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맷돌(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칼 폴라니의 관점

 최근 이제야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의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홍기빈 옮김, 책세상)을 읽었다.  

 폴라니는 1940년대에 쓴 글들을 통해, 19세기 말 시장이 정치적으로 규제를 받는 상태에서 아예 정치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자기 조정을 바탕으로 한 시장이 생겨난 것이 인류의 재앙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자기 조정 시장이 생겨나 사회를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으로 제도적으로 분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해서 분리된 경제 영역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던 시장이 경제활동 전반을 지배·규정하는 것으로 격상되고, 무수히 많은 시장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총체적 시장을 형성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모든 사회적인 가치의 생산을 판매와 구매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게 됨으로써 상품이 될 수 없는 노동·토지·화폐마저 상품으로 만들어 인간 삶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위협하게 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노동을 제반 인간 활동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하고, 토지는 자연 전체를 일컫는 다른 이름일 뿐이며,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일 뿐이기 때문에 본질상 상품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현실의 시장에서 노동·토지·화폐가 상품으로 묘사되고 실제로 거래되는데, 실은 이 세 가지 상품은 전적으로 허구적인 상품이라는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시장이 자기 조정의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품 허구의 체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 이후 사회는 상품 허구가 사회 전체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조직 원리를 제공하고, 그 조직 원리가 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에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 시장 메커니즘이 현실 세계에서 상품 허구의 원칙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폴라니는 이러한 자기 조정의 시장에 내재된 재난에 맞서 사회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폴라니는 19세기가 끝날 무렵 보통선거가 보편화됨으로써 노동 계급이 국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도 그 일환으로 본다. 그래서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한쪽에서는 정부와 국가를 권력 거점으로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경제와 산업을 권력의 거점으로 만듦으로써 권력을 둘러싸고서 사회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2. 21세기 악마의 맷돌의 위기

 폴라니는 상품 허구의 원칙에 입각한 자기 조정 시장을 그 속에 모든 인간의 삶과 가치를 집어넣어 분쇄해 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라고 말한다.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오늘날 전 세계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탈규제’, ‘자유무역’ 등을 내세운 가운데 폴라니가 말하는 ‘악마의 맷돌’을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 동일 실시간이라는 어처구니를 통해 훨씬 더 높은 속도로 돌리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21세기 ‘악마의 맷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자가 엔진을 달아 현기증 나게 돌아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를 담당하는 ‘영웅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은 물론이고, 개별 기업이나 국민국가나 정부마저 이 ‘악마의 맷돌’ 속에서 갈아엎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된 악마의 맷돌’이라 할 수밖에 없는 21세기 이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목도하면서 전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1930년대에 진행된 파시즘과 전쟁이 그 귀결로서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에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더블 딥의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악마의 맷돌’이 크게 삐거덕거리면서 전체가 와해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이다. 폴라니에 따르면, 자기 조정 시장을 통해 경제 영역이 정치 영역과 분리되면서 동시에 경제 영역이 정치 영역을 장악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는 시장이 사회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악마의 맷돌’이 갑자기 멈추면서 와해된다는 것은 세계 전체의 사회적 삶의 영역 전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대적인 공포, 마치 일본의 원전 폭파와 같은 직접적인 공포를 훨씬 능가하는 대대적인 공포가 세계 전체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8년의 위기에 이어 계속되어 온 경기부양책으로도 그다지 큰 효과가 없자 이번 9월 9일에 또 4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는 자기 조정 시장이 얼마나 근본적으로 허구인가를 여실히 드러낼 뿐만 아니라, 한번 속도를 내기 시작한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이 계속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어떻게 정치를 비롯한 사회의 전 영역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가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3. 악마의 맷돌 속 한반도

