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총기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정 모 이병이 부대에서 심각한 가혹행위를 당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해병대 2사단 해안소초 사고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이병과 변호인을 접견한 결과 선임병들이 정 이병의 팔을 담배로 지지고 목과 얼굴에 소염제를 바른 뒤 씻지 못하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선임병들이 기독교 신자인 정 이병의 성경을 태우기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단체는 정 이병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피의 사실을 외부에 공표하면서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며, 인권단체들의 방문조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에 공모한 것으로 지목된 정아무개 이병이 평소 내무생활을 하면서 선임병들에게 끔찍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들 선임병의 가혹행위는 담뱃불로 팔을 지지거나 바지 지퍼부위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등 성범죄를 방불케했다.

국방부가 정 이병에 대해 사전공모했다는 점만 강조하는 반면, 정 이병이 가혹행위에 시달렸다는 점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아 군 조사에 신뢰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7일 발표한 성명에서 인권단체들의 방문조사를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는 해병대 사령부와 국방부를 비판하면서 “정 이병에 대한 피의 사실은 무차별적으로 언론에 공표하는 반면, 사건 발생 이전 정 이병이 부대에서 당한 가혹 행위에 대한 국방부의 언급은 일절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공개한 정 이병의 가혹행위 사례에 따르면, 부대내 선임병들은 △정 이병을 아무런 이유 없이 상황실에 앉혀놓고 장시간 일어나지 못하게 했고 △안티프라민을 목이나 얼굴에 바르고 건드리거나 씻지도 못하게 했으며 △기독교 신자인 정 이병의 성경책을 태웠을 뿐 아니라 △다리에 테이프를 붙여 털을 강제로 뽑는 일을 했다. 또한 이들이 정 이병의 팔에 담배불로 세차례 지졌다고 했으며, 특히 '성기를 태워버리겠다'며 정 이병의 바지 지퍼 부분에 에프킬라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끔찍한 가혹행위를 했다고 군인권센터는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이는 엄연히 성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조사결과에 대해 “정 이병이 선임한 김인숙 변호사가 김포 2사단에 가서 직접 조사해온 내용이다”며 “우리가 파악한 것으로 볼 때 국방부가 내놓은 정황으로는 공모라고 보기 어렵고, 사전 모의했다는 부분도 납득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임 소장은 “이런 조사결과가 나온 것은 정 이병과 김 상병이 평소에 부대 내에서 얼마나 많은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자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또한 국방부가 이런 가혹행위는 놔둔채 정 이병의 피의사실을 이런 식으로 언론에 공표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이번 사건의 원인이 ‘기수열외 문화’라는 점을 들어 “군 수뇌부가 이런 문화를 묵인하면서 불거진 사건으로, 전형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 사건이 돼버렸다”며 “군 수뇌부가 이 같은 악습을 묵인해왔기 때문에 이 문화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수뇌부의 책임이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해병대 사령부의 한 관계자는 “정 이병에 대한 가혹행위 내용은 오늘 국방부에 구성된 수사팀이 조사해 발표한 내용과 같다”며 “정 이병은 저계급자이므로 기수열외 대상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수뇌부 책임론에 대해 “소대장과 부대장도 몰랐다고 한다”며 “(왕따의 변형된 형태의) ‘기수열외’라는 것의 실체가 이렇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앞으로 좀 더 병영문화를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5일 직권조사를 결정, 조사관을 현장에 파견해 현재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인권위는 “1980년대 이후 해병대 내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총기 사망사건이라는 점에서 사건 당일 오후 현장에 방문해 기초조사한 결과 △총기 및 탄약관리 부실, △장병신상관리 부실, △병영 내의 음주, △‘기수열외’ 등에 의한 가혹행위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해병대 총기사건'의 공범인 정모 이병에 대해서도 심각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시민단체들이 7일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이날 해병대 2사단 해안소초 사고현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이병과 변호인 접견 결과, 선임병들이 정 이병의 팔을 담배로 3차례 지지고 다리에 테이프를 붙여 털을 뽑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고 밝혔다.

