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종교자유 투쟁… 양심적 병역거부… 강의석 끝내 구속
법원,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1년6월 선고

학내 종교자유 투쟁과 국군의날 알몸 퍼포먼스 등으로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강의석씨(25)가 수인(囚人)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권기만 판사는 2일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강씨에게 징역 1년6월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강씨는 지난해 11월 충남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라는 공익근무요원소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소하지 않아 지난 4월 병역법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당시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군대 제도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여러 대안도 생각해봤지만 현실적으로 감옥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권 판사는 이날 “강씨는 군대의 존재가 평화를 위협하므로 폐지돼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입영하지 않았고, 이는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사유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양심형성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이더라도 양심을 실현하는 자유는 제한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강씨는 2004년 기독교 계열 사립학교인 대광고 재학 중 “종교 교육을 위해 설립된 사립학교에서도 학생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1인시위를 벌이다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대광고와 서울시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6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일부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손해배상금으로 받은 2500여만원은 모두 인권연대에 기부했고, 이 단체는 강씨의 기부금으로 ‘종교자유 인권상’을 제정했다.

강씨는 2008년 10월1일 국군의날 기념 퍼레이드에서 전차부대가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를 지날 때 알몸으로 뛰어나와 전차 행진을 막고, 과자로 만든 소총으로 전차에 총격을 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다 공연음란죄로 체포됐다. 택시기사, 호스트바 종업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자신을 주연으로 한 영화를 찍기도 했다.

2009년 사법시험에 응시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간 그는 ‘강의석닷컴’이라는 스쿠터 대여·심부름센터 사업을 시작해 CEO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심부름센터는 최근 재정난으로 폐업했다. 200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강씨는 지난해 2학기에 미등록 제적됐다. 사실상의 자퇴다.


경찰이 신형 가스분사기 등 진압장비 4만5000여점을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 등에 확대 보급키로 했다. 수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가스분사기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호신용 경봉은 더 길어지는 등 성능도 강화될 예정이어서 오·남용으로 인한 인권 침해가 우려되고 있다.

경찰청은 23일 “현장 경찰관들의 안전과 범죄 대응능력 강화를 위해 신형 가스분사기 8000정, 전자충격기 900정, 호신용 경봉 1만2000개, 수갑 1만7000개, 호신용 조끼 3000착, 방검장갑 4500개를 확대·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조현오 경찰청장이 지난 9일 지휘부 회의에서 “경찰관서에서 취객 등이 난동을 부릴 경우 규정에 따라 과감하게 총기를 사용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이후 장비 보유실태 현장점검 등을 통해 노후장비를 교체하고 신규 장비 4만5400점을 보급키로 했다.

주요 장비는 성능이 대폭 강화된다. 가스분사기는 사거리 확대와 함께 액체형 신형 최루액이 사용될 예정이다. 기존 전자충격기에는 현장증거 수집을 위해 녹화카메라를 부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용도 소형 방패도 도입되는데, 평상시 사무실에서는 책받침용으로 쓰다 위급시 방패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10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위 진압용으로 지향성 음향장비(음향대포) 도입을 추진했다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우려에 밀려 보류한 바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장비를 보강하더라도 경찰 수뇌부 지시에 의해 이뤄질 게 아니라, 사용 장비의 안전성 여부와 적절한 사용범위에 대한 민간 전문가·시민단체와의 공동 검토를 거쳐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체포절차 준수” 경찰의 멋쩍은 대책(한겨레 2011.5.17)
경찰은 최근 “불법 시위자를 체포할 때 국민에게 더욱 공감받는 법 집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적법절차를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했고 “상황에 걸맞게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대응하겠다”고도 했다.
지난 3월21일 ‘자본주의연구회’(대학생 학술동아리) 관계자 3명을 체포한 뒤, 항의하는 대학생 51명을 전원 연행했던 경찰한테서 나온 태도 변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체포 4일 뒤인 3월25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과 마주 앉았다. 경찰청이 주최한 ‘경찰수사 신뢰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서다. 오 국장은 이날 경찰의 51명 연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여러 경우의 수 중에서 경찰은 ‘전원 연행’과 ‘30시간 구금’을 선택했다. 모진 조처였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조 청장은 “대한민국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수준은 어느 나라보다 인권친화적”이라며 반박했다. 오 국장은 다시 따졌다. “51명 중엔 남녀가 있고, 성년과 미성년이 있으며, 가담 정도의 경중이 있을 텐데 어떻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원 체포할 수 있냐”고 꼬집었다.

