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아/ 버마NLD 부총무


 우리는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2년 동안 버마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매달 첫째 주 화요일에는 한남동에 있는 버마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나머지 화요일에는 종각역에서 한국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프리 버마 캠페인(한국)을 100회까지 진행했다.  

 2009년에 중단되었던 프리 버마 캠페인은 2010년 3월 부터 매달 한 차례, 마지막 주 화요일에 버마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 버마 내에 버마 군부는 선거법, 등록법 등의 법들을 발표했습니다. 버마 군부는 버마의 민주화 보다 군부를 위해 군대가 계속 통치 할 수 있도록 불공평적인 법들을 발표하고 있다.

 버마 국민들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도 군부의 잘못된 정치와 경제통제로 인해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으며 자유와 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소수 민족들도 평등하게 살고 싶지만 강제 노동, 강제 이주, 방화, 강간 등의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버마사람들은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마 군부는 국제 사회의 요청과 항의들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버마 국민들을 고통속으로 내몰고 있다. 각 나라에 있는 버마 군부의 대사관들은 자국민들을 도와주지는 않고 세금으로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있고, 버마 군부는 해외 기업 투자를 받아서 국민들에게는 쓰지 않고 군부 지도자들과 가까운 세력들만 배부르게 먹고 있다.

 3월 30일, 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이 발언을 하고 참가자들이 함께 “프리 버마”라는 구호를 외치자 현장에 있던 경찰이 해산하라며 1차 경고를 했다. 무서웠다. 아주 무서웠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프리 버마라고 빨리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우리는 경찰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경찰들도 외교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더라도 의무 때문에 한다고 생각한다. 버마 대사와 공무원들이 버마 민주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경찰관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버마 민주화가 성공하면 한국 경찰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그렇지만 버마 군부 때문에 한국에 있는 우리 버마 사람들은 대사관 앞에서 “프리 버마”라고 외치기가 힘들다. 우리는 한국처럼 잘 사고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

 대한민국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있고 유엔 사무총장이 있는 나라라고 우리 마음 속에 항상 생각하고 있다.

* 서툰 한국말이지만 조모아씨 글의 원문 내용을 살리기 위해서 따로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유일신 잘못 해석, 예수의 ‘보편적 사랑’ 놓쳐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 기독교도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2005년 인구총조사에서 전체 인구 가운데 약 30%가 개신교(18%)나 가톨릭(11%) 교도로 조사돼 있다. 기독교를 한국보다 일찍 도입한 일본에서 같은 시기 기독교 인구 비율이 0.8%(개신교 0.45% + 가톨릭 0.35%)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높은 기독교 인구는 연구대상임에 분명하다.



리영희 프리즘>의 필자로 지난 3일 밤 서울 마포의 아트앤스터디에서 열린 연속강연에 나온 이찬수 목사(종교문화연구원 원장·사진)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후에 분단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것에는 더 이상 기대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새로운 것은 대체로 서양, 특히 미국 문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믿으면 미국처럼 부강해질 거라고 생각했지요.”

이 목사는 한국 기독교의 비극이 여기서 싹텄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 특히 개신교는 미국의 보수적 근본주의 신앙이었다는 것이다. 불상 앞에서 허리 굽혀 절을 했다는 이유로 강남대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뒤 복직투쟁과 종교대화 운동을 벌여온 이 목사는 일찍이 한국 기독교의 본질을 꿰뚫은 이로 리영희 선생을 꼽았다.