또 "정 이병의 목과 얼굴에 소염제를 바르고 건드리거나 씻지도 못하게 하거나 기독교 신자인 정 이병의 성경을 태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심지어 선임병들이 정 이병의 성기 부위 바지에 살충제를 뿌리고 불을 붙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군이 정 이병에 대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를 하는 대신 일방적으로 피의사실을 외부에 공표하며 사건을 축소ㆍ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군은 인권단체들의 방문조사 협조요청을 묵살하고 정 이병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며 "군과 국방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인권단체의 현장 방문조사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josh@yna.co.kr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군인권센터와 인권연대는 7일 오후 2시30분부터 군 당국의 허가유무와 관계없이 총기 사망사건이 발생한 강화도 선두소초에 대한 현장 방문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현장조사단은 육군 예비역 중령 피우진씨, 육군 예비역 소령인 성주목 변호사,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전날 긴급체포 된 정모 이병에 대한 변호사 접견보고서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5일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에 해병대2사단 총기 사망사건을 비롯한 인권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며 현장조사 실시 이유를 설명했다.

daero@newsis.com

오바마가 구상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안과 보편적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 (홍미정 건국대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홍미정/ 건국대학교 중동 연구소 연구교수

 요즈음 팔레스타인인들은 오는 9월에 유엔 총회로부터 1967년 6월 경계 내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승인받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우선 팔레스타인인들은 2011년 7월 15일에 유엔 사무총장에게 호소문을 보낼 예정이다. 그런데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UN,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2003년 로드맵 협상 때 구성됨)는 2011년 7월 11일 워싱턴에서 새로운 중동 평화안을 제시하기 위하여 수뇌 회담을 개최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이 새로운 평화안이 2011년 5월 19일 버락 오바마의 워싱턴 연설에 토대를 둔 것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엔차원에서 국가 건설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워싱턴 연설에서 오바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9월에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받으려는 행위는 이스라엘 국가의 합법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창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동시에 “우리는 이스라엘의 안보에 헌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소외시키려는 국제 사회의 토론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오바바의 연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중단시키고, 팔레스타인인들과 그 영토를 미국과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에 묶어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두 국가 해결안(Two-State Solution), 즉 유대 국가로서의 특별한 정체성을 갖는 이스라엘과 비무장 팔레스타인 국가 계획안을 제시하였다. 이 해결안은 튀니지와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 지역에서 진행되는 민주화 요구가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상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잠재적인 혁명 세력인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 점령상태가 영구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인종 차별주의적인 점령 정책을 실행시키는 이스라엘도 권위주의적인 아랍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동 전역에서 진행되는 민주화 열풍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19일 워싱턴 연설에서의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
사진 출처 - AP연합

 유대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강조하는 오바마는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역을 구체화시키면서, “생존 가능하고,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국가는 1967년 경계에 토대를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 측이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오바마의 워싱턴 연설은 조지 W. 부시가 중재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협상의 결과물인 2003년 로드맵(Road Map)에 토대를 둔 것이다. 로드맵은 2003년 조지 W. 부시가 중재하여 당시 이스라엘 총리 아리엘 샤론과 팔레스타인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가 서명했으며, 현재까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서 성취된 최종 협정이다. 로드맵 전문은 “양 측이 협의한 해결안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출현으로 이끌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로드맵 협상에는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UN,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가 참관하였다. 4자 위원회는 미국의 계획을 추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생존 가능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제안했던 2003년 로드맵은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 단체 해체를 요구함으로써 내전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이것이 로드맵의 최우선 목표였다. 오바마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연설들에서, 하마스 테러리스트라는 주제는 거의 매번 강조된 반면,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이스라엘 군대와 점령민들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잔혹한 테러 행위는 언급된 적이 거의 없다. 하마스의 테러 행위와 이스라엘의 테러 행위는 그 규모나 빈도수에서 비교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오바마의 시각은 절대적으로 이스라엘 편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워싱턴 연설에서도 오바마는 파타와 하마스의 통합이 이스라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며 현재 직면한 난제라고 지적하면서, 이스라엘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며, 중동 평화를 위한 4자 위원회와 아랍 국가들은 이 난국을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3일 카이로에서 파타와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의 13개 파벌 사이에서 통합 협정이 이루어졌고, 파타와 하마스는 1년 이내에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가 실시될 때까지 임시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오바마와 이스라엘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주장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합 정부 구성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2003년 로드맵과 2011년 오바마의 연설에서 구상한 팔레스타인 국가는 유대 국가로서 정체성을 갖는 이스라엘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잠재적인 혁명 세력인 팔레스타인인들을 손쉽게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런 구상으로 출현한 팔레스타인 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최상의 대안은 이스라엘 군사 점령지와 이스라엘 국가 영역을 한 국가로 완전히 통합하면서,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한 국가 안(One State Solution)이다. 이 해결안은 혈통이나 종교 같은 배타적인 정체성을 넘어서서 보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인종차별주의에 토대를 둔 유대 국가의 특성을 버리고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할 것이다.

