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기 대학생 인권학교> 뜨거운 배움의 현장을 다녀오다!


김준호 / 인권연대 인턴활동가


 

(수료식을 마치고서) 

 숨 가쁘게 보낸 2박 3일이었다. 7월 15일부터 17일까지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진행된 제 3기 인권연대 대학생 인권학교엔 뜨거운 열정의 분위기가 내내 감돌았다. 지난 인권학교와는 달리 도심을 벗어나 푸른 논과 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캠프형식으로 진행된 세 번째 인권학교는 서로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대학생 인권학교는 ‘인권을 배우자, 그리고 행복해지자!’라는 제목 하에 총 6명의 강사와 35명의 학생, 그리고 7명의 사무국 인원이 모여 함께 호흡을 맞췄다. 길어 보이던 2박 3일은 총 여섯 편의 강의와 모둠활동, 둘째 날 저녁에 열린 연대의 밤 행사, 그리고 강화도의 짧은 밤을 달래는 뒤풀이를 하는 사이 훌쩍 지나갔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한 강연


 먼저 학생들을 열광시킨 것은 초호화 강사진이었다. 캠프에 참가한 많은 학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극소수인 비판적 지식인, 양심을 세우고 현장을 뛰고 있는 활동가, 그리고 종교와 예술의 분야에서 인권의 가치를 져버리지 않고 사유하고 행동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 참가를 결심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전했다.


(홍세화 위원의 강의 중)


  강화도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강의를 시작한 분은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이었다.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라는 주제로 “우리들의 의식세계가 바로 한국사회의 반영물”임을 짚어내고, 이미 형성되어 있는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버리기 위해 “나 자신의 의식세계를 점검해나가는 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또, 그는 흔들리는 젊은이들에게 “양보는 있을 수 있되, 포기는 하지 말라. 언제나 긴장하고 노력해야한다”고 북돋아 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성공회대 겸임교수이자 가수로 활동하는 이지상 교수의 매력적인 음색의 노래들이 버무려진 강연(‘우리는 사람이 사는 마을로 간다’)이 이어졌다. 과정과 결과, 희망과 집착, 진정성과 효율성의 구도가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그는 그의 곡 ‘폐지 줍는 노인’과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를 이야기하며 “사랑은 낮은 곳에 있다”고 강조했다.


 두 강연이 끝나고 이어진 모둠활동 시간을 끝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둘째 날,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의 강연(‘노동하는 인간, 인간적인 노동’)은 간밤의 피곤기가 사라질 만큼 열정적이고 힘이 넘쳤다. 그는 파업을 비롯한 노동권에 대해 심각한 억압을 가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분위기를 짚어내고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를 통해 섬뜩하리만큼 반노동적인 이 사회의 노동관에 문제를 제기했다. 또, 뜨거운 현안인 ‘비정규직법 논란’에 대한 깔끔한 정리를 도와 학생들의 의문점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강의 후에 하종강 소장과 함께)


  점심 식사 후에는 장경욱 변호사의 ‘법치주의와 인권’ 강의가 이어졌다. 오랜 기간 변호사로서 현장을 누빈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법치주의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법치주의의 의의와 그 한계에 대한 개념들을 정리해나갔다.


 다섯 번째로 강연을 맡은 이찬수 종교문화연구원장은 ‘인간다움을 고민한다’는 제목을 걸고 ‘종교적 인간론과 인권’에 대해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종교와 인권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스스로의 권리를 위하는 ‘자권(自權)’과 남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의무로 그치는 게 아닌, 자신의 적극적인 권리가 됨을 지칭하는 ‘타권(他權)’을 개념화하며 ‘타권’으로서의 인권을 강조했고, 이 과정에서 종교적 가치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말했다. 