리영희는 스스로 종교인이 아니라고 했고, 때로 종교 혐오적인 발언도 했다. 이 목사는 “리영희가 비판한 종교의 90% 이상은 기독교였다”고 했다. 그는 리영희의 기독교 비판은 본말이 전도된 제도 종교에 대한 것이었지 종교성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리영희의 사회비평서인 <스핑크스의 코>(2006)에 종교 관련 발언이 나온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부처의 자비의 가르침과 예수의 사랑의 계율을 정신생활의 지침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 일요일에 예배당이나 성당에 가서 신부나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든가 성경책과 찬송가책을 옆구리에 눈에 드러나게 끼고 다니면서 ‘예수 믿으시오!’를 외치는 식의 ‘종교’라면 그런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 나는 다만 나의 삶에서 성경을 읽고 불경을 읽으면서 석가모니와 예수의 삶을 따르고 싶어할 뿐이다.”(48쪽)

이 목사는 여기서 ‘무신론적이지만 가장 유신론적인’ 리영희 종교관을 읽는다. 이 목사가 리영희를 원용해 비판하는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폐해는 우상숭배와 유일신에 대한 오해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문자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허리 굽혀 불상에 절 하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욕망과 마음을 굽히고 돈에 허리를 굽히는 행위가 사실상 우상숭배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습니다. 또한 유일신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 계시다(無所不在)’라는 뜻인데, 그저 숫자 ‘하나’라고만 여깁니다. 이것은 초등학생 수준의 종교 이해입니다.”

유일신과 관련, 이 목사는 리영희의 군 시절 당시 회고를 인용했다. “최전방에서 축복기도를 하는데 결국 북쪽을 저주하는 식으로 기도하더랍니다. 신은 없는 데가 없는 보편적 존재인데 인간의 욕망 때문에 전쟁을 벌여놓고는 신의 이름으로 국군만 축복하고, 북쪽 사람들은 저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겁니다. 리영희의 이 말은 종교학자들이 해온 신학 연구의 정곡을 찌른 겁니다.”

문장과 강연으로 독재에 대항해 험난한 길을 걸으면서도 예수나 붓다의 마음도 동시에 살아 내려고 했던 지식인. 교도의 수는 많지만 종교가 진정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리영희는 성찰을 촉구하는 존재이다.

[ 출처 : 경향신문 ]


인권콘서트 HUMAN 일곱 번째 이야기 ‘강산에’ - 'Acoustic Rainbow'

◎ 공연장 : 홍대 브이홀  ☞ 약도 클릭하기  (02-338-0957)
◎ 공연일시 : 2010년 4월 23일(금) 오후 8시
◎ 주최 : (주)다음기획, 인권연대
◎ 주관 : (주)다음기획, (주)P당
◎ 티켓가격 : 33,000원 (인권연대 회원의 경우 22,000원의 할인된 가격으로 예매 가능)
◎ 입금계좌 : 우리 1005-801-523022(예금주: 인권연대)

◎ 문의 : 인권연대 02-749-9004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인권 콘서트 'Human' season2

 딱딱하고 어려운 ‘인권’이 아닌 즐겁고 쉬운 ‘인권’을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인권콘서트  ‘HUMAN’

 인권연대가 다음기획과 함께 공동주최하는 인권콘서트 ‘HUMAN’은 ‘뜨거운 감자’와 ‘강산에’의 공연 프로젝트로, 두 팀은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매달 한 번씩 번갈아 ‘인권’에 관련된 이야기로 콘서트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탁현민 한양대 겸임교수의 P당이 주관을 맡아 ‘시즌2’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4월 23일(금) 저녁에 진행하는 인권콘서트 휴먼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인권연대 CMS 회원은 특별한 할인혜택을 드립니다.(2/3 가격에 예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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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3년 소급적용…올해만 300명 더 찬다
법안 국회 통과…시민단체 “법치주의 훼손”
미성년 성폭행범 피해자와 합의해도 처벌
한겨레 이세영 기자 메일보내기
전자발찌 부착이 법 시행 이전 3년까지 소급 적용되고,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더라도 처벌을 받게 된다.