 문제는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이 ‘세계화 된 악마의 맷돌’이 묘하게도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거센 파찰음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외적으로 이 파찰음은 분명 한반도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국내의 정치에서 ‘복지’가 사회정치적인 이슈로 정확하게 자리매김 된다는 것이 과연 더 이상 자기 조정 시장에만 삶을 맡겨놓을 수 없다고 하는 근본적인 성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는 ‘자본주의 4.0’처럼 자기 조정 시장의 ‘악마의 맷돌’이 크게 삐걱거리는 것에 대한 기계적인 수리에 의한 것인지를 지금으로서는 그 귀결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세계 전반적인 추세를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자기 조정 시장은 이미 마치 절대적인 존재인 양 자리를 잡고 있어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만큼이나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역시 ‘절대적인 진리’인 양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 ‘복지 이슈화’의 기회를 자기 조정 시장의 ‘악마의 맷돌’에 저항하는 강력한 장치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으로부터의 인간 삶의 해방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우리가 ‘시장으로부터의 인간 삶의 해방구’를 확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최근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여실히 확인했다. 이 청문회에서 특히 조남호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비인격적인 기계성을 통해 자기 조정 시장이라는 ‘세계화된 악마의 맷돌’이 얼마나 강고하고 무서운가를, 그 ‘악마의 맷돌’이 돌아가는 데 노동에 관련된 법률들이 얼마나 크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라지고 없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 스스로 돌아가는 ‘악마의 맷돌’에 삶을 의존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복지 이슈화’를 어떻게든 인간 삶의 해방구를 마련하는 쪽으로 끌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그런데 ‘복지 이슈화’를 정확하게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기에는 주변 상황이 너무 힘겹게 돌아가고 있다. ‘한미 FTA의 국회 비준’에 대한 찬반의 논의 틀이 ‘절대적 존재인 악마의 맷돌’을 근본적으로 문제로 삼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찬성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중국 중 누가 이 ‘악마의 맷돌’의 어처구니를 장악할 것인가를 놓고서 대대적인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한반도 내의 남북의 분단 문제가 이명박 정권 들어 크게 교착됨으로써 미중 간의 어처구니 장악 신경전을 위한 일종의 돌쩌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한 일본은 묘하게도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에 대해 영토 분쟁을 계속 재생산해 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평화헌법 9조를 어떻게든 폐지 내지는 대폭 개정하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이 역시 동아시아 권역에서의 자기 조정 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투쟁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군사력을 내세운 영토적인 제국주의에서 경제력을 내세운 순수 시장적인 제국주의로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래서 법적·형식적으로는 제국주의적 대외관계를 벗어났다고는 하나, 실질에 있어서는 자국의 경제 영역의 확대를 위해 여전히 정치군사력에 입각한 무력경쟁이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서, 특히 한반도의 남북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격발되고 있는 것이다.

4.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모든 대내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무슨 마술적인 해법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철저히 상식에 입각한 ‘이상 아닌 이상’을 모든 정책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시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경제 성장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활동하기 위해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격을 갖추는 것은 즉 인격을 갖추는 것은 의식주의 욕구를 더 많이 더 과시적으로 경쟁적으로 충족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일 수밖에 없는 의식주의 욕구를 넘어서서 장구한 세월을 통해 인류가 남겨놓은 사회문화적·인문예술적인 가치들을 함께 향유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유토피아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비록 억압된 형태긴 하나 이미 늘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 하버마스(Ürgen Habermas, 1929- )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이는 생활세계를 사회적 삶의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고, 폴라니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이는 전인격적인 사회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버마스의 관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하버마스는 폴라니의 위 글보다 약 40년 뒤 80년대에 쓴 『의사소통행위이론: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을 위하여』(장춘익 옮김, 나남)에서 나름의 사회역사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하버마스는 흔히 말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를 체계이자 동시에 생활세계로 파악한다. 그러면서 하버마스는 체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시장과 국가를 들고, 시장은 화폐를 매체로 해서 작동하고 국가는 권력을 매체로 해서 작동한다고 말한다. 그런 반면, 생활세계를 상호이해에 입각한 의사소통적인 것으로 보면서 그 상징적인 구조들로 비축된 지식으로서의 문화, 소속과 연대를 가능케 하는 질서인 사회 그리고 언어와 행위 능력을 갖춘 인간성 등 세 가지를 든다. 중요한 것은 하버마스가 제시하는 체계와 생활세계의 관계이다. 시장과 국가라고 하는 체계가 그것들이 생겨날 수 있는 바탕인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는 것이 요체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생활세계를 화폐와 권력을 매체로 작동하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상호이해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공의 장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가 시장과 국가를 대립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단계에서 글을 썼다면, 하버마스는 시장의 자본을 중심으로 국가가 결합된 역사적인 단계에서 글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체계가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는 것은 폴라니가 자기 조정 시장이 ‘악마의 맷돌’이 되어 일체의 인간 삶을 갈아엎어 상품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더욱 철학적인 개념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하버마스가 국가기관들이 폴라니가 말한 ‘악마의 맷돌’을 돌리는 데 대거 동원된다는 것을 더욱 심각하게 표현함으로써 폴라니에 비해 더 비관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할 것이다. 폴라니는 인간의 사회적 삶이 결코 ‘악마의 맷돌’ 속으로 순응적으로 완전히 포섭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그것에 저항하는 계급적인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국가와 정부에 대한 계급적인 장악 여부에 따라 나름의 해방 가능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볼 때, 그동안 국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근대화 극복에 관한 사회이론이라든가 이와 맞물려 있으면서 동아시아의 연대와 평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론이 갖는 함의는 크다 할 것이다. 다만, 동아시아론이 동아시아 중심의 자기 조정 시장이라고 하는 ‘악마의 맷돌’을 전제로 한 것일 경우에는 연대도 평화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말하자면, 지역주의에 의거한 블록화라고 하는 세계화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명히 ‘세계화 된 악마의 맷돌’이 결정적인 위기에 처할 때,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과 그에 따른 전쟁이 예고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대대적인 재난을 피하기 위한 국가적인 정책을 도모하는 데 국내외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를 위한 강정 마을의 투쟁은 분명히 한미일 연합의 ‘악마의 맷돌’을 강화하기 위한 군사전략에 대한 투쟁이다. 이에 대한 투쟁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철저히 억압되는 광경을 보면서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우려를 금치 못하는 까닭이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에 우리는 이미 시작된 내년의 선거 국면을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정말이지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왜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어떤 근본적인 정책들을 마련해 실천해야 하는가를 잘 느끼고 알고 있는 지혜롭고 탁월한 지도자, ‘악마의 맷돌’을 더 잘 돌리고자 하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악마의 맷돌’이 낳는 재난을 벗어나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평화를 위한 연대, 연대를 통한 공감의 모듬살이를 구축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구럼비 해안에 도사린 거대한 괴물(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사무처장)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나는 지금 경찰서 유치장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귀포경찰서는 지난 1일 나를 포함한 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해놓은 상태다.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하고 경찰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혐의다. 현재 정부당국과 해군은 강정마을 구럼비 해안을 철조망 펜스와 경찰병력으로 봉쇄중이다. 이로써 400여 년 동안 이 마을 주민들의 삶의 배경이 되어왔던 구럼비의 바다는 처음으로 주민과 마을로부터 단절되었다.