  저녁식사를 한 후, 여섯 번째 마지막 강의는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맡았다. 오창익 국장은 ‘인권은 실천이다’의 강연 동안 “인권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권리”임을 강조했고,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권리는 투쟁으로 얻어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며 실천의 자세를 견지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지


 35명의 학생들은 2박 3일 동안 옹기종기 모여앉아 강연을 들었다. 대체로 강의가 주가 되었던 일정 속에서 학생들은 강의 중간 중간,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도 서슴지 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학생들의 참여하고자 하는 열기가 식지 않았다. 둘째 날 저녁의 ‘연대의 밤’ 행사를 위해 각 조의 조원들은 식사 후에도, 강의 사이에 잠깐의 휴식시간에도 모여앉아 서로의 의견을 내가며 준비를 했다.


 둘째 날 밤, 모든 강연이 끝나고 드디어 ‘연대의 밤’ 행사를 시작했다. 조별로 나와 그간 준비한 연극이나 율동 혹은 노래를 발표할 시간이었다. 준비가 미흡하다며 아우성을 치던 학생들과 일정상 여력이 없어 아쉬워하던 스텝들 모두 놀랐다. 공식적으로 주어진 모둠활동 시간이 약 두 시간 가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젊은 감수성과 뜨거운 열정이 만나 두 세 시간으로는 도저히 짜낼 수 없는 만큼의 양질의 공연과 율동 그리고 노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함께 스스로 참여해서 만들어낸 공연과 노래, 율동은 학생들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고, 지난 이틀 동안 수준 높고 알찬 강의들과 함께 했다는 점, 그리고 바로 옆에는 고민을 함께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 학생들은 강화도의 맑고 푸른 밤 내내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모둠활동 시간)

 
만남과 이해를 통해 행복을 만들어내기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구체적인 현안들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볼 수 있었던 2박 3일간의 대학생 인권학교는 일종의 짧은 꿈이었다. 많은 고민과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는 대학생들이지만, 어디 한 곳 마음 편히 둘 곳조차 사라져가고 있기에 이들이 체감하는 삶의 팍팍함은 대책 없이 늘어가고만 있다. 게다가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들이 너무나 손쉽게 짓밟히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학생들의 양심과 날 선 고민은 혼자 감당해내기에는 가슴 뻐근한 아픔이 되고 있다. 작고, 짧고, 힘없는 존재들이 모여 강한 것을 이기듯, 이번 대학생 인권학교가 남긴 작지만 따뜻한 이해와 소통의 경험을 통해 많은 이들이 더 많은 고민을 나누고, 또 이를 넘어서는 더 많은 긍정과 웃음을 바탕으로 모두 함께 행복해질 날을 기대해본다.


<인권학교 사진들>

  (연대의 밤 행사)

 

(강의 중인 오창익 국장)

(강연을 끝낸 홍세화 위원과 학생들)


(이지상 교수의 강연 중)


(수료식을 마치고)


인권을 배우자

그리고 행복해지자 - 2nd Day

2008/07/15~07/17
2009 인권연대 인턴 윤광훈
둘째날
전날 다들 몇시에 잔 건지... 다들 초췌한 얼굴에, 슬리퍼를 끌고 식당에 들어선다. 큰 접시에 먹을 만큼의 양을 덜고 자그마한 식탁에서 함께 먹는 아침밥은 소박하고 정겨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강의할 때가 되자, 식사 시간의 초췌함은 찾아볼 수 없고, 질서 정연하게 준비된 상태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ㅡ.ㅡ) 강의실 벽면에는 전날 작성했던 자기소개들이 붙어있었는데, 하나하나 읽고 나니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노동하는 인간, 인간적인 노동 - 하종강
둘째날의 첫 강의는 학생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았던 하종강 선생님이 해 주었다. 하종강 선생님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사진, 동영상, 음악 등 모든 시청강 자료를 동원했기 때문에 내용이 풍성하고 강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강의는 여섯 부분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는데, 노인, 장애인, 여성에 대한 권리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 주장에는 적개심을 표시하는 한국의 비정상적인 노동 문제 의식을 지적하였다. 일례로 OECD에 속하는 많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문에 노동 조합을 구성하고 사측과 협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한국에서는 사법연수원에서조차 근로기준법을 처음보는 학생들이 대다수일 정도로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피력했다.