 이 대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노력을 경주해야한다. 20세기 초 국제 연맹(the League of Nations)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민족 고향(Jewish National Home) 건설을 내세우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윤곽을 세웠고, 유엔(UN)은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 국가 영역과 아랍 국가 영역으로 분할(UN Resolution 181)하면서 이 문제를 격화시켰으며, 현재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내세우는 미국은 극단적으로 이스라엘 편향이다. 계속되는 유혈 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혈통과 종교를 넘어서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에 토대를 두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한다.


오디션, 그 한 여름밤의 꿈 (김새봄)

김새봄/ 객원 칼럼니스트

 그가 애써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쉽게 ‘가난’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젊은이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 여길 뿐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넬라판타지아’ 노래가 시작됐다. 카메라는 청중들의 경이에 가득 찬 표정을 클로즈업 했다. 심사위원석과 객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한국판 폴포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그는 껌팔이 인생, 22살의 청춘이다.

 한 개인의 세상분투기 덕분에 그의 노래에는 사연이 실렸다. 다섯 살부터 길거리 생활을 해왔다는 그는 우연히 나이트클럽에서 성악공연을 보고 음악에 매료됐다. 길거리 음반가게에 앉아 홀로 음악을 배웠다. 그의 삶의 역사의 혹독함과 고난 그리고 시련을, 재능경연 오디션에서 노래로 극복한 그는 주목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그와 함께 거리에서 청춘을 보내는 가난한 껌팔이 소년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주목받은 그에겐 타고난 목소리와 노래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의 대다수 껌팔이들 중 재능오디션에 나와 승리를 거머쥐어 감동적인 인생역전 스토리를 선사할 이, 얼마나 될까. 99%는 그처럼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세대와 시대, 사회의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축소돼 버린다. 개인이 속한 집단, 개인이 속한 세대와 시대, 개인이 속한 사회라는 큰 맥락을 삭제시킨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 광풍이 부는 오디션의 속성이다.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는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수천만 명 중에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승리를 위한 긴 경쟁이 시작된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필요 없다. 실제 사회가 혈연과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경쟁의 우위를 다퉈왔던 것과 차별화하려는 오디션의 의도다. 실제 껌팔이 소년은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갈고닦은 성악실력을 갖고 있었더라도 실제 성악가가 되기 위한 사회의 문턱을 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의 학력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디션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능력만 봐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현실세계의 진입과는 다르다. 당신의 능력만 봐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의 처절한 사연을 시청률의 담보로 잡아챘다. 끔찍한 삶의 비극을 그가 부른 노래의 감동의 밑바탕으로 깔아줬다. 그의 노래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껌팔이의 노래였다. 그렇기에 감동을 선사한다고 방송은 떠들어댔다. 그것은 진짜 승리였을까. 아니면 그저 오디션의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일까. 이제 무대는 끝났다. 지독한 현실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 그의 행로가 이의 답을 마련해줄 터이다.


tvN <코리아 갓 탤런트>에 성악을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킨 최성봉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다만 우려되는 것이다. 결국 껌팔이 소년의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을지도 모를 무대가 일회성에 그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의 승리는 오디션 무대 진행 중에서만 빛을 지닌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오디션이 끝나면 그의 노래도 끝이 난다. 오디션이 사회와 절연된 처절한 개인의 사연만을 무대에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디션에 울려 퍼진 감동의 노래는 그저 꿈이었을 뿐, 현실세계에서 그는 앞으로도 줄곧 껌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와 유리된 오디션 무대는 공정사회가 구현되지 못한 이 세계에 달콤한 유혹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디션이 끝난 뒤에 현실사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디션은 그저 환상과 꿈의 세계일 뿐 결코 현실의 세계마저 당신도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약속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사회 한 켠에서는 청춘의 문제가 시대와 세대, 그리고 사회의 문제임을 외치는 대학생들이 있다. 포털 사이트에는 연이어 청춘 개인의 승리자인 백청강과 껌팔이 소년이 뜨고 뉴스와 신문이 소리 높여 이를 보도한다. 그러나 수일간 계속되는 대학생들의 외침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학생이 거리로 나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다. 청년실업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학교 청소부 아주머니의 최저임금 보상을 위해 지지하는 손길도 있다. 대학생들의 이런 외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춘의 시련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친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외친다. 그렇기에 손을 맞잡고 연대하며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청춘의 가난과 시련 또한 개인의 극복만으로 가능하다는 오디션의 캐치프레이즈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청춘은 오디션이 아니다. 청춘은 단 한 번의 승리와 무한경쟁의 게임이 아니다. 청춘은 진짜 삶이다. 청춘은 모두가 함께 숨 쉬고 먹고 뛰는, 살아있는 행위다.


그 날 (황미선 위원)

황미선/ 인권연대 운영위원

 7월 12일...... 그 날이 다가온다.  