국회는 31일 본회의를 열어 전자발찌 부착을 3년 소급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해 성범죄자 처벌을 크게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 6건을 의결했다. 하지만 일부 야당의원들과 인권단체들은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반인권적인 법안”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처벌을 위주로 한 대책만으로는 제대로 된 성범죄 예방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법’(일명 전자발찌법) 개정안은 이 법이 시행된 시점(2008년 9월1일)을 기준으로 형 집행중이었거나 출소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았던 성범죄자한테도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이들 중 성폭력 범죄를 2회 이상 저질렀거나 13살 미만의 어린이에게 성폭력을 휘둘러 부착 대상이 되는 성범죄자가 올해에만 3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 검찰이 부착을 청구할 수 있는 기준이 낮아지고, 착용기간도 현행 10년에서 30년까지 크게 늘었다.

법안 통과를 주도한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은 “형사법 60년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조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천정배(민주당), 이정희(민노당)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소급입법 금지라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응보·중형주의로 점철된 19세기 형사정책으로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도 “성범죄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적절히 대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전자발찌 소급적용 등 법률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며 “이런 대중영합주의적 방식보다는 훨씬 더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이번에 통과된 ‘형법 개정안’은 어린이 성폭행 살해를 비롯한 흉악범죄에 대해 유기징역의 상한을 기존 15년에서 30년으로, 가중처벌 때의 상한을 25년에서 50년으로 연장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도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를 대부분 처벌할 수 있도록 ‘친고죄’ 조항을 삭제했다. 또 성범죄 피해 어린이나 청소년이 성인(만 20살)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의 진행이 정지된다. 내년부터는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가 19살 미만 자녀를 둔 지역 주민에게 우편으로 고지된다.

김민경 이세영 기자 salmat@hani.co.kr



 그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 장윤미/ 국민대 학생

장윤미/ 국민대 학생

 일주일 전 작업하던 다큐의 촬영이 끝났다. 아니 더 이상 찍을 수 없게 됐다. 이미 다 결정돼 있던 결말이었다. 그가 감옥에 가는 것.

 내가 카메라에 담은 인물은 병역거부자다. 병역거부자라, 사실 ‘병역거부자’라는 수식어를 쉽게 붙이기가 고민된다. 그 인물을 어떤 틀에 딱 가둬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라는 게 낙인 같은 말이긴 하지만 반면에 더없는 의지의 증거가 되기도 하다. 어떤 대의를 가지고 무엇에 저항하여 싸우는 사람들의 이미지다. 하지만 내 카메라에 담긴 그 인물은 기존의 병역거부자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 인물에게서 매력을 느낀 이유이기도 하다. 병역거부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비난받는 일이긴 하지만 또 어떤 집단에서는 영웅으로 인정받는다. 엄청나게 큰 것에 저항하는 투사의 이미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내 욕심이기도 했다.

 병역거부자 기자회견에서 보는, 전쟁에 반대한다거나 국가에 저항한다거나, 그런 몇 줄의 기자회견문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역거부 하는 일이 엄청나게 비장하고 슬픈 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그는 기자회견 대신 열장짜리 소견문을 써서 파티 형식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줬다. 대학신입생 때,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것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고민은 시작된다.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총을 들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군대 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나는 왜 군대를 갈 수 없는지 8년간을 끙끙대며 고민했다. 결국 그는 군복을 입는 것보다는 차라리 죄수복을 입는 게 낫겠다고 마음먹었다. 공부를 했고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언어로 나름 풀어낼 수 있게도 됐다. 이런 나의 문제가 단순히 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엄청 용기 있고 강한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처럼 찌질 하고 약한 사람도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들로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자신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4주간의 군사훈련을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누군가는 총을 만졌을 때 손의 떨림, 그 탄약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들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도저히 들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그가 솔직하다며 지지를 했고 또 누군가는 결국은 가기 싫다고 쓰면 될 말을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느냐고도 했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에 오히려 답답해했다. 나는 그의 훌륭한 점만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끝까지 뭐든 물고 늘어져야 했다. 그의 진짜 속마음이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를 통해 드러났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의 모호한 대답들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유도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모순이었던 거다. 결국 그에게 명확한 대답을 원했던 거니까. 하지만 애초 그에게 명확한 답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그는 그의 길을 간 것일 테고.