특히 강의를 마치면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줄타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부채는 어느 쪽 손에 들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답은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쪽'이다. 자신의 강의가 한쪽에 치우쳐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는데, 부채를 가운데 들고 있으면 줄에서 떨어져버리지 않느냐'고 말했다. 전날 이지상 선생님이 말했던 '낙엽은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라는 말과 함께 그 의미를 계속 곱씹었다.

법치주의와 인권 - 장경욱
점심 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하시는 장경욱 변호사님의 강의가 이어졌다. 장경욱 변호사님은 촛불집회로 인해 체포, 구금된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신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생생한 현장 경험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다들 기대하는 눈치였다.

장경욱 변호사님은 '법치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는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토론식 수업이 생소했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업은 원활히 진행되었다.

질문 시간에는 요즘 뜨거운 감자인 '쌍용차 파업 사태'를 비롯해 '촛불집회'와 같은 집회 시위에 관한 질문이 많았고, 장경욱 변호사님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동감있는 답변으로 응수하였다.
인간다움을 고민한다 - 이찬수
이찬수 교수님은 '강남대 파면사건'으로도 유명하신 분이다. 신문 기사를 통해서만 접했는데, 직접 뵈니 힘든 일을 겪으시고도 항상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띠고 있을 정도로 긍정적인 분이었다.

강의의 주된 내용은 인권의 뿌리를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공부하고 연구하셔서 그런지 여러 종교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뿌리에서부터 인권의 개념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신기했다.

이어진 질문시간에는 역시 종교를 가진 학생들의 질문이 줄을 이었는데, 무늬만 천주교인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래도 인권의 뿌리를 종교에서 찾는 시도는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인권은 실천이다 - 오창익
드디어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님의 강연차례가 돌아왔다. 인턴을 하면서 국장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몇 번인가 있었는데, 국장님은 매번 문답식으로 활기있는 강의를 이끌었다. 이번 강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첫 질문은 '인권이란 무엇인가?'였다. 마치 '사랑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동어반복적인 답만이 머리 주위를 빙빙 돌고있는 사이 정답이 밝혀졌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질문이 꼬리를 물어 이어졌다. '그럼 사람은 무엇인가요?', '권리란 무엇인가요?',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인가요?' 대답이 목구멍에서 턱 막혀 쉽게 터져나오지 않았다. 평소 간단하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개념임에도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사실에 놀랐다.

학생들과 대화하듯이 진행된 강의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후에야 마무리되었다.
모듬활동 발표
'언제 저렇게 연습할 시간이 있었지?' 발표를 제일 먼저 마친 나는 느긋히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빡빡한 강의 일정에 어젯밤의 뒷풀이까지 생각하면 연습할 시간이 전혀 없었을 것 같았지만, 다섯 조 모두 서로 겹치지 않는 형식과 내용의 공연을 선보였다. 율동, 연극, 패러디, 가사를 바꿔 부르기 등 공연 하나하나가 무게가 있었다. '역시 한국사람은 쪼면 다 해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상품은 책이었다. 잘 한 조부터 원하는 책을 집을 수 있었다. 3번째로 호명된 나는 남아있는 책 중에 가장 두꺼운 책을 골랐다. 내용을 살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성급히 골랐지만, 가격이 제일 많이 나가는 것 같아 흐뭇했다.
광란의 밤
공연의 부담감을 떨쳐내고 후련한 마음으로 모두 식당에 모였다. 오마이스쿨 측에서 준비해 주신 동태찌게와 제육볶음이 한 상 그득하게 차려졌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던 술자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존댓말은 반말로 차분하던 분위기는 왁자지껄하게 바뀌었다. 나느 새벽 5시에 참을 수 없어 방으로 들어갔지만 몇몇 친구들은 밤을 새기도, 근처의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고 들었다. 젊음이 부럽다 ㅡ_ㅡ;



인권을 배우자

그리고 행복해지자 - 1st day

2009/07/15~07/17
2009 인권연대 인턴 윤광훈
출발
출근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아침부터 부산하다.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자료집이며, 수첩, 수료증에 더하여 회원들에게 매월 보내드리는 소식지가 책상위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공교롭게도 소식지 작업과 대학생 인권학교 행사가 겹쳐서 광화문으로 떠나는 11시 반까지 소식지를 접어야했다.
 