토론회 며칠 뒤 열린 간부회의에서 조 청장의 목소리엔 불편함이 어렸다. 그는 “왜 오창익 한 명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냐.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간부들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조 청장은 자본주의연구회 관계자 체포 당시의 적정성을 검토해 개선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고, 경찰청에선 ‘경비대책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 결국 경찰은 최근 검토를 완료하고 향후 집회·시위 해산 과정에선 ‘상당성의 원칙’(체포에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비례의 원칙’(상황에 비례해 필요한 수준으로 대응해야 한다), ‘형평성의 원칙’(진보단체와 보수단체에 동등하게 대응한다)을 준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경찰의 자본주의연구회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찰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검거 건수가 급증하면서, 무리한 법 적용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Why 뉴스] 조현오 경찰청장은 왜 총기 적극사용을 지시했나
'관악서 취객난동사건' 발단…"'규정에 따라 총기 사용하라' 지시, 권장한 건 아냐"
   

2011-05-12 09:02 CBS 권영철 선임기자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 주]

조현오 경찰청장이 "지구대나 파출소 경찰관들에게 위급한 상황에서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조 청장은 9일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에서 최근 취객이 흉기 난동을 부리는 상황이 벌어지자 팀장이 도망가는 모습을 보인 서울 관악경찰서 난우파출소의 사례를 언급하며 총기사용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청장은 경찰 조직 내에 총기를 사용하면 불이익을 받는 관행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점에 대해 "그런 매뉴얼, 규정이 어디 있느냐. 권총 등 장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비겁하고 나약한 직원은 퇴출시키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은 이에 따라 지역 경찰관에게 파출소나 지구대에서 근무하거나 현장에 출동할 때 권총이나 가스총, 테이저건 등을 반드시 휴대하고 상황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청장의 '총기사용' 지시에 대해 트위터나 인터넷 등에 찬반양론이 일고 있다. 정당한 지시라면서 찬성하는 의견과 '부적절하고 위험한 발언'이라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인권단체에서는 '총기 남용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조현오 경찰청장은 왜 총기 적극사용을 지시했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적극적으로 총기를 사용하라!' 이렇게 지시한 거냐?

= 조현오 경찰청장의 지시는 전제조건이 있다. '지구대나 파출소 경찰관들에게 위급한 상황에서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취지다. 일상적으로 총기를 적극 사용하라는 건 아니고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적극 대처하라는 얘기다. 조 청장과 11일 밤늦게 통화를 했는데 "총기사용을 권장하는 취지의 지시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이라면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해결을 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왜 이런 지시를 한 거냐?

= 최근 서울 관악경찰서 난우파출소에서 발생한 '취객난동' 사건이 총기사용을 지시한 발단이 됐다. 조 청장은 "파출소에 취객이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데도 한 경찰관은 맨손으로 맞서다 부상했고 팀장인 경찰관은 밖으로 나간 상황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 청장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 지시내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조 청장은 "공권력이 무시돼서는 안 된다며 범법자를 제대로 제압하는 강한 경찰상을 보여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조 청장은 "관악서 취객난동사건 보고를 받고 화가 많이 났다"면서 "상관이라는 사람이 도망을 갔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경찰관을 직위해제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경찰의 총기사용이 늘어나게 되는 거냐?