 재판엘 따라갔다. 1차 재판에서였다. 형사재판이었다. 그때 그는 죄수복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재판장 안의 죄수복 입은 ‘피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마음이 갑갑해졌다. 따지고 보면 그는 죄를 지은 게 아니다. 판사는 양심의 자유보다 국방의 의무가 더 상위에 있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게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한계인가. 자유가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논리들.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병역거부를 고민하면서, 수십수백일을 잠 못 이루고 괴로워하며 보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전 날아온 공소사실에는 단 두 문장이 적혀있을 뿐입니다. 허망했습니다. 법이 이토록 사람의 삶에 무감각하고 잔인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물어보고는,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한마디 그리고 훅 하고 읽어내려 가버린 최후진술, 짧았던 순식간. 그곳엔 오직 선고만 있을 뿐이었다.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앞두고
대기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서른 인생 가깝게 끙끙댄 자신의 고민이 단지 두 문장으로 기소장에 적히는 구나, “몇 월 며칠 입영날짜를 보고도 이행하지 않았고, 이로써 병역법을 위반했다”는 두 문장으로 설명되는 거였구나 싶어서 속상했다고 했다. 그는 법원에 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겼다. 사건번호의 피의자로만 호명되는 게 싫었지만 형사재판이라는 법정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지막 재판 때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제출한 자료들을 다 읽어봤다고, 그런데 당신이 주장하는 게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고. 사실 나는 판사의 그런 발언이 정말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게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주장하는 바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고 한 거면, 거꾸로 판사가 조사내용이나 내가 제출한 소견서를 꼼꼼히 봤을 것이라고. 내가 무슨 평화주의자라고 쓴 소견서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자신의 사례가 판사입장에서는 별로 관심가질 만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표현한 그런 말이, 결국은 법률적인 틀로써 잘 잡히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그래서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고.

 이제 그는 감옥에 있다. 죄수복을 입었고 이름이 아닌 번호로 호명된다. 더하다면 군대보다 더할 감옥으로 그는 갔다. 모두 다 똑같은 삶을 살 순 없다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계속 짐이었던 군대라는 문제에, 어쨌든 그는 한 종지부를 찍었다. 그가 했던 말처럼, 병역거부가 인생의 한 지점에서 점을 찍는 행위라면 그러고서 앞으로도 자기를 배신하지 않고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법률적이고 획일적인 어떤 체에 걸리지 않고 더 잘 도망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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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떡검 장관’의 중증 ‘5공 향수병’ [2010.03.25. 제803호]
청송교도소 찾아 보호감호제 부활 밝힌 이귀남 법무부 장관…
‘여중생 살해’ 책임 있는 국가가 되레 큰소리치는 꼴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청송교도소에 떴다. 매우 이례적인 방문이다. 장관의 말은 거침없었다. 청송교도소가 흉악범을 격리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며, 사형집행장 설치와 보호감호제 부활 등 많은 말을 쏟아냈다. 한결같이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말이다. 부산 여중생 피살 사건 대책과 무관한, 실효성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잔뜩 쏟아냈다.

» 이귀남 법무부 장관의 ‘청송 발언’과 관련해서는 법무부와 검찰 내부에서조차 ‘분위기 띄우기’용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장관이 3월16일 청송교도소를 방문해 초등생 성폭행 사건 등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은 조두순씨와 대화하고 있다. 법무부 제공
재범 우려 명목만으로 7년까지 수감

보호감호제만 해도 그렇다. 2005년에 폐지된 사회보호법은 “재범의 위험성이 있고 특수한 교육·개선 및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사회 복귀를 촉진하고 사회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했다. 이미 형을 마친 사람을 석방하지 않고, 오로지 재범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7년까지 더 감옥에 가둘 수 있었던 거다. 재범의 우려라지만, 그건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미래의 영역이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처럼 1981년부터 2005년까지 국가는 미래의 범죄를 예측해 죗값과 별개로 감옥에 가둬버리는 인권침해를 합법적으로 감행했다. 범죄자를 격리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죄지은 만큼이어야 한다. 사회보호법은 전두환 일당이 국민을 테러한 ‘삼청교육대’ 운용의 법률적 근거였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흉악범을 가둔다고 했지만, 실상은 80% 이상이 절도범이었다.

