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고통받는 민중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라!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한 변화와 실천을 제시하는 『후퇴하는 민주주의』. 이 책은 손석춘, 김규항, 박노자, 손낙구, 김상봉, 김송이 씨의 강연과 하종강, 서경식 교수의 대담까지 총 8명이 아우르는 강연과 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위협하고 있는 신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과 이를 개혁하기 위한 진보주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본문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로 인해 우파에 의해 잃어버린 50년, 신자유주의를 지향한 지난 10년의 세월이 만들어 온 부동산 투기, 학벌주의 등 사회 양극화, 끌어안지 못한 재일 조선인 문제, 한 나라 안에 공존하는 이질적인 두 개의 사회 집단을 객관적 눈길로 분석한 손석춘, 박노자 등의 강연을 통해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되짚어 보고 있다. 

또한 하종강 노동문제 연구소장과 서경식 교수의 대담은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민중들이 지녀야 할 의식과 노동 운동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과 일본의 노동 현실을 비교하여 보고, 노동 운동의 다양한 변화와 결합을 살펴본다.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났던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다.


저자소개
손석춘 
<한겨레> 논설위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창립 공동 대표를 지냈다. 사단법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며 언론학 박사로서 연세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김규항 
<아웃사이더> 편집 주간을 지냈다. 2003년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키워지는 한국 아이들을 응원하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그랬어>를 만들어 발행인을 맡고 있다. 

박노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동방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손낙구 
1980년대 중반 대학을 떠나 2000년대 초반까지 금속 분야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1995년부터 5년간은 민주노총 대변인을 맡기도 했고, 진보 정당에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김상봉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마인츠 대학에서 철학, 서양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하고 칸트에 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송이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다. 조선고등학교에서 96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현재는 통역과 번역을 하면서 도오시샤 대학을 비롯한 일본 학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다. 

하종강 
한겨레신문 객원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및 인천대 강사,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등을 맡고 있다. 

서경식 
일본 교토에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1974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 프랑스 문학과를 졸업한 뒤, 지금은 도쿄게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있다. 

표지 그림 
송현숙 
1981년 함부르크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뒤, 함부르크에 살면서 ‘아무것도 없는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거두듯’ 지금껏 꾸준히 그림을 그려왔다. Korean diaspora로서 ‘아련한 기억을 기호화한’ 그림들로 독특한 미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목차
여는 글 고정관념 걷어차기 이명옥 

손석춘_혁명은 다가오는가? 
잃어버린 10년/ 대한민국의 자살은 생계 비관형/ 막연하게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을 이야기하는 진보 세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웨덴, 베네수엘라/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한국 정치사를 본다면 주권 혁명 가능하다 

김규항_진보란 무엇인가? 
국익은 존재하지 않는다/ 50년간 존재한 우파 정치/ 어른들은 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았나/ 군사 파시즘보다 자본의 내면화가 더 무섭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 행복한 건가? 

박노자_대한민국 주식회사 
한 나라 안에 공존하는 두개의 사회/ 대한민국은 과두제다/ 한국 자본주의의 IMF 극복 비결 =노동자의 사회적 시민권의 박탈/ 재벌의 대사회 장악력 강화/ 노동자를 아무리 수탈해도 피할 수 없는 자본의 위기/ 미친 소보다 더 무서운 미친 고용 

손낙구_집이 많은 놈, 집은 있는 놈, 집도 없는 놈 
"집이 많은 놈"은 도대체 집을 몇 채 가지고 있을까?/ 40퍼센트 국민은 땅 한 뼘도 못 갖고 있어요/ 부동산 소유 통계 같은 건 거의 국가 기밀/ 집값이 떨어지면 다 불행해지는 걸까?/ 부동산 비만증/ 전 국민이 한 채씩 갖고도 103만 채가 남아돈다/ 부동산 합병증 / 네덜란드는 전체 주택의 3분의 1이 국가 소유의 공공 임대 주택/ 공공의 이익, 공동의 이익, 공동선, 땅은 이런 원리로 운영해야 

김상봉_학벌 사회를 무너뜨리자 
한국 사회의 차별 기제, 학벌/ 학벌은 현대판 문중/ 아이들을 학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인 교육/ 사교육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대학 평준화와 지역 할당제/ 용기 있는 낙오 

김송이_재일 조선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우리한테 힘을 주세요/ 일본의 우익화/ 총련, 민단, 무소속/ 재일 조선인으로의 삶/ 우리끼리 미워하지 말자 

하종강.서경식 대담_한국 노동 운동의 현주소를 묻는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 현실/ 파행적인 역사, 특별한 노동 문제/ 분단 상황과 노동 운동/ 운동의 변질인가, 개인의 변질인가?/ 노동 운동과 환경.생태 운동의 결합은?/ 한국의 노동 운동, 희망은 있는가?/ 민족주의와 계급주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서평
“손석춘, 김규항, 박노자, 손낙구, 김상봉, 김송이, 하종강, 서경식이 입으로 푼 진짜 민주주의 이야기” 

서울 광장에 50만이 모여도 왜 민주주의는 후퇴하는가? 