=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청장이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1999년 탈옥수 신창원 사건 이후 경찰이 실탄발사 기준을 공포탄 2발에서 1발로 줄이자 총기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난 전례가 있으니까 총기사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조현오 경찰청장은 11일 통화에서 "규정에 따라 총기를 사용"하라고 한 것이지 총기사용을 권장한 건 아니라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총기사용 규정이 있느냐?

=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에 경찰장비의 사용, 10조 2에 경찰장구의 사용, 10조 3에 분사기 등의 사용, 10조 4에 무기의 사용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경찰장비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무기와 경찰장구, 최루제 밑 그 발사장치, 감식기구차량, 선박, 항공기 등등 경찰의 직무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장치와 기구를 말한다. 경찰장구란 경찰관이 휴대하여 범인 검거와 범죄 진압 등 직무수행에 사용하는 수갑. 포승. 경찰봉. 방패 등을 말한다. '무기'라 함은 "인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도록 제작된 권총. 소총. 도검 등을 말한다"라고 각각 규정돼 있다.

"총기 적극 사용? 부적절하고 위..조현오 '경찰 위급시 총기 사용하라'

10조의 4에는 경찰관은 범인의 체포. 도주의 방지, 자기 또는 타인의 생명. 신체에 대한방호, 공무집행에 대한 항거의 억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그 사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형법에 규정한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에 해당하는 때 또는 4가지 규정된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에게 위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각 호에도 '무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라고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지만 '무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는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해서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현오 청장이 총기사용을 주저하거나 위축시키는 조항을 고치겠다고 했는데?

= 일선 경찰관이 직무수행 중 총기를 사용하면 곧바로 감찰조사가 기다리고 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라고 엄격하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총기 사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돼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조 청장은 "경찰관이 정당한 직무를 집행하는 것을 위축시키는 그런 규정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 청장은 "경찰관이 폭행을 당하거나 파출소 같은 경찰관서가 난동장소가 되는 것을 방치 할 수는 없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공권력에 대한 침해에는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를 위해 총기 및 장구 사용 때 발생하는 책임에 대한 면책조항 신설을 추진하고 적법한 장구사용으로 인해 소송을 당할 때는 법무팀이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청장은 다만 "경찰관이 총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격훈련 뿐 아니라 총기사용에 대한 안전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 이런 교육을 확대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총기사용' 지시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 트위터나 인터넷에는 찬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인권단체 등에서는 총기사용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먼저 트위터에 올라온 글들을 소개하자면

"경찰들에게 위급시 총기사용을 지시했다는 게 왜 논란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 많네. 자질 없는 경찰들이 있긴 하겠지만 경찰알기를 개뼈따구로 아는 인간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라거나

"그 나라 국민이 경찰은 때려도 되는 호구로 보이게 되면 결국 치안유지도 힘들게 되고 결국은 무고한 시민들이 더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총은 멋으로 들고 다니나? 위급할 때 써야지. 그리고 경찰들 운동 좀 합시다. 쪽팔리게 쯧쯧…", "위급시 경찰이 총기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나 그 위급에 대한 정의가 문제죠"라는 공감하는 내용들이다.

그렇지만 "총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라거나 "그게 전기총이 있던데, 총처럼 쏘는데 감전시켜 제압하는…", "꼭 총기여야 하는지…. 생명에 지장 없는 제압장비도 있을 텐데요." "개념 없는 경찰청장, 너무나 즉흥적이고 기준이 없는 발언"도 있었다.

또 "술취한 사람이 칼만 들어도 도망 다니면서, 무술 교육이나 더해라. 총들고 괜한 민간인들 죽이지 말고…" "법 적용을 엄하게 하거나 구금, 수갑사용 등 수단은 많을 것 같아요. 그 중에서 총은 제일 마지막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라는 글도 있다.

특히 "총은 정말 생사를 다투는 극도로 긴박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폭력도 항상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특히 공권력이므로 더욱 주의해야지요. 불심검문을 빌미로 수많은 인권침해가 있던 것 잘 아시잖아요"라는 비판이나 우려의 트윗도 이어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어떤 차원이냐?

