적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알며, 각기 다른 다양한 실력과 소질을 키워 나름의 꿈을 키우고, 또 펼치면서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진짜 중요한 건 다 생략하고 모든 아이들이 성적향상만을 향해 질주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성적 향상과 원하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되는 분위기다. 언젠가 모 학원에서 어느 특목고의 입시문제를 아이들에게 학원차 안에서 나눠주는 사건이 있었다. 뒤늦게 합격이 취소되고 학원도 문을 닫는 듯 했으나, 결국 학부모들의 소송으로 학생들은 다시 합격 조치되고 학원도 슬그머니 다시 문을 열었으며, 지금 성업 중이다. 학교는 또 어떤가. 특목고준비를 하는 중3학생들의 경우, 학년말엔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다. 학부모들의 강력한 요구에 많은 학교들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교실 밖 어딘가에서 입시준비를 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성적이 모든 가치보다 위에 자리하면서 진정 중요한 가치가 묵살되는 현실, 각종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면서 교육이 교육을 배반하게 하는 이 현실이 또한 교육공공성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교사는 검사의 말처럼 ‘국민전체의 봉사자’이지,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특정 계층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전체, 더욱이 약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3월 10일 오후 1심
선고공판에서 교육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은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10년 전 복직에 즈음해 김귀식 선생님께서 건네주신 ‘교사는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라는 책의 제목이 생각난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가슴 속에 새겨두고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진실을 가르치려면 우리 교사들은 어떤 권력기관이나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양식과 교육관을 지니고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한다.  

 교사는 죽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소매상이 아니다. 그런 건 다른 곳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교사는 ‘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의 메시지를 찾아 내가며 아이들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지나간 역사의 편린들을 단순히 암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지난 역사의 공과 과를 꼼꼼히 분석하고 앞으로는 어떤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반성하고 토론하는 사람인 것이다. 교사들의 이런 교육활동이 가능할 때에 진정 우리의 교육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정권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 고소, 고발로 난도질당한 교단엔 어느새 울분과 투쟁의 기류 대신 무기력과 자조 섞인 침묵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내쳐진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그래도 교단에 남아 버텨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자위 사이에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표정을 잃어가는 교사들. 보았으되 보지 않은 듯, 들었으되 듣지 않은 듯, 할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라도 꾹 참으면서 쏟아지는 업무에 함몰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너무 우울하다. 학원에서 새벽까지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아이들, 성적을 비관하여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을 보아도 교육자로서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펼 수 없는 우리들이 진정 교육의 주체라 할 수 있는가. 

 힘들었던 해직기간을 마치고 복직하게 되었을 때의 그 벅찬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이제 더 이상 교단이 행복하지 않다. 지난해 동료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다’며 사직서를 던지고 표표히 교단을 떠난 후배가 생각난다. 아마도 내가 지금에야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이 질식할 듯 한 분위기를 그는 조금 일찍 감지하고 떠났지 싶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데 건강한 교육효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공교육이 바로 설 수 있을까. 

 교육당국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가경쟁력’ 진정한 실력과 경쟁력은 이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폭압과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열려있는 사고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개성과 소질을 지닌 아이들을 조화시켜 내는 교육적 시스템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이미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교육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들의 생각에 반하는 다른 어떤 주장이나 견해도 용납하지 않고 마치 점령군인양 국민들을 폭력으로 통치하려는 정부, ‘잃어버린 10년’을 부르짖으며 지난 정부의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는 패륜적인 정부, 그나마 살아 있던 원칙과 상식마저 일시에 엎어버린 정부당국에 마지막으로 바란다. 

 당신들의 이런 행태가 지금까지 누려온 기득권을 눈곱만큼도 양보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아가 백성들이야 어찌됐든 이를 더욱 부풀려 자손만대 누리려는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다만 무식과 어리석음의 소치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나라의 앞날이 조금이라도 걱정된다면, 그리고 ‘국가경쟁력’이 제고되길 바라는 게 진정이라면 ‘전교조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그야말로 선정적이고 원한에 사무친 듯 한 구호들은 이제 그만 집어치우고 교육현장의 목소리에 제발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이유정/ 변호사, 인하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국군보안사령부(약칭 보안사)라는 곳이 있었다. 1980년대에 안기부와 함께 공안 사건에서 악명이 드높던 기관이다. 원래 보안사는 군사에 관한 정보수집과 군인들에 대한 수사를 목적으로 창설된 국방부 내의 정보수사기관이지만, 한때는 공공연히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도 했었다. 국정원 진실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보안사라는 기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불법을 저질렀는지 잘 나타나 있다.

 수사권한도 없는 기관에서 민간인들을 불법으로 연행해서 수 십 일간 구금하고(불법체포. 감금죄), 잠을 안 재우고, 거꾸로 달아매고, 각목으로 기절할 정도로 구타하는 등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다 해서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내고(특가법상의 독직폭행죄),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으니 안기부 수사관들의 명의를 도용해서 수사서류를 만들기도 했다(공문서 위조죄).