이 책은 이런 물음에서 기획되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지금,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책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진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대안을 담고 있다. 

책에서 손석춘은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눈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 볼 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날 거라고 이야기한다. 
“대선과 총선 직후 절망의 담론과 촛불집회 이후 민중에 대한 과신 사이에 일관된 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좀 될 것 같으면 과도하게 신뢰를 하고, 뭔가 좀 안 될 것 같으면 과도하게 절망하는 것은 민중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자세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 손석춘 

김규항은 우리가 개혁을 외치던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작은 이명박, 작은 이건희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군사 파시즘은 폭력과 억압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화는 우리한테 욕망을 심어 주어서 우리가 그 욕망을 좇게 만들고 우리의 정신과 가치관과 영혼을 송두리째 변질시킴으로써 지배하는 것이죠.”- 김규항 




책소개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국내에서 많은 사건과 사고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조사를 의뢰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위는 곧 '인권'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이 그만큼 진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복무 사병의 건강권 문제나 성매매업소 여성의 인권유린 사건, 그리고 교도소내 제소자 인권문제, 불법 해외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제 우리 사회는 '인권'에 대해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신생학문이라고 평가할 만한 '인권학' 분야의 탁월한 저서로 평가받은 저자 미셸린 이샤이의 역저로 '인권' 개념이 기원, 전개과정,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그 의미가 더욱 증폭하게 된 역사적 과정을 치밀한 자료조사와 정치한 논리로 밝혀내고 있다. 2004년 여름, 미국에서 출간되자 마자 순수 학술 도서로는 이례적으로 그해의 전미 논픽션 10대 도서의 하나로 선정될 만큰 대중적인 인기도 누린 이 책은 우리에게 '인권'에 대한 생각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사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저자소개
미셰린 이샤이 (Micheline Ishay) 미국에서 학제간 인권연구로 명성이 높은 덴버대학교 국제대학원 인권학 프로그램의 주임교수이다. [인권 독본], [국제주의와 그 배신], [민족주의 독본]등의 편저서가 있다. 현재 [제국시대의 인권 - 신현실주의의 모색]을 집필하고 있다. 미국 러트거스대학교에서 정치이론과 정치사상 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터파크 제공]


목차
옮긴이 서문 
한국어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 
일러두기 
번역에 참고한 사전류 

서론 
1. 인권의 정의, 논증, 그리고 6대 역사적 쟁점 
1)인권의 기원 2)인권의 계몽주의적 유산 3)인권에 대한 사회주의적 공헌 4)문화 상대주의 대 보편주의 
5)안보와 인권 사이의 긴장 6)지구화가 인권을 촉진하는가 
2. 이 책의 구성 

제1장 - 
초기의 윤리적 토대 
1. 종교적.세속적 보편주의 관념 
1)유대교와 바빌로니아 2)힌두교 3)불교 4)유교 5)그리스와 로마 6)그리스도교 7)이슬람교 
2. 자유: 관용의 기원 
1)유대교와 바빌로니아 2)힌두교 3)불교 4)유교 5)그리스와 로마 6)그리스도교 7)이슬람교 
3. 평등: 초기의 경제.사회적 정의개념 
1)유대교와 바빌로니아 2)힌두교 3)불교 4)유교 5)그리스 6)그리스도교 7)이슬람교 
4. 정의를 어떻게 장려할 것인가 
1)유대교 2)힌두교 3)불교 4)유교 5)그리스와 로마 6)그리스도교 7)이슬람교 
5. 박애, 또는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1)유대교와 바빌로니아 2)힌두교 3)불교 4)유교 5)그리스 6)그리스도교 7)이슬람교 
8)고대 윤리 전통의 평가 9)서구 윤리 전통의 승리? 

제2장 - 
계몽주의 시대와 인권 
1. 고대 문명에서 서구의 흥기로 
1) 인도 문명, 중국 문명, 이슬람 문명 2)서구의 흥기와 계몽주의의 유산 
2. 종교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 
1)종교와 불관용 2)종교개혁과 종교의 자유 3)의사표현의 자유: 영국의 경우 
4)자유를 향한 투쟁: 아메리카의 경험 5)프랑스 혁명과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3. 생명권 
1)홉스의 생명권과 「영국권리장전」 2)고문과 신체보전의 권리 3)프랑스 혁명의 재산권 논쟁 
4. 사유재산권 
1)재산권의 해석: 수평파, 디거스, 로크 2)아메리카 독립혁명과 재산권의 확립 3)프랑스 혁명의 재산권 논쟁 
5. 국가의 정당한 전쟁 이론 
1)자연법과 '정당한 전쟁'논쟁 2)자본주의와 공화주의를 통한 평화? 
6.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1)'보쳔적'인권과 불평등 2)배신당한 여성해방 3)노예폐지를 위한 투쟁 
4)유대인과 소수민족: 프랑스 혁명의 공헌 5)혁명의 반전과 민족주의의 대두 