= 총기사용이 남용되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10일 'CBS 시사쟈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서"위험하고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오 국장은 "총은 일단 사용하면 그 피해를 도저히 회복할 수 없다. 인명을 살상하는 무서운 무기다. 탈옥수 신창원 사건 이후 적극적으로 총기 사용을 지시했는데 총기사용 건수가 2배로 늘어나고 희생자가 속출했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총기사용이 늘어나면서 중학생이 총을 맞아 숨진 적이 있고 행인이 유탄을 맞고 사망한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오 국장은 "관악서 파출소 취객 난동사건의 핵심은 총기를 사용했냐 아니냐가 아니라 현장에서 피한 팀장이라는 경찰관의 상황대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면서 당시 상황에서 가스총으로도 제압이 가능했고 경찰봉이나 삼단봉으로 제압할 수 있는데도 책임 있는 경찰관이 도망간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결론적으로 경찰관의 미숙한 대응을 총기사용이라는 강공책으로 돌파하려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 국장은 "경찰관이 총기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며, 총은 총을 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경찰관, 특공대들만 쏘도록 하는 데 좋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트위터 등에도 꼭 총기를 사용하기 보다는 다른 수단을 동원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학생인권은 화장실에서부터 (홍승권 위원)

홍승권/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평소 신경을 집중하면 얼굴이 잘 달아오르는 체질이어서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면을 자주 하는 편이다. 화장실에 수건이 있으면 고맙고 수건이 없으면 화장지를 조금 뜯어 수건 대용으로 삼는다.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서 웬만한 공중화장실에는 늘 화장지가 칸마다 잘 비치되어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일부 화장실은 입구에서 자판기에다 동전을 넣고 화장지를 뽑아 쓰거나 밖에 설치된 덕용화장지를 각자 쓸 만큼 뜯어다가 쓰곤 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화장실은 엄청 깨끗해지고 편리해졌다.

 얼마 전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회의를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얼굴에 찬물을 묻히고서 수건을 찾으니 없었고 변기 칸에서 화장지를 찾으니 아예 없었다. 결국 대충 바람에 말릴 수밖에 없었는데, 행정실장님께 왜 화장지가 없느냐고 여쭈었더니 아이들이 화장지를 물에 묻혀 벽이나 천정에 붙이는 장난을 하기 때문에 없앴노라고 한다. 그러면 교직원용, 학생용을 구별하지 말고 화장실을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쓰면 아이들이 함부로 장난을 못 치지 않겠냐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긴 한데..’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신다.


사진 출처 - 참세상

 아마도 대부분의 학교가 이와 같은 실상이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이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교실에서부터 화장지를 챙겨야 하다니...
아이들이 거의 매일 교육적 효과와는 무관한 일로 익숙하지 않은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특히나 저학년 아이들은 이에 적응하는데 엄청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화장지를 좀 아끼려고 이렇게까지 아이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도록 해야 할까?
이참에 학생화장실과 교사용 화장실을 통합하면 좋지 않을까? 아이들이 선생님 보는 앞에서 함부로 종이를 낭비하며 장난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통합하게 되면 중고등학교의 흡연지도도 한층 나아지리라 생각된다.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쓰는 화장실에서 감히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워대지는 않을 테니까...