 3년이 지났어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그 시험을 봐야하는 아이들은 몸에 밴 오랜 습관처럼 문제풀이로써 대비하고 있다. 이 시험을 시행한 자들은 학력성취도평가라고 명명하나 일제고사로 더욱 알려진 그것....  그것이 바로 다가오는 7월 12일, 문제 많다는 일제고사의 형태로 치러진다. 일제고사의 문제점은 교직단체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 시험에 대한 선택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들에 의해 주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교과부와 해직교사 사이에 진행된 법적 다툼에서 해직교사가 승소함으로써 교과부의 판단착오와 과도한 직권 남용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교과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일제고사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그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시험을 시행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고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국어, 영어, 수학은 전집(모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전체 조사로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듬)의 형태로 보고, 사회와 과학은 표집(모집단의 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표본을 추출하는 방법으로, 확률적으로 모집단을 대신할 수 있는 일부의 대상을 선발하여 조사하는 것)의 형태로 본다고 한다. 

 교육을 행한 자가 교육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집으로 이루어질 경우 나타나는 문제, 예를 들어 시험결과에 따른 전국 소재 학교의 서열화, 그에 따른 지역,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서열화, 그리고 그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부정적 활성화 등의 문제점을 고려하여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표집으로 보면 사라질 여러 가지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경쟁으로만 치닫는 교육이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률을 세계 1위로 만든다든가 인성교육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일제고사는 교과부가 주장하는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교육의 내용면에서 볼 때 일제고사의 획일적 시험내용은 학생들의 학력 신장도 가져올 수 없고.... 지역마다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치른 시험의 결과를 가지고 학교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면 교과부가 이런 지침을 내려보낸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일제고사 실시 후 발생할 문제점들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교육단체가 비판하고 있는 사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 인가? 아니면 그냥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무리들(?)에 대한 교과부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가? 만약 교과부가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고 있다면 이는 교과부가 매우 심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8일 대전 중구 태평동 유평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교과학습 진단평가 시험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면서 교과부에서 지침을 내렸으니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사들에게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아이로 교육하라면서 교사들이 소신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 교과부의 태도는 올바른 것인가? 아이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하라면서 교사들은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20년이 넘는 교직경력에서 올해 네 번째로 6학년 담임을 새로 개교한 혁신학교에서 맡게 되었다. 3월부터 몇 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에서 6년의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은 행복한 학교생활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반신반의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등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어온다. 시험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계속 문제풀이를 해야 하냐고.... 그러나 나는 아이들에게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아이들을 중심에 두라며 우리 교육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없다.  

황미선 위원은 현재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사유의 물꼬를 어떻게 틀 것인가?(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씩 헷갈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이에 속한다. 최근 ‘반값 대학 등록금’에 관한 논의에서도 이 문제가 중요한 사안인 것처럼 대두되고 있다. 예컨대 7월 3일 일요일 아침 KBS의 토론에 나온 어떤 인사가 “대학 등록금을 아예 전체적으로 반으로 낮추는 것은 등록금을 충분히 낼 수 있는 부자의 자녀들에게도 혜택을 주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을 한 그 인물은 분명 보수 진영에 속한 인물이었다.

 나는 이 주장을 듣는 순간 묘한 상념에 빠졌다. 갑자기 이 주장이 “동일한 혜택을 받더라도 수혜자들의 재정적인 능력에 따라 그 수혜에 다른 비용을 달리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그 순간 바로 이어서, “부모의 재산과 소득을 철저히 조사해서 그 정도에 따라 대학 등록금을 각자 아예 다르게 내도록 해야 한다.”라는 주장으로 바뀌어 들렸기 때문이다.

 이는 빈부의 격차가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의거해서 생겨나는 것이라는 인식을 암암리에 깔고 있고, 따라서 빈부의 격차를 사회구조적인 차원 즉 정치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른바 선별 복지를 제시한 그 보수 논객의 주장이야말로 진보 진영의 정치가나 논객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주장으로 탈바꿈된다. 다만, 그 함의를 잘 따져 그 속에 담겨 있는 ‘갸륵한’ 뜻을 더욱 심도 깊게 변환해야 할 것이다.