보호감호제가 범죄자의 사회 복귀를 촉진한다지만, 실무는 전혀 딴판이었다. 청송에 보호감호소를 지은 것부터 잘못이다. 지금은 그나마 교통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오지 중의 오지다. 깎아지른 절벽을 뒤로하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데, 교도관들마저 근무를 꺼려 신입 시절에 강제로 몇 년씩 근무를 시켜야 직원 수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곳이다. 면회도 쉽지 않고, 워낙 오지다 보니 교육도 쉽지 않다. 사회와 가장 동떨어진 곳에 보호감호소를 지어놓고는, 사회 복귀를 촉진한다고 말만 했다.

그러니 사회보호법 폐지는 순리였고, 상식의 복원이었다.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등 보수적인 법률가 출신들이 사회보호법의 폐지에 앞장선 것이나, 여야 합의로 법을 폐지한 것도 같은 까닭이다. 다만, 법을 폐지하면서 놔둔 경과규정 때문에 아직도 100명쯤 되는 피감호자들이 2005년 이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반인권적 감호를 당하고 있는 것만이 풀리지 않은 숙제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이 시계를 완전히 거꾸로 돌리고 있다. 군사정권의 흔적이 가장 적나라하게 남아 있는 청송교도소가 무대였다. 청송까지 기자들을 잔뜩 불러모아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까지 등장시키며 법무부도 부산 여중생 피살 사건과 관련해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하긴 청송만큼 과거를 회상하기에 좋은 곳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한 나라의 법집행을 책임지는 법무부 장관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범죄로 희생된 한 여중생의 죽음에 기대 과거 회귀, 인권 역행에 앞장서겠다는 것은 정말이지 화나는 일이다.


‘여중생 죽음’ 기대어 과거 회귀 시도?

여중생을 살해한 김길태라는 ‘괴물’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김씨가 피해자가 다니던 학교 화장실에서 성폭행을 시도했을 때나 20대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고 신고했을 때 경찰이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성폭행도 살인도 막을 수 있었다. 여중생의 죽음은 그래서 국가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법무부 장관은 흔한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그저 과거 군부독재 정권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다. 고약한 시절의 고약한 장관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위클리경향 868호

[사회]“자치경찰제 도입·교정교육 원점부터”

ㆍ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김길태 사건’ 재발 방지대책 제안

김길태의 범행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합해서 11년을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동안 제대로 된 교정교화가 이뤄졌다면 그가 ‘괴물’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을 교정·교화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그저 가둬 두는 것 말고는 교도소에서 진행되는 교육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의 교정 현실이 근본부터 변하지 않는다면 작은 범죄자를 얼마 동안 가둬 두었다가 오히려 더 큰 범죄자로 만들어 사회로 돌려보내는 김길태 식의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모두가 범죄자를 단지 가둬 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말뿐이다.
지난 3월 16일 부산 여중생 이 모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에 대한 현장검증에서 김길태의 대역이 물통에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연합뉴스

김길태의 범행은 막을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성폭행을 하기 위해 초등학교 화장실에 침입했을 때, 지난 1월 20대 여성이 성폭행 당했을 때라도 경찰이 제대로 대응했다면 여중생 이 모양의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사형제·경찰직무평가 논의 한계
이양 실종신고가 접수됐을 때도 그렇다. 대대적인 언론보도 이전, 대통령까지 나서 범인 검거를 추궁하기 이전에도 경찰이 열심이었다면 초동에 범죄를 진압하고 이양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을 거다.

강호순 사건도 비슷했다. 경찰이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난 다음이었다. 강호순에 의해 희생된 다른 여성들도 비슷했다. 실종신고가 있었지만 경찰은 기다리라고만 했고, 결과는 끔찍하기만 했다.