홍승권 위원은 현재 삼인출판사 부사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성추행 사건, 우리는 ‘침묵의 공범’ (조재희)

조재희/ 객원 칼럼니스트

 친구들과의 약속에 늦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가 붐볐다. 버스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내리기가 무섭게 약속장소로 뛰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 홍대 앞은 북적인다. 사람들을 헤치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순간 한 여자가 나를 붙잡았다. 일행으로 보이는 두 여자도 보였다. 그들은 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에게 이 남자를 잠시만 붙잡고 있어 달라고 했다. 곧 경찰이 올 거라고도 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북적이는 거리를 여자들 일행이 걷고 있었다. 그 뒤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일행 중 한 여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봤다. 그 여자의 치마 밑에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남자의 휴대폰 카메라였다. 남자는 황급히 도망치려 했다. 여자들은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다. 주변에 도움을 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괜히 나에게도 피해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경찰이 도착 할 때까지 도움을 줬다. 그러나 나 또한 확신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여자가 나를 붙잡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내가 그저 무수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면, 나서서 도움을 줬을까? 아마 나 또한 ‘간접적 방조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간접적 방조범’은 성 추행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정도 범죄 발생에 일조한다. 이들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비단 ‘간접적 방조범’뿐만이 아니다. 범행 현장에 없었어도 ‘침묵의 공범’은 될 수 있다. ‘침묵’이라는 부작위도 사회의식을 형성한다. 범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침묵의 공범’이 된다. 얼마 전 의대생 집단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도 다양한 ‘침묵의 공범’들이 존재한다.  


15일 오전 고려대 정문 앞에서 한 졸업생이 고대 의대생 성추행자들을 출교조치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성추행 사건의 ‘침묵의 공범’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진 출처 - 뉴시스

 대학생들은 MT를 떠났다. 그곳에서 집단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반 성추행 사건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사람의 몸을 치료할 예비 의사들이다. 명문대에 재학 중인 수재들이기도 하다. 또한, 피해자는 바로 같은 학교 학생이다. 그들은 6년간 같이 수업을 들었다. 심지어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한 동기였다. 단순한 성추행에 그치지 않았다. 성추행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하였다. 참으로 파렴치한 행동이다.    피해 학생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가해 학생들 중 한명은 대학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피해 학생에게도 잘못이 있다 한다. 그래서 사과할 수 없다고 한다. 해당 대학은 미온적 대처로 일관한다. 심지어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쳤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피해자는 다시 한 번 정신적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이 사건의 ‘침묵의 공범’은 누구일까? 해당 의대생들이 재학 중인 대학교가 그러하다. 출교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은 거세져 갔다. 그러나 아직 가해 학생들에게 징계조차 내리지 않았다. 마치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대학의 정문 앞에서는 릴레이 시위가 벌어졌다. 웹상에서는 인권위 제소 페이스북 모임이 만들어졌다. 성추행 의대생들을 규탄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들은 재학생들이 아니다. 트위터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재학생들 또한 대학과 다르지 않다. 그들도 ‘침묵의 공범’에 해당한다. ‘침묵의 공범’은 ‘간접적 방조범’과는 다르다. 이들은 피해가 두려워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대학은 이미지 실추를 걱정할 것이다. 재학생들에게는 울타리 의식이 작용한다. 가해자가 내 선배이거나 후배 혹은 동기이다. 이 때문에 감싸주고 있는 것이다. 

 사건은 대학생들의 성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의식을 되돌아보자. 개개인의 스펙은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 이에 비해 성의식은 미성숙한 것이 사실이다.    성의 개방화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로 야기되는 성의 문란이 문제이다. 대학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한 책임에 의해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그러지 못하였다. 같은 대학생으로서 비판을 가해 마땅하다. 그러나 타 대학의 학생들조차 생각보다 조용하다. 사건 내용은 같은 대학생으로서 분개할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방관적인 태도이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침묵의 공범’인 셈이다.   

 하루에도 이 사건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이를 모르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물론 비판을 가하는 학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천적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나도 ‘침묵이 공범’이 된 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달라져보자. ‘성추행’은 어느 중범죄보다도 가볍다 할 수 없다. 특히나 대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가치관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대학과 재학생들부터 움직여야 한다. 이미지도, 울타리의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   바로 올바른 성가치관과 피해자의 인권이다. 다른 대학생들도 ‘침묵의 공범’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당한 비판과 실천적 행동은 많은 작용을 한다. 자신의 의식을 성숙시킬 수 있다. 또한 사회의 의식을 바르게 변화시킨다. 이제 능력뿐만 아니라 성 의식도 압축 성장시킬 때다.