 사회구조적인 연관을 염두에 둘 때, 부와 가난이 결코 각자의 능력이나 성실성에 의거해 결정되어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하루에 잠을 네 시간 이상 자지 않을 정도로 성실한 자라 할지라도, 그가 사회역사적으로 구축된 제도와 장치를 비롯해 그동안 축적된 사회 전체적인 역량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부를 쌓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사회적인 제도와 장치에는 가난하게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충분히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와 가난이 결정되는 변수들 중 대부분은 사회구조적인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00만 명의 대학생들 중에는 거금의 대학 등록금을 아예 ‘껌 값’ 정도로 생각하는 부모를 가진 학생으로부터 말 그대로 등록금을 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를 가진 학생에 이르기까지 그 빈부 격차의 스펙트럼은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슈퍼에 가서 다 같은 값을 주고 탄산음료를 사먹듯이, 똑같은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니는 것이다.(물론 가난한 학생들에게 일정하게 장학금을 준다는 것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립대학이 80-90% 이상을 상회하는 가운데 대학교육이 완전히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대학에서의 교육은 일종의 상품이다. 상품의 가격이 소비자의 뜻과 맞지 않으면 사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동일한 상품은 동일한 가격에 구매해야 옳다.”라는 현실을 반영한 주장이 예사로 제기되기도 한다. 대학교육을 상품이라고 할 때, 정확하게 말하면 그 상품은 교육내용이 아니라 대학졸업장이 되고 만다. 대학교육을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처럼 보게 되면, 언젠가 부가가치세를 매겨 마땅하다는 험악한 주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6월 10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조건없는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국민촛불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런데 고맙게도 보수 진영의 논객이 사회구조적인 측면을 충분히 감안해서 부의 정도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의 주장을 좀 더 밀고 나가면, 사회 전체적으로 통용되는 온갖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빈부의 격차에 따라 대금 지불을 차등으로 해야 한다는 엄청난 주장으로 연결된다. 십 분 양보해서 전체 교육에 한정해서 보더라도 그 보수 논객의 주장은 모든 학교 교육(폭을 확대하면 심지어 사교육과 사회적인 평생교육을 다 포함할 수도 있을 것이다.)에 있어서 빈부의 격차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를 한 단계만 더 밀고 나가면,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학부모가 아닌 국민들이 거의 없을 것이니까, 아예 등록금을 없애고 ‘상당한 차등 비율의 누진세 제도에 입각한 교육 특별세’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야말로 진보 진영에서 염원해 마지않는 보편 복지로의 길이 아닌가.

 아니, 그렇다면 선별 복지와 보편 복지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없다. 사실 조금만 달리 생각해서 사회 전체적인 비용을 중심으로 해서 보면, 어차피 전체 국민들이 교육비 전체를 담당해 온 것 아닌가. 물론 이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어느 정도로 그 교육비를 담당해야 하는가이다. 교육받는 사람들이 교육비를 내고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는가를 개인별로 일일이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포괄적으로 계산할 수는 있다. 결국 교육에 의해 부유한 자들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이득을 얻은 것이고, 가난한 자들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다. 그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있어서는 선별 복지건 보편 복지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생각하고 말을 맺고자 한다. 국방과 교육을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국방비를 아예 국가에서 총책임지고 지불하듯이, 교육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하는 것이다. 교육이야말로 모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방어해 내는 ‘실질적인 국방’이라 할 수 있다. 튼튼한 국방이 필요한 것은 바로 교육에 의한 실질적인 국방의 내용을 안정되게 유지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교육이 목적이라면, 국방은 수단이다.

 국방을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기업 등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활용하기 위해 국방의 내실을 상품화해서 완전히 시장 논리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하면, 아예 매국노로 찍혀 입을 여는 순간 매장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국방의 목적인 교육은 왜 상품이라고 함부로 떠들고 실제로 교육을 상품화하여 매점매석을 일삼으려 하고 어떻게 하면 시장 논리에 편입시킬 수 있을까를 노심초사 안달하는 것이 용납되는가. 물론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대학을 비롯한 많은 교육기관들에 재정 지원을 한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학교마저 법인화하여 상품 중심의 교육으로 치달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든지, 부도덕하기 이를 데 없는 자들로 판명이 난 인물들이 대학의 운영권을 갖도록 한다든지, 편의를 명목으로 대학 내에 온갖 상점들을 끌어들여 대학 환경을 시장화 하는 쪽으로 치닫는다든지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 것은 관련 책임자들이 교육을 얼마나 시장 논리에 입각해서 활용하고자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른바 ‘반값 대학 등록금’이라고 하는 현안이 그 속에 얼마나 강력한 폭발력을 지니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과 정체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완전히 잘못 가고 있는 교육 체제 자체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것이다. 보수 진영조차 알게 모르게 이미 그 강력한 자장에 깊게 발을 들여놓고 있다. 특히 진보 진영에서는 물러서지 말고 이참에 이 현안을 활용하여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교육을 통한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입안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모두 사유의 물꼬를 전연 창조적인 방향으로 틀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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