제3장 - 
산업혁명 시대와 인권 
1. 산업혁명의시대 
1)빈 회의로부터 1830년대의 혁명 그리고 1848년의 혁명으로 
2)1848년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3)미국 남북전쟁과 노예해방운동 
2. 자유주의 인권관에 대한 도전 
1)종교와 새로운 민족주의 2)낭만적 사회주의 3)사회주의적 인권관의 발전 4)사회주의적 인권과 보편적 인권 
3. 보통선거권 및 경제적.사회적 권리 
1)노동계급의 참정권 투쟁 2)재산권과 보통선거권: 프랑스의 경우 
3)영국의 선거법 개정 4)미국의 참정권 운동과 그 한계 5)교육과 사회적 권리 
4. 자본주의와 국가에 대한 도전 
1)국가냐 국제기구냐? 정치개혁이냐 혁명이냐? 2)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식민주의, 국제 전쟁, 또는 비폭?? 평화주의? 
3)영국의 선거법 개정 4)미국의 참정권운동과 그 한계 5)교육과 사회적 권리 
5.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1)노예해방투쟁 2)여성참정권운동 3)어린이,청소년의 권리운동 4)유대인과 소수민족: 프랑스 혁명의 공헌 
5)유대인 문제와 시온주의 6)자유주의적 민족주의와 전쟁의 길 

제4장 - 
세계대전과 인권 
1. 제국의 종말 
1)민족주의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보장의 제도화 
2)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권의 제도화 
2. 민족자결권 
1)제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 2)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3)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반식민투쟁 
3. 인권의 제도화 
1)사회주의적 권리의 신장: 볼셰비키 혁명 시기의 수단과 목표 2)국제연맹, 국제노동기구, 복지국가의 출현 
3)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세계인권선언 4)냉정: 사회적,경제적 권리 대 시민적 권리 
4.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1)노동자의 권리요구와 민족자결권 2)여성권리의 제도화 3)어린이, 청소년 권리의 제도화 
4)동성애자 권리의 가시화 5)유대인의 운명과 민족자결권 6)국제주의와 민족주의 

제5장 - 
지구화와 인권 
1. 지구화와 저항운동 
1)1968년부터 1989년까지: 신사회운동과 냉전의 퇴조 2)1989년의 여파와 그 영향력 
2. 지구화 시대의 인권개념 
1)경제 지구화 그리고 노동권, 발전관의 문제 2)전지구적 환경과 환경권 
3)전지구적 이주와 시민의 권리 문제 4)문화 지구화의 문화적 권리 
3. 9.11사태 이후: 안보 대 인권 
1)전시의 시민적 권리와 여타 인권문제 2)인권과 안보의 유산 
4. 누구를 위한 인권인가 
1)변화하는 경제환경과 노동자의 권리 2)근절되지 않은 노예제도 3)여성차별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 
4)전쟁과 여성 5)지구화, 분쟁, 어린이, 청소년의 권리 6)신보수주?湛? 공세와 동성애 권리 
7)장애인 권리를 위한 전세계적 투쟁 8)소수민족 문제의 악화와 원주민 권리의 인식 

제6장 - 
21세기의 인권과 투쟁 공간의 변화 
1. 중세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부재 
2. 계몽주의 시대 시민사회의 출현 
3. 산업혁명 시대와 시민사회의 확장 
4. 반식민주의 투쟁 
5. 시민사회의 지구화? 또는 사적 공간에 대한 공세? 
1)지구화와 국가 2)지구화와 시민사회 3)지구화와 사적 영역 

제7장 - 
인권 세계관의 통합 
1. 지구화의 쟁점 
2. 인도적 개입의 쟁점 
3. 국민(국가)형성의 쟁점 
4. 글을 맺으면서 

부록 1. 세계인권 연대기 
부록 2. 한국인권 연대기 
부록 3. 국제인권 용어모음 
부록 4. 의미로 옮긴 「세계인권선언」 

원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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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자 사회의 낭만이 사라졌어.”