“콘돔 쓰면 안전하다고? 이거 말도 안 된다. 자궁 내 루프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4월6일)

 16년간 지속된 인기 강의의 한 대목이다. 서울의 한 명문대에서 이번 1학기에만 400명의 학생이 이 강의를 수강했다. 인기는 높지만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문제 강의다. 바로 한양대 ‘성의 이해’다.

 강사의 말은 교재에 견주면 애교 수준이다. 교재는 <성 과학의 이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아주 그냥 가관이다.

 “성폭력은 남성에게 내재하고 있는 고유한 본능이다. 만일 미개한 곳에서 억제되지 않고 산다면 성적인 욕구가 만족되지 못할 때는 언제나 강간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p.234)

 “완전한 질외사정인 경우는 정자의 존재가 부정되므로 원칙적으로 임신이 될 수 없다.”(p.88)

 이 수업은 남학생만 듣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남성 중심의 시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과학적 근거도 부족하다. 설사 남학생만 듣더라도 여성을 이렇게 비하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성의 이해’는 단순한 음담패설을 넘어 잘못된 성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을 확산시킨다. 서울의 명문대에서 지금껏 이 강의가 16년째 계속됐다는 것 자체가 뉴스다.


성의 이해 수업이 진행된 강의실 앞에 붙여진 대자보

 이런 돌출적 강의는 사실 대학 일상의 성차별이 배경으로 자리하기 때문에 지속될 수 있다. 이 대학에 다니는 여성 오모(21)씨는 축제 때 경험을 털어놨다. 동아리 주점을 하면 거리에서 손님을 끌어오거나 테이블을 돌며 술을 나르는 일은 모두 여학생에게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여자들이 해야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선배들이 시켜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게 낫다고. 억지로 할 수 밖에 없죠. 삐끼짓 할 때 예쁜 애들이 많다고 해야 주점 인기도 올라간대요.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입고 오라고 말하기도 하죠.”

 오 씨는 결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냥 남학생들 틈바구니에서 아주 조금 문제의식을 느끼는 공대생일 뿐이다. 축제는 축제니까 참고 넘어가려 했지만, 강의 시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눈이 뒤집힌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이었죠. 교수가 학생들끼리 서로 질문과 답변을 해보라고 했어요. 근데 여학생이 나서면 1점씩 더 가산점을 준다고 하더군요. 여자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점수를 따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불쾌했죠. 점수 더 준다는 건 여학생들한테 더 이익을 주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말 그대로 여성을 깔 본 거죠. 여자란 이유 그 하나로.”

 오 씨가 불만을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괜히 말꼬투리 잡는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냐. 그 정도도 못 받아주면서 사회생활은 하겠니. 심지어 ‘꼴페미’라고 조롱받는다. 꼴통 페미니스트의 줄임말이란다. 함께 고민해 보자고 작은 목소리를 낸 건데, 너그럽지 못한 개인의 성격 탓으로 몰아간다. 이건 성차별에 이은 두 번째 폭력이다.

 친구들은 그나마 낫다.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으니까. 교수 선배로부터 “넌 왜 이렇게 예민하니” 이런 말을 들어보라. 불만은 곧 반항으로, 그 대가는 불이익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자꾸 이러니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참고 감춘다. 괴롭고 또 무서우니까.

 ‘성의 이해’ 강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일찍부터 있었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B+~A다. 우수 강의란 뜻이다.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대학의 양성평등센터라는 곳이 내놓은 대답은 더 웃긴다.