약속 시간인 1시가 되기 2분 전인데 도착한 학생은 열 명 남짓.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곧 출발인데 왜 안 오지? 그래도 다행히 1시 반에는 출발할 수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숙소인 오마이스쿨에 도착했을 때, 학생들이 눈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폐교를 리모델링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운동장에 우거진 잡풀과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 외관은 담력시험 장소로는 적합했지만, 강의를 듣고 2박3일은 보내기에는 부족해보였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수많은 걱정들은 눈녹듯이 사라졌다.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깔끔한 벽지와 마루바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강의실도 강의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구비되어 있어 부족함이 없었다.

강의 전의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은 35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되었다. 이공계 학과로만 이루어진 학교를 졸업한 나로서는 이토록 다양한 전공과 다양한 배경을 갖춘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단어 하나를 위해 모였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다. 이 날을 위해 제작한 기념 머그컵, 자료집, 국장님 책 등을 나누어 주고, 벽에 붙일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달라고 당부한 후, 바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나? - 홍세화
홍세화 선생님은 역시 강의를 많이 다니시는 분답게 강의가 깔끔했다. '나는 내 의식의 주체인가?'라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신 선생님은 현대인들이 가지는 '의식의 비주체성'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내 삶의 나침반'인 의식이 타자에 의해 지배되지 않도록 1. 책 2. 강연 3. 체험 등을 통해 지식을 얻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미디어 매체와 제도 교육 외에 내가 얻은 지식의 출처를 생각해보니 전체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어서 20이 80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10이 90을 지배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세태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고민했고, 현재 제도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짧은 문답이 오갔다.
우리는 사람이 사는 마을로 간다 - 이지상
저녁을 먹고 다시 강의실로 모였다. 기타와 하모니카 등이 준비되는 것을 보며, 모두들 이색적인 강의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표정이었다. 기대에 보답하듯 이지상 교수님은 '무지개'라는 노래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중저음의 걸걸한 목소리가 노래와 잘 어우러졌다.

강의 전반은 소위 '인권 감수성'을 고무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교수님은 '희망/집착', '과정/결과', '나눔/독점', '공동체적/개인적'을 대비시키면서 결과 중심의 현대 사회를 비판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개인의 '가능성'이 부곽되지 못하고 인간은 결과를 기준으로 서열화된다. 따라서 경쟁이 심화되고 공동체적 가치가 퇴색된다고 말씀하셨다.

인상깊었던 대목은 시인 안도현이 쓴 '가을엽서'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었다. '사랑은 낮은 곳에 있다.' '낙엽이 지는 이유, 낙엽의 자기 희생, 힘없는 사람은 우리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가슴에 머무는 동안 교수님은 직접 작사, 작곡한 '폐지 줍는 노인'을 불러주셨다.