 초년 시절인 1998년 무렵, 인사동 한 술집에서 선배 기자가 말했다. 그가 다니는 신문사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웠다. 술파는 것과 아무 관련 없는 주류 신문, 뭘 고쳐 바로 잡는 것과는 더구나 관계없는 보수 신문, 하물며 정중동의 미덕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서 툭하면 노골적으로 고함치는 조중동 등이 그의 머리 위에 붙어 다니는 꼬리표였다. 그것은 때로 높은 사람들을 굽실거리게 하는 후광이었고, 때로 낮은 사람들로부터 밉살받는 낙인이었다. 그날 저녁, 그는 낙인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중이었다. 언론사가 서로 싸우는 일의 피곤함에 대해 동의를 구하는 중이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했다. 소속사 상관없이 기자들끼리 뭉쳤다 했다. 그가 기억하는 낭만이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부처 출입 기자들이 일제히 ‘당꼬’(담합)한다. “오늘은 조용하네요. 기사꺼리 없습니다. 청장 간담회가 있는데, 특별한 일 있으면 다시 보고하죠.” 소속사 상관없이 모든 기자들의 아침 보고 내용이 똑같다. 오전 11시, 청장이 기자실로 내려온다. 특별한 내용이 있을리 없다. 브리핑하라고 부른 자리가 아닌 것을 청장도 알고 기자도 알고, 심지어 신문사 데스크들도 짐작하고 있다. 청장은 휘하 국장 몇몇을 데리고 기자들과 함께 북한산 계곡에 개고기 먹으러 간다.


 폭탄주 몇 잔 돌았고, 계곡에 발도 담갔고, 아랫도리 뜨끈해지는 고기도 먹었으니, 이제 화투장을 펼친다. 어쩐 일인지 국장들이 자꾸 돈을 잃는다. 앞에서 자꾸 쌍피를 푼다. 훗날 개평을 줄 지언정 노름판에서 딴 돈, 사양하는 법 없다. 오늘 처음 고와 스톱의 차이를 익힌 기자들조차 어쩜 자꾸만 돈을 딴다. 그러다 언쟁도 한다. 판돈과는 아무 상관없는 주제다.


 “김 기자님, 평소에 좋게 봤는데, 지난번 그 기사는 너무 하셨어요.” “아니 박 국장, 김 기자 기사가 뭐 어때서. 내 비록 김 기자한테 물먹고 우리 회사에 가선 열나게 쪼였지만, 기자라면 당연히 그 정도 지르는 맛이 있어야지.” “에이, 이 기자, 기분 좋은 날, 왜 목소리 높이고 그래. 자자, 술이나 마시자.” “아니지,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말이야. 밥 좀 얻어먹는다고 이런 수모를 왜 당해야 하나 말이야.”


 이 순간, 기자는 하나다. 서로 배려하고 추켜세우고 존중한다. 왜? 우리는 무슨 신문 기자, 무슨 방송 기자가 아니라, 그냥 기자니까. 우리는 기자라니까. 저들은 공무원이고…. 소속 매체의 꼬리표가 사라지고, 오직 기자 개인의 자격으로 서로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 판돈까지 따오는 이런 종류의 ‘낭만’이 가능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나, 배신자가 나오면 안 된다. 아침 보고 때 딴 소리 하는 기자가 있으면 안 된다. 개고기 먹을 때 삼계탕 먹겠다고 샛길로 빠지는 기자가 있으면 안 된다. 둘. 공무원 가운데 내부 제보자가 나오면 안 된다. 기자들이 술 먹고 놀았다고 다른 언론사에 알리는 간 큰 공무원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간이 크려면 스스로 청렴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이가 드물었다. 셋, 북한산을 등반하다 그 낭만의 자리를 목격하고 휴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시민들이 나오면 안 된다. 물론 예전에는 그러고 싶어도 휴대폰이 없어 곤란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낭만이 사라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소수의 사이비 기자들을 제외하면 이렇게 흐물텅하게 먹고 노는 술자리는 사라졌다. 기자들도 많이 나아졌고, 공무원들도 예전과는 다르다. 그런데, 기자 사회의 낭만이 사라진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다. 1998년, 인사동에서 들었던 선배 기자의 토로에는 다른 맥락이 있었다. 그는 전혀 다른 세상이 오고 있음을 비감하고 있었다. ‘함께 있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았던’ 친구들이 곁을 떠나고, 거리의 광풍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낭만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시장경쟁이었다.


 시장경쟁은 음습한 담합의 낭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자 개인의 영토를 뺏고, 그 땅에 뿌려진 연대의 씨앗을 고사시켰다. 나쁜 일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언론계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망하는 신문사가 곧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를 제쳐야 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중앙일보 기자가, 한겨레 기자와 경향신문 기자가, 술자리에서 상사의 흉을 보고 소속사의 구태를 토로하며 어깨동무하는 일이 사라졌다. 조직이 사활을 건 경쟁을 하면, 구성원 개인의 입지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 기사 내보내면 신문사가 망해. 이 신문사 망하면 너는 어디 가서 기자질 할 거야?” 자본의 얼굴을 한 데스크의 압박 앞에서 ‘기자’는 무너지고 ‘월급쟁이’가 자랐다.