왜 경찰은 딸이, 아내가 실종됐다는 애타는 호소에 이토록 둔감할까. 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도 굼뜨기만 한 걸까. 왜 언론의 질타와 대통령의 꾸중이 있어야만 긴장감을 갖고 사건을 다루는 것일까. 모든 사건이 언론에 나올 수도, 대통령의 관심사가 될 수도 없기에 시민들은 너무 불안하다.

사람들은 성폭행 사건의 직무평가 배점이 낮아서,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얼굴 공개를 하지 안하서 그렇다고도 하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생뚱맞게 10년 동안의 좌파교육 탓이란다. 법무부 장관은 보호감호제와 사형 집행을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좌파교육 탓이라는 안씨의 말이야 대꾸할 가치도 없지만 다른 대책이란 것들도 그 수준은 비슷하다. 평가 배점이 높은 사건에서도 경찰의 무능은 마찬가지니 배점 조정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사형 집행은 단순한 보복 말고는 범죄 예방 효과나 다른 형사정책적 실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미 확인된 가운데 이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대중의 분노에 기대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작은 범죄자가 큰 범죄자가 되는 교정 현실에서 형을 마친 다음 보호감호제를 통해 7년을 더 살게 하면 과연 문제가 해결될까? 오히려 김길태 같은 ‘괴물’만 더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대책은 쏟아져 나오지만 대개는 지난해 강호순 사건 때도 쓴 재탕, 삼탕일 뿐이다.

실종된 가족이 범죄에 희생됐는지도 몰라 애타는 시민의 호소에 둔감한 경찰을 근본부터 제대로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리 대책이 쏟아져 나와도 이런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지난 3월 16일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형 집행 검토와 보호감호 부활을 언급했다. 그러나 일방적인 처벌 강화 주장은 대중의 분노에 기댄 포플리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제공
우리가 제대로 된 치안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자치경찰제를 외면한 탓이다. 한국만 유독 국가경찰제다. 모든 공무원 조직은 권한, 인사, 예산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다. 국가경찰제는 이 모든 것을 대통령 한사람이 틀어쥐고 있는 제도다. 명실상부 대통령만이 경찰의 주인인 가운데 경찰이 대통령만 의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자치경찰제가 도입돼 지방경찰청장·경찰서장을 지역 주민이 직접 뽑거나 최소한 지역 주민이 경찰 인사와 예산을 통제해도 경찰이 지역주민의 애끓는 호소를 외면할 수 있을까? 경찰은 시국치안에만 열심이지 민생치안에 대해서는 언제나 뒷전이다. 권한도, 비용도 시민에게서 나왔지만 경찰의 서비스는 대통령에게만 집중돼 있다. 자치경찰제는 권력에게 빼앗긴 경찰을 찾아오는 작업이다.

길거리에서 교통위반을 했다고 시민들의 호주머니를 갈취하던 경찰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경찰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기보다 휴대전화 보급 등으로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든 경찰의 부패와 비위를 녹음·녹화할 수 있게 된 사실이 크다. 모든 권력에는 반드시 감시가 필요한 까닭이다. 경찰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정작 아무런 감시도 받지 않고 있다. 부패와 비위, 무능과 구태의연한 무감각의 원인은 자질 부족이 아니라 감시 부족 때문이다. 영국의 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mmission, 독립적 경찰비리민원조사위원회) 같은 기구가 있어서 밤낮없이 경찰을 감시했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수백명의 전문가들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으면 우리 시민들이 경찰에게서 받는 대접이 이렇게 푸대접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독립 경찰감시기구 검토해야”
사건이 터지면 언론은 중계방송식 보도를 통해 피의자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까지 쫓거나 기껏해야 흉악범의 얼굴 사진이나 보여 주면서 마치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자사 광고를 내보낸다. 어린이의 비참한 죽음마저 자사 매출과 연관 짓는 그 장삿속이 끔찍하다. 언론의 선동이 앞서고 정부의 매번 같은 대책이 뒤따른다. 시민들은 언제나 흥분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모든 것을 잊는다. 한판 푸닥거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면 남는 것은 오로지 피해자와 그 가족의 깊은 상처뿐이고, 앞으로 다시 범죄의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뿐이다.