 대검찰청은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이른바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체포 작전과 공권력을 통한 강제진압에 나서고 있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강정마을이 제주 해군기지 후보지로 결정된 지난 2007년 5월 이래, 주민들과 제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단 한 차례도 불법적인 집회나 시위 등을 계획해 본 적도, 실행해 본 적도 없다. 오직 해군기지 사업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바로잡을 합리적 해결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해왔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민의 해군기지 건설 반대여론은, 기지 유치결정이 이뤄진 2007년 5월을 기점으로 더욱 확대되어왔다.

 이는 당시 결정의 부당성과 해군기지 사업 추진이 정당성을 결여되어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2007년 이후 도내 언론사들에 의한 매시기별 여론조사 결과는 최소한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찬반을 넘어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고 있음을 공히 지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해군기지 건설계획 자체의 폐기 여론도 급격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구럼비 해안의 아름다움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국가적 사안으로까지 떠오르게 된 배경에는 올레7코스를 찾는 탐방객들의 구전효과와 생명평화결사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비폭력저항에 대한 신념과 노력, 시간을 견디는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반대를 앞세운 무리한 주장과 폭력적 방식의 저항으로 임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이런 점에서 당국이 ‘폭력시위’, ‘공권력 도전’ 운운하며 이 문제를 공안사건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진압을 통해 해결에 나서겠다는 것은, 국민적 저항만 더욱 키우는 일이다.

 지난 9월 3일, 평화비행기․평화버스 행사에는 바로 전날 이뤄진 공권력 작전의 삼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2천여 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다. 이 수치는 섬이라는 제주의 지리적 특성을 생각할 때 2만명 이상의 효과를 갖는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무력화를 위해 사람들을 구속하고 손해배상청구와 같은 방법으로 발을 묶으려하고, 구럼비 해안을 물리력으로 통제한다고 한들, 평화에 대한 열망과 부정의에 대한 저항의 흐름을 잠재울 수 있을까?

 강정마을 구럼비의 자연은, 보여지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400여년 계속돼 온 이곳 주민들의 삶을 반영한다. 구럼비 자체는 이 마을 공동체의 역사이자 축적된 삶의 양식인 것이다. 구럼비 해안의 자연 그대로의 정경은 이곳 주민들 또한 이곳의 자연과 얼마나 평화적으로 관계해왔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들을 쏟아 붓고, 6만평 이상을 매립하는 기지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어떤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백보 양보해 설령, 해군기지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아홉 종의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연산호 군락지과 붉은발말똥게와 같은 다양한 생명의 보물창고이자 아름다운 경관지인 이곳을 잘 보전하는 것이 국가안보에 경쟁력에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까?