 회사가 주는 월급 받아 사는 게 무슨 죄악이겠는가.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겠다는 데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 그러나 그런 월급쟁이 언론인이 많아질수록 시민들은 불행해진다. 언론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 집단이다. 언론은 시민사회를 ‘대의’한다. 권력자들에겐 권력이 있고 부자들에겐 돈이 있으니, 힘없는 서민들에게 ‘말’을 돌려주어 권력과 돈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 누구도 그들을 선출하진 않았다. 그들에게 그런 권능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청했다. 언론의 정당성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완성된다. 시민이 직접 제어할 통로가 마땅치 않다. 따라서, 시민의 정의를 대변하지 않고 권력과 돈 가진 자들을 대변하는 언론이 많아지면, 결국엔 나라가 망한다.


 ‘공익적 개입’이 거의 유일한 통로다. 투표로 언론 권력을 선출할 방도는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언론의 토양 자체가 사라진다. 그래서 공익 기금, 공적 부조 등의 형식을 빌어 정부는 언론을 도울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이 적절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말과 글을 시민들에게 전하도록 도울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가 그들의 공장이고 은행이고 시장이며 군사기지인 거대 제국이 어찌하여 공장은 사라지고 은행은 망하고 시장은 위축되는데 제국의 군사기지만 여전한 한국의 ‘모범’이 될 수 있는지를, 나는 미국 시민권을 따기 전에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대부분은 그래서 여러 기금을 만들어 작은 언론사를 배려하고 돕는다.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고, 농사꾼들이 정부 보조금을 받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야당 의원들과 시민들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역 앞에서 열린
‘언론악법 원천무효 국민선언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미디어법이 통과 됐던가? 그렇다는 이도 있고, 아니라는 이도 있다. 시민 전체가 기억의 혼란에 빠져드는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만의 하나, 미디어법이 직권상정과 대리투표와 날치기의 권능으로 의회를 통과했다고 치자. 그것은 언론 다양성이 아니라 시장 경쟁을 북돋는 법안이다. 다양한 채널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언론사는 몇몇 곳만 살아남을 것이다. ‘다양한 기자’는 확실히 사라질 것이다. 채널의 다양성과 언론의 다양성은 별 상관이 없다.


 시장 경쟁 자체가 ‘다원성’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것은 독점 또는 과점을 향하는 경로에 불과하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그토록 모범으로 떠받드는 미국이 그 미래다. 미국에는 수많은 방송 채널과 수많은 신문이 있다. 그런데 그 90%가 6대 거대 미디어 기업 소유다. 자본가, 금융 전문직, 행정관료, 연애·스포츠 스타 등에 관심이 많은 언론사들이다. 언론기업을 경영할 자유는 있겠지만,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가 온전히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이미 결론이 나온 상태다. 미국은 독점 미디어 기업의 나라다. 언론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거대 미디어 기업에 저항하는 언론사들이 제법 버텨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희망 섞인 관측이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인데, 그런 ‘저항’ 언론사조차 살아남기 위해 인력 구조조정, 상업 콘텐츠 강화, 거대 자본 유치 등의 노력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도·경영·기술·제작 등 언론의 모든 분야 종사자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의 여러 자회사들에서 단기계약, 파견근로 등의 형태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목숨은 파리의 그것보다 조금 더 무거울 것이다. 사주, 광고주, 주주, 데스크의 손가락질 하나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기자’라는 소명의식 따위, 그런 기자들을 엮는 연대의식 따위, 낭만에 밥 말아먹는 소싯적 이야기가 돼 버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생뚱맞고 얄궂게도 ‘낭만’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가 꿈꾸었던 기자에 대하여 생각한다. 기자는 격정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문학과 정치에 대한 동경이 이 꿈 뒤에 숨어 있다. 소설가, 정치가가 되려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자는 (문학의) 창작과 (정치의) 소통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 한다. 동시에 자유로운 실존을 지키려 한다. 조직의 억압과 구속을 최소화하면서 나만의 영토를 가꿔 두루 인정받으려는 꿈이다. 사주·광고주·주주·데스크 등에 휘둘리며 시키는 대로 쓰는 기자란, 애시당초 그런 꿈에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런 기자들이 많아지면, 언론 다양성이 지켜진다. 그런 기자들의 자리가 사라지면, 언론 다양성은 멸종할 것이다.


