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인권] ① ‘경찰고문사건’으로 본 인권 현주소
“독재정권 때나 있을법한 일”
이명박정부 인권역주행 심각 … ‘억압적’ 공권력 작동방식 탓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헌법 21조 1,2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헌법 제34조 1항 5항)
#지난 1985년 송파 보안사 지하실과 1층에서 노동자 학생 민주인사들이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 두절된 채 남녀 가릴 것 없이 갖은 욕설과 협박 몽둥이찜질 물고문 전기고문 등 상상을 초월한 살인적 고문을 당하면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1986년 5·3 인천 직선제 개헌투쟁 수배자)
#2009년 8월경부터 2010년 3월말까지 강절도 피의자 22명은 양천경찰서 강력팀 사무실에서 입에 두루마리 휴지 또는 수건 등으로 재갈을 물린 상태에서 머리를 방석에 눌린 채 날개꺾기 고문을 당하면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2010년 6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강절도 피의자)
서슬 푸른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 2010년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벌어졌다. 국가가 자행하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인 고문이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 스스로 법질서를 훼손하며 ‘대한민국 인권시계’를 24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고문진상을 파헤친 인권위는 “지난 10년간 경찰 차량 안에서 구타를 당했다는 진정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사무실 안에서 구타와 고문이 이뤄진 사례는 없었다”며 놀라워했을 정도다.
인권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여러 분야에서 인권이 후퇴하고 있지만 고문이 다시 등장한 것은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우리나라의 공권력 작동 방식이 권위적이고 억압적이어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달리는 버스까지 세워 검문 = 이명박정부에서 경찰의 인권역주행은 이뿐이 아니다.
마구잡이 체포에 무차별적 불심검문도 서슴없이 이뤄졌다. 경찰은 지난 22일 ‘천안함 사건’ 의혹제기 유인물을 배포한 대학생 두 명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체포했다.
‘천안함 유언비어’가 6·2 지방선거에 악용됐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3일엔 서울대학교로 향하던 시내버스를 세우고 버스에 올라타 대학생들이 불온유인물을 배포한 정황이 있다며 버스에 탄 대학생들에게 경찰서까지 임의동행을 요구했다.
경찰이 이들 대학생에게 신청한 구속영장은 그러나 기각됐다.
시민단체와 학생들은 “80년대 불심검문이 2010년엔 재현됐다”며 반인권적 경찰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제사회도 경찰 인권정책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2010 연례보고서에서 “한국 경찰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언론인 및 시위자를 체포하는 일들이 발생했다”며 “표현의 자유 침해가 심각하다”며 경찰의 인권침해 문제를 우선적으로 지목했다.
◆“2년여간 표현의 자유 권리침해” = 문제는 경찰 고문사건이나 불심검문이 MB정부 인권후퇴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국제앰네스티조차 “한국의 인권 상황이 전반적으로 역주행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로 MB정부의 인권정책이 암울했던 80년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단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불법시위의 가능성만으로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둘러싸 시민의 출입을 봉쇄하고 지난해 7월 쌍용차 노조원들에게 사측이 식량과 물을 차단한 점 등에 대해 엠네스티는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교과부가 민노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소속 교사를 최근 대량 파면한 것에 대해선 ‘정치참여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비판한 도울 김용옥이 검찰에 고발되고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경찰이 조사를 벌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했다.
정부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 중 불법시위를 이유로 1260여명의 시민을 기소한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앞서 지난 5월 6일부터 12일간 우리나라 표현의 자유 침해상황을 조사한 프랭크 라 뤼 엠네스티 특별보고관 역시 “1987년 이래 인권분야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인 한국에서 지난 2년 동안 전반적인 인권과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축소됐다”고 밝혔다.
라 뤼 보고관은 지난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광장에서의 집회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2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4대강 사업, 무상급식 등 일부 쟁점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청 등 16개의 정부기관과 한국의 NGO단체들, 표현의 자유 침해 피해자들을 직접 면담 조사 한 라 뤼 보고관은 △집회시위의 자유 △공영방송의 독립성 △한국 공무원들의 의사표현 △선거와 인터넷 상의 의사 표현 △국가의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등에 대해 개선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고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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