구속 중인 고유기 선생의 편지를 제주참여환경연대에서 보내주셨습니다.

 강정마을에 추진되는 해군기지 건설문제는 새만금-부안-평택에 이어서, 국가사업의 정당성과 추진방식의 문제를 또다시 제기한다. 설득과 대화의 노력보다는 오직 국가사업이라는 이유로 ‘묻지마’ 추진에 나서고, 이에 대한 반대는 ‘종북좌파’로 매도하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는 것이, 이른바 국책사업 추진과정이 보여준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의 엄호와 이를 바탕으로 한 공안논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지금처럼 열려진 세상에서는 국가논리가 권위로서 작동할 공간은 협소하다. 이제, ‘국책사업’도 ‘국가안보’도 국민들의 광장으로 내려와야 한다. 반대와 이견(異見)을 감내하며 소통에 나서야한다. 그것이 진짜 효율성 있는 국가사업을 하는 방법이다. 무리한 추진논리와 방식으로 벌써 10년째 표류하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느 가을 오후, 높은 하늘을 배 위에 올려놓고 구럼비 바위에 팔베개하고 누워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가을의 파란하늘과 맞닿은 바다 지평선 아래로 산호들은 날마다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실은 수백 년 동안의 진실이었는데, 해군기지라는 거대한 괴물은 이 엄청난 진실을 기억과 그것으로부터 상상의 감옥으로 밀어넣으려 하고 있다. 그 수백년의 진실을, 다가올 가을 어느 날의 오후의 현실로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 감옥의 창살쯤이야 차라리 함께 산길을 넘는 벗일 뿐이다.


제주 강정마을 구속 활동가들과 함께해주세요

 설마 했습니다. 굳이 무리수를 써가면서까지 밀어붙일 일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1천명이 넘는 주민들 중에서 겨우 80여명만 찬성했던, 그래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없는 사업이니까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비록 시늉이라도 주민들과 무릎을 맞대고 대화도 하고, ‘법의 지배’라는 명목을 얻기 위해서라도 좀 더 진중한 태도를 보여줄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과감했고, 예상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었습니다. 8월 24일 제주 강정마을회 강동균 회장 등을 체포하고, 3명을 구속한 것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대표이며 협상대표인 마을회장을 구속하는 게 어디 있냐고 따질 겨를도 없이, 9월 2일엔 경찰력을 투입했습니다. 40명 가까운 시민들을 체포했고,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센터장 등 4명을 구속했습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활동 때문에 지금까지 11명이 구속되었고, 지금도 구금중인 사람은 7명입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불구속 의견이었는데 검찰이 구속하라고 지휘했다거나, 이번 사안을 제주지검이 아니라 대검찰청에서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법률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구속이 악용된 사례입니다. 형사처벌이 국가가 행사하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 집권에 성공한 특정 정파가 반대자를 탄압하기 위해 악용하는 ‘과감한 선제공격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지금껏 구금중인 7명의 마을주민, 활동가들이 했다는 불법행위는 심각한 범죄행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4년 넘게 정말 놀라운 인내력을 발휘하며 해군기지 반대활동을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진행해왔습니다. 이들의 물리력 행사 때문에 상해를 입은 경찰관은 단 한명도 없으며, 어떤 시설도 파괴한 적이 없었습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참고 또 참으며, 오로지 잘못된 정책의 시정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까지 합세해 이들을 구속한 것은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보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해서 이들은 가장 전형적인 의미의 양심수가 틀림없습니다.  

 해군기지 반대활동을 하다 구속된 이들은 우리에게, 또 정부에 묻습니다. 왜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되어야 하는지, ‘대양해군’이라는 네 글자 구호 말고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해군기지가 더 필요하다면 그 지역이 왜 하필 강정마을인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여 국가공동체가 얻을 이익은 도대체 무엇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아무런 책임 있는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국민이 위임했을 뿐인, 공권력의 힘과 매우 형식적인 편협한 법 논리만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비정함은 법의 지배도 뭣도 아닙니다. 얼마든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4년여의 한결같은 반대운동으로 미뤄볼 때, 도망갈 염려가 전혀 없는데도 국가는 체포와 구속을 강행했습니다.  