범죄자를 ‘괴물’로 만드는 것도, 그를 응징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한 건 다시는 이런 비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지, 왜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데도 우리 아이들의 안전조차 제대로 지켜 주지 않는지에 대한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자치경찰제를 시행하고, 정치 권력과는 독립된 전문 경찰감시기구를 설립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더 이상 언론 장사꾼과 무책임한 공직자들의 언술에 속지 말자.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억울하게 희생된 이양을 위해서라도, 우리 딸들을 위해서라도 이번만은 우리의 분노를 제대로 모아 보자.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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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중앙대 역사학과, 문화연구학과 교수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나라 중의 하나로 흔히 네덜란드가 꼽힌다. 마리화나를 포함한 마약과 공창(公娼)제도가 대변하는 육체적 향락이 허용된 세계에서 매우 드문 나라이기 때문이다. 골목마다 눈에 띄는 '커피 하우스'에 가면 마리화나를 쉽게 구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량을 소지할 수도 있다. 또한 관광객들의 단골 답사지로 알려진 암스테르담 중심가 홍등가(Red Light Street)에서는 금전을 매개로 한 성매매가 공공연히 거래된다. 라이덴과 같은 대학촌에도 '에로틱 하우스'라는 간판을 내건 업소가 주택가에 버젓이 위치한다. 내가 작년 여름에 '금지된 것이 없는 나라'에 체류하기 위해 짐을 꾸릴 때 친구들이 염려와 부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환송해 준 까닭도 여기에 있으리라.

 지난 6개월 정도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알아보니까 사정이 다소 다르다. 마리화나를 포함한 약한 마약류(soft drugs)를 소비하는 것은 엄격히 따지면 여전히 불법이다. 다만, '관용'될 뿐이다. 보통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추구하는 탐닉을 감시, 통제, 금지하는데 따르는 공적인 재정 부담과 인적자원의 낭비 및 현실적인 실효성 등의 여러 요인들을 고려하여 관행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5-24세의 네덜란드 청년층의 9.7%가 한 달에 1번 정도 약한 마약류를 즐기며, 전체국민의 60%가 약한 마약류의 합법화를 지지한다. 이런 배경 하에 온갖 사회제도를 도덕적 잣대가 아니라 철저히 실용적인 차원에서 실험하고 검증하는 네덜란드 식의 '똘레랑스' (네덜란드 용어로는 gedoogbeleid) 정책이 법규와 실제가 다른 특이한 마약정책을 잉태한 셈이다.

 마리화나 피는 것이 '관용'되는 것에 비해 성매매는 네덜란드에서 완전히 합법적이다. 1988년에 창녀/창남은 정상적 직업인으로 인정받았고, 2000년에는 성매매업소가 라이센서를 획득한 합법업체로 승격되었다. 현재 대략 150개의 사업자등록증을 획득한 성매매업소가 암스테르담에서 개업 중이며 8천-1만 2천명의 성노동자들이 업계에 종사하며 연간 1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창출한다. 홍등가에서 도보로 20-30분 거리에 떨어진 반 고호(Van Gogh)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이 연 150만 명이며 연간 입장료 수입이 대략 1천만 달러인 것인 것과 비교해 보면 흥미롭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서양격언을 곱씹어 보면 뒷맛이 남는다.

 
붉은 조명이 빛나고 있는 암스테르담의 홍등가 ‘데 왈렌’ 구역.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네덜란드에서의 공창제도의 도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의 존재이유와 유용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자연적인 쾌락권리를 국가가 도와주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실용적 똘레랑스 정신을 역시 반영한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혹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육체적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도 성적 기본권에서 절대로 제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낳은 사회적인 실험이 현재진형형인 장애인에 대한 성적 서비스 제공제도이다.