강의의 후반부는 '국가가 민중을 길들이는 방법'을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사회를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폭력을 직접적 폭력,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으로 나누고, 특히 문화적 폭력에 대해 일제 시대에 실재했던 사례를 바탕으로 생동감있게 전달해 주셨다. VOS의 '혈서지원'은 충격적이었다.
첫째날을 마치며
취침 전, 조별로 수박을 먹으며 둘째날에 계획된 역할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모두 마찬가지였나보다. 조별 모임 후, 10시부터 간단한 뒤풀이를 계획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 짐짓 놀랐다. 맥주와 과자 몇 봉지가 전부인 조촐한 술자리였지만, 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가 멈추지 않았다. '인권'이라는 공통된 관심으로 모인 사람들.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2nd Day가 이어집니다.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부가 ‘대한늬우스’를 새로 제작해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해 화제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면 꼭 거쳐야 하는 몇 가지 절차가 있었다. 우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한 예의를 표해야 했고 그 시간이 끝나면 이어서 바로 그 ‘대한늬우스’가 상영되었다. 월남 파병 군인들을 환송하는 환송식, 반공 궐기대회 장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표창을 주는 대통령의 모습, 전국적인 쥐잡기 행사 같은 것들이 극장을 찾는 국민이 다 함께 보아야 하는 ‘늬우스’들이었다. 그 시절 곧 시작될 영화 속 환상의 세계를 가슴 터질 듯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대한늬우스’는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싶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영화보기를 좋아해 어지간히 자주 극장을 찾았던 나이지만 그 숱한 ‘대한늬우스’를 관심 있게 보았던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새로 기획한 '대한늬우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내가 ‘대한늬우스’를 재미있게 보게 된 것은 오히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최근의 일이다. 요즘도 KTV같은 채널에서 과거의 ‘대한늬우스’ 필름을 더러 볼 수 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찮게 과거에 제작된 ‘대한늬우스’ 필름을 보게 되면서 나는 이 낡은 흑백 필름이 뜻밖에도 꽤 재미있는 볼거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재미란 물론 어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나 향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 그 시절엔 저렇게들 살았었지, 뭐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아련한 향수보다 더 큰 것은 그 시절의 ‘늬우스’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였는지를 새삼 반추하는데서 오는 재미다. 생각해 보라. 쥐 잡는 날을 정해 전국적으로 쥐약을 배포하고 집집이 쥐덫을 놓아 쥐를 잡는 광경이나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따위 표어와 함께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이는 장면, 반공 궐기 대회에 모인 군중 앞에서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며 혈서를 쓰는 아저씨들, 그리고 그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어깨띠를 두른 채 무표정하게 서 있는 명 연예인들의 모습이란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인가. 그건 마치 요즘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60, 70년대의 한국 영화를 볼 때, 기둥을 붙잡고 우는 배우의 신파 연기를 보면서 낄낄 웃음이 터지는 것과도 비슷하다. 시대의 맥락이 바뀌면서 심각하고 진지한 비극이 배꼽 잡는 희극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웃을 일 별로 없는 요즘 웃음이 필요한 분이라면 왕년의 ‘대한늬우스’를 한번 찾아보시라. 강추다.

 정부가 새로 기획한 ‘대한늬우스’는 개그콘서트를 패러디한 코미디 형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과거와 같은 ‘진지한’ 뉴스 형식으론 안 먹히리라는 생각은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대명한 21세기에 극장에서 정부 정책 홍보 영상을 틀겠다는 발상 자체가 기막힌 코미디라는 건 왜 생각을 못했을까. 코미디는 의외의 반전에서 최고의 웃음이 터지는 법이다. 대 놓고 코미디하겠다는 걸 보고 웃어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수십 년 전의 진짜 ‘대한늬우스’처럼 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쥐잡기 캠페인 같은 거 한번 다시 해 보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이 엄청 재미있어 할 게다.

 

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직 중입니다.



 인권연대는 인권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인권단체입니다. 인권연대는 구체적인 실천만이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인권현장을 뛰고 있습니다. 대통령부터 너나없이 인권운운하는 인권의 홍수 속에서 변두리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친근한 벗이 되고자 합니다.

 인권연대는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권리를 옹호하는 것이 세계평화의 기본임을 천명한 세계인권선언(1948.12.10)의 정신에 따라 우리 사회의 인권현실을 구체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 문답으로 알아보는 인권연대 ◈◈


1> 인권연대는 언제 창립되었나요?
 인권연대는 1999년 7월 2일에 공식 창립되었습니다. 1999년 5월부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직접 인권현장을 뛰었던 인권운동가들이 새로운 인권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두달 정도의 준비를 통해 단체를 창립하였습니다.