 4년 넘는 해군기지 반대 활동 때문에 생계를 돌보지도 못하고 온 몸을 던져 지역 공동체와 생태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대화와 소통, 그리고 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좀 더 완성도 높은 안전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믿고 실천한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장 구속된 분들이 겪는 곤란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이런 상황 앞에서 그저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제주는 육지에서 한참 떨어진 섬이지만 상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사람들에게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강정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과 연대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평화적인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지지하고 부당한 공권력 투입과 무차별적인 형사처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제주 분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와 제주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인권연대는 앞으로 2주 동안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활동으로 구속된 분들을 돕기 위한 모금을 진행합니다. 계좌는 우리은행 1005-801-523022(예금주: 인권연대)입니다. 모아주신 귀한 성금은 구속된 분들에게 직접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액수가 많지 않아도 됩니다. 얼마든 소중한 마음으로 여기겠습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보여주실 때입니다. 저희는 잘 모아서 전달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인권연대 올림


지난 8월 24일 오후 제주해군기지 건설 공사 준비작업을 저지하다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어 구속된 강동균 회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귀포경찰서는 지난 9월 2일 오전 9시 서귀포시 강정마을 회관에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유기 집행위원장을 연행했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지난 9월 2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경찰이 전격 투입된 가운데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센터장이 연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경찰이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이 경찰관의 소신있는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고 판단, 전면 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범죄를 예지해 적극 차단하는 이른바 한국형 ‘프리 크라임(pre-crime)’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경찰의 권한 비대화와 이에 따른 인권 침해 소지 우려가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경찰청의 한 주요 관계자는 최근 한 대학에 경직법 개정을 위한 용역을 의뢰하는 등 법 전면 개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5일 밝혔다. 경찰은 이와 관련, 범죄 이외의 모든 경찰 활동에 대해서도 예방 조치를 강화한다는 의미로 ‘문제 해결사’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들고 나왔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아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경찰이 범죄 척결자에서 문제 해결사로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경직법상에도 불심 건문, 보호 조치, 위험 발생의 방지, 범죄의 예방과 제지 등의 항목이 있지만 실제 법 집행 시에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경직법 개정은 현장에서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시민들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소지가 큰 것으로 위헌적이고 반인권적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뒤 “이는 영장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최근 지속적으로 권한을 확대하고 있는데, 불심 검문의 경우만 보더라도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경직법 개정 이유로 현행 경직법상 ‘위험 방지’에 대한 개념이 불명확한 점을 들고 있다. 경찰은 실례로 지난 2008년 강원 양구에서 발생한 ‘묻지 마 살인 사건’을 들고 있다.

당시 범인 이모(36)씨는 사건 발생 6시간 전 “다 죽여 버릴 거야”라고 외치며 이상 행동을 했고 경찰은 검문을 통해 이런 이씨를 붙잡았다. 그러나 경찰은 보호 조치 대신 부모에게 인계하는 데 그쳤고, 결국 이씨는 산책로에서 운동 중이던 10대 소녀를 아무런 이유 없이 흉기로 십여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곽대경(경찰행정학) 동국대 교수는 “경찰 활동의 경우 공공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자율권은 어느 정도 침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결국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음성원·윤정아기자 esw@munhwa.com

<인권 투어 2탄 -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민중종교의 산실을 찾아>
 

 회원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이번 가을에도 '인권 투어'를 진행합니다.

 이번 인권투어 역시 종교학자인 강남대 이찬수 교수가 답사 길라잡이가 되어, 불교와 기독교의 풍부한 세계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인권연대 회원은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며, 아래 신청하기를 통해 내용 등을 적으시고 신청하시면 됩니다. 10월에 진행할 인권 투어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인권연대 인권 투어 2탄

▷ 일시 : 2011년 10월 22일(토) 오전 8시
▷ 모이는 곳 :
3호선 양재역 8번 출구 서초구청 앞 (전세버스 대기)
▷ 찾아갈 곳 :
전북 김제 금산사와 정읍 동학혁명전적지 일대
▷ 참가비용 :
1인당 4만원(인권연대 회원은 20% 할인으로 3만2천원)
                어린이, 청소년은 1인당 2만5천원/ 전세버스 대여료, 점심, 입장료 포함

▷ 신청마감 : 10월 14일(금)까지(선착순 마감, 입금까지 하셔야 신청이 완료됩니다)
▷ 신청자격 : 인권연대 회원이면 누구나
▷ 문의 : 인권연대 사무국(02-749-9004)
, hrights@chol.com

▷ 일정 : 서울 출발(8시) - 김제 모악산 금산사 도착(11시) - 점심식사(12시) - 정읍 동학혁명탑 - 고부 관아터 - 전봉준 고택 - 황토현 전적지 - 말목장터 - 만석보터 - 백산(~ 오후 5시) - 서울 도착(오후 8시 예정)

 * 인권연대 인권 투어 신청하기를 작성하신 다음 국민은행 491001-01-183310(인권연대)로 참가비를 입금하시면 됩니다.

