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질 했던 용역이 ‘집행관 조끼’ 입고 들어와”
“부적절 대응” 비판…부산지법 “법적문제 없어”
“하루 전날까지 정문에서 우리를 막고, 6월10일 희망버스가 오기 전날 나에게 발길질을 했던 씨제이씨큐리티 용역 직원이 제 사지를 들고 끌고 나갔습니다.”
지난 27일 오후 4시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아무개(29)씨는 190여일 동안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파업하며 대치하던 용역직원의 손에 들려 강제퇴거 당했다. 그는 40여명의 동료 농성자들과 함께 85호 크레인 바로 앞 바닥에 앉아서 농성중이었다. 김씨는 “분명히 190일동안 서로 대치하던 용역인데 집행관 조끼를 입고 있었다”며 “다 걔네들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고노동자 정태훈(39)씨는 지난 27일 크레인 위 계단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밧줄로 몸을 묶고 앉아 있었다. 그 곳에서 동료들이 끌려나가는 걸 지켜봤다. 그도 “직원들 사지를 들고 끌고 나간 사람들 중에는 우리랑 늘 대치해있던 회사 용역이 끼어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참담했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한진중공업에서 집행관에 의해 이뤄진 ‘퇴거명령’ 집행에 동원된 인력의 절반인 150명은 한진중공업 회사쪽 용역인 씨제이 씨큐리티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지방법원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물리적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지방법원 집행관실 관계자는 28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퇴거명령 집행에 사용된 인력에 대해 “법원에서 정식으로 간 직원 150명과 현장에서 회사쪽 인원 150명이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쪽에 추가로 지시해 동원된 150명은 실제 집행에는 참여하지 않고 혹시나 있을 안전문제에 대비해 뒤에서 집행관들을 보호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로 강제퇴거당한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은 회사 쪽 용역 직원이 집행에도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산지방법원 관계자는 “설사 집행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집행관의 지시에 의해 했다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2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연 ‘한진중공업 노사협의 원천무효 선언’ 기자회견에서 “강제퇴거 집행조치 자체가 원천적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법원의 주문을 살펴보면 △피신청인들은 신청인 회사인 영도조선소에서 퇴거할 것 △집행관은 이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할 것만을 명하고 있다”며 “퇴거명령과 출입금지를 공시할 수 있는 간접강제는 할 수 있지만 용역 등을 동원하는 직접강제를 하기 위해서는 대체집행을 신청하는 또 다른 절차가 필요한데 집행관이 이를 지켰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을 통해 대체집행 절차를 거쳤더라도 해당 회사의 용역을 ‘강제집행’에 동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많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한진중공업은 지난 190여일간 회사가 고용한 용역직원들과 농성중인 노동자들 간 갈등이 심했고, 그 과정에서 상호 충돌도 있었다”며 “집행관이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고 씨제이씨큐리티 직원을 용역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물리적 충돌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강제퇴거 집행에 나선 것으로 매우 부적절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현행 민사집행법에는 집행관이 제3자에게 법원이 민사집행에 관한 직무를 행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3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조항은 없다. 강제 퇴거 등 물리적 충돌이 있을 수 있는 일을 대신 집행하는 사람에 대한 규제조항이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에 대한 강제퇴거 집행이 이뤄질때도 오랜 세월 철거민과 대립해오던 용역회사 직원들이 관행적으로 ‘집행’ 조끼를 입고 퇴거집행에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강제퇴거 집행’이라는 법률적 목적을 달성할 때는 가급적 충돌이 없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현행법에서는 그런 면이 전혀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