 보안사에서 이렇게 불법을 저지르는 동안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찰은 수사권도 없는 보안사의 민간인 수사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기 전에 보안대 수사관들에게 “이 정도면 기소할 요건이 성립되었다”고 법률검토까지 해 주었다. 보안사가 수사권한도 없이 민간인들에 대한 간첩수사를 하는 점에 대해서는 “보안대가 민간인에 대한 수사 권한이 없는지도 잘 몰랐다”고 변명하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지만 절대 꾸며낸 말이 아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렇게 민간인들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권한을 행사하던 보안사는 1990년대까지도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무관하게 야당정치인 등 민간인을 사찰하다가, 윤석양이라는 청년의 양심선언에 의해 그 전모가 밝혀지자 다시는 민간인에 대한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약칭 기무사)로 바꾸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엄윤섭씨(가운데)가 지난 17일 오후 국회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자신의 일상 생활을 몰래 찍은 동영상(오른쪽)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최근 기무사가 다시 민간인 사찰을 재개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민주노동당의 당직자와 가족까지 미행하고 촬영을 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수구세력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외치더니 드디어 20년 전으로 돌아갔구나 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후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틀이 정착되었으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가기관이 버젓이 법을 어기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불과 1년 만에 이 정부는 온갖 불법이 난무하던 2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려버렸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수구언론이나 청와대, 여당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뻔 한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들을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냄비근성의 국민들이니 금세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문제는 절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중대한 사건이다. 87년 국민들의 힘으로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이후에 나름대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오던 군이 다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간인 사찰에서 시작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간인을 수사하고, 불법 체포하고 고문하는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도 “건국 이후 전 공안기관 검거 간첩의 43%를 검거”한 사실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그 사건들 중에는 보안사의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참을 수 없는 공안본능을 조기에 잠재우지 못한다면,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 속도로 보아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순식간일 것 같다.

 누군가 나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미행하고, 나의 사생활이 낱낱이 군 수사기관에 보고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창살이 없다 뿐 그것이 감옥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보안사의 민간인에 대한 고문 수사 이야기를 먼 옛날이야기처럼 할 수 있었던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인권연대 인턴 / 이영주

  인권연대 제3기 대학생 인권캠프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한국 사회 노동문제'를 주제로 하는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입소문을 통해 너무도 기대하고 있던 강의였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듣고, 궁금했던 점도 질문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노동하는 인간, 인간적인 노동…….

  하종강 선생님께서는 “노동자라는 단어 말고도 같은 뜻의 근로자라는 단어가 있는데 왜 굳이 노동자라는 단어를 선택해서 쓰느냐”는 질문을 받으셨고, “노동자와 근로자는 국어사전만 찾아봐도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는 답변을 하셨다고 했다. 강의록을 정리하면서 문득 그 기억이 나 검색을 해보았지만 큰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 노동자 (勞動者) [명사]
1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법 형식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으며,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가지는 일 없이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다. ≒노공(勞工).
  : 노동자들은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 그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다.
2 육체노동을 하여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
  : 일용 노동자
  : 계속적인 비에 공사판의 노동자들은 며칠째 일을 못하고 있다.
  :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나오는     것이 구십구 퍼센트다.≪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 근로자 勤勞者 [명사]  발음〔글ː--〕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사람.
  : 경기가 점차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근로자의 임금 인상 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 이번 협상은 회사 측이 근로자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기로 함에 따라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노동력으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유지하는 것'과 '근로에 의한 소득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고민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의외로 빠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근로자가 노동자보다 더 큰 개념이다, 노동은 육체노동이고 근로는 육체노동에 정신노동도 포함하는 것이다, 노동 개념에 시간을 더하면 근로가 된다, 노동에 대한 반사적 거부감 때문에 근로라는 말을 만들어내지 않았겠느냐 등 다양한 대답들을 들었다. 아르바이트 할 때나 들여다보았던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도 찾아보고 옥편이나 포털 백과사전을 찾아보기도 하였지만 크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전국환경미화원연합(http://cafe.naver.com/kjsch)> 카페의 게시판에서 “근로자의날 폐지하고 노동절로 바꿔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읽게 되었다. 과거에는 노동절이었지만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날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나보다 먼저,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근로부가 아닌 노동부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조합이라고는 하지만 근로조합이라는 말은 쓰지 않고, 노사협의라는 말은 쓰지만 근사합의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 글에 의하면 근로자란 부지런할 근(勤)에 일할 노(勞)를 써,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즉 사용자와의 상하관계를 염두에 두어 부지런히 일하느라 고생했으니 하루 쉬어라 하는 정부와 재벌들의 선심성 의도가 담긴 단어라고 했다. 반면에 노동자라 함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사용자에게 대등하게 계약을 체결하여 생산의 주체로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임을 담고 있다고 했다. 결론은 '주는 대로 놀 것이냐, 당당하게 권리를 찾을 것이냐'에 대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꿔나가는 작은 실천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긴 글이었다. 절차나 결론이야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하고 싸워나가고 있는데 나는 이토록 기본적인 단어의 뜻조차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으니 정말 한심하고도 부끄러웠다. 이렇게 하루하루 모르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채워나가는 미래의 완성된 나를 상상하면서 다이어리 한켠에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에 대해 간략히 적어 놓았다.

 제71차 수요대화모임은 최문순 의원(민주당)을 모시고 진행합니다. MBC 기자 출신으로 언론노조 위원장, MBC 사장 등을 역임한 최문순 의원은 시민과 함께하는 의정활동,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는 힘겨운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의정활동으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정치인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분입니다.

 최문순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왜 그토록 언론장악에 골몰하는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생각대로 언론지형이 개편되면, 국민 입장에서의 득과 실은 무엇인지에 대해 차분히 짚어줄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언론의 자유는 집회와 시위의 권리와 함께 기본중의 기본이 되는 인권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 기본적 인권이 유린되고 위축되는 상황에 대한 진단, 그리고 미디어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언론을 장악하려는 정권의 음모에 대해 파헤치면서, 시민과 함께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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