 - 인권연대 인권 투어 신청하기 - ☜ 클릭


우리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본 까닭(장경욱 위원)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7, 8월을 소위 왕재산 지하당 사건 변호단 활동으로 국가정보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였다. 소위 왕재산 사건은 검찰총장님께서 종북좌익세력 척결까지 언급하게 되신 바로 그 사건이다.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목표로 한 왕재산 사건 검찰 수사가 이번주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번 주말 잠깐이라도 여름 휴가를 다녀올 수 있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검찰 송치 이후 우리 변호인들보다도 훨씬 먼저 여름 휴가들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함께 동거동락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참으로 유치한 허깨비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른 기분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에게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감동과 함께 국가정보원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야만적 수사를 물리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국가정보원의 소위 왕재산 수사 과정에서 변호인들에 대한 몸수색, 가방검색 논란으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변호인의 몸수색, 가방검색을 요구했다. 처음부터 모든 변호인에 대하여 몸수색(문형 보안검색대의 통과), 가방수색(X-ray 소지품 검사)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으로 처음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을 때 몸수색, 가방수색을 전혀 요구받지 않고 당시 불구속 피의자들의 국가정보원 조사 시 신문에 참여하였다. 당시 구금 상태의 피의자를 접견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가지고 들어간 아이폰으로 열심히 뉴스기사를 읽어보기까지 하였다. 더욱이 국가정보원과 변호인들 사이에 몸수색, 가방검색 시비가 벌어진 이후에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 불구속 피의자를 대동하고 들어가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고 돌아왔다. 몸수색, 가방수색을 전혀 받지 않고 말이다. 아마도 국가정보원 출입 경험이 많은 변호인이라 예우 차원에서 특별히 시비를 걸지 않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어느날 갑자기 변호인의 몸수색, 가방수색을 이유로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구속 피의자들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그 과정에서 구속 피의자들은 변호인의 조력을 전혀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렸다. 매일 매일의 조사 상황을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지켜보는 가족들은 애간장이 녹았다. 이에 우리 변호인들은 국가정보원 수사관들과 몇 시간 동안의 설왕설래를 거듭하는 가운데 일정한 양보(가져온 가방을 도로 놓고 와서 문형검색대만을 통과하거나)와 합의(가방 검색은 허용하지 않고 문형검색대만을 통과하기만 하고 ‘삐’소리가 나더라도 핸드스캐너로 사후 조사하지 않기로 사전에 합의하거나)를 거쳐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가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피의자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정보원은 변호인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변호인들이 제출한 피의자 접견신청서, 피의자조사 참여 신청서 등을 통해 변호인들이 오로지 피의자들의 방어권 행사에 조력을 하기 위하여 피의자를 접견하고 피의자의 조사에 참여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을 방문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피의자들의 지위가 얼마나 형편이 없는지 또한 잘 알고 있다. 피의자들에게 차지하는 변호인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리라. 형사소송절차에서 특히 최초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고 방어적 위치에 있다. 바로 이때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를 감시하고 피의자가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구원자) 같은 존재가 변호인이다. 이들 변호인들이 수사절차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는 불가능하다.