교재 <성 과학의 이해> 중에서 성폭력에 대한 언급 부분

 “현재 사안은 강의 내용이나 강사 스타일에 관련된 것이어서, 센터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드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명백한 성희롱 언행이라고 판단된 경우가 아니면 센터에서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이 강의를 진행하는 강사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바쁘다”였다. 반론을 듣고 싶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먼저 나선 건 학생들이다. 지난 4월 인터넷에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란 카페가 개설됐다. 이들은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강의 내용과 교재에 대해 반박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나와 함께 대자보를 쓰고 학교 곳곳에 게재하기도 했다. 언니네트워크,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단체들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힘을 보탰다. 7월에는 해당 강사에게 질의서를 보내는 것은 물론 총장과 학장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의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노력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강의의 잘못을 지적한 대자보는 강제로 철거됐다. 일부는 대자보를 붙이는 학생들의 사진을 무단으로 찍기도 했다. 이들은 강의 반대 활동과 그에 따른 언론 보도가 학교 망신을 불러왔다고 했다. 묻자. 잘못된 성지식을 주입시키고 성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태도. 그걸 가르치는 수업이 버젓이 이뤄지는 망신보다 더한 망신이 있을까.

 1학기가 끝났다. 이번 학기 한양대 ‘성의 이해’는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한양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도 과연 성 지식과 성 차별 항목에서 낙제를 면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성의 이해’가 또다시 6월 28일부터 진행되는 여름계절학기 과목으로 개설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는 정말 누가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

* 사진 및 내용 출처는 한양대 <성의 이해 >수업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 모임인
cafe.daum.net/realsex와 해당 카페 운영자와의 인터뷰입니다.


영어 권하는 사회 (유혜진)

유혜진/ 객원 칼럼니스트

 5년 전,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모든 것이 새로워 눈이 휘둥그레진 나. 그 중에서도 교양 영어 시간은 유독 즐거웠다. 영문법을 기계적으로 외우고 몇 가지 문제유형에 맞추어 답을 골라내는 연습이 전부였던 고등학교 영어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게 영어는 그저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학은 달랐다. 친구들이나 교수님과 직접 영어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매주 A4 반쪽 분량의 영어 에세이도 썼다. '어젯밤 내가 꾼 꿈'과 같은 사소한 주제부터 '이랜드 파업, 대선, 탈레반에 대한 생각'까지. 한국말로도 쉽게 쓰지 않던 글을 영어로 꾹꾹 눌러 썼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가 전부인 꽤나 단출한 문장이었지만 열심히 썼다. 글을 쓰고 나면 교수님은 내 생각에 동의를 하거나 반박하는 내용을 담아 코멘트를 달아주었다. 점점 재밌어졌다. 내 생각을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하고 싶었고, 더 정확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 열심히 사전을 뒤지고 교수님께 질문했다.

 하루는 교수님께서 좋아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물으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프랑스어가 좋아 꾸준히 공부해왔던 나였다. 프랑스어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교수님께서는 자신도 프랑스어를 잘 할 줄 안다고 반가워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작품들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내게 제안했다. 함께 언어를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교수님께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나는 교수님께 프랑스어를 배우는 방식이었다. 공통언어는 영어였다. 그렇게 나는 매주 교수님의 사무실을 찾았다. 두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영어와 한국어, 프랑스어가 튀어나왔다. 우리의 공부는 자유로웠다. 교수님은 나를 위해 헌 책방에서 시몬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원본을 구해왔다. 하루 한 페이지 남짓이었지만 함께 책을 읽고 질문을 주고받다. 가끔은 샹송을 듣기도 했다. 한국의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으셨던 교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에 대해 물어왔다. 내가 미처 몰랐던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또박또박 한국어 단어들을 MP3 파일로 녹음하는 긴장의 순간도 찾아왔다. 즐거웠다. 비록 나의 영어 실력과 프랑스어 실력은 교수님의 한국어 실력에 비해 더디게 늘었지만, 매 순간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1년 간 함께 하며 '아, 대학에서는 이렇게 공부하는 구나' 싶었다. '영어'를 매개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맛 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 후로 내가 만난 또 다른 대학의 영어는 '영어 강의'가 주는 스트레스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 곳에는 제대로 된 '영어'도, 제대로 된 '배움'도 없었다. 수업의 80% 가량만을 영어로 설명하고 한국말로 설명하는 교수님의 수업이 있었다. 학생들은 수업의 80%는 딴 짓을 하다가 마지막 20% 시간에만 집중을 했다. 원서 내용을 그대로 파워포인트에 옮겨 수업시간 내내 읽는 것이 한 학기 강의의 전부인 수업도 있었다. 어쨌든 강의실에선 영어가 흘러나왔다. 시험도 파워포인트 그대로였다. 영어강의가 절대평가임을 감안했을 때, 학생들에겐 최고의 인기 과목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수학문제풀이가 많은 경제학 수업으로 몰려갔다. 한 학기 동안 필요한 영어는 제한된 경제학 용어와 필수 동사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칠판에 적힌 교수님의 풀이와 교과서만 있다면 한 학기는 웬만큼 버틸 수 있었다. 영어 실력과 전공 실력, 어느 하나 향상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뭐하는 짓이냐'며 푸념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라는 형식에 치우쳐, 교육의 내용과 본질은 잊혀진지 오래였다. 제대로 영어를 배우기도 전 강의실에서 영어는 하나의 콤플렉스요, 스트레스일 뿐인 것이었다.