 지 금, <한겨레> <경향신문> <시사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MBC> 등은 치욕스런 통폐합의 미래 앞에 서 있다. 조중동은 국내 대기업, 초국적 미디어 기업 등을 끌어들여 방송사를 만들려 한다. 잘만 하면 다른 종편 채널이나 보도전문 채널 등을 통폐합할 것이다. 어차피 이 나라의 광고주는 3~5개 정도의 거대 미디어 기업을 후원할 만큼만 넉넉하다. 딱 그만큼만 살아남을 것이다. 광고 시장을 장악하면, 여윳돈으로 신문과 인터넷과 시사주간지 시장을 유린할 것이다. <한겨레> 등에서 일 해온, ‘실력은 있으나 너무 깐깐하지 않은’ 기자들을 높은 연봉으로 유혹할 것이며, 앙꼬를 다 내주고 겨우 버티는 매체가 있다 한들 쭉정이로 만들 것이다. 그런 매체들을 플랫폼 삼았던 독립 PD, 프리랜서 작가, 시민 기자, 저항 지식인 등은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영상과 글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며, 그러다 이메일 압수당하고 블로그 폐쇄당한 끝에 감옥에 갈 것이다.


 지금, 여기서, 즉각적인 반대가 필요하다.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언론인들의 투쟁은 그래서 두말 필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즉각적인 구제도 필요하다. 15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사는 기자들이 있다. 여유 인력이 없어 탐사보도는 꿈도 꾸지 못하는 기자들이 있다. 격무에 시달리다 마흔 줄에 심근경색이 와도 병원 치료비 구할 곳이 마땅치 않은 기자들이 있다. 각 언론사마다 ‘고립적으로’ 후원회원을 모으고 선의의 기부를 받아도 닥쳐올 언론사 통폐합에 속수무책인 기자들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소속 매체의 경계를 넘어 기자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서로를 추켜세우는 낭만이 필요하다. 그런 낭만이 가능하려면 뜻있는 언론인을 돕는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 따로 흩어져 각자 살 길을 도모하지 말고, 더 많은 기자, 더 좋은 기자를 시민사회가 품어 안을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선의의 기업과 시민의 돈을 모아 ‘참언론재단’을 만들자. 공부도 하고, 서로 노하우도 주고받고, 취재비도 지원하고, 어려우면 경제적 도움도 주자.


 6개월 탐사 취재 아이템에 2천만 원쯤 주자. 기사를 써서 인터넷 매체에 싣고, 신문에 연재하고, 책으로도 내고, 나중에 다큐로 만들어 극장에서도 상영하자. 기자 개인도 살고, 언론도 사는 길이다. 이런 일을 각 언론사는 도모할 수 없지만, 재단이라면 가능하다. 개별 언론사가 얼마 안 되는 인력으로 인터넷도 하고 방송도 하고 신문도 내면서 살아남으려 용쓰지 말고, 시민사회에 산재한 ‘광범위한 기자’들을 끌어안고 활용하자. 자유로운 영혼의 기자들이 더 많은 시민을 더 오래 만나 더 좋은 기사를 쓰도록 돕자. 그리고 그들이 매체 장벽을 넘어 두루 기여할 수 있도록 돕자. 어쩌면 좋은 언론사의 체질을 강화하는 선의의 매체 합병이 참언론재단과 같은 공익·시민적 조직에 의해 이뤄질 수도 있다.

 

 거대 자본으로 규모를 키우는 앞에서 고립된 뉴스룸 운영으로 살아남길 꿈꾸는 것 자체가 망상이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말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사를 시민에게 개방하자. 고립적인 채용, 고립적인 임금 테이블, 고립적인 뉴스 플랫폼을 헐어 버리자. 뜻이 있고 능력이 있는 ‘자유 기자’들에게 물적 토대를 제공하자. 그 시민들이 곧 뜻있는 언론사의 노동과 자본과 시장이 되게 하자.


 거대 미디어 기업들이야 계속 기업가·특목고 졸업자·미국 유학생·연예스타 따위의 기사를 쓰라고 내버려 두고, ‘우리’는 노동자·실업고 졸업자·국내 박사·대학로 연극인 등에게 관심을 쏟자. 물론 그 가운데는 새로운 시선으로 기업가·특목고·연예스타의 가치를 발견하는 ‘진짜 보수’ 성향의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무슨 상관인가. 그런 이들까지 두루 품어 안는 것까지가 진정한 언론의 다양성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도록 시민사회의 돈을 모으자. 신문사 하나, 방송사 하나 세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시민의 언론 전체를 살찌우는데 쓰자. 그러고도 누가 살아남는지 진짜 한번 겨뤄 보자. 그러지 않고서야, 기자 사회의 낭만은 정말이지 사라질 것이다. 멸종할 것이다. 지금 죽음 앞에 서 있는 것은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인이며 시민의 자유다.



  춘천-서울 민자 고속도로가 뚫리고 난 뒤 기대와 절망이 교차되고 있는 때에 그 녀석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사업수완이 뛰어났던 그는 그동안 나이트클럽, 골프연습장, 결혼식장, 바다이야기 게임장등을 운영하면서 돈을 꽤 모았고, 그래서 제법 숱한 아우들을 거느리며 동네에서 행세하는 유지가 되어있다.