수사단계에서의 피의자 지위는 급히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와 같은 처지라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궁박한 처지의 변호인과 피의자들을 상대로 보안시설 출입절차는 변호인 접견 및 피의자조사 참여권을 제한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출입절차를 거치면 되는데 변호인들이 이를 거부하여 국가정보원 청사 내로 출입하지 못한 것일뿐 자신들이 변호인의 접견과 피의자조사 참여를 불허한 적이 없단다. 출입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변호인들로 인하여 국가정보원 건물이 테러를 당하면 책임질 것이냐고 언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내가 묻는다. 그러면 처음에 아무런 검신, 검색 없이 왜 출입을 허용하였느냐고.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실수라고 답한다. 검신, 검색 시비가 붙은 이후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 출입할 때는 왜 검신, 검색을 하지 않았느냐고. 국가정보원 인천지부에는 문형검색대와 X-ray 소지품 검사대가 없어서란다. 내가 반문한다. 국가정보원 인천지부 역시 처음에는 핸드스캐너로 몸수색, 가방수색을 요구하다 그냥 변호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느냐고. 갑자기 태도를 돌변한다. 핸드 스캐너로 내 몸과 가방을 수색했단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 그들이 출입절차를 요구하는 것은 보안시설의 방호목적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일관성 없는 출입절차를 들이대며 변호인들의 조력권을 위축시켜 변호인들을 길들이고자 함이다. 국가정보원 청사 출입을 안내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출입과정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왜냐고 묻는다. 신원조회를 받았기 때문이란다. 이런 논란이 약점으로 지적되어 부담이 되었는지 국가정보원 내규를 개정해 일정한 직급까지는 청사 출입 시 보안검색을 받는 방향으로 규정을 강화하겠단다. 변호인 신분을 확인하고, 변호인들이 오로지 변호권 행사 차원에서 방문한 것을 알면서도 변호인들에게 몸수색, 가방수색을 요구하는 것은 변호인들이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변호권 행사를 방해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변호인의 접견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려 위법한 출입절차를 전면적으로 뿌리치지 못하고 일정한 양보와 합의를 거쳐 피의자를 접견할 수밖에 없었던 변호인들의 궁박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조차 변호인들의 일관성 없음을 탓하며 국가정보원은 수사를 방해하는 변호권 남용 운운한다. 변호인들이 구속 피의자를 접견할 경우에는 출입보안절차를 준수하다가도 불구속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 신문에 참여할 경우에는 일단 피의자와 함께 국가정보원 안내실까지는 왔다가 보안검색대 통과를 문제삼아 귀가함으로써 소환 불응의 경우 체포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여 출석불응에 대한 정당한 이유로 삼기 위하여 검색대 통과문제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조작과 날조의 대명사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의 후신다운 분석평이다. 나무아미관세음보살!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사진 출처 - 씨네21