올해 초 카이스트에서는 4명의 학생이 자살해 큰 논란이 됐다. 징벌적 등록금제와 함께
100% 영어강의는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큰 부담이 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사실상 대부분의 4년제 대학에서는 영어강의를 실시하고 있다. 대학 영어 강의의 명분은 '글로벌 캠퍼스'의 실현이다. 전공을 영어로 설명하며 영어 원서 책을 보는 것이 대학의 경쟁력과 학생의 경쟁력 모두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의문이다. 몇몇 대학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실질적인 경쟁력의 강화일까. 이해하기 힘든 영어 강의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부담감만을 가중시키는 것이 경쟁력의 향상인지 말이다.  

 실제로 내가 들었던 영어 강의들도 대학 당국이 주장하는 '경쟁력'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영어교육과 대학 교양영어 강의와 연계되지 않은 영어강의의 무리한 도입은 학생들의 좌절감만을 키웠다. 수능과 내신에서 고득점을 했던 친구들도 강의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며 매번 고민을 늘어놓았다. 고액의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과외를 받았던 친구들은 조금 수월한 눈치였다. 그리고 수업의 흐름은 아버지의 직장에 따라 혹은 조기 유학으로 해외 연수의 기회가 있었던 친구들 위주로 돌아갔다. 교육 불평등의 한 양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강의실을 벗어난다고 해서 영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취업을 위한 스펙의 또 한 축엔 '토익 점수'가 버티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미 '토익 점수=영어 실력'이라는 공식이 깨진지 오래지만 우리는 또다시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YMCA의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영어시험 응시료와 강좌 수강료를 위해 연 평균 65만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생의 절반가량이 영어를 위해 해외연수를 떠나는 것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영어 사교육에 쓰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대학생과 학부모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학에서 '영어 교육'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대학평가를 위한 '영어강의'와 토익점수를 위한 '영어와의 사투'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대학은 '글로벌 캠퍼스'를 주창하며 영어강의는 대폭 늘려놓았지만 강의 내용과 운용은 부실했다. 사회에서는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지만 누구 하나 영어를 가르쳐주는 이 없었다. 또다시 고등학교 시절처럼 스타강사와 족집게 강의를 따라 사설 학원으로 내몰릴 뿐이었다. 더 이상 나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이란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영어는 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장과 같은 것이다.

 맹목적으로 영어를 권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과 함께 올바른 영어교육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이제 막 시작된 대학가의 여름방학. 즐거움이 사라진지 오래다. 해외연수를 위해 비행기에 몸을 태우고, 토익학원으로 향하는 청춘들의 발걸음이 또다시 무거워지는 계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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