 육체가 불편한 성인고객들에게 성관계를 포함한 '서비스 배달'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비영리 사회단체가 1982년에 창립된 '선택적 인간관계 재단'(Stichting Alternatieve Relatiebemiddeling, SAR)이다. 간호사 출신들이 중심이 된 자원봉사자 체제로 운영되는 SAR은 장애자들에게 단순히 성관계만이 아니라 쇼핑과 산책, 영화감상 등의 동료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한다. 재단의 홈페이지(www.stichtingsar.nl)에서 필자가 확인해 보니까, 80유로(약 12만원)의 금액으로 고객은  출장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금액의 7-8% 정도는 재단 운영비로 재투자 되고 나머지는 서비스제공 당사자의 교통비와 사례비로 충당된다.

 필자와 같은 연구원(IIAS)에 소속된 가토(Kato Masae) 박사의 보충설명에 의하면, 극히 드물지만 가난한 장애자에게는 지방정부가 SAR 지불비용에 대해 공적 자금으로 일부 보조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서비스는 원칙적으로 수익자 부담이며 네덜란드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장애인들은 금전적인 걱정 없이 정기적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2005년 현재 1,800명이 SAR에 등록된 고객이며 18명의 여성과 3명의 남성이 서비스 자원공급자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와 벨기에 및 독일 일부 지역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성 서비스 공급제도는 어쩌면 19세기 전반 초기사회주의자들이 꿈꾸었던 허무맹랑한 '날 생각'이 150년 뒤에 열매 맺은 결과일 수도 있다. 당시 대표적인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의 한 명이었던 프랑스의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는 자신이 스케치한 이상적인 공동체(팔랑스테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양도할 수 없는 최소한의 육체적 쾌락추구권을 갖는다고 천명했다. 가난하거나 늙었거나 혹은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거나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성적 파트너를 스스로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에서 무료로 '사랑의 배달부'를 파견하여 누구나 공평하게 최소한의 육체적 행복을 향유할 권리를 보장했다.

 일찍이 누군가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못한다"고 선언한 이후, 인류는 형이상학적인 '말씀'의 복음에 포획되어 형이(배꼽)하학적인 육체는 오랫동안 찬밥신세였었다고 서양지성사는 기록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육체담론의 선구자격인 니체의 철학적 금언을 빌려 역설적으로 반박하자면, "거룩한 말씀은 천박한 육체에 빌붙어 사는 하숙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신성한 노동권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굶주리지 않고 사소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기본권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장애자 아들이 억제해야만 하는 욕망의 응어리를 풀어주기 위해 그를 업고 사창가를 헤매는 늙은 어머니와 남동생의 이야기(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를 읽은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가물가물 하지만 군대에서의 사고로 불구가 된 아들의 폭력적인 (자위행위를 포함한) 발작 증세를 진정시켜주기 위해 가족들이 창녀를 구하러 다니는 소설은 슬픈 육체의 '생얼'을 상징적으로 증언한다. 육체적 터치와 보살핌은 본능적 욕망의 동물적인 교환만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이 지향하는 지극히 온전한 행위의 일부분인 것이다.

 극히 예외적인 서양사례에 기대어 육체적 쾌락의 기본권을 옹호하려는 필자의 글을 (다소) 낯부끄럽고 (매우) 한심한 봄 잠꼬대라고 항의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있고 장애인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마저도 보장되지 않는 한국의 현실을 기억한다면 이해할만한 불만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3류 역사가가 얕게 배운 역사적인 차원에서 관찰하면, 사회적 변혁은 늘 비천한 변두리에서 제기된 발칙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어제의 황당하고 유치찬란한 유토피아가 오늘은 위험하고 급진적인 사고방식으로 배척되다가 내일에는 경청할만한 건강한 대안으로 모색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진정 견디기 어려운 것은 비루한 시간의 사슬이 아니라 전망 없는 상식과 고정관념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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