 이렇게 변호인의 조력이 부재한 틈을 타 국가정보원은 구속 피의자들을 상대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추태를 부렸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불러서는 수십명의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은 역할을 분담하여서는 오로지 자백을 강요할 목적으로 피의자가 겁을 먹도록 어르고 모욕하거나 회유하였다. 조사 시 눈을 감는다고 욕하고, 몸을 스트레칭하였다고 위협하고,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고 팔로 턱을 괴거나 엎드렸다고 반말하고 야단쳤다. 조사 시 수사관에 대한 무례를 이유로 피의자들을 들들 볶아대고 닦달하였다. 옛날 같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실토하게 했을 것이란다. 그 옛날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에 근무하였다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경력 소개에도 바짝 쫄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위협과 농간에 피의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겹쌓여 지쳐 나갔다. 휴식 없이 숨 돌릴 틈 없이 수사관들에게 하루 종일 계속하여 시달리다 보면 피의자들은 불안감에 동요하고 조금의 휴식과 이완을 위해 수사관들의 요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라도 수사관들에게 사정할 수밖에 없고 악역 담당의 수사관들의 위협과 모욕에 시달리다 담배 한 가치 건네주며 친절하고 부드럽게 말을 거는 수사관들이 천국에서 온 구세주로 다가서는 비정상적 정신공황상태가 되고 만다. 그 수사관들의 시혜에 보은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변호사가 국가정보원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느냐, 변호사가 진술거부하면 모든 증거가 휴지조각이 되고 무죄가 될 거라고 말하더냐, 변호사가 검색대 통과 핑계대고 들어오지도 않는데 피의자를 위해서 수임료 받고 해 주는게 뭐냐, 변호사가 당신 이용하는 거다, 자기들 이름이나 알리려는 것이지 피의자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변호사가 형을 대신 살아 주냐 형량이 두려우면 차라리 우리에게 협조해라 등 피의자와 변호인을 이간질하는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말이 혹 진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탈출구가 있었다. 이번 여름 기막힌 현실에서 고난을 겪은 이들이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를 끝내 견뎌내고 당당히 자존심을 지키고 회복하는데 일등공신이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동화 이야기이다. 인간성을 고양시키고 인생관을 새롭게 부흥시켜 준 암탉 ‘잎싹’의 얘기를 들려주며 국가정보원의 비인간적 수사에 맞서 ‘잎싹’을 떠올리며 묵언명상을 하도록 권유하였다. 지리한 피의자 조사에 참여하여 할 일이 따로 없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고생담을 떠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잎싹’을 떠올리며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하였다. 이를 피의자들과 함께 실천하였다. 왕재산 사건 수사 와중에 마침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되었다. 우리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러 갔다. 주인공 ‘잎싹’이 마냥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헌신하고 싶어서였다. 검찰총장에게 한마디 전해주고 싶다.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외치기 전에 ‘마당을 나온 암탉’ 동화책을 꼭 읽고 영화 또한 꼭 단체관람 하시라. 거기에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검찰의 자존심과 신뢰를 회복할 중요한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왕재산 사건 기소에 즈음하여 곧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외치는 무리들이 또 한바탕 난리들을 치겠구나. 허깨비들의 한바탕 난리는 금방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한다. 주문을 왼다. 아멘, 나무관세음보살!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국민인권은…상호 견제 필요  
서울변회 심포지엄 개최, 검찰측은 사흘전 불참 통보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오욱환)는 29일 오후 2시 변호사회관 지하1층 대회의실에서 '검·경 수사권조정 과정에서 본 국민의 인권'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소속 강형래 경정은 "경찰은 수사주체에 걸맞도록 책임수사체제 마련 등 수사제도 개선에 주력할 것"이라며 "수사권 조정을 통해 국민은 인권을 보장 받고 이중조사와 처리지연 등 불편을 해소,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득환 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이사는 "검찰의 개별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나 수사에의 관여를 필요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시키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의 범위와 한계 등에 관해 대통령령에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김 이사는 또 "검찰 역시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수사의 속성상 경찰의 수사권에 대한 검찰의 감독과 견제가 필요하듯이, 검찰의 수사기관에 대한 감독과 견제 역시 필요하므로 대등한 제3의 기관에 의한 상호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서보학 교수는 검찰은 수사에서 손을 떼고 기소권을 가지며, 경찰의 수사를 사후 통제하는 검사제도의 본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검찰의 권한을 나누고 합리적인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 하에 끌고 들어오는 것은 검찰 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줄여 부당한 수사와 기소로 인한 인권침해의 피해를 줄이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상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기획팀장은 형사소송법에 경찰수사의 주체성에 대해 법적 근거를 명시한 것은 현실을 반영한 당연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정 팀장은 다만 "인권침해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변호인의 접견 및 신문절차 참여 강화, 수사절차의 의무적 영상녹화 절차가 확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행사에는 강형래 경정과 김득환 이사, 서보학 교수,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등 법조계·경찰·학계·인권단체 등 여러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검찰측에서 참석하기로 했던 이제영 대검 연구관은 행사 사흘전에 불참을 통보해와 그 배경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인권연대 회원모임 31탄] "한겨레 이재성 기자와 함께하는 영화 여행

“군사 기지를 건설해야 하므로 수십 년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은 당장 여길 떠나세요!!” 

 혹시, 방금 당신 제주도 강정 마을을 떠올리셨나요?
 이번 달 함께 볼 김준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길>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아! 이런… 영화는 2009년에 만들어진 ‘평택 대추리’ 이야기로서, 70년간 농사만 지으며 살던 노인이 쫓겨나야만 했던 처절한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평화를 담아냈습니다. 그런데 2011년 제주도 강정 마을과 너무 닮았습니다.  몇 년 전 영화임에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 줄 것입니다. 

 그 ‘길’ 함께 걸어보실래요?

  영화 정보

INFORMATION
영어제목 : Old Man and the Land

감독 : 김준호

주연 : 방효태

제작사 : 푸른영상
배급사 :
시네마 달

제작국가 : 한국

제작년도 : 2008년
상영시간 : 73분
장르 :
 다큐멘터리

SYNOPSYS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올까요

 함께 있어 더욱 아름다웠던 대추리의 봄

 2006년 5월 4일 정부는 대추리에 공권력을 투압해 대추초등학교를 무너뜨리고 볍씨가 뿌려진 논에 철조망을 쳤다. 미군기지 확장 공사를 위해서였다. 평생을 소중하게 가꿔온 ‘자식같은’ 논밭이 바싹바싹 말라갈 때, 방효태 할아버지의 속도 함께 타들어갔다. 씨 뿌리고 농사 짓는 게 ‘죄’가 되버린 세상.

 하지만 할아버지는 “논은 자식보다 소중한 것”이라며 논으로 가기 위한 길을 만들기 시작하고, 그 곳엔 ‘평화’의 힘을 믿는 마을 주민들과 대추리 지킴이들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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