   “나, 요즘 골프장 때문에 먹고 살잖아 !”


 나는 그가 경춘가도 어디쯤에다 18홀 짜리 골프장을 열었다는 이야기로 듣고 겉으로는 반색하면서도 속으로는 ‘어휴!, 또 나랑은 엉뚱한 길로 가는 구나’며 투덜대고 있는데, 그 녀석은 엉뚱하게 “야, 00리 골프장 반대 주민들, 우리가 풀고 길 열어 줬어”면서 한방 먹이며 내 생각의 꼬리를 자르고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식당에는 그의 아우들이 어깨에 힘 잔뜩 주고 꾸역꾸역 콩국수를 들이키고 있었다. 그는 영화 ‘똥파리’의 상운처럼 속으로는 여린 가슴을 지닌 양아치라기보다 세상 물정에 밝고 그래서 동네 역관계도 적절히 탈 줄 아는 ‘합리적’인 초기 자본가에 가깝다. 그런 그도 춘천에서는 제법 주먹깨나 휘두르고 행세한다지만 한낱 외지자본의 길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춘천 - 서울 고속도로가 열리면 누구에게 좋지?”라는 내 궁금증을 민자 고속도로를 따라 밀려들어 오는 돈방석에 올라타고 있는 중학교 동창 놈이 풀어 준 셈 이다. 하긴 앞으로 민자 고속도로 주변 춘천시 지역에만 골프장이 16개가 들어설 계획이라고 하니 이제 춘천시민 누구나 멋진 그린에서 골프를 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늘 대학시절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인 강촌이 꽤 오래전부터 강변마다 들어선 펜션으로 흉측해졌지만 민자 고속도로 개통으로 땅 값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고 기업형 대규모 펜션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지역신문이 장황한 기대감을 늘어놓는다.


 
서울-춘천간 민자고속도로 개통식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 리고 아예 “춘천 서울 고속도 개통... 부동산 시장 들썩”이라는 제목을 1면에 달고, 춘천 땅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값이 올라가려면 어찌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친절한 조언까지 부쳐놓았다. 민자 고속도로 개통 덕에 바야흐로 춘천 시민들이 개발 시기 강남부자들처럼 거액을 횡재 할 날이 눈앞에 다가온 모양이다. 또 골프장, 리조트에 널린 일자리 탓에 지역경제가 쾅쾅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그것뿐인가?


 분히 수도권과 불과 38분 거리일 뿐인 춘천에 매력을 느낀 각종 기업들이 쇄도 할 것이므로 춘천시민들의 숙원인 인구 50만 돌파도 현실이 될 것이다. 수도권의 이웃인 춘천시민들은 ‘용역’으로 취직하고, 부동산 수수료 챙기며 골프장, 리조트에서 ‘고객님’의 만족을 위해 서비스하면서 대한민국 최첨단 자본주의가 주는 안락함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동해안 가는 가장 빠른 길 ‘서울 춘천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이제 ‘개나리 꽃피는 마을’ 춘천은 수도권의 ‘이웃’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하여 자유롭게 말하고듣고보고 싶은 시민들을 위한 길거리 강연을 대한문 앞 분향소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49제까지 매일 오후 730분부터 8 30분까지 1시간 동안 진행합니다그 강연으로 경찰의 공권력 남용무엇이 문제인가가  진행되었습니다.


※ 강사 소개 –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인권운동가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활동을 거듭하고 있다수사부터 재판 집행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인권현안에대해서도 실천활동을 하고 있다성공회대 겸임교수저서로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대를 역행하는 이명박정부에서 시민으로 살며 좌절하지 않고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함께 이야기해 봅니다..

※ 강사 소개 – 임종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활동을하였으며 17 국회의원으로 열심히 의정활동을 전개하여2007 의정행정대상 국회의원부분(시민일보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방송상이 무엇인지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등에 대해서 현장 언론인 시간으로 알아봅니다.

※ 강사 소개 – 이강택

 PD 활동하면서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로 많은 시사프로그램을만들어 왔습니다현재는 KBS PD 재직중이며 <PD 말하는PD>라는 저서를 공동집필하기도 하였습니다.