2> 인권연대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인권연대의 직접적인 창립 계기는 직접 인권현장을 뛰면서, 인권피해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인권단체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감옥, 군대 등에서 인권이 침해당하는 사람들, 특히 목숨을 잃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인권단체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새로운 인권단체를 결성하여 보다 적극적인 대처를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권연대 창립 준비 시기에 지혜와 힘을 보탰던 준비일꾼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직함은 1999년 당시의 것입니다)


고상만(전 천주교 인권위원회 간사, 새로운 인권단체 창립 준비모임 간사)
곽노현(방송대 교수)
김녕(서강대 교수)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오창익(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새로운 인권단체 창립 준비모임 연락책임자)
이유정(변호사, 민변 소속)
이혜숙(전국군폭력희생자유가족협의회 회장)
정재숙(한겨레 신문 기자)
최용철(두리미디어 대표)


3> 인권연대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나요?
인권연대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여러분의 운영위원과 상근활동가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운영위원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2009년 기준입니다)


-운영위원
곽노현 /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김녕 / 서강대학교 교양대학원 교수 (사회교육 전공)
김대원 / 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 / 중학교 교사
김창남 /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희수 / 변호사
도재형 /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
서상덕 / 가톨릭신문 기자
위대영 / 변호사
이재상 / CBS PD
이재성 / 한겨레신문 기자
이지상 / 가수 겸 작곡가, 성공회대학교 외래 교수
이찬수 / 전 강남대 교수, 현 종교문화연구원장
이창엽 / 치과의사
장경욱 / 변호사
정원 /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최용철 / 두리미디어 대표
허윤진 /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홍승권 / 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 / 초등학교 교사


-상근활동가
오창익
이성일
이운희

 


4> 인권연대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나요?

 공식 창립을 준비하면서, 준비위원들이 난상 토론을 통해 정했습니다. 단체 이름을 어떻게 정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월간 ‘말’에는 새로운 인권단체의 이름을 찾는다는 기사가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준비위원들과 월간 ‘말’을 통해 접수된 이름 중에서 최종적으로는 [시민의 권리21]과 [인권사랑시민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등의 이름이 경합을 하였고, 인권은 부지런한 실천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단체 이름에 ‘실천’을 강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식명칭은 [인권실천시민연대]로 약칭은 [인권연대]로 부르기로 하였고, 이 결정이 내려진 날은 1999년 6월 12일이었습니다. 2009년 5월 1일부터는 공식명칭을 [인권연대]로 정해 부르고 있습니다.


5> 인권연대의 회원은 몇 명이며, 실제로 회비를 내는 회원은 몇 명입니까?

 사실 저희는 저희 홈페이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나, 저희 활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을 모두 회원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회원가입을 해주신 분들로만 친다면 모두 2,900여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실제로 회비를 내는 회원은 매달 꼬박 꼬박 내는 분들도 있고, 1년치를 한꺼번에 내시는 분들도 있는 등 다양한 방법을 내고 계시고, 1년에 한번이라도 회비를 내는 회원은 모두 800명 정도입니다.


 회원은 누구나 될 수 있고, 인권연대의 다양한 활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되기 위한 자격은 전혀 없습니다. 서울에 살든 지역에 살든, 국적이 어떻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나이가 얼마든 상관없습니다.


6> 주요한 활동은 무엇인가요?

 인권연대의 주요활동은 매시기마다 다르고, 중요한 현안이 진행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권연대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활동은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군대, 감옥의 개혁입니다. 이들 기관이 더 이상 국민을 괴롭히지 않고, 국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관에 대한 개혁작업과 함께 전반적인 사법개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지만, 돈이 있느냐 없느냐 등의 이유에 따라 다른 대접을 받는 현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인권연대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권교육활동과 여러 가지 인권현안에 대한 대응활동입니다.