인권연대 회원모임 8탄 -"한겨레 영화 담당 이재성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 여행"

 한겨레 영화 담당 이재성 기자와 함께 하는 영화 모임이 8월 행사를 엽니다. 8월에는 타비아니 형제<로렌조의 밤(the NIGHT of SHOOTING STARS)>을 함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잔인한 전쟁에 휘말린 평범한 마을주민들의 삶을 6살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봄으로써, 오히려 로맨틱하고 판타스틱하게 재구성하였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역설적으로 바라본 이번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일시 : 2009년 8월 3일(월) 저녁 7시
  • 장소 : 인권연대 교육장(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2분거리)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3672-9443)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the NIGHT of SHOOTING STARS

감독 : 파올로 타비아니, 비토리오 타비아니

주연 : 오메로 안토누티, 마가리타 로자노, 미콜 귀델리, 클라우디오 비가글리, 마시모 보네티

제작사 : 아거 시네마토그라피카

배급사 :
 (주) 백두대간
제작국가 : 이탈리아
제작년도 : 1982년
상영시간 : 107분
장르 :
 드라마, 전쟁, 판타지

SYNOPSYS

무서울 게 뭔지도 몰랐던 그 때
6살 소녀의 기억에 새겨진 아주 특별한 날들
 

 쏟아지는 별에 소원을 비는 로렌조의 밤. 체칠리아는 아이의 머리맡에 누워 1944년, 작은 마을 산 마르티노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릴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철모르는 여섯 살 꼬마 체칠리아의 눈에 비춰진 그 날의 일들이 생생한 기억으로 다시 살아난다.

 전쟁의 포화가 한풀 꺾인 8월의 어느 날, 독일군의 지배 아래 놓여 숨을 죽이며 살아가고 있던 마을사람들 사이에 곧 미군이 들어와 독일군을 몰아낼 거라는 소문이 퍼진다. 퇴각을 준비하는 독일군들은 마을을 통째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하며 폭파될 집집마다 녹색 십자가를 그려놓는다. 성당만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다짐을 받은 주교가 마을 사람들에게 성당으로 피신할 것을 권유하지만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지혜로운 농부 갈바노가 독일병사가 파르티잔에 의해 살해된 사건으로 독일군이 앙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마을을 떠나자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한 편은 마을에 남고 다른 한 편은 갈바노를 따라 길을 나선다. 엄마와 함께 갈바노를 따라나선 6살 꼬마숙녀 체칠리아는 한밤중에 까만 옷을 입고 하염없이 걷는 일이나 어른들과 함께하는 수박서리, 밀밭에서 벌어지는 파시스트와의 육박전까지 평소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모든 일이 흥미진진하기만 한데...

타비아니 형제의 시적인 리얼리즘, <로렌조의 밤>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 2006.04.27

EBS 4월29일(토) 밤 11시

1954년, 비토리오 & 파올로 타비아니 형제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독일군 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 <1944년 7월, 산 미니아토>를 만든다. 1982년, 동일한 사건을 바탕으로 장편영화 <로렌조의 밤>을 만든다. 그리고 오시마 나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로렌조의 밤>은 현실에 밀착해 있는 그들이 픽션에 대한 작은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스타일을 확장시키는 작품이었다. 이들은 판타지와 시적 감흥을 동시에 유지하는 어려운 작업을 해내고 있다. (중략) 스토리텔링에 대한 특별한 능력으로 그들은 시적 감수성을 지닌 리얼리즘 감독들 중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판타지와 리얼리즘, 그리고 시적 감수성의 결합이다. 서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재현 방식들이 역사와 만나 미학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성취를 이뤄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사랑으로 영화에 발을 들인 타비아니 형제는 점차 그 정신을 잃어가는 네오리얼리즘에서 나아가 이탈리안 뉴시네마의 정수를 선보이며 그러한 가능성에 다가간다.

<로렌조의 밤>은 형제의 영화세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차대전을 무대로, 이탈리아의 어느 마을에서 벌어졌던 독일군 학살이 그 당시 어린 소녀였던 여성의 회상 속에서 진행된다. 영화는 교회가 폭파되고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떠나고 싸우고 죽는 잔인한 현실을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눈을 통해 제시한다. 타비아니 형제는 살육의 잔혹함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신화적이고 시적인 상상력이 현실과 만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현실과 환상, 이미지와 사운드의 모순된 만남 속에서 비극적 현실과 동심, 살육과 로맨스 등의 이질적인 이야기들이 뒤섞인다. 밀밭의 전투장면이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행렬, 어두운 밤 빛의 형상으로 폭파되는 마을의 모습 등 각 장면의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회화의 이미지처럼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가장 절박한 분위기에서 흘러나오는 성가풍의 아름다운 음악 선율이나 죽은 듯이 고요한 침묵과 거대한 폭발음의 공존은 영상 이미지를 넘어서 한편의 시가 되는 소리의 힘을 들려준다.

네오리얼리즘이 사회적 물적 관계를 전면에 내세운 것과 달리 이들의 리얼리즘에는 앞서도 말했듯, 풍요로운 시적 상상력이 가득하다. 파시스트와 농민간의 대립이라는 전쟁의 참혹함 아래에서 사랑, 상실감, 슬픔 등의 개인의 감정들이 물결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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