7> 어떤 방식(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는가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방법은 되고, 이런 방법은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구분을 해두지는 않습니다. 방송에 출연해서 의견을 전달하거나, 각종 학술 행사나 강의 등을 통해서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도 있고, 편지를 쓰거나, 성명을 내기도 합니다. 또 직접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거나, 인권침해기관이나 유관 기관을 방문하여 의견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인권연대는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8> 인권연대의 의사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인권연대에는 운영위원회와 사무국회의의 두가지 의사결정구조가 있습니다. 회원들에게도 의사결정의 권한을 드려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각계전문가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는 매월 한번씩 열리며, 인권연대의 중요사안을 점검하고 결정합니다. 사무국회의는 수시로 열리며, 인권연대에서 상근활동을 하는 상근활동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무국회의는 긴급사안을 비롯하여 다양한 실무적 사안을 다룹니다.


 인권연대에는 인권현안의 특성상 사전에 회의를 통해 미리 충분히 점검하고 예측한 가운데 일을 추진하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럴 경우에도 최소한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정기 운영위원회에서 제대로 사업을 했는지, 반성할 점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따집니다.


9> 인권연대와 정부와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인권연대는 많은 경우 정부부처와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있습니다. 단 한푼의 재정지원도 받지 않고 있고, 정부로부터 기타 다른 편의를 제공받지도 않고 있습니다. 인권연대의 이러한 태도는 인권연대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인권을 위해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순수 민간단체가 되어야 할말도 제대로 하고, 싸움도 제대로 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 다양한 인권운동 전개
각종 민원상담, 지문날인제도에 대한 최초의 문제제기, 군대 등 각종 의문사 사건에 대한 조사활동, 경찰개혁 캠페인, 탈북자 등 다양한 인권운동을 쉼없이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인권피해신고센터 운영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감옥, 군대에서 발생한 인권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전문적인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권연대의 인권피해신고센터의 전화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02) 3672-9443 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인권연대 교육센터

인권을 비롯한 일반 시민사회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교육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인권학교, 인권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각종 강좌 등 활발한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인권연대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대학과 중고교 등 학교 사회봉사활동도 지원합니다.


- 인권관련 정부기구에 대한 감시와 개혁

인권관련 정부기구의 개혁을 위해 지속적인 감시활동을 전개하고,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합니다.


- 각종 자료 발간

풍성한 인권소식을 전해주는 월간 <인권연대>를 비롯한 다양한 인권관련 자료를 발간합니다.


- 인권전문 홈페이지 운영

국내외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인권소식을 전달해주고, 다양한 자료를 나눠주는 인권전문 홈페이지를 운영합니다.
이곳에서 전세계 인권단체들과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메일 주소를 등록하시면, 매주 웹진 형식의 인권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인권연대 회원 모임 운영

인권연대는 회원중심의 인권단체입니다. 회원은 누구나 인권연대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부분, 지역별로 소모임도 운영합니다.


- 언론 활동

더 많은 사람에게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신문 기고 등의 활동과 TV, 라디오 등 각종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인권연대가 오랫동안 부동산 문제에 천착하며 ‘부동산 계급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손낙구 선생을 모시고 기획강좌를 진행한 강의내용 중 1강입니다.

※ 강사 소개 - 손낙구

“외면하기에는 너무 참담한 노동현실”을 보고 민주노총 대변인과 심상정 의원 보좌관 생활을 포함하여 20년 가까이 오로지 노동운동에만 전념했습니다.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핵심을 쫓다가 ‘부동산’ 문제를 직면하고, 부동산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밝히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4년 동안 꼬박 부동산 문제 연구에만 파고들어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저서를 냈습니다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인권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운동가나 형사사건에 대한 취재활동을 하는 언론인들도 형사사법의 구조나 실체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하여 제대로 된 대응없이 피상적인 대응만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에 인권연대에서는 [
기획 강좌] 시민과 활동가를 위한 형사법 교실 마련하였습니다.

이번내용은 기획강좌중 제6강 <이명박 정부와 법의 지배>라는 주제로 하태